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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놀라운 믿음 (눅 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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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믿음 (눅 7:2-10)

 
성경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 왕이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뒤쫓아왔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애굽의 병사들이 덮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병사들도 뒤쫓아왔지만 하나님께서 다시금 물로 덮으사 애굽의 병사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출 15:15)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듣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복음서에도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던 중에 배에서 곤히 주무셨습니다. 그 때에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를 집어삼킬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말했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막 4:41)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놀라운 일들은 대체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의 사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놀라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백부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그를 놀랍게 여겨"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주님을 놀라시게 만들었습니까?

첫째, 주님이 놀라신 이유는 백부장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보낸 유대인의 장로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나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백부장과 유대인의 장로들은 결코 서로 가깝게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쪽은 권력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억울해도 그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장로들에게 부탁했고 장로들은 그 부탁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백부장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유대인 장로들도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상전들은 하인들을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약한 하인들은 마치 소모품처럼 쓰다가 버렸습니다. 백부장이 병든 하인을 버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구나 그의 하인은 중풍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의 하인은 상전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뿐입니다. 그런 하인을 살리기 위해서 상전인 백부장이 누군가에게 간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렇게 했습니다. 백부장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사랑하는 마음이 주님을 놀라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둘째, 주님이 놀라신 두 번째 이유는 백부장이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백부장은 병든 하인을 고치기 위해서 처음에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내서 주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금방 다시 자기의 벗들을 보내서 주님이 자기 집으로 오시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약간은 무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주님 앞에 설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 말씀을 보면 그 마음이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자기가 주님에게 있어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장수로서 얼마든지 거만하게 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잠언 기자도 일찍이 말한 바 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 말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 교만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높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성도의 최고의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
백부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셋째, 주님이 놀라신 세 번째 이유는 백부장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자기의 하인이 낫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집에 오셔서 하인에게 손을 얹지 않으셔도, 주님이 특별히 어떤 행동을 보여 주지 않으셔도, 다만 주님이 말씀만 하셔도 자기의 하인이 낫게 될 것이라고 백부장은 믿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백부장은 주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믿고 있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 믿음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백부장은 행동으로 보여 줬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주님을 놀라시게 만들었습니다. 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주님이 놀라셨습니다. 주님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을 보시고 주님이 놀라셨습니다. 주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놀라셨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셨으면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믿음이 없는 신앙 생활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취미 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놀라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백부장의 진실한 사랑 때문에 놀라셨습니다. 백부장의 겸손 때문에 놀라셨습니다. 또한 백부장의 믿음 때문에 주님은 놀라셨습니다. 다만 놀라셨을 뿐 아니라 주님은 백부장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 주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말끔히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랑이 있습니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상까지 뜨겁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겸손이 있습니까?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상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그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더욱 굳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령 충만하여 절망 중에 죽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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