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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을 돌보는 참된 경건 (약 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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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돌보는 참된 경건 (약 1:26-27)
 
 
인터넷 신문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뉴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장난 현금인출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호기심으로 기사를 봤더니 해외토픽으로 호주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한 시골 주유소에 설치된 자동 현금 인출기가 고장이 나서 사람들이 찾으려고 하는 금액보다 돈이 더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자동 현금 인출기에 현금 카드를 넣고 100달러를 누르면 50달러짜리가 2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80달러를 찾으려하면 20달러가 4개가 나와야하는데 50달러가 4장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돈이 더 나오는 현금인출기에 대해서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마다 돈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행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돈을 더 많이 받아간 사람들에게 컴퓨터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돈을 받아낸다는 기사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습니다. 80달러를 찾아야 되는데 200달러가 나오는 현금인출기 앞에서 횡재를 한 듯 기분이 좋아졌을 테니까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근본적으로 ‘욕심’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 재물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이러한 욕심은 아마 누구에게나 마음 속 가장 뿌리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대해 예수님은 전혀 반대로 도전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은 돈이 많은 자가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배부르고, 만족스럽게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관과 거꾸로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마음에 가난이라는 혁명이 있지 아니하면 자기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가난함을 깨닫게 될 때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애통하는 것을 경험할 때 ‘주위에 이렇게 눈물 흘리며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목마르고 굶주리게 되었을 때 ‘이 세상에 고통 받고 방황하며 목마른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고 고난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동참하게 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한 자가 복이 있고, 의에 굶주린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살펴볼 때에 이해가 잘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위에 자기 자신이나 가족 중 암 같은 큰 질병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자기가 번 돈을 이런 질병을 퇴치하도록 성금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혼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상담을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의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자신의 인생전체를 내 놓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가난 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공부한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후학들을 키우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때때로 맞이하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 아픔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기적인 욕심만을 향하던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넉넉한 마음의 문이 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택해 주신 은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말씀을 맡겨주시고 목회하게 해 주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때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민중 신학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은 공통적으로 오랫동안 교회가 재산을 많이 가진 자와 권력을 누리는 자 편에만 섰다는 것에 대한 반성적인 신학이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외로워서 혼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을 돌보지 아니하면 그 교회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사도 야고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참된 경건이란 무엇인가? 이는 입으로만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내 이웃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경건한 모습이 아니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 2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리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이와 같이 내 주위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는가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 가장 불쌍한 자는 바로 고아였습니다. 태어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과부였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잃어버린 여인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회적인 모든 권리도 박탈당하게 되어서 가난을 극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과부치고 가난하고 구걸하지 않는 여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 이시라고 친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연약한자, 힘들고 외롭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 벅찬 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얼마만큼 이런 마음을 더 가져야 되겠습니까? 
 
이천년과는 다르게 오늘날은 어려운 사람들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소년 소녀 가장일 수도 있고,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일 수도 있으며, 장애인 일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 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탈북자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들을 돌아보라고 하면 때로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들이나 하는 일이고, 성숙한 성도들이 하는 일이지. 아직도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아니한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이웃을 돌아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것이고 빠른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들의 연약함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시기도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시간을 내고 돈을 써야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너무 바쁜데 이웃을 위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어떻게 그 시간을 쪼갤 수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바쁠수록 이웃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 시간을 올바르게 쓸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일에 성공지향적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쏟아내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때 오히려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눈을 열게 되는 순간, 나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자리에서부터 탈출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돈과 재물만을 향해서 살았던 경제적인 동물과 같았던 내 모습에서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 야망과 권력만을 위해서 살았던 인간상에서 내 이웃들의 연약함을 깊이 볼 줄 알고 보살필 줄 알며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성공지향주의적 사고 속에서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인생의 영원한 만족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넉넉한 마음의 모습이 될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활력있게 바뀌어지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네 가지 정도의 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내 자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청된 것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나님이 다가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다가 하나님의 인격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두 번째 성숙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사랑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해서 내 자신을 얼마나 좋고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고 내 자신의 인격은 소중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건강도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지금까지의 삶의 경험도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지금까지 사랑하셨구나.’ 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신앙은 다시 한번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네 번째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내 이웃도 사랑하시며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며 넉넉한 마음으로 용납하게 될 때 네 번째 성숙된 신앙의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예수 믿을 때 순식간에 한꺼번에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10년 흘러도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장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계십니까? 내 필요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기에서부터 내 이웃을 정말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찬 마음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놀랍고도 귀한 일이여 아름답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위해서 보살피고 사랑으로 섬긴다는 뜻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구경 뿐인 신앙에서부터 벗어나서 직접 참여하는 신앙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머리로만 생각했던 신앙에서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입체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졌다는 뜻입니다. 운동경기를 좋아하십니까? 혹시 축구를 좋아하십니까? 축구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다가 너무 좋으면 공 하나를 사서 자녀들과 함께 뛰노는 것이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평신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어떤 사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봉사를 얼마나 잘 하느냐를 떠나서 내 문제에만 온갖 신경을 쓰던 내가 이제는 남의 문제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사신 분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남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예배만 1시간 드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이곳저곳에서의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나 중심에서 이웃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해야 할 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내가 가진 삶을 다 소진하면서 나의 이웃을 위해 바치라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이웃의 삶에 자리에 들어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남을 돌봄으로 가정불화를 일으킨다면 이웃을 돌보는 삶을 잠깐 멈추어야 됩니다. 내 자녀를 돌보지 않으면서 이웃을 돌보고,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그 섬김은 잠시 멈춰야 합니다. 올바른 인간관계를 다 끊어버리고 섬긴다고 하면서 진정한 영향력을 주어야하는 인간관계에 주도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을 돕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치게 됩니다. 하나의 습관처럼 사랑 없는 형식만 남게 됩니다. 
 
여러분, 내 건강을 잘 돌보아야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풍성해져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야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표시를 정말 볼 수 있다면 이웃을 향해서 마음의 문이 열려진 사람, 이웃의 연약한 것을 돌볼 줄 아는 긍휼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받은 사람일 것’ 이라고 말합니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가난하든 부자이든 상관없이 우리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이 말씀을 저기 저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가게 되면 반드시 나를 도와주게 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제가 결혼주례를 하면서 신랑과 신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신랑은 아내를 사랑하되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 하라. 또 신부는 남편에게 순종하되 교회가 주님에게 순종하듯이 순종하라.” 
 
이런 말씀을 하게 되면 얼마 후에 찾아와서는 신랑과 신부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제 아내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도무지 순종을 안 합니다. 신랑이 도무지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있는 것일까요? 결국 ‘거지 근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남을 도와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내게 있는 적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누군가 나에게 베풀어 주겠지,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주겠지, 누군가 나에게 공짜로 주겠지.’ 하는 거지 근성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갖고 있으면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때도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지금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다시금 보살펴야 됩니다. 따뜻한 미소 한번 보여줘도 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줘도 됩니다. 내가 선물로 받은 것을 함께 나누어도 괜찮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우리 주위에 누군가 나보다 연약한 사람이 보일 때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됩니다.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앞으로 우리교회 봉사뿐 아니라 특별히 교회 바깥에 봉사를 일 년에 한두 번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노숙자를 찾아가든지 고아원을 찾아가든지, 힘들고 고통 받는 지역을 찾아가든지 그곳에서 함께 섬기고 봉사하는 자원봉사시스템을 가동하려고 합니다. 이는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성도님들 전체가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지 곳곳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이 역사의 현장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교회가 많은 노력으로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주차 안내, 각 제직부 그리고 성가대, 교사로 곳곳에 숨어서 지금도 일하는 분들을 통해서 교회가 이만큼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교회 전체 모든 성도님들이 교회 안과 바깥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놀라우신 은혜 때문에, 나를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은총 때문에 이 길을 가게 된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역사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의 직장과 역사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은혜의 일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저희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 이웃들에게 주려하지 않는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얻기만 하려는 거지 근성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없어도, 우리가 능력이 많지 않아도 내가 가진 소중한 것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된 경건을 가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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