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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삼상 21-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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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삼상 21-23장) 
 
 
21-23장에서 다윗은 여러 곳으로 도피 생활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쫓는 사울은 점차 하나님을 힘써 대적하는 반면 쫓기는 다윗은 점차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합니다. 

요나단과 이별한 후 다윗은 기브아 동남쪽 4km 정도에 위치한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1)에게 “떡”(3)과 “칼”(8)을 구합니다. 22장 15절에는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있었음도 말해줍니다. 도피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놉의 성막에서 구한 셈이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윗은 아주 능숙하게 거짓말을 합니다(2, 8). 악의적인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시며 “나의 힘”이라고 고백한 성도의 태도로서는 적절치는 않지요(시 59:16-17). 중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20:3b)이라는 두려움 속에 있었던 다윗의 신앙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두려움을 극복할 만큼은 신뢰가 ‘아직 아니’ 두터웠지요. 한때는 담대히 골리앗에게 도전할 만큼 하나님을 깊이 신뢰했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들기도 할 만큼 현재의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서 기복이 있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지 매 순간 그분을 신뢰할 만큼은 아니었지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현실 문제에 부딪치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우리네 삶에서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우리 역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는 모순된 기도를 드리게 되니까요.

그 날에 다윗은 블레셋 지역인 “가드”로 갔습니다(10). 사울과 적대관계에 있는 그곳을 당분간 피난처로 삼고자 했겠지요. 하지만 다윗과 그의 명성을 잘 아는 왕의 신하들의 보고 때문에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합니다(12). 다윗은 꼼짝 없이 죽을 올무에 빠졌음을 감지했지요. 먹고 살기 위해 제사장에게 ‘거짓말’을 했던 다윗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체” 하고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짓”을 합니다(13, 15). 여러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거짓 행동’으로 쫓겨나기까지 정말 미친 듯이 연기를 했겠지요. 가드 사람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용맹한 다윗이 바로 그 가드 사람들 앞에서 참으로 비참하고 비굴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때 두 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시편 34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지은 시인데,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6)며 구원하신 여호와를 자랑합니다(2). 그리고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고 고백하지요. 마음이 상했다는 말은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뜻입니다. 명예와 품위가 땅에 떨어졌던 그 날에 다윗의 마음은 박살이 났습니다. 중심의 통회는 영혼이 회개했다는 의미인데, 그 사건으로 깊이 회개했음을 말해줍니다.

회개 내용에 대해서는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라는 표제가 붙은 시편 56편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3-4).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9)라는 표현도 있는데,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회개하며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다윗은 점차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허물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백성다운 품위와 명예를 지키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요. 다윗도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느라 사람들 앞에서 비굴해지고 미친 시늉까지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회상하기조차 싫을 만큼 얼굴이 화끈해지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지요. 하지만 깨어지는 아픔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형통의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실패가 연속될 때 하나님을 외면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제 형통할 때만이 아니라 실패의 때에도, 즐거운 날만이 아니라 두려운 날에도 그분을 신뢰하고자 결심했던 것이지요.

그 후 다윗은 가드 동남쪽 약 15km 지점에 있는 “아둘람 굴”로 도망했습니다(22:1).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그에게로 왔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여 그는 그 장관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모양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들인데, 그 인원이 “사백 명 가량”되었습니다(2).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는 혼자 있으면 만사가 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개인으로 두시지 않고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환난 날에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연단하신 까닭은 홀로 산속에서 수양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환난 당한 당신님의 백성들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것이었지요(고후 1:4).

많은 인원을 먹이고 보호해야 할 지도자가 된 다윗은 “모압 미스베”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기고 모압 땅의 요새에 거했습니다(3-4). 두려움 속에서 허둥대던 다윗이 잠잠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보내셔서 “이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해 주셨고 다윗은 순종합니다(5). 보통 지도자로 세움을 받으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다리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분명히 깨닫는 일입니다.

다윗이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표현은 있었어도, 그가 하나님께 묻고 지시를 따랐다는 표현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환난 당한 자들의 지도자가 된 이때부터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이 많이 언급됩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솔한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겠지요. 도망 다니는 처지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일을 벌일 여력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뜻에 순종합니다. ‘자기의 마음대로’하는 이방 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종인 왕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지요.

대조적으로 사울은 이방 왕들처럼 더욱 ‘자기의 마음대로’ 행합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8)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다윗을 쫓으면서도 피해의식과 외로움은 자기가 다 느낍니다. 그때 기회주의자 도엑은 아히멜렉이 다윗과 공모한 것처럼 왜곡된 보고를 합니다(10). 이 때문에 아히멜렉 제사장 가문이 거의 멸족됩니다. 제사장 엘리의 집에 주어졌던 저주가 1차적으로 실현되었지요(2:33).

사울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는 통로를 스스로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다윗이 그일라 성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라고 해석했고,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밀고 했을 때는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지요(23:7, 21). 다윗이 바른 정신으로 ‘미친 체’ 했었다면, 사울은 미친 정신으로 ‘온전한 체’했을 뿐이었지요. 아무튼 놉의 학살은 비극이었지만 다윗은 에봇을 가져온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이 사건은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제사장까지도 다윗의 편에 서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다윗은 이제 백성을 돌아볼 마음을 가집니다. 블레셋에 침공당한 그일라를 구하고 싶어졌지요. 하지만 이 선한 일조차도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23:2a). 그리고 여호와께로부터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2b)는 응답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3) 하자 밀어붙이지 않고 “여호와께 다시 묻”습니다(4). 두려워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운 후에 함께 순종하지요. 다윗은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내용적으로 왕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이 침공할 때는 그일라를 내버려 두었다가, 다윗을 잡을 기회라고 생각하자 온 백성을 소집합니다(8). 놉의 학살 때문인지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려 합니다. 이때도 다윗은 하나님께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11),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12)를 묻고 도피합니다. 이제 다윗과 함께 한 사람은 “육백 명 가량”(13)이 되어 사울로부터 숨기도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습니다(14). 다윗은 자기 백성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백성들끼리 시민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사울을 피해 다니기만 합니다.

다윗이 “십 황무지 수풀”(15)에 숨어 있을 때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가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했습니다(16).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17)고 했지요. 태자인 요나단까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함으로써 다윗은 정통성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19-29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잡힐 뻔 했을 때, 블레셋의 침공을 허용하셔서 이를 막아주신 사건입니다. 

오랜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셨고, 신정왕국의 왕으로서 합당한 자질을 갖추도록 연단해가고 계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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