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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 (룻 4:10-12, 행 1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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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 (룻 4:10-12, 행 16:14-15)


어느 신학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이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땅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다른 한 가지 기관은 하늘나라입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대신하는 것이며,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최초의 제도입니다. 가정은 최초의 공동체이며 가장 숭고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은 생명이 탄생되는 곳입니다. 인격이 형성되는 곳입니다. 생명이 성장하는 곳입니다. 사랑을 배우는 곳입니다. 천국을 배우는 곳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가정이 작은 교회이며, 가정이 교회의 원형입니다. 초대교회는 가정이 곧 교회였습니다. 기독교만큼 가정적 용어를 많이 쓰는 종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우리 서로가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에서는 개인의 해탈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유교에서는 가정보다 가문을 중요시합니다. 전제주의에서는 왕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공산주의에서는 사회를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물질주의에서는 물질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향락주의에서는 쾌락을 가정보다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낍니다. 
  
한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치과 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무자식이 상팔자이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가정이란 있을 것이 다 있어야 좋은 가정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야 하고, 손자 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정도 적고 아기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습니다. 
  
결혼하면 부모로부터 모든 면에서 독립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좋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녀 교육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 잘 낳지도 않고 낳아도 부모가 양육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점 캥거루족도 늘어간다고 합니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26세 이상 20%가 부모에서 의존하여 살고 있는 캥거루족이라고 합니다. 
  
세대 간의 차이도 점점 심각해져 갑니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가장 큰 문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전에 인종차별, 성차별이 문제라고 했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넘어서 ‘나이차별’(Ageism) 시대라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할 일이 있어야 하는데 은퇴는 일찍 하고 할 일은 없고 오래 사는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는 이런 모든 문제를 극복해고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 애창곡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작사 작곡한 존 하워드 페인은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가정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정은 누구에게나 가장 그리운 곳이고 좋은 곳입니다. ‘정보사회에서는 집이 더 이상 휴식처가 되지 못한다’고 유명한 저술가 매기 잭슨은 말했습니다. 재택산업의 발달로 이제는 집도 일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과 생활과 휴식 사이에 균형을 잃고 만 것입니다. 집이 가정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가정의 의미를 깨닫고 우리 모든 가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같은 믿음을 가진 가정이 기쁘시게 합니다. 

사도행전 16:15에는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라고 합니다. 좋은 믿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의 것입니다. 좋은 것은 자녀들에게 전수해야 합니다. 맛있는 집은 입소문으로 전파됩니다. 용한 의사는 입소문으로 알려집니다. 좋은 예수님도 우리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내야합니다. 
  
사도행전 8:36에는 빌립이 사마리아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줍니다.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내시를 길에서 만나 이사야 53장을 설명해 줍니다. 내시가 복음을 깨달은 후에 물이 있는 곳에서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루디아도 신앙을 고백한 후 지체하지 않고 바울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자신만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집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온 가족이 같은 믿음, 한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루디아의 집에서 일하던 하인들, 노예들 그리고 가정을 돕는 모든 이들, 모두가 예수 믿고 세례를 받고 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가정입니까? 오래 전에 빌립보를 여행하면서 전승에 루디아의 집이라고 하는 집터를 가 보았습니다. 그 집터가 굉장히 넓고 집의 기둥들도 굉장히 큰 것으로 봐서 루디아의 집은 크고 식솔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아세례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루디아 집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의 간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했으므로 어린이까지 세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굉장한 복입니다. 부모는 좋은 믿음, 좋은 복음을 자녀들에게 전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책임입니다. 영적, 육적으로 좋은 신앙, 좋은 습관, 좋은 체질을 전수해 줘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물어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내가 너에게 준 재물을 어떻게 썼느냐? 내가 너에게 맡겨준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느냐?’를 물어보신다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디모데가 그냥 칭찬받은 사람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을 잘 전수 받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1:5에는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합니다. 신앙은 모계로 전승된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신앙적 힘은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도 하나이요’라고 합니다. 다른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가족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집안에 신앙적으로 다른 사람이 있으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른 믿음을 가진 가족이 있으면 평안치 못합니다. 집안에 이단이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시련이 큽니다. 때로는 영적 갈등이 말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어릴 때부터 믿음을 잘 심어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은 아이들에게는 절대적입니다. 
  
우리교회 어느 가정의 딸이 여러 해 전에 공부를 잘 해서 서울에 있는 어느 학교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4년 동안 장학금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 합격한 후에 서울대학교 합격자 발표를 하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제가 그 애 한테 물어봤습니다. “얘야, 너 그 학교 갈거냐, 서울대학교 갈거냐?” “목사님, 말도 안 돼요. 서울대학교 가야지요” “그 학교는 4년 장학금을 준다는데?” “목사님, 돈이 문제예요?” “너는 문제가 아니지만 네 아빠가 문제잖아?” 그 때 마침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 아빠도 똑같이 말도 안 된대요. 왜 굳이 돈 들여가며 서울대학교를 갑니까? 좋은 학교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합격하고 학교가 멀다고 안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갑니다. 왜냐하면 좋은 학교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좋은 학교는 다 보냅니다. 요즘 같은 저 출산 시대에 셋째를 낳게 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셋째 낳으면 서울대학교 보내준다 그러면 낳는답니다. 왜 그렇습니까? 좋은 학교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왜 연동교회에 나오십니까? 우리교회는 가까운 데보다 먼 데서 오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좋은 교회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를 나만 다니면 됩니까? 세상의 교육을 위하여 좋은 학교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 교육을 위하여 좋은 교회에 오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온 가족이 한 믿음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온 가족이 같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정이 평안한 방법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라고 합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없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건강하고, 돈을 잘 벌어 많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최신 공익광고에 보면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라고 합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적 부모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신앙적 부모는 멀리 하나님 나라를 보라하고, 예수님과 함께 가라고 하고, 내세의 꿈을 꾸라고 가르칩니다. 
  
요즘 아들 자랑은 3류 코미디라고 합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사촌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8촌이 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되고, 공부 잘하고 일을 잘하면 나라의 아들이 되고, 돈을 잘 벌면 장모의 아들이 되고, 백수가 되면 평생 끼고 살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아들이 예수를 잘 믿으면 평생 내 아들이 됩니다. 

  
둘째, 남을 대접할 줄 아는 가정이 기쁘시게 합니다. 

사도행전 16:15 하반절에는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고 합니다. 바울의 선교정책이나 그의 심정은 자신의 복음전파가 남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절대로 자신이나 사역이 남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33에는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목회철학이며 자세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부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바울과 생업이 같았는데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에서 ‘천막 만드는 생각’(Tent-making concept)란 자비량 선교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천막 만드는 자’(Tent-maker)란 자비량 선교사를 뜻합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일컫습니다. 
  
데살로니가 2:9에는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루디아 가정에 절대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디아는 강권하여 바울을 자신의 집에 며칠 간 묵게 했습니다. 바울을 억지로 자신의 집에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바울과 억지로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 루디아,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가 두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하였고, 훗날 빌립보 교회가 사랑이 많은 교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만일에 두 사람이 서로 바뀌어서 바울은 루디아 집에 며칠 머물자고 조르고, 루디아는 집에 방이 없다고 물리쳤다면 서로가 어색하였을 것이고, 아름다운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절묘한 조화가 아름다운 교회를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을 따로 세워 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위해 보내실 때에 어느 동네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으면 평안을 빌고, 영접하지 않으면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동정심이 없고, 마음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한 저주를 의미합니다. 동정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미덕이기도 합니다. 
  
탈무드에서 향유나 기름은 미덕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값비싼 기름은 소비되어 버리지만 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름은 부자만이 살 수 있으나 선행은 가난한 자도 베풀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행은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아주 작지만 큰 은혜입니다. 
  
사람을 사는데 돈이 없이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있습니다. 옛 사람은 이것을 무재칠시(無才七施)라 했습니다. 첫째는 신시(身施)입니다. 몸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시(心施)입니다.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셋째는 안시(顔施)입니다. 편안한 얼굴로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이는 것입니다. 넷째는 안시(眼施)입니다. 눈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언시(言施)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과 격려와 칭찬과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상좌시(狀座施)입니다. 높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주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방사시(房舍施입니다. 내 집 빈방에 다른 사람을 하룻밤 재워주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에는 마하트마 간디가 손자 아룬 간디에게 한 말이 나옵니다. “내가 얻은 결실을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접하시는 것처럼 타인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선한 마음입니다. 
  
미국 피츠버그 가구회사의 점원이었던 클레멘트 스톤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어느 할머니를 발견하고 상점 안으로 모셔와 차를 따뜻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강철 왕 카네기로부터 초청장이 왔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는 카네기의 어머니였습니다. 후에 그는 스콧트랜드 별장의 가구 일체를 주문 받아 제작하여 일대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수많은 곳에서 클레멘트 스톤 상점에 가구를 주문하여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남을 대접하는 자는 부자가 되는 법입니다. 
  
놀부 집에 거지가 왔습니다. 힘없이 “아주머니 밥 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사흘 지난 밥도 괜찮겠수?” “그럼요, 배가 고픈데 사흘 지나면 어떻습니까?” “그럼 사흘 후에 오슈”. 이런 마음은 동정심도 인심도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고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은 은혜로운 마음입니다. 
  
지난 번 제가 캐나다에 갔을 때 어느 장로님 부인을 만났습니다. 40년을 시모님을 모시고 살고 계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있어서 며느리만 찾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 며느리가 시집 왔을 때 이런 건 살면서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고스톱을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요즘도 치매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으십니다. 

그런데 가끔 “오늘 한 판만 하자”고 하신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한 판만 하자”고 하셨는데 며느리 권사님이 성경공부 과제가 있어서 “어머니, 9시에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9시가 되어도 소식이 없어서 “잘 됐다”하고 있는데 9시 30분에 어머니가 나오셔서 “아가야, 한 판만 하자”고 하셨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큰 일 날 뻔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도 며느리는 어머니에게 돈을 잃어줬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고스톱 하는 것이 고역이지만 시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한다고 합니다. 고스톱 한 판이 며느리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입니다. 어머니를 위하여 베풀어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청교도는 ‘가정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들이 작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작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는 ‘하루 한 시간이 더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특집이 있었습니다. 하루 한 시간이 더 생긴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답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50%였습니다. 브라질, 캐나다, 영국, 남아, 미국, 호주 등이 많은 답을 했고, 한국은 33%가 답을 했습니다. 하루 한 시간이 더 생긴다면 운동을 하겠다는 나라가 터키, 이탈리아입니다. 일을 하겠다는 나라가 인도로 50%입니다. 잠을 자겠다는 나라가 독일로 37%나 됩니다. 여러분은 한 시간이 더 생긴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가정을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옛말에 ‘가사삼성’(家事三聲)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는 책 읽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베 짜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이상을 소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연동의 모든 가정에 이 세 소리에 기도 소리,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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