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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 (롬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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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 (롬 5:1-6)

   
우리 교우들도 아마 두 세 개의 보험을 들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안전에 대하여 보장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보면 종종 사고 난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닥쳐옵니다. 그 때마다 저 사람들 보험을 들어놓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 중에 엄청난 사고를 당하여 고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행자보험을 들어 놓았다고 하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요즈음은 하도 고약한 질병이 만연하기 때문에, 지금 건강하다고 하여 안심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암보험을 들어놓아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후에 대한 염려가 많습니다.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어느 정도지, 많지도 않는 자식들에게 두 부모를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서 국민연금을 들고, 연금형 보험을 들고, 노후를 대비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몇 개의 보험을 들고 그 불입금을 넣다보니 다 늙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은 사후에 죽은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영생을 누리고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죽은 후에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은혜 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어떤 구원이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우리가 왜 예수 믿어야 하고, 구원받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구원받는 도리에 대하여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에 대한 말만 해도 감격스럽고 가슴이 뛰고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은 롬8장과 더불어 아주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어 유명합니다.  오늘을 읽은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이요,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 모두를 소중한 명품으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함께 있게 하시려고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지어 지옥에 두시려고 지으신 것이 아니라, 천국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의 장막에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하시려고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어서 하늘나라에서 함께 살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악함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사59:1-2에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구원 받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 공로를 쌓아야 들어간다고 말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얻으려면 노력하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예를 든다면 하루에 5번씩 기도해야 하고, 금식하며, 성지순례하며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선을 쌓으면 구원을 받을지 그들도 모릅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자선을 베풀고 성지순례를 하였어도 천국에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힌두교인들은 지금 사는 이생을 몇 백 번 거쳐야 업보를 풀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불교 신자들 역시 열반에 이르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 정도 되었으면 열반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선을 쌓으라고만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너올 수도 없고 건너갈 수도 없는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간격을 선으로 채우고 메우라고 합니다.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는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였고, 하나님으로 멀리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인간은 그 간격을 메울 수 없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 벌어진 그 간격을 메울 수 있을 만큼 큰 존재는 하나님뿐이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건너오셔야만 되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속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간의 더러움을 그대로 봐주고 넘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신 정의이십니다. 완전한 정의 때문에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그 완전하신 정의 때문에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따르면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스스로 병들었다고 인정할 때만이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다 죄인이요, 치우쳐 무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관대하시고 용서하시기를 기뻐하는데,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의 모습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시고자 하는 소망이 완전한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죄과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 가운데 최악의 딜레마에 빠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가장 완벽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물을 수밖에 없고 범죄한 영혼은 죽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로 스스로 죄과를 치르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다 멸망케 하는 것으로 다 쓸어 지옥에 보내시면 그만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한 단절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도 아니요, 자비하신 아버지도 아니시며, 다만 폭군에 불과할 뿐입니다. 공연히 인간을 만드시고 당신의 자존심 때문에 인간을 다 멸하고 기뻐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죄 값을 물으시고 멸하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용남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희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이 직접 그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보다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들을 대신하여 직접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으면 완전한 공의가 이루어지고 충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도 이루고, 사랑도 이루는 것은 당신이 희생하시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분신이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생을 누리고 천국으로 들어오라고 우리의 더럽고 추하고 악한 죄와 허물을 모두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형벌을 받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주님을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는 무죄평결을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은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3:16 말씀은 성경의 요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롬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일4:9-10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죄인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신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하여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내려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인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심판을 받으시고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선물,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의 구속, 천국의 영생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그냥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관계의 바탕에는 믿음, 곧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보내셨다고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주셨다고 믿으면 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삶, 구원을 주셨다고 믿으면 나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도로 찾으시기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그냥 받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낮고 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맞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5:24에 의하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요일5:11-13을 알아야 합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보시지 않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다른 말로 하면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만 보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려고 들어오시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고, 매사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생이요, 우리 주님이 영생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사후에 들어가서 사는 곳이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이요, 우리 주님이시요, 성령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와 화평을 누려야겠습니다.  

1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화평이라는 말은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구약에 나오는 샬롬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요14:27의 말씀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평안이란 말은 화평이라는 에이레네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누가 가져다주는가 하면, 우리 주님이 평안, 화평, 평화를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안심에서 오는 평온함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었고,   원수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예수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의 주로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주님을 모신 가운데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화되었습니다.  

예전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허리띠를 길게 하고 들어가야 했으며, 제사장의 옷가로 방울을 달아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치셔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히10:19-20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려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화평을 얻었습니다.  화평을 얻은 정도가 아니라 누리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화평이란 말, 평화라는 말이 참으로 절실해졌습니다.  부부관계, 친구사이,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 교인과 교인과의 관계가 화평해야만 참된 안식이 있지, 불화한 관계라고 하면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반드시 아들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는 것이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누리자”는 말은 “즐기자”는 말과 같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구원받았으니,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산해진미를 앞에 놓고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평생에 잘 살아갈 수 있는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릴 줄 모르면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데, 나는 못한다, 안 된다,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아버지의 것을 다 가져다 사용하면서 인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자녀는 은혜에 들어가야 합니다. 

2절 말씀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상반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의롭다 여김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서 있다,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가고 나오고 서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은혜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날마다 은혜에 서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간다는 말은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어전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이시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믿음 위에 서 있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굳건히 서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릴 영원한 나라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도저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더불어 누릴 영광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제 분명히 사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죽을 수 있는 이유도 생겼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영광을 가리느냐를 놓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자녀는 소망 중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5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사는 동안 환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은 결코 환란으로 그치지 않고, 인내심을 길러주었고, 인내는 인내 그 자체로 끝나지 않으며 연단, 단련을 가져다주었고, 마침내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소망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어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은혜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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