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나라사랑 (느 1:1-7)

  • 잡초 잡초
  • 235
  • 0

첨부 1


성도의 나라사랑 (느 1:1-7)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1등과 3등을 차지하고 시상대에 오른 두 사람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었다. 왜 이들은 슬픈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있었나? 그들은 바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는,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있고, 일본국기가 게양되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푹 숙이고, 부끄러움과 슬픈 얼굴을 한 이유는,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왜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고개를 숙이고,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는가?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선수의 이름은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다. 나라는 울타리와 같다. 양이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보호받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듯이, 우리가 나라 안에 있을 때, 보호받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나라를 잃어버리면, 비참하게 된다. 

개인의 성공과 출세도, 나라가 있고 나서다. 가정과 가문의 번창도, 나라가 있고 나서다. 기업의 부흥과 발전 역시, 나라가 있고 나서다. 나라가 없다면, 모든 것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위태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지만, 조국은 있다. 

하나님은 3가지 귀중한 제도를 내셨다. (1) 가정이고 (2) 교회요 (3) 나라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사랑하는 것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같이, 나라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위대한 애국자들이었다. 

모세를 비롯하여, 사무엘, 다윗, 기드온, 에스더, 느헤미야, 예레미야, 사도 바울, 예수님,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성경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보면, 루터, 칼빈, 녹스, 미국의 독립전쟁당시 큰 인물들은, 모두 열렬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우리나라 역사도 역시 그랬다. 

참된 기독교가 있는 곳에는, 애국자가 있었으며, 애국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간혹 그리스도인은, 애국심이 없다고 비판을 하는 자들을 보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6월은 나라사랑의 달이다. 6월에는 현충일도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일인 6.25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본문 말씀은, 신앙의 사람 느헤미야가 나라를 사랑한 말씀이다. 성도는 나라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1.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에서, 왕의 술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술을 관리하는 사람은, 왕의 음식과 직결되기에, 왕으로부터 지대한 신임을 얻지 않고는, 맡을 수 없는 직책이다. 

이렇게 볼 때 느헤미야는, 비록 패전국 포로의 후예로, 남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의 충성심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왕의 신임을 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아닥사스다 왕은, 바사 제국의 왕들 중에, 고레스 왕 다음가는 위대한 왕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렘29:10)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말씀대로, 모든 포로는 본국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고레스 측령'을 내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귀환한 자들이 돌아와서, 성전재건을 착수했으나, 이런저런 난관에 부닥쳐 중단했다. 그러나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다시 일어나 성전재건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벽재건과 국가재건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느헤미야는 성벽은 어느 정도 재건되었고, 국가는 얼마나 안정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고국의 소식에 목말라했다. 느헤미야의 마음은 항상 고국, 예루살렘에 있었다.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영원한 고향이었다. 

다니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3번씩 기도했다(단6:10). 느헤미야도 바사왕궁의 술을 관리하는 자로서, 왕의 가장 측근이지만, 자기 고국과 예루살렘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그래서 형제 하나니가 예루살렘에서 왔을 때, 고국의 백성들과 예루살렘에 관해 물었다. 나라와 민족에 관한 관심은, 단순히 지나가는 호기심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자신의 몸과 생애를 바쳐,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애국심이, 조국의 사람들을 만나자 표출되었다. 

멕시코 골프선수 중에 '로레나 오초아'가 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세계최고의 여자골퍼, 여제였다. 2년만 있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지만, 가정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은퇴를 했다. 

오초아는 우승하고, 기자와 인터뷰할 때, 빼놓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멕시코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승리의 영광을, 우리 멕시코 국민에게 돌리고 싶다." 그녀는 늘 그렇게, 인사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생명을 바쳐서, 희생할 수도 있고, 나라를 위해 큰 공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초아'처럼 마음과 생각으로, 말 한 마디라도, 조국을 사랑하는, 애정 섞인 말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 사실 '멕시코인'이라는 말은, 그리 자랑스러운 말이 아니다. 미국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미국과 세계에, 멕시코 사람임을 자랑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우리도 내가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가슴에 총탄이 박혀, 그것을 빼내는 수술을 받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좀 더 깊이 째 보십시오. 내 가슴 속 깊이 조국이 들어있다." 시인 브라우닝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 마음을 열어보면, 마음 깊이 새겨진 한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바로 조국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는, 조국이 들어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이 소중한 이름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어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헌신해야 한다. 

자기 형제 하나니와 함께 온 자들에게, 그동안 궁금한 점을 물었다(2). 이때 그들이 들려주는 소식은 (3下)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 말은 들을 때, 느헤미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했다. 예루살렘 성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오래 전에 파괴됐지만,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백성들도 고국에서 이방인에게,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었다. 

민족의 비참한 모습을 생각하고,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금식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이던 바사 왕궁에서, 안락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조국과 민족을 항상 생각하고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 앞에 통곡하고 슬퍼했다. 

느헤미야는 민족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마치 자신이나 가족이 당한 것처럼 슬퍼함은, 민족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인은 나라와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자기와 일치시키고 그 아픔을 가족이 당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나라에 대한 걱정한다고, 대통령을 욕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욕하고, 우리 현실을 원망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그리스도인으로 나라를 위해, 평생 헌신하셨던 김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 

"할 일을 찾는 백성은 흥하고, 원망할 것을 찾는 백성은 망한다."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말보다 묵묵히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위해 앞장 서야하겠다.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사이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을 '6일 전쟁'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300만이었고, 적군은 1억이 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과 6일 만에 항복시킨, 세계 전쟁사에 유래 없는 전과였다. 

이스라엘이 아랍과, 6일 전쟁을 치를 때에 일어난 일화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 총장이 유대인 학생들과 아랍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당부를 했다. "자네들의 고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는데, 자네들은 동요하지 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학기말 시험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라고 부탁을 했다. 

며칠 지나고 나서 유태인 학생들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 갔는지 알아봤더니 유대인 학생들은 "지금 우리 고국에 전쟁이 났는데, 우리가 편안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느냐"라면서,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기 위해서, 고국으로 다 짐을 싸들고 돌아갔다. 

총장은 또 아랍인 학생들을 찾았더니,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랍인 학생들은 어디 갔는가 물어봤더니, 본국에 차출명령을 받을까봐, 무서워서 다 은신해 버렸다고 하였다. 그 전쟁의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한번은 이집트의 대공포가, 이스라엘의 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추락한 비행기에 가보니, 놀랍게도 조종사가 만삭된 임산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인과 어린 아이만 제외하고는, 만삭된 임산부까지도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니 승리하게 되었다. 

낙후된 땅 아시아에서도, 가장 못사는 국가로 낙인찍혔던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그 당시 자원은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1963년 12월 인력수출 제1호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게 되었다. 얼마 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난 일이 있다. 

박대통령은 젊은이들을 만나,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 나는 몹시 부끄럽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가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여러분이 타국에 와서까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나는 부끄럽다. 여러분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싶은가? 나에게 시간을 좀 달라. 여러분의 후손만은, 타국에 팔려가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그 일로 대통령도 울고, 광부 간호사들도 울었다. 당시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오려고 하는데, 보증 서줄 나라나 기관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우리나라가 못 갚으면, 우리가 이 나라에서 평생동안 일해 갚겠다고 보증을 서서, 돈을 빌려왔다. 나라가 어려울 때, 외국에 간 근로자들이, 남의 나라에 평생 머슴살이를 할 각오로 나서서, 이 나라를 도왔다. 

이러한 나라사랑에 대한 눈물과 협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뤘다.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자유와 개혁을 부르짖고, 시위를 하고 대모를 하고, 파업을 한자들이, 민주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지 않으나, 그것만으로 이 나라가 민주화되고, 경제가 발전한 것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정치가 어떻게 바뀌든, 제자리에 서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인내하면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온, 희생적 공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국은 영웅이나 장군에게만 아니라, 참호 속에 새벽을 지키는, 무명의 초병에게도 있다. 

애국은 대 정치가나, 우국지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치우고 새벽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나,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애국은 개혁을 부르짖고, 자유를 외치고, 투쟁하는 자에게만 있지 않다. 

가정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며, 남편과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희생하는 어머니 손길에도 있다. 애국은 애국자라고 자처하는 자에게만 있지 않다. 이웃을 생각하고, 양보하고,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픔을 위로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며, 돕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도 애국자다. 

3. 나라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패망소식은, 느헤미야에게 큰 슬픔과 충격이었다. 그는 수일 동안 망연자실하여, 눈물과 슬픔으로 지냈다. 그러나 아무리 깊고, 큰 슬픔이라고 해도,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 없었다. 

슬픔과 눈물로 끝나면, 그것은 감성에 지나지 않는다.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하나님께 금식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5-7)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하며, 민족적 죄악을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악을, 자기 죄로 여기고 기도했다. 동족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의 아픔과 고통으로 알고, 구원해 주기를 기도했다. 

느헤미야는 민족패망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 범죄 함에 있다고 고백하고,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자기 집에 돌렸다. 진정한 애국자는, 나쁜 결과를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 진정한 애국자는, 정치개혁, 경제개혁, 교육개혁, 제도개혁을 부르짖기 전에, 자기 자신을 개혁한다. 

진정한 애국은, 남의 죄악과 부도덕을 책망하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책망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책망이 필요하다. 내가 범죄하지 아니했어도, 민족적 죄악을 내가 끌어안고, 내가 행한 죄악을 회개하듯이, 기도해야 한다. 

나 자신의 영달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이웃과 동족의 아픔을, 나와 내 가족이 했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고통을 나누고, 민족적 죄악을 내 죄처럼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이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셨던, 김용기 장로님이, 책 한권을 출판하여,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책에서, 어려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조국이여 안심하라!"이다. 이 책의 제목은 실제로, 김용기 장로님이 자기 기도실에, 친필로 써 붙였던 휘호였다. 

이 분은 매일 나라를 위해, 4시간씩 기도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가 나라의 파수꾼임을 깊이 깨달았다. 자기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굳게 믿었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이렇게 외쳐야 한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애국이다. 오늘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을 갖자. 평생 그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다시는 아픔이 없도록, 기억하고 발전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