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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 (행 10: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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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 (행 10:33-4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두말할것없이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3천명의 무리앞에서 설교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요지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이 너희들이라는 것입니다. 거기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려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실것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분명히 성령을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물이 아닌 것들은 댓가성 대문에 받을 수 있습니다. 뇌물로 받을 수도 있고 그만한 공로를 쌓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선물로 준다는데 왜 못받습니까. 다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성령은 선물로 주시는 영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면 하나님을 모신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성령을 모시면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모시면 우리는 Powerful한 능력있는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의 신앙생활이 맥빠지는 것입니까. 왜 신앙생활이 의기소침해 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충만하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 우리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 의욕, 열정이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차가 엔진이 고장나서 덜덜덜 거리는것과 똑같습니다. 차기 기름이 엥코 직전이어서 곧 정지할것같은 덜덜덜 하는 정도와 똑같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바로 성령은 파워입니다.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할 때 의욕을 갖게되고 열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파워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여기 권능을 받고라는 말을 영어성경을 보면 파워입니다. 힘을 얻는다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성에 거하라.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 입혀질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이 뭐냐? 그것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파워입니다. 힘입니다. 

너희에게 이런 성령의 힘이 임할때까지 여기 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그런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라하는 것도 파워입니다. 힘입니다. 성령은 힘인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힘이 없습니까. 의욕이 없습니까. 열정이 없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희락은 기쁨입니다. 성령충만하면 기쁨이 옵니다. 가난해도 기쁘고 병들어도 기쁘고 핍박받아도 기쁨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하지 못할때는 기쁨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으니까 의욕이 없습니다. 저는 왜 기쁨이 없는 지 모릅니다. 교회와도 기쁘지않고 집에가도 기쁘지않고 밥을 먹어도 기쁘지않고 잠을 자도 기쁨이 없고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성령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영입니다.

또한 성령충만하지 않을때 염려와 근심이 찾아옵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때는 괜찮았는데 예배당 문을 나서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염려가 몰려오는 것입니다. 한숨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것은 어떻게 하고 이것은 어떻게하고. 밤에 잠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삶에 회의가 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 신앙생활해서 뭐하나, 자꾸 회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매사를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보게 됩니다. 이게 성령충만하지 않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비관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또한 성령충만하지 않을 때 꿈을 잃어 버립니다. 꿈이 없습니다. 사람은 꿈이 있을때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겁니다. 연세가 80이 되도 꿈이 있는 사람은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말하는게 다릅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보람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겁니다. 사도행전 2장 10절에 보니까 말세에 내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는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뭐한데 했습니까?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꿈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꿈이 있기를 바랍니다. 연세가 80이 되도 꿈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목사님. 무슨꿈입니까? 저는 우리교회가 잘되는것이 꿈입니다. 저는 선교사 한사람 돕는게 제 꿈입니다. 제 이름으로 교회하나 개척하는게 제 꿈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 저는 세상떠나기전에 10명전도하기로 꿈을 세웠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비젼을 주시고 미래를 주십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에 쉽게 넘어집니다. 죄가 들어오면 여지없이 넘어집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할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그리고는 벌렁 드러눕습니다. 마치 돼지가 벌렁 드러눕듯이 말입니다. 죄에 빠져 끌려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을때 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미국에가 선교했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는 돌아오면서 너무나 좌절과 낙심에 빠졌습니다. 마치 풍랑을 만났는데 어떤이들은 그 풍랑앞에 담대한데 자신은 겁이나 죽을뻔 했습니다.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고민을 가지고 왜 나는 육적인 사람인가. 왜 나는 성령의 선물이 없는가 고민하면서 영국의 어떤 거리를 걷다가  한밤중에 어느교회에서 불빛이 나오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를 문열고 들어갔는데 어떤 사람이 로마서 서문을 가지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서문을 듣는순간 자기 마음에 성령이 물밀듯이 찾와왔습니다. 그는 거듭남을 경험했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세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말을타고 영국 전역 시골과 광산을 돌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속회를 만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역입니다. 그리고는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그 메도디스토운동 감리교운동이 바로 이 낙심했던 요한웨슬레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할 때 의욕을 갖게되고 삶에 힘을 갖게되고 에너지를 갖게되고 파워를 갖게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부족한겁니다. 저는 찬송부를때마다 그런생각을 합니다. 빈들의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영혼 오죽했으면 비가오지않는 빈들에 풀들이 다 말라 죽어갑니다. 우리 심령하고 똑같습니다. 주님의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우리 심령이 메마른 땅 같습니다. 마치 쫙쫙 갈라지는 메마른 땅같은 우리 심령속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가운 빗소리들려 산천이 춤을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반가운 빗소리로 내리는 성령, 산천이 춤을 춥니다. 마치 메말랐을때 건조했을때 비가오고나면 산천의 신록이 바뀌는것처럼, 살아나 생기가 넘칩니다. 우리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하게 뭡니까. 바로 성령의 생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메마른 우리의 심령속에 성령의 생기가 부어질줄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역자들이 이것 때문에 낙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낙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제발로 걸어 얼마 가지 못하는 겁니다. 제발로 넘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힘으로 가는 것은 오래 못갑니다.  사도바울이 자기힘으로 복음 전하려 했으면 얼마못가 넘어졌을 것입니다. 시험들었을 것입니다. 매맞고 그런데 뭐하러 전도합니까. 그러나 성령이 그를 이끌어가시기 때문에 그는 뭐라 고백합니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하는 엘어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성령 충만함이 없기 때문에 그의 목표가 분명하고 꿈이 분명하고 생명까지 맞바꿀정도로 복음의 열정이 넘치는 겁니다. 복음의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성령과 담쌓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복음의 열정이 없습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봐도 안타까운 마음이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봐도 그냥지나가는 것은 긍휼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내 안에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뭐라고 명령합니까. 

에베소서 5장 18절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게 주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때마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세요. 하나님 제게 성령의 충만을 주세요. 성령의 만지심을 느끼게 하여 주세요. 성령님 내게 말씀하여 주세요. 에게 매우중요하고 제일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지난번 마석기도원에서 총회주최부흥성회가 열려서 우리교우들도 가서 식당봉사하고 그랬는데 둘째날 서달수 목사님이 아침에 말씀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기장안에서 유명한 부흥강사이십니다. 키는 작으시지만 말이 빠르시고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게 말하시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총회부흥강사로 위촉되어서 가난한 시골벽지에 교인이 10명도 안되고 20명도 안되는 곳에 부흥회를 할 수 없는 그런곳에 가서 부흥회 인도해 주십니다. 참 좋은 일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교회에서 그분에게 선교비를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참 귀한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신학교 졸업하고 어느 시골에 전도사로 부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교역자가 없었기 때문에 장로님이 그 교회를 1년동안 목회해오셨습니다. 장로님이 자기 농사지으면서 새벽이면 가서 설교하고 주일이면 예배인도하고 장로님이 그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전도사님이 너무나 신사적이어서 조용히 말씀전하시고 신학적인 말씀만 하시는데 교인은 은혜를 못받습니다. 반대로 전도사님이 장로님을 보니까 이 장로님은 좀 미치광이 같습니다. 기도해도 통성으로기도하고 거품을 내뿜으시고 거기다가 일년에 몇 번씩은 산에가서 산기도하신다고 일주일씩 금식하며 기도하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서 내려오시고 말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꼭 저렇게 믿어야 하는지 꼭 광신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교인이 자기 옆동네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서 겉잡을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을 교회로 데려 왔습니다. 전도사님을 찾았습니다. 

전도사님이 그 귀신들린 사람에게 가서 기도하려하니까 이 귀신이 전도사님에게 욕을하며 달려드는데 겁이나서 가까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어떻게 했는데 멱살을 잡히고 무서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미친 여자가 전도사님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하는데 도저히 제압이 안되서 챙피다떨고 해서 장로님을 모셔왔습니다. 장로님이 손을잡고 기도하시는데 몇바디 기도안했는데 이 여자가 푹 쓰러져 버렸답니다. 그러더니 조용히 잠자고 깨어났는데 정신이 돌아왔답니다. 놀라고 충격받았습니다. 

나는 4년동안 신학공부했는데.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로 읽는 실력인데. 내가 기도하니까 나한테 멱살잡고 덤벼들고 이 무식하신 장로님이 기도하니까 푹쓰러져 버립니다. 꼼짝도 못합니다. 너무나 부끄러운겁니다. 그래서 장로님을 찾아가서 비결이 뭡니까. 그 비결좀 저한테 알려좀 주세요. 장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능력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제 가을겆이  다 끝났으니 목사님 기도원에가 한달동안 기도하고 오세요 능력받고 오세요. 제가 잠시동안 교회를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허락을 받고 기도원에 가서 한달동안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산에올라가 나무뿌리를 붙들고 기도하시고 그런데 이 전도사님이 능력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셨습니다. 방언을 받았습니다. 변해진것입니다. 그때부터 내려와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는 것입니다. 병든자에게 기도하면 병이 떠나가고 기적이 일어나는데 교회가 무섭게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그분이 우리 기장교단안에 교회를 3개를 개척하셨습니다. 어린이 대공원근처에 능동교회 4-5백명 모이는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성음교회와 또 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성령충만할 때 그런 능력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이 임하는 동시에 능력이 따라 옵니다. 파워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만진즉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우리 교회가 이런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고넬료는 원래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로마의 장교입니다. 그 당시 이사람은 구제를 많이 하고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기도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너의 구제와 기도를 내가 다 들었다. 하며 저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서 데려다가 그에게서 말씀을 들으라. 고넬료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냈습니다. 

그 시간에 베드로는 마침 욥바에 있는 가죽만드는 가죽장사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시간이 돼서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위에서보자기 하나가 내려오는데 그 보자기 안에 유대인들이 부정해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가득찬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데 먹어라. 하나님 먹을 수 없습니다. 이 부정한 것들을 어떻게 먹습니까. 아니 내가 깨끗하다 했으니 먹으란 말이야. 3번씩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부정한 것을 어떻게 먹으라 하실까. 마침 그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가 보낸사람이 와서 베드로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깨닫게 됩니다. 맞아. 이게 환상의 이유였구나. 우린 이방인들을 부정한 짐승처럼 멀리하고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어. 그러나 이제 그들과 상종하고 교제하고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라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무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웬걸요 고넬료가 자신의 식솔들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의 장교가. 갈릴리 어부인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큰 절을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나도 같은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명하신것을 우리에게 대언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33절입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을 당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듣고자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앞에 있나이다. 실제로는 베드로 앞에 있지만 고넬료는 하나님앞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시말하면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말씀 듣는 자세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를 들을때도 사람의 소리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앞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영무목사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종앞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앞에 하나님이 내게 뭐라 말씀하시는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게 고넬료의 태도입니다. 그리고는 베르로는 설교를 시작합니다. 뭘 이야기하느냐면 예수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냐 예수님은 만유의 주이십니다. 다시말하면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평화의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나 영접하면 복음을 영접하면 우리는 평화를 얻게 됩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을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이 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38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참 놀라운 예수님의 행적을 소개하는데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충만하셔서 다니시며 선한일을 해하시며 그리고 마귀에게 눌린자를 고치셨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도 성령과 능력이 기름붓듯 임하시니까 능력을 가지고 나가셔서 마귀에게 눌린자를 치료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 쫓으시고 약한자를 고치시고 하셨는데 저와 여러분이야 말할것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큰 욕이 뭐라그럽니까. 성령받지 말고 목회해라 그겁니다. 그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받지말고 집사일해라. 성령받지말고 권사일해라. 똑같은 겁니다. 욕입니다. 어떻게 성령받지 않고 권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제직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겁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과 능력이 기름붓듯 임하시기를 여러분 소원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물며 그랬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설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고넬료와 식솔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닌 말씀듣는 그들중에 성령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44절에서 4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제일 놀란 사람은 베드로에요 거기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아니 성령은 유대인들에게만 임하는 줄 알았는데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네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은 유대인의 오순절 예루살렘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오순절은 이방인의 오순절 가이사랴의 오순절 고넬료 가정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오늘도 성령을 선물로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도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오늘 고넬료의 가정처럼 말씀을 사모하셔야합니다. 설교자를 하나님의 종처럼 하나님처럼 바라보시면서 그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태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거기에 성령을 임하는 겁니다. 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사건과 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오순절사건은 동일한 사건입니다. 

똑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의 특징이 똑같습니다. 그들이 다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랬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이 똑같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일한 성령이 이방인에게도 임했다는 겁니다. 말씀들을때 성령이 임합니다. 여러분이 말씀들을때 이 성령이 여러분 심령에 충만히 부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오순절은 기도하다가 받은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너희에게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을 때 120명의 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성령받기위해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위로부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바람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그들이 각종 다른말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놀라운 운혜가 임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뭐라 말씀하십니까.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찾을것이요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것이라. 구하는자마다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있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천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에 보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기도할때마다 성령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너희가 얻지못함은 구하지 아니함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함이니라. 성령을 구하십시오.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가지 말씀들을때 성령받고 기도할 때 성령받고 더 나아가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3천명의 무리앞에서 설교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찌할꼬라고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베드로가 뭐라합니까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실것이라. 회개한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역사에 1907년 평양의 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일주일간 집회를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날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찬바람만 쌩쌩불고 뭔가 은혜가 폭발할거 같은데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섬기신 길선주장로님이 회중앞에 나오셨습니다. 그 존경받는 장로님이 그리고 회중들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도둑놈입니다. 무슨 장로님이 도둑놈이래, 제 친구가 죽으며 제가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네가 내가 누구에게 꾸어준 100달러 받아가지고 과부된 내 아내에게 전달해주게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장로님이 그 돈을 받아가지고 자기가 급해서 먼저 써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그걸 못갚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도둑놈입니다. 과부의 돈 100달러를 가로챈 못된 놈입니다. 길선주 장로님이 고백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 성도님들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저는 간음했습니다. 저는 범죄했습니다. 저는 사기쳤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다 나와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통곡이 일어나고 거기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서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뛰며 이루말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성령의 바람이 바로 한국의 전 반도에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평양 대부흥의 시작입니다. 그 길선주장로님이 길선주목사님이 되어서 새벽기도 운동을 일으키고 한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의 바람이 불게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회개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꼭 회개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회개할게 없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죄를 회개하십시오. 마음에 찔리는 양심에 찔리는 것을 회개하십시오.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어떤 영이십니까. 우리를 도와주시는 영이십니다. 파라클레토스 보혜사성령 우리를 도우시는 헬퍼입니다. 힘이 부족하십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우리게 왜 자꾸 죄 짓습니까. 성령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죄의 고리를 끊어버릴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악의 고리가 끊어질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변화의 영이십니다. 깡패로 유명한 김익두 그가 성령받으니까 김익두 목사님이 되고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방탕하던 어거스틴이 성령이 임하니까 그는 중세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성령은 능력의 영입니다. 우리에게 파워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운명은 성령받지않고는 바꿔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바꿔지려면 성령충만을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함으로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위대한 믿음의 종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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