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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사는 삶(2) (롬 8:12-17)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가정에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부모 두 분은 각각 역할이 다릅니다. 아버지는 대부분 근엄하고 강하고 때로 매를 들기도 하고 큰 소리를 치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대부분 따뜻하고 잔잔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싸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요소가 합하여 가정을 든든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데 이것도 옛말입니다. 오늘 아버지들은 시세가 없습니다. 너무 왜소해졌습니다. 너무 작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들은 너무 강해지고 너무 커졌습니다. 어머니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더 강해집니다. 대부분 여성들은 결혼 초에 나긋나긋 하고 여성스럽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부터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의학적적으로 보면 남성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부드러워지고 여성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나이를 먹을수록 남성화 되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성이 40세가 넘으면 그때부터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50세가 넘으면 모두 부녀회장이 되고 나이 60세가 넘으면 모두 군기반장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주 절묘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노년에 가서는 남녀의 성비의 특징이 사라지고 평준화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노년에 가서 부부는 성격이 비슷한 가까운 친구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자상하신 배려이고 섭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도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조화를 이루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이 조화를 염두에 두시고 창조를 하셨습니다. 가정도 엄한 아버지와 부드러운 어머니로 인하여 가정을 조화롭게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부성과 모성이 결합하여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도 이 양성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엄하시고 공의로우시며 때로 채찍을 드시는 마치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부드러움과 위로와 격려와 일으켜 세우시는 세심한 배려를 하시는 영이십니다. 이렇게 보면 성령의 성품은 마치 어머니의 품성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생각하면 성령은 아주 고마운 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두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영적인 삶이 있습니다. 이 삶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반대인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이 육신의 삶은 내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육신의 삶에서 떠나라고 강권하십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3-14).” 

육신의 삶은 하나님을 떠난 삶으로 욕망의 삶을 말합니다. 그 삶은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입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성령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회복의 삶을 살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반드시 이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없는 삶 

성령이 없는 삶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매사 두려워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두려움이 서린 삶의 요인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내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희망 보다는 불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느끼며 살아갑니다. 생각할 때에도 늘 최악을 생각하고 극단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덜컹 겁부터 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악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매순간 매 사건 앞에서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성령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자기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삶이 언제나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떠난 삶의 모습입니다. 

또 우리들의 삶에는 많은 짐이 있습니다. 삶에 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 살아가려면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나 짐을 내가 혼자 다 지고 살아가는 느낌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할 것입니까. 

아모스 8장13절을 보면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기계가 기름을 쳐야 부드럽게 돌아가는데 기름이 마르게 되면 빡빡하고 힘들게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 기계도  피곤할 뿐 아니라 기계의 생명도 짧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는 기계에게 기름을 흠뻑 쳐 보십시오. 순간 얼마나 부드럽게 돌아가겠습니까.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도 마치 그런 삶입니다. 하룻밤 기도회를 할 때 얼마나 피곤합니까. 하품이 나오고 지루함으로 온몸이 뒤틀리고 잠이 쏟아집니다. 인간의 한계와 무능함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력입니다. 

그뿐 아니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을 때 하는 기도에는 곧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눈을 감으면 별만 반짝거립니다. 그래서 성령을 떠난 인생이나 신앙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그래서 삶이 피곤한 것입니다. 매사를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니까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피곤으로부터 피해 보려고 피로 회복제를 마십니다. 피로회복제가 연간 2억병씩이나 팔린다고 합니다. 2억병은 5천만 인구가 4병씩 마시는 꼴입니다. 성령이 없이 살아가는 삶은 이렇게 피곤한 삶입니다. 

그렇다고 몸만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정신도 피곤하고 신앙도 피곤해집니다. 그러니까 대화에도 가시가 돋습니다. 대화내용이 아주 거칠어집니다. 관계도 거칠어지고 그래서 불화를 야기하고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육신의 삶은 하나님과 원수 됨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것은 그 담을 헐고 육신의 삶에서 구원하시려고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자녀의 자리로 회복시키시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삶은 멸망의 삶이고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성령 없는 삶은 한마디로 허무의 삶입니다. 공허한 삶입니다. 멸망의 삶입니다. 


성령의 삶 

베드로전서 5장7절을 보면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37~38절을 보면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하면 네 마음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심의 삶에는 내 속에서 강같이 흐르는 은혜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삶입니다. 성령이 나에게 함께 하시면 내 안에 이 강같이 흐르는 은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때 내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은혜와 감사와 기쁨과 능력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나에게서 떠나시면 나에게 주어졌던 그 모든 기쁨과 즐거움과 안식이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이 불행입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무서운 형벌보다 주어진 은혜를 거두시는 일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일으킨 후에 가장 두려워한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성령을 거두어 가실까 그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51편11절을 보면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하고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이 내게서 떠나시면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고 매일 절망과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내안에서 자원하는 심정이 사라지고 억지로 이끌려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불행입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즐거움들을 다 빼앗깁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내 삶에는 온갖 두려움과 불화와 갈등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구원의 즐거움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주님을 위한 자발적인 헌신의 삶을 살겠다는 의욕을 넘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 10시까지 잠을 자도 피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부터 시작해도 하루 종일 넘치는 힘과 즐거움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성령이 내 안에 거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삶의 내용이 얼마나 재미있고 쉬워지겠습니까. 하룻밤 기도회를 해 보십시오.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아주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힘이 아니고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어지는 힘 때문입니다. 그 힘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계산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솟아나는 힘을 경험하고 용기를 경험하고 기도를 경험하고 영적인 샘물이 터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생활인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그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실 때 먼저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죄를 무너트리는 일입니다. 즉 내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입니다. 성령이 내안에 들어오시면 먼저 내안에서 전쟁부터 치루십니다. 그 전쟁은 내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일입니다. 먼저 이 죄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은 내안에 있는 모든 몸의 행실과 죄를 다 죽이십니다. 이를테면 죄를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8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살고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을 받고 곧 나가 전도를 합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을 사도행전 2장37절에서 표현하기를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탄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하고 반응하게 하고 회개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6장17절을 보면 성령을 “날선 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성령의 검이 죄를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병자들의 병을 찔러 수술하여 낫게 하고 사탄을 찔러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성령은 내 안을 혁신시켜서 모든 행실을 바로잡고 끊게 하는 결단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안에 임하시게 되면 먼저 사람들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나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본문 로마서 8장14절을 보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13절에서는 “성령이 너희를 진리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수준을 넘어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기 “인도한다”는 말은 “끌고간다”는 뜻입니다. 

형식적으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고 강권해서 강제로 나를 끌고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말로 안 되면 회초리라도 들어서라도 강하게 나를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회초리로 맞을 때는 부러지는 아픔이 동반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사랑도 놀라운 사랑입니다. 

성경에 보면 목동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 목동들이 양을 칠 때 양들 중에 말을 잘 듣는 양도 있고 말을 안 듣는 양도 있을 것입니다. 말을 안 듣는 양은 언제나 말썽을 피우고 혼자 돌아다닙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행동입니다. 그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기도 하고 또 짐승에게 물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목동들이 계속해서 말을 안 듣는 양은 다리를 부러트려서 울안에 가두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 목동의 행동이 무자비하게 회초리로 두들겨 패는 격입니다. 어떻게 목자가 사랑하는 양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할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자의 양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양이 다시는 탈선하지 않고 말을 잘 듣게 된다고 합니다. 양이 목자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내 자식이 탈선하면 때로 몽둥이를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자식들이 탈선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몽둥이나 회초리를 드는 것은 곧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회초리를 들고 때로는 몽둥이를 드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또 성령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을 하십니다. 본문 8장15절을 보면 “너희는 모두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아들이라는 자리는 특권의 자리입니다. 모든 은혜가 주어진 자리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나를 무섭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은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내게 다가옵니다. 어린 손녀는 더 거리낌 없이 아무 때나 주저하지 않고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내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다가와 달라고 애원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예수의 이름이 두렵습니다. 마귀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하면 꼼짝을 못하고 나갑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 이름이 그렇게 반가운 이름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날마다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찬양하고 더 가까이 가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사 복음서가 있습니다. 이 복음서의 내용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또 그 예수께서 가실 때 약속하기를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 그대로 이 세상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령을 세상에 보내셨는가 하면 순전히 우리를 위함입니다. 그 성령이 오셔서 지금도 내안에 계시고 오셔서 때로 탄식하시며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기도 하시고 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또 때로 내안에 담대함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도 하고 승리하도록 내 앞길을 이끌고 계십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나의 인도자이시고 나의 목자이시며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는 사역의 영이십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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