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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은 관계 회복 (딤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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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관계 회복(딤후 3:1-7)

정해준 자리와 아름다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첫 선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또 좋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지어진 피조물이 정해진 자리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인체를 보아도 균형이 잘 잡혀 있을 때, 아름답고 건강합니다(미인대칭). 

사단은 원래 천사였습니다. 히 1:14을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천사의 자리는 섬기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섬길 때,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유 1:6, 개정)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섬김의 자리를 떠나 사단이 된 마귀는 뱀으로 가장을 하고 인간에게 찾아와 자신과 똑같이 인간의 자리를 떠나도록 유혹합니다.  (계 12:9, 개정)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자기 자리를 떠난 사단이 본문 6절에 그래서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했습니다.  여자는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렸는데, 이것이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자기 자리를 떠난 인간은 항상 배우지만,  결국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말세에 고통을 당합니다. 

갈 4:3은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라고 했으며 또한  골 2:8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관계회복

구원받는다, 라는 말은 천국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로 구원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구원이 단지 좋은 곳만 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구원은 결과만을 치우치게 본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해준 피조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관계회복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관계를 회복하게 하신 분입니다.  갈 4: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가 회복된 것이 구원입니다. 그렇게 관계가 회복된 결과로 하나님의 집, 천국에 갑니다.  

결과만 추구하면 자칫 값싼 구원, 기복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따른 관계를 회복을 온전히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관계 회복

구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3 가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합니다. 

말세는 세상 끝을 뜻하기보다는 주님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올 때까지를 말합니다.  본문이 쓰여진 때나 지금이나 원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관계가 어그러져 있으면 고통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온전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닌 것을 더 사랑하여 우상으로 만들 때, 결국 더 큰 고통이 찾아 오게 됩니다.  

모파상의 작품 중에 [목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잘못된 사랑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틸드는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가난하면서도 사치한 생활을 하며 자기를 뽐내고 싶어 합니다. 문교부의 하급 관리를 남편으로 맞은 그녀는 그래서 생활이 늘 불만이었고 쓸쓸하게 느껴졌으며 자기 자신이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녁 문교부장관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고 남편에게 옷이 없다고 탓하자 그녀의 남편은 몰래 저금해 둔 4백 프랑을 내놓습니다. 멋진 옷이 생겼지만 그녀는 보석이 없음을 다시 탓했고 돈 많은 친구 폴레스체 부인에게서 진주 목걸이를 빌립니다. 그리고 파티에서 마틸드는 누구보다도 시선을 끌며 파티를 즐깁니다. 
파티가 끝나고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온 새벽녘에 돌아온 후 마틸드는 목걸이가 없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은 파리 온 시가를 다 찾아 헤매어 가까스로 폴레스체 부인의 것과 같은 목걸이를 찾아내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 전부(1만 8천 프랑)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담보로 3만 6천프랑짜리 목걸이를 삽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빚을 갚아야 됐습니다. 가정부도 내보내고, 작은 셋방으로 옮겨 갔으며, 마틸드는 닥치는 대로 일했고, 남편은 직장이 파한 뒤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빚을 다 갚기에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둘은 폭삭 늙었습니다. 

어느 날 샹젤리제에서 그녀는 폴레스체 부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빌린 목걸이는 5백 프랑짜리 모조품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쾌락과 돈과 자기를 사랑한 고통입니다. 

인생의 진짜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방인 고넬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를 집으로 초청하도록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이 없는 베드로가 어디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편 베드로에게도 환상이 보였습니다. 이방인이 너를 초청할 것인데, 주저 하지 말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한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행 10:35, 개정)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다 기억하시고, 그를 다 인정하시고, 그를 기뻐하심으로 받으십니다.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어렵지만, 신실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그 사실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알고 받아 주십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그 날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통한 피조물(이웃)과의 관계회복

세상에 고통이 없게 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공산주의 이론입니다. 공산이론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계급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계급투쟁을 통해서 고통을 없게 하자고 합니다.  
취지는 좋지만 그 출발이 잘못되었습니다.  문제의 진단이 성경과 다르기에 해결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있기에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사람은 더 가지게 되고 어떤 사람은 덜 가지게 됩니다. 물려 받은 재산이 많은 이가 망할 수도 있고, 무일푼 사람이 자수성가 하기도 합니다. 

본문이 기록된 때는 기원전 60년 경입니다. 로마제국 시대, 계급사회 보다 더 열악한 신분사회, 사람을 사고 파는 노예제도가 있는 때입니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 사회 체재는 발전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20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시대와 사상이 달라져 세상의 고통을 다르게 진단하여 그 해결방법을 내 놓아도 근본적으로 고통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기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고통을 없앨 수 없습니다.

세상 고통에 대한 성경의 진단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이라고 했습니다.  그 돈을 자기를 위해서만 쌓아둡니다. 이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배만 부른 쾌락만 도모합니다. 이것이 죄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은 돈에 눈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에 매이지 않고 베풀고 나눕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은 단편적인 괘락,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기쁨, 변하지 않는 만족을 위해 시간을 씁니다.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 죄 때문에 자기가 가족이 그리고 공동체가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사랑의 관계가 먼저 되지 않았기에 돈과 잘못된 관계를 맺습니다.  자기와 관계가 잘못되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쾌락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서 구원 받는 길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곳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주님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믿음과 행함의 관계회복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마지막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었을 때, “너는 이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눅23,43)고 했습니다.  여태까지 돈만 사랑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도 회개하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많은 시간 기회를 주었는데, 그 시간을 다 허비했으니 천국은 가지만, 가서 상급이 아니라 그 허비한 것에 대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이 너무 중요하고 좋기에 이런 구원을 받아도 됩니다. 세상 사랑하고 즐길 것 즐기다가 마지막에 구원받으면 되지 않느냐,  좋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진짜 복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일찍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한 우리들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믿음만큼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들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본문 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서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고 말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실제의 능력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뱀에게 발각되어 잡아먹히는 것은 시끄러운 입술의 울음소리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잡히는 것은 언제나 입으로 수 없이 먹이를 물다가 낚시 바늘을 물기 때문입니다.  입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주여, 주여”한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의 온전한 관계가 우리의 삶에 나타 난 것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바라는 것은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원합니다.  (롬 8:19, 개정)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을 아버지라, 우리들은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8:21에 (롬 8:21, 바른)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구원의 관계 회복을 이루어 이 땅 살리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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