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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시 14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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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시 146:1-10)
   

오늘 시편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노래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찬양의 시입니다. 이 시편은 150개의 시편의 마지막 다섯 편이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는데 “할렐루야 시”의 첫 번째입니다.  

구약을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는 포로기 이후의 학개와 스가랴의 작품이라고 유대 랍비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페르시아의 고레스황제가 유대인들을 돌려보내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였다가 중도에 이웃나라들이 반발하니, 중단하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이 시를 쓰고 있다고 삶의 정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놓고 강해하면서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편의 시를 놓고 분석해보면 내용을 보아 몇 개의 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연(聯)이라고 하면 시(詩)에서 몇 행(行)을 한 단위로 묶어서 구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시146편은 4연으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제1연 : 찬양하라(1-2).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이 3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보신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찬양시의 서론입니다.  시인은 이중적으로 찬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 속사람,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스스로에게 찬양하리라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생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채울 것이라고 합니다.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라는 말은 나의 계속되는 존재 속에,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을 때까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하고, 권면하고 명령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행해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느 목사님의 하나님의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셔서 나와 동행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 에녹과 함께 300년 동안 동행하셨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나의 편이 되어 주셨고,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우리의 일생 다하도록 하나님을 높여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으로 가득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 중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시편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찬송을 다른 사람이나 우상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여호와이십니다. 

사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있다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웹스터 사전을 보면 “찬양하라”는 말은 “칭찬하다, 찬미하다, 존경하다, 갈채를 보내다, 인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한다는 말은 어떤 사건을 인정하고 확고히 믿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정한다는 말은 우리가 승인한 바를 받아들이고 공감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환난과 질병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하루하루 모든 삶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성가곡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밞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6월 한 달 이 복음성가를 부르려고 합니다. 

2.  제2연: 여호와만 바라라 (3-5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오늘 말씀에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고 하십니다.  귀인이라고 하면 고관, 귀족, 방백을 의미합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의지하지 말며”, “의지하지 말지니 ”라고 하셨습니다. 인생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 날로 즉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우리의 모든 인격과 성품과 생각도 소멸하게 됩니다.  인생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건강하시던 분들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였고, 사업을 잘 하고, 건강하여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도 잠시 동안이요, 모든 소유와 가진 능력을 내려놓고 가야 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과 계획과 능력이 다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들고,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부모를 의지합니다.  성장할 때에야 부모님이 도와주셨고, 부모님의 은혜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실존의 문제를 놓고 누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5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하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깊이 묵상하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영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케네스 리치라는 영성신학자는 “기독교의 영성은 그리스도께서 주도권을 잡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영성의 목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영성을 소유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영안을 열러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귀를 예민하게 세우면서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버림과 침묵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 말씀에서 흘러나와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핵심을 놓치고 주변의 지협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을 히브리 성경을 직역하면 “복되도다! 그의 도움이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소망이 여호와 자기 하나님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정 우리가 믿어야 할 분은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야곱이란 사람은 간사한 사람입니다.  약은 사람입니다.  자기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잘 살려고 한 사람입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는 형님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내가 받아야 하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 내려오는 가문의 축복도 내가 차지하고 내가 받아야만 한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형님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가 속인 형 에서가 400명의 사람을 이끌고 동생 야곱을 치기 위해 온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 거꾸러졌습니다.  

얍복 강변에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몰아가시는 것을 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가 외삼촌 집으로 갈 때는 빈손 들고 간 사람이지만,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4부인과 12명의 자녀들과 소와 양과 염소가 떼를 이루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의 도움과 나의 소망은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항상 사모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잡아끌어 사용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누가 복 받을 사람입니까?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올브라이트(W.F. Albright)라고 하는 유명한 구약신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이스라엘을 지정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 이스라엘 나라를 3개 대륙의 열결 지점에 두신 것입니까?  위에는 앗수르와 시리아가 있고, 오른쪽에는 바벨론이 있고, 밑에는 애굽이 있고, 왼쪽으로는 블레셋과 바다가 있고 해서 사방으로 다 적에 의해서 포위되게 하셨습니다.  왜 이런 곳에 두신 것입니까?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지정학적인 면에서 이스라엘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공장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하도 더워서 어쩔 줄을 모르다 지하실에 큰 냉동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잘 됐다 싶어 땀이나 식힐 심산으로 냉동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철커덕 소리가 나면서 문이 닫혀버렸습니다. 그 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당황한 나머지 문을 두드리고 악을 써봤지만 구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청년은 상상을 합니다. “내 몸이 점점 얼어간다. 몇 시간 후면 죽겠구나.”  이틀 후에 사람들이 냉동 창고의 문을 열어 보았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냉동 창고는 가동되지 않았고 기온이 섭씨 15도에 불과했습니다.  산소도 충분했습니다.  청년을 죽인 것은 살인적인 냉기가 아니라 절망이었다고 합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동서사방을 바라보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위를 쳐다보아야 합니다. 위로 난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세상에 잘 사는 것이 소망입니까?    이 세상에서 권력을 누려보는 것이 소망입니까?  저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인자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척 콜슨’은 자신의 감옥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본 어게인(Born Again)’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교도소 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죄수들 사이에 세 가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종류는 희망이 없는 죄수로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역시 가망이 없는 죄수들로 자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셋째 종류는 감옥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기회 있을 때마다 마당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유형이었습니다.  그들은 감방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마치 내일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은 밖에 나가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의 삶은 자유롭습니다. 소망을 품은 사람은 희망이 넘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관주의자들은 빛 가운데서도 어둠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렘29:11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 내일을 주셨고, 희망 곧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유태인으로서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랭클(Viktor Frankl) 박사는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태인 수용소에 대한 관찰한 기록으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희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자기 혼자서 희망을 이룰 뿐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희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이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절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영원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3연 : 의로운 통치 (6-9)

제3연에서는 1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6-9절입니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눌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억눌린 사람들을 위하여 정의로 심판하시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만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맹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비굴한 자를 일으켜주십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붙들어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6-9절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의 시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에서 오시면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돌아보시고 신원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연약함을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제4연 : 결론(10)

10절입니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은 당신이 직접 그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형통하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이런 말씀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당신이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은 정확한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비로소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생애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으로 남은 생애를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억눌린 사람들, 주린 사람들, 갇힌 사람들, 맹인, 비굴한 사람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붙들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대대로 통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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