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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곳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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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곳 (행 3:1-1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의 삶에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혹 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요즘에 무슨 기적이 일어납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또 병자가 낫는 것도 아니고 기적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나 있지 요즘 같은 합리적인 지식사회 과학사회에 무슨 기적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기적을 제한하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번에 장목사님을 모시고 3일 동안 부흥성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우들 가운데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신 분도 계시고 가정의 문제를 치료하신 분도 계시고 어려웠던 많은 것들을 가지고 나와 은혜 받고 이해하지 못하는 기적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기적은 때와 장소를 가리고 일어날까요? 구약성경이나 또는 예수님 때나 사도행전에만 기적이 일어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김치를 좋아합니다. 김치를 잘 먹지요. 김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정말 완벽한 식품입니다. 겨울에 채소를 먹지 못하니까 우리 조상들이 11월, 12월 달에 김장을 담궈 3월이나 4월까지 채소를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김장을 먹으려면 들어가야 될 요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적당히 배율이 잘 맞고 날씨나 이런 것들이 맞으면 아주 김치가 맛있게 익습니다.

한국에서만 김장을 맛있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에 있든 조건이 맞고 환경만 잘 맞으면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장소와 때와 시간을 초월해서 조건과 환경만 맞으면 하나님의 기적도 지금 이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부흥성회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조건과 환경만 맞으면 오늘도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장애로 태어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약 40세가 될 때까지도 한 번도 일어나 걸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유대 사회에서는 한 번도 태어나서 걸어보지 못한 중요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을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마 그의 부모가 또는 그 사람이 무슨 죄를 범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혼자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마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부모가 그랬겠지요? 돈 벌어 오라고. 그래서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손에 이끌리어 성전 문 앞에 와서 구걸을 합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고 싶었지만 육신의 질병과 또 유대 관습과 율법에 의해서 죄인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으로 난 문 가운데 하나가 아름다운 문, 미문이라는 문이 있었습니다. 금으로 장식되었고 아주 비싼 좋은 돌로 장식이 되어 있어 하도 예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문, 미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40여년 가까이 그 문 앞에 앉아 구걸해왔습니다.

오후 3시 기도시간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왔다가 이 사람을 만납니다. 이 사람은 지난 40여년 가까이 이곳에 앉아있던 사람이라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에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이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다른 때는 이 사람을 주목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장애인이구나! 그저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노를 받아 저렇게 된 것 아닌가. 그렇게 여기고 지나갔겠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1장과 2장에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게 되자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이 장애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받으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 받으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내 눈 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받으면 다른 사람들의 필요가 눈에 보입니다. 성령 받으면 하나님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측은히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경험하지 않으니까 이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니까 남의 필요와 눈물과 아픔에 눈을 못 뜨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받고 난 다음에 이 사람을 이 성전 문에서 만납니다. 유심히 보지요! 전에는 지나쳤지만 가만히 보니까 이 장애인이 혹시 이 두 사람에게 뭔가 주지 않을까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이야기 합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게 되자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을 수 있나요? 이 아름다운 기적은 예수님 때에만 사도행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오늘날 우리 삶에는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없을까요? 

하나님의 기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조건만 맞으면, 환경만 갖춰지게 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도 만약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만 만들어지게 되면 여러분의 삶 속에, 제게, 우리의 삶속에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 일어날까요?

첫 번째,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교회라고 하지만 모든 곳에 다 하나님이 계실까요? 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장애인이 성전 문 입구에 40여년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가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해서 제재를 당했던 사람입니다. 늘 마음은 성전 안에 들어가 제사장에게 기도를 받고 말씀을 들어서 자기의 질병을 고침 받는 기적을 경험하기 원했던 사람입니다. 비록 성전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성전 뜰 바깥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옛날에 성전은 지금의 어디인가요? 지금의 교회 아닙니까? 성전이나 교회나 똑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똑같을까요?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지요.

우리 자녀들이 살다가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하면 부모에게 상담을 요청합니다. 저희 집도 아이들과 밥 먹다가 학교에 잘 다녀왔냐? 뭐 이런 이야기 하면 아이들이 학교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면 제게 이야기 합니다. 제가 잘 듣고 있다가 해결책을 또는 도와주지요.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께 이야기 해서 해결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육신의 질병이나 재정적인 문제나 직장이나 자녀의 문제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집, 이 교회 안에 들어와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 이 교회는 늘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존귀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성전에 게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과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 뜰을 밟는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주님의 교회에 온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처지와 형편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셨다가 그들을 다시 부르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몇 해 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시는 집사님께서 딸 결혼 예배를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6,7개월 후에 제게 찾아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골 동창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딸 결혼식에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데 이 분이 한 번도 교회라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결혼식을 다 다녀 봐도 좋은 것을 별로 못 느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을 참석했는데 너무너무 좋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결혼식은 주례자가 몇 분 말하면 끝이고 너무 형식적이었는데, 교회에서는 설교를 통해서 결혼의 의미를 듣게 되었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아주 성스러운 은혜로운 결혼식을 통해 이 분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친구인 우리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결혼식을 교회에서 할 수 있냐고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님이 “교회에 다니면 된다.” 그래서 이 분이 집에 돌아가 결혼 할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너희들도 교회에서 결혼해라.” 그랬더니 아이들이 우리는 교회도 안다니는데 교회에서 결혼 하냐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엄마 아버지도 이제부터 교회 다닐테니 너희들도 교회에 다녀라. 고 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교회를 다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 집사님이 하셨습니다.

그저 결혼식에 한 번 왔다가 하나님의 집 뜰을 밟고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와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처지와 형편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고 계셨다가 그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기적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 안에 들어오는 사람,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이 장애인이 40여 년 동안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성전 문 앞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고 성전 문을 향하여 늘 마음을 쓰고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성전 안에 있는 사람, 성전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 가사 여러분이 말씀을 가지고 이 땅에서 올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데로 살아가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교회만, 성전에만 계실까요? 교회가 아닌 성전이 아닌 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실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전 안에 있었던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지성소에 있는 일반 제사장들이 성소에 있는 제사장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에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몸이 휘장처럼 찢어졌습니다. 피를 흘리고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어 죽어가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성소에 있던 사람들이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가 전에는 휘장으로 가로 막혀 있었는데 이제는 찢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지요.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전에는 지성소 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휘장이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6:19에서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령님께서 계시는 너희의 몸은 성전이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린도전서 6:19)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몸은 성전입니다. 우리 몸 안에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라는 이야기지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성전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을 바꿔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기적이 일어나듯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삶, 우리의 마음과 영혼 속에서도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부흥회 때 강사님을 통해 안수 기도 받습니다. 또 제가 여러분을 위해 안수기도 해 드립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안수 기도 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매일매일 기적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 이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지는 곳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걷는 거리거리마다 여러분이 일하는 일터가 변화된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간 딸이 그 믿지 않는 집에 들어가 그 가정을 완전히 변화시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게 되면 여러분의 아픈 곳을 간절히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손을 뻗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여러분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성령의 손이 되어 기적이 연출 될 수 믿습니다.

두 번째,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은 기적을 연출하십니다. 

기대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은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 기적을 만들어 주십니다.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오늘 오셨습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저 습관처럼 주일이니까 시간이 되었으니까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린다.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면, 몸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 받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오실 때 여러분의 많은 문제들, 그것이 재정적인 문제든 직장의 문제든 자녀 문제든 영적인 문제든 관계없습니다. “하나님 내게 몸이 아픈 부분이 너무 많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사업이 너무 힘들고 직장에 어려움이 있어요. 하나님 고쳐주세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만져 주시고 삶에 기적을 베풀어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은 기대하는 마음, 하나님께 영혼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하게 되면 바라는 마음이 많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면 하나님은 기적을 연출해 주십니다. 아무런 기대하는 마음 없이 그저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게 되면 공허한 마음 그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허드슨 테일러라고 하는 선교사님은 이런 위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해라.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살다가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될 위대한 어떤 일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이번에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받은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여러분의 개인적인 심령이 변화되고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이런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올 때 주님은 절대로 빈손으로 되돌려 보내시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 장애인을 보면, 40여년 가까이 이곳에서 은혜를 구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까.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어떤 기적을 베풀어 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릴 때 주님은 여러분의 양 손에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선물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권위를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기적을 연출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 장애인을 위해서 내가 당신을 위해 중보기도 하겠습니다. 라고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이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 자리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내 경험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잘 낫고 내 배경이 좋아도 내 능력으로 우리는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순간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마태복음 28: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다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에게 영권이 있고 예수님에게 물권이 있고 예수님에게 인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의 경험으로 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받은 모든 능력을 너희들에게 그대로 준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귀신들린 사람위에 손을 얹으면 귀신이 그대로 나가게 될 것이고 병든 사람 위에 손을 얹게 되면 병자가 낫게 될 것이다. 여러분과 제 손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뭔가를 만지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기적을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능력, 경험, 지식을 내려놓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주님 주님의 능력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들의 것을 다 내려놓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는 내려놓고 주님은 높이는 순간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고침을 받은 이 사람은 일어나 걸으며 뛰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사람, 자기는 빠지고 자기 자신은 낮아지고 자기 자신은 부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자기가 잘해서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는 영적인 도적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 하나님은 다음번에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스게와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강한 능력을 베풀었는지 사도바울이 안수만 하면 병자가 낫고 죽은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사도바울이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쫓아와 사도바울의 능력을 자기들도 받기를 원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너무너무 강력한 능력을 행사하니까 사도바울이 손수건을 던지기만 하면 사람들이 막 일어났습니다. 

그 때 유대 제사장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려는 운동이,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스게와라는 사람과 그의 일곱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도바울이 행하는 것처럼 자기들도 명성을 얻으려고 어떤 귀신들린 자 앞에가서 사도바울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귀신들린 자 속에 있는 귀신이 스게와를 향하여 하는 말이 내가 바울도 알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도 아는데 도대체 너는 누구냐? 그리고는 달려들어 죽이려고 하자 스게와가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가 돈 벌고, 자기가 이름나고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가 박수 받고 칭찬 받으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하나님은 절대로 그 속에서 기적을 연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만 찬송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마음, 자기 자신은 낮아지고 자기 자신은 거부하고, 하나님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도로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삶 속에 매일매일 기적을 연출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적은 여러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고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고 권위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시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일을 하려고 하면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 나도 혹시 영적인 장애인은 아닌가? 혹시 나도 걷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가? 혹시 나도 남들이 주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일어나 내 삶의 기적을 경험하겠다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에 매일 매일 기적을 연출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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