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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 수 없느니라 (요 20:19-23, 고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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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느니라 (요 20:19-23, 고전 12:1-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2)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3)
<요한복음 20장 19~23절>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1)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3)
<고린도전서 12장 1~3절>

할렐루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강단에 꽃꽂이 위원들이 
정성으로 장식해 놓은 것만 보아도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성경말씀을 따라 비둘기도 있네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던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성령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함께 시작된 교회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기념하는 자리에 있는 성도들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가슴 뜨거움과 
감동이 있는 예배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절망의 순간들

세상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낙심할 때가 있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 성공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리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이
한 순간의 실패로 방 한 칸 얻을 여력도 없게 된 사연
- 큰 꿈을 품고 외로움과 고난을 참아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목적한 시험에서 낙방하고 절망에 빠져 한숨 쉬는 이들도 있습니다.
- 그토록 믿었던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돈도 잃고 친구도 잃은 이도 있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한 순간에 떠나보내고 절망감에 눈물 흘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 얼마 전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한 병사의 아버지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습니다.
“하나님이 네 영혼을 천국으로 데리고 올라가셔서 기쁘다. 
그래서 슬프지만 한편으론 위안을 받는다. 나도 예순이 다 됐다.
곧 천국에서 만나겠구나. 그곳에서 만나 웃는 모습만 보고 살자”
얼마나 기막힌 고백입니까?

여러분, 군대에 간 젊은이들이 놀러간 것이 아닙니다.
무기를 들고 보초를 서며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들이 
안타깝게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정치인들 중에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꼭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 대표 같습니다.

여러분,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6.25때 부상당한 아버지, 
평생 상처를 긁고 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전쟁을 쉬고 있는 휴전중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실 계속 전쟁 중인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임무 수행 중 죽었다는 것은 전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죽음을 봐야 했던 가족들이 얼마나 기가막혔겠습니까?

삶의 절망감이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저런 일들로 다가옵니다.
물론 사연이 다르고 절망감을 느끼는 원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제자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큰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절망했습니다.

하나는, 3년 동안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다녔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한 제자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는 것을 보고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을 생각하며 
다투기까지 했던, 꿈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쫓은 3년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집권세력인 로마군인들과 대제사장측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으려는 수색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다’는 표현은 그들의 공포에 질린 심정을 잘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예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장사지낸 지, 무덤에 묻은 지 3일이나 지났습니다.
무서워서 문을 굳게 잠가두었는데도 불구하고 … 
그 죽은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이유는
실의에 빠진, 공포감에 떨던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고 새 힘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평강’이란 말은 ‘샬롬’이 아닌 ‘에이레네’입니다.
‘샬롬’은 일반적이고 의례적인 인사말입니다.
하지만 ‘에이레네’는 훨씬 더 깊은 의미입니다.
복음서에는 ‘에이레네’ 라는 단어가 3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요20:19)과 요한복음 14장 27절, 그리고 16장 33절입니다.
‘에이레네’라는 말의 의미는
‘두려움이 없고,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
‘그리스도만 줄 수 있는 평안의 선물’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평강은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처럼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고,(요 14:27)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게 하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요 16:33)

우리가 살다보면 
“이제 어떻게 사나? 누굴 믿고 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죽겠다 죽겠다”하지 말고 “주께 있다 주께 있다”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겠다’는 말 참 많이 합니다.
‘졸려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이제부터 ‘죽겠다’고 하지 마세요.

두려움에 놀라며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신 주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마음에 믿는 것을 입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주고 
다른 사람을 붙들어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힘들어 절망에 빠져있을 때 
그 사람을 보면서 뭐라고 얘기하며 사십니까?

사회에서 너무 승진이 빠르면 나올 날이 빨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초등학교 1학년은 1학년 같아야 하고,
중학교 1학년은 중학교 1학년 같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교 1학년 같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아이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승승장구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한 실력 있는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 빠르게 출세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가 IMF를 맞아 54세에 해고되었습니다. 
그때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 내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회사에 매여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못 가졌고 취미생활도 못했는데 
이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잘 됐다.”
가족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엔 여행도 가고, 가족과 함께 외식도 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쯤 후부터 완전히 말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3개월 내내 자살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아빠의 생일에 힘을 주자고 했습니다. 
아빠의 생일날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생일에 우리가 특별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 종이에는 그 동안 남편에게 고마웠던 일,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일 54개가 적혀 있었습니다. 

54회 생일에 맞추어서 … 그 내용을 다 읽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곧 이어 대학생 딸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를 이만큼 키워주신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계속해서 고등학생 아들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우리 가정의 보석과 같은 분이예요.” 
결국 아빠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그는 일어섰습니다. 
퇴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고 여겼는데 
자기에게는 아직 소중한 가족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비슷한 경우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가족에게) 소망을 주고/사랑을 주고/
신뢰를 주고/일으켜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낙심하며 절망한 제자들을 찾아간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두 번째 이유는, 새 힘을 주실 뿐 아니라 
사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숨을 내쉰 것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고 하시며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에스겔 37장 9절에서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 37:9)고 하시며 
하나님의 영이 죽은 자를 살리신 것도 생각나게 합니다.
이 두 말씀은 새로운 창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존재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처럼
제자들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선언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새로운 사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했던 제자들은 
새로운 사명을 받았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힘은 바로 성령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님은 성령이 임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하셨고,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하셨습니다.

성령은 약속된 선물이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새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제자들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향한 사명을 받은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나가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고,
빛 되고 소금된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들의 지식/지혜/경험/능력 … 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지혜/경험/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의 중심에 성령이 있어야 하는데 … 
성령이 계시지 않고 바로 ‘나(我)’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오해

성령을 말하면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방언을 하거나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범주를 벗어나는 행동을 해야
성령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해야 성령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런 것만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은사 = 은혜 惠, 은혜 賜, 원래 ‘임금께서 내려주는 물건’을 뜻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라는 말의 뜻은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봉사하는 일, 구제하는 일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 전하는 자, 목사 등도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똑같은 은혜를 받았어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햇빛 쨍쨍 내리쬐는 도로에 서서 큰 장갑을 끼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주차위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 쉬운 것 같습니까?
제가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차위원들 중에는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저하고도 얘기 나눈 적도 없는 분인데 
그런 분이 주차위원으로 봉사하며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성령 받는다는 것을 
어떤 특별한 은사체험으로만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좌로 치우치면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자유주의가 되고
우로 치우치면 극단적인 신비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령을 인간의 이성 안에서, 사람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특정 개인과 집단에 유리하게 해석해서
특정인을 신격화하거나 자기들의 집단만 참 교회인 것처럼 
위장하는 사이비 이단들도 많습니다.

방언의 역사, 병 고치는 은사,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격화하고 그것을 따라다니면 
은사 받은 사람을 무당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

얼마 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 교수가 쓴 책
『아들이여 이 산하를』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동네에 사는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시나요, 
아니면 밖에 내놓고 주무시나요?”
할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나 하룻밤만 자보고 대답을 하마.”
그리하여 그날 밤 수염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면 답답하고 끄집어내면 쓸쓸했습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30년 동안 몸에 달고 다닌 수염이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지금 성령 안에 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안에 거하십니까? 성령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기쁨과 감사가 있다면
성령과 동행하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같다면 …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 나는 성령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암3:3)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겠다고 하지만 
문제는 뜻을 같이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2000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간증했던 영국 가수 클리프 리챠드(Cliff Richard)에 대해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
클리프 리챠드가 예수 믿고 나니 어려운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give up”,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더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포기하고 사십니까?
날마다 날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참고 사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원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래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십니까?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성령충만한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첫 째로, 언어가 달라집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5:19) 라고 했습니다.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어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I’<나>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는, 나를’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합니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져야 하고, 사용하는 문장이 달라져야 합니다.
‘나는 원래 그래요.’라는 말 하지 마세요.
예수 믿는 사람답게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말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이렇게 말이 달라지고 나면
- 둘째로,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엡 5:19)합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노래가 나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즐거움을 찬양으로 표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 셋째로, 감사하게 됩니다. 
언어가 달라지고 찬송이 나오면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엡5:20)’합니다.
좋은 일에도, 좋지 않은 일에도 어떤 일을 만나도 감사합니다. 

언어가 달라지고/찬송하며/감사하며 살게 되면
- 넷째로, 봉사자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성령충만 하면 다른 사람 돕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충만 하면 삶이 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 충만(가득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충만’이라는 말은 빈공간이 없이 꽉 찬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머리로만 알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가슴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불붙는 것 같은 열망,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도 동행하시며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요14:26)

<성령에 대하여> 성경 몇 곳을 읽어 드립니다.

-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고린도전서 12:3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요한일서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 믿는 우리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무서워 벌벌 떨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주님의 선언대로 
성령을 체험한 뒤에 제자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성령과 동행하는 / 강하고 담대한 …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가슴 속을 찾아 오셔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 가슴 뜨겁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슴 뜨거움으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강하고 담대하게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기뻐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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