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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충만한 교회 (행 2: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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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충만한 교회 (행 2:41-47)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받는 세례이다. 제자들은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성령충만의 사건이다. 목적은 교회 설립과 복음전파이다. 

오순절날 아침, 성령께서 제자들 가운데 임하시자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리고 방언 - 다른 나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던 순례객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랬다.

행 2:7-8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입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줄 몰랐던 제자들이 각기 다른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청중들 중에는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청중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설교하면서 유대인들의 죄악을 지적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 날에 예수를 믿고 세례 받은 사람의 수가 3천 명에 이르렀다. 그날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인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선포한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았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오늘 본문 41절에 그들을 ‘제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 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갓 부화된 병아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신앙생활의 원형, 원칙이 무엇인가를 찾아볼 수 있다. 


1.배우는 생활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1) 배움에 대한 열망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요 14:17).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진리에 대한 사모함이 있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누구에게 배웠는가? 

사도들에게 배웠다. 사도들은 3년 동안 예수님께로부터 배웠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면 배웠어도 잊어버린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시면 배웠던 것이 생각나서 잘 가르칠 수가 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바 교훈을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오늘날 사도는 없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신앙 교훈의 정통성 곧 신약의 복음을 말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신학 훈련을 받은 목사에게 그 직무를 위임하셨다. 그래서 바른신학이 정립된 목회자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런가? 제대로 가르침을 받을 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2절 말씀대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서로 교제하는 것과 떡을 떼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힘쓸 수 있었다. 

교회는 말씀의 학교다. 성도는 학생이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성장도 멈춘다. 자전거 패달을 밟지 않으면 곧 멈추게 되고 넘어진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 배우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기를 힘쓴다. 필요한 경건서적도 부지런히 읽는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배우는 일에 힘썼다. 


2.교제하는 생활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사도신경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성도의 교제와...’ 교제는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은 세상적인 교제와는 다르다. 세상에서의 교제는 주로 끼리끼리의 만남을 통해 교제가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예)동창회, 동기회, 동향회, 동우회, 해병동지회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하나를 이루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 그래서 교제 중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교제를 피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교제를 피해서 홀로 신앙생활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전도서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성령의 사람은 상대방의 부족함이나 허물을 따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외모나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 동향, 동문 따지면서 편가르지도 않는다. 그저 예수 안에 한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의 사랑으로 그냥 사랑한다. 예수 안에서 믿음 안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함께 세워나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왜 그런가?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믿음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벽을 쌓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단절하면 그 사람은 외롭게 될 것이다. 

그럴 때는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서 교제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교제하고 떡을 함께 나눠도록 권해야 한다. 그러면 못이기는체 하면서 끌려들어오면 된다. 교제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고독할 수 밖에 없으며 쉽게 좌절하고 믿음이 약화되게 된다. 교회는 예수 안에서 믿음 안에서 교제하는 공동체이다. 이것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다. 


3.기도하는 생활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기도는 하늘과 연결된 파이프 라인과 같다. 하나님의 능력이 기도라는 파이프 라인을 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있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없다. 기도생활이 죽어 있는 사람은 기도가 중언부언 핵심이 없다. 그러나 기도 생활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모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이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보통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기도회가 살아 있다.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중보기도회, 어머니기도회등등 모이면 기도 소리가 힘 있고 열기가 있다. 지난 금요일 밤기도회에는 평소보다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기도하는데 기도의 열기가 보통 때와는 달랐다. 기도에 서로가 도전을 받고 더 열심히 더 뜨겁게, 더 오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각자 자신의 영적상태는 기도의 열기에 달려 있다. 부흥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는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하는 사람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떤가? 성령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4.유무상통하는 생활

행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예루살렘교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령충만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어려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요함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은밀한 중에 선을 행하게 된다. 

예)목장 안에서

부자가 있어서 궁핍함을 메꿔주는 것 아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구제 많이 하는 것 아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자기의 재물을 내놓는다.행 5장 아나니아와 샆비라 사건은 믿음 없는 사람이 자기 재물을 드리려다 아까운 마음에 하나님을 속여 징계를 받은 대표적 사건이다. 믿음이 없으면 헌금 못한다. 믿음이 없으면 구제 못한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한다. 자신 집을 팔아서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어한다. 왜 그런가? 자신을 죄악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감격해서 향유 옥합도 깨는 것이다. 모든 것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고 자신의 소유를 사도들에게 가지고 나왔다. 

예)구제구좌운영하는 어느 교회. 필요를 따라 나눠줄 수 있는 지혜.


5.모이기를 힘쓰는 생활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말세 증상 중에 하나는 모이는 것을 폐하는 것이다. 주일날 오전 예배는 어느 정도 모이기를 힘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녁예배나 수요예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국교회 안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성전에서 모이는 것은 전체 교인들의 모임, 곧 예배를 위한 모임이었고, 집에서의 모임은 오늘날 목장모임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모이는 일에 대단히 적극적이어서 매일같이 모이는 일에 힘썼다. 

그것은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일에 힘썼다. 특별히 가정마다 순회하면서 모이는 것을 중요시 했다. 대그룹 모임으로 성전에서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집에서의 소그룹도 중요하다.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이 중요한 이유 5가지.

1)가정에서의 영적회복의 기회가 된다(마 18:20).
2)믿음 안에서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 관계가 형성된다(골 3:16).
3)사역의 참여 할 수 있다(벧전 4:10).
4)전도에 효과적이다(딤후 4:2).
5)훈련의 현장이 된다(막 3:13-15)

초기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모습 - 배우는 생활, 교제, 기도, 유무상통, 모이기를 힘쓰는 열심. 이런 모습들은 시대를 초월한 성도의 생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생활을 할 때 어떤 결과들이 나타났는가?

1) 두려움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성도들의 거룩한 생활이 주변 이웃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그들 가운데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느끼게 하였다.

1904년도 영국 웨일즈지역의 부흥 - 그 지역의 술집 문을 닫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많은 신자들이 술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범죄가 줄어서 판사가 파리를 날리고, 경찰이 줄어서 실직 전직의 상황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2) 기사와 표적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에도 이런 능력들이 많이 나타났다.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다. 이런 기사와 표적의 역사와 함께 회심과 변화와 회복의 역사를 기대한다. 

3)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음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확실히 다르다. 오늘날도 다르다는 소리를 듣는데 칭찬보다는 욕을 더 먹는다. 이유는 예수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4) 교회의 부흥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는 원인은 초기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원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루살렘교회의 모습, 성령이 충만한 교회의 모습, 다른 세상의 모습이 아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신앙생활의 원형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작은 한 가지부터 실행하기로 결단하면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도우신다.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1)배우는 일 - 기초제자반 과정
2)교제하는 일 - 마음 문을 열고 교제권 안으로 들어오라.
3)기도하는 일 - 기도하는 시간을 내라
4)유무상통 - 구제하는 일에 동참하라
5)모이는 일 - 예배와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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