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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8-20)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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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8-20)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깨달은 바는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추방되면서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성전이 나라 백성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약속은 오직 성경밖에 없음을 깨닫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만이 나라와 민족을 영원토록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전쟁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힘, 칼로도 무찌를 수 없는 위대한 힘을 성경교육(토라)에서 찾은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뒤늦게나마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르치려고 했지만 전 세계 각처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구사하지 못하므로 성경 교육은 위기를 맞게 되었고, 게다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타락과 죄악으로 또 다시 패망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다시 반복적인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은 400년 암흑시대의 고통을 안고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하면서 헬라의 식민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아픔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통치에 이어져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첩첩이 포위한 로마군대 앞에 이스라엘은 이제 멸망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로마 군대를 이기거나 물러가게 할 방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당시 가장 크게 활약한 랍비 중 하나인 요한나 벤 자카이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군사적인 승리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로마인을 이길 수 있는가? 로마인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벤 자카이는 그들보다 더 큰 무기는 교육임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유대인은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 로마인은 그들에게 칼을 전수해 주지만 유대인들은 칼보다 강한 교육을 자손에게 전수해 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로마를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벤 자카이는 그 교육이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벤 자카이는 당시 로마 사령관이었던 베스파니아누스를 성 밖에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로마 사령관은 그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벤 자카이는 위대한 학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벤 자카이는 베스파니아우스를 만나자마자 ‘황제여’ 하고 불렀습니다. 

얼마 지난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사자가 달려와 로마에서 황제가 죽어 원로원에서 베스파니아누스를 황제로 선출했다고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베스파니아누스는 벤 자카이의 예언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벤 자카이는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성전이 좋을까? 아니면 성서와 교사 랍비일까? 건물인 성전은 유대인을 구할 수 없지만 성경과 랍비는 유대인을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인 야브네를 파괴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인구가 작은 도시이지만 거기에는 대학이 있고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소원치고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한 황제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들어와 시내는 불바다가 되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야브네만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브네 도시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유대인 교육의 중심을 삼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멸망했지만 야브네에서 유대교 학원을 지었고, 거기서 뛰어난 랍비를 배출했고, 율법을 집대성한 ‘미쉬나’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배출한 랍비들에 의하여 성경을 온 국민들에게 가르쳤고 그 교육은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며 세계의 중심을 이루었던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 대제국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수 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이 유랑민의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경교육,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흥망 성쇠사’를 쓴 기번은 천년 제국 로마가 멸망한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노예들에게 자녀교육을 맡겼다는 것과 심각한 출생률 저하를 지적했습니다. 이는 로마인들이 사치와 향락에 사로잡혀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몰랐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나라는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교육을 우선순위로 삼고 역사상 최초로 의무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었음에도,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민족이 되었음에도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가르치고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가서 살지라도 제일 먼저 예배드리는 회당을 짓고, 다음으로 하나님 말씀, 토라를 가르치는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기 집을 짓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였습니다. 그중에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문명 하나만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토라교육, 말씀 교육입니다. 2천년가까이 나라와 땅을 잃어 버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하면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은 성경, 토라였습니다. 철저히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교육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혹자가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제목으로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도덕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어디에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주저하지 아니합니다. 임종 전 재산을 사회나 교회에 기증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기죽지 말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하며 덤벼들고, 부모에게 덤벼들고, 회사에서는 사장 앞에서도 큰소리를 칩니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나와서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고함부터 지릅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입니다. 어디에서든지 기죽지 않으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합니다. “기죽지 말고 살라”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을 정말 죽이는 말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인생의 살고 죽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렸으니 부활 생명의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 전할지라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나라 백성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약속하신 바 진리의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에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암에 걸려 의사로부터 1주일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10년 가까이 그토록 어렵고 힘들게 공부해서 마침내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틀 후에는 자식이 없는 삼촌이 죽으면서 수백억이 넘는 재산을 자기에게 유산(遺産)으로 남기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5일째 되는 날에 어느 유명 대학에서 자신의 논문을 보고 교수로 청빙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간 수년 동안 교제해왔던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자신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죽음’ 앞에 박사학위와 그 엄청난 재산, 그리고 대학 교수라는 영광스러운 직위와 사랑하는 여인과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결혼 등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헛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인생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이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장 시급합니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인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전해야만 합니다. 가서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생명이 되고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출석으로 그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을 배우고 그의 삶을 배우고 그의 인격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실천하므로 삶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 삶이 가라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포도나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있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야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죽은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지켜 행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앞으로 넘어져도 뒤로 넘어져도 복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왕궁에서 생활하며 왕궁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왕궁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은 우상숭배 제물로 바쳐진 후 제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왕궁 음식을 거절하고 우상숭배에 사용되지 않은 채식만을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왕궁 최고의 식단을 취한 소년들보다 그 지혜와 총명이 10배나 뛰어났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인정받아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후 국명(國名)과 왕이 두 번씩이나 바뀌어 메대의 다리오 왕에 이르기까지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탁월한 영적 능력으로 모든 관료들 중에 월등한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두 왕국의 흥망성쇠의 부침 속에서도 총리 직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다른 고관들의 시기와 질투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다른 관료들이 다니엘을 끌어 내리기 위해 그의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치명적인 결점을 찾으려 표적 수사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최후 수단으로 우상 숭배를 금하는 다니엘의 신앙을 이용해서 다니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들은 평소 다니엘의 투철한 신앙,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경배하는 신앙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왕 외에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는 소위 ‘황제 숭배 예식’이라는 ‘악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다니엘이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는 것을 겨냥한 ‘악법’이었습니다. 고관들이 이러한 악법을 제정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그 법을 고치지 못하도록 왕이 직접 친필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왕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법 제정을 기분좋게 여겨 서명하여 곧 그 ‘악법’이 발효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로서 이 법 제정을 알고 그 법령에 불복할 경우 자신의 직분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악법’때문에 매일 드리는 기도와 감사 생활을 멈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否認)하고 자신의 신앙을 더럽히는 것이어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단6:10)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감사 기도했다는 것은 비록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나라 민족이 멸망당했지만 조국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비록 자신과 더불어 수많은 동족들이 포로생활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라 민족을 회복시켜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 감사드린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이 악법에 따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상한 곳 하나 없이 살아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니엘의 무죄가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다니엘의 무죄가 증명되고 그 악법은 다니엘을 참소했던 자들이 꾸며낸 정치적 반역 음모였음이 드러나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낸 법에 따라 사자 굴속에 던져져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범사에’, 즉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감사하는’ 신앙생활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벧전 1:16)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느 시대나 살아있는 말씀으로 인생을 형통하게 합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3.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면 자신이 먼저 지켜야만 합니다. 자신이 가르쳐 지켜야 타인을 가르쳐 지키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신앙행태와 위선을 일곱 가지 죄악으로 지적하시면서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마23:1-39)

(마23:1-3)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권위자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위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나타났고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대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가르치는 것은 잘 하는데 그 가르침대로 자신들이 지키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르치신대로 지켜 행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권세가 나타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눅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율법학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이 일을 놓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보고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본래 죄인은 법정에서 취급되어야 하는데, 법관이 아닌 그들로서 죄인을 끌고 다닐 권리는 그들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학자들의 그러한 행동은 잔인한 월권행위였습니다. 그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답변에 따라 트집을 잡으려는 흉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그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을 것이면, 당시 식민지 통치권자인 로마의 정권이 유대 민간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로마의 정권을 거스리게 되어 로마 당국에 고발하고자 하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만일 그 여자를 돌로 치지 말라고 하셨더라면, 모세의 율법(레 20:10; 신 22:22)을 거스리게 되어 유대 최고 의회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에 죄인으로 고발해 그 여인과 더불어 처형할 구실을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간 예수께서는 끝없는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셨던 것을 이용해 교묘하게 예수님을 딜레마(窮地)에 빠뜨리려고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음모를 다 아시는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를 돌로 치기 전에 먼저 각기 자기 자신을 돌로 치라, 자신을 심판하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일찍이 가르치신 그대로입니다. 

마태복음7:5입니다.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6:1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갈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예수께서 그간 가르치신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의 양심을 찌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여자만 남았습니다. 진리를 짓밟아버리려는 간악한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가르치심에, 양심을 찌르신 말씀의 권위 앞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모두 다 물러갔습니다. 사실 그들의 양심이 살아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무릎을 꿇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라고 물으시자 그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 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에게 회개를 권고하실 뿐이고 정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대로 지켜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나타나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리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입만 살았다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권위가 세워지는 신앙생활, 성도 여러분의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자도 복이 있고 그 말씀을 듣는 자도 복이 있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도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말씀의 권위와 권세가 따르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축복과 가르치시는 축복,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축복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 왕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복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33-44을 보겠습니다.

(시119:33-44)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신앙생활로 하늘과 땅의 권세가 따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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