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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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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마 6:9-13)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속에는 예닐곱 가지 간구가 있는데 내용 구조상 크게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사람에 대한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부분은 하늘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위한 세 가지 간구입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 내용은‘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뜻 또한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 뜻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그 뜻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말한다면, 죄로 멸망할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은 만세전에 아버지의 마음 속에 있었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으니 그 뜻은 먼저 하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세상의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이 땅에서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얼굴을 땅에 대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은 기도는  내 뜻과 아버지의 뜻 사이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기도는‘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는 것’은 온 몸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만 했던 인간 예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순간은 아버지와 아들로서 마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심판장 앞에 형벌을 당하는 죄인으로 서야만 하는 모진 고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 없는 존재,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려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죄인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고 두려운 것인지 잘 아는 주님이시기에 그 고난의 잔이 나에게서 물러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그 쓴 잔을 다 받아 마시는 일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세상의 죄인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생자 예수께서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까요?   내 뜻을 따라 계획을 세운 다음 하나님께 나의 계획서를 불쑥 제출하고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 뜻을 잘 살펴보시고 사인하세요’ 하는 식의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뜻을 이미 정해놓고 하나님께 억지 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의 편이라고 자신있게 믿고 행동합니다.   대단히 좋은 믿음 같지만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생각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참패한 이스라엘의 실례가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참패하였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들고 나가면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적의 칼에 죽었고 법궤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믿음은 법궤라는 성스러운 물건을 의지한 이방인들의 미신이지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시라면 왜 그들이 그처럼 망하도록 방치하셨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상징하는 법궤마저 적의 손에 빼앗겨 블레셋의 신 다곤 산당에 두도록 모른체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자만했던 잘못된 신앙때문 아니겠습니까?   내 생각대로 하면 하나님도 그대로 따라주실 것이라는 어리석은 확신이 화를 불렀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서 모두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살았던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나안의 신들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송아지 우상에게 절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형식적으로 부르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불량자들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들만 하나님께 택함 받았고 자신들만 하나님 백성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왜곡되고 이기적인 선민사상은 이스라엘을 거만하고 무례한 민족이 되게 하였습니다.   

지난 주일 권성찬 선교사님 설교 중에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한 하나님의 위기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오직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믿는 한 하나님의 위기라고 한 말씀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는 신앙까지는 이르렀지만 아직 유대인을 위한 메시야로만 알고 있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주님을 베드로가 가로막고 예수께 항의하며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있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유대인을 위한 메시야로만 안다면 그리스도의 위기라는 말씀이 참으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인을 위하여 오시되 유대인의 혈통을 따라 오신 것이지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야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민족주의적 신앙에 붙들려 세상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뜻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셔야 하는 주님의 심정이 이해됩니까?    마지막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신 주님의 마음을 느껴봅시다.  

오늘날 미국과 탈레반이 서로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소위 성전을 벌입니다.   어떤 미국인들은 탈레반에 대한 복수를 하나님의 뜻이라 굳게 믿고 이라크와 아프칸을 응징하기 위한 전쟁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의 사명을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어받았다는 확신 속에 이런 전쟁을 정당화합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틴 난민들을 무력으로 억압하고 통제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내세웁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스라엘에게 탄압 받는 팔레스틴 난민들 중에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쓴 컬럼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앞두고 있을 무렵 양쪽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떤 편을 도우셔야 할까요?    그때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셔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지 기도합시다’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전혀 다른 뜻이지요?   하나님을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로 서있는지 기도합시다’ 라는 말보다 더 옳은 판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수험생 부모들이 시험을 앞두고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하며 우리 아들, 딸이 원하는 그 대학교에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입학 정원은 한정되었고 기도하는 부모는 몇 배로 많은데 제비뽑기를 하라고 하셔야 할까요?   누가 기도를 더 오래하였는가?  누가 더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설득했는가 말솜씨 점수를 매기실까요?   아니면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감사헌금을 드리며 기도한 사람 순서로 성적을 주셔야 할까요?   그렇다면 헌금 액수가 많을수록 더 확실한 응답이 나와야 할까요?   

기독교인들만 그런 기도합니까?   불교도들도 절간에서 손이 닳고 무릎이 닳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험 결과를 보면 기독교인 자녀들만 그 학교에 합격합니까?   당연히 비기독교인들 자녀들도 합격합니다.   그럼 하나님과 부처님, 그리고 또 다른 신들이 신도 수 비례로 합격시키자고 합의라도 보았다는 말입니까?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이 주일마다 지역 교회들을 찾아다닙니다.   어떤 기독교인 후보는 교회도 가고 절간에도 갑니다.   신앙과는 관계가 없이 어찌되었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셔야 할까요?  

우리 일상생활에 이런 문제들이 흔하게 등장합니다.   저마다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기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누가 부르면 얼른 달려가시고 모른 척 외면하면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외로움을 타며 사람들 눈치를 보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사람들, 소위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무례를 범하고 있으며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지 깨닫고 회개해야 할 제목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시다.  아버지의 뜻을 먼저 여쭙는 기도입니까?   내 뜻을 아버지께 통보하며 떼쓰고 강요하는 버릇 없는 기도입니까?    아무리 오랜 시간 고함을 치고 열심히 기도를 해도 그 기도가 아버지의 뜻과 상관이 없는 나의 욕심과 소원을 부르짖는 기도라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와는 상관이 없는 내 기도일 뿐입니다.   그런 기도는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기도했을 뿐 똑같은 내용으로 절간에 가서 3천배를 하고 탑돌이를 하며 불공드린 기도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비는 신앙도 그런 간절한 마음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판단을 더 앞세우며 나와 우리의 뜻을 밀어부치는 일에 하나님을 끌어다 부려먹는 식의 기도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내가 뜻하고 기도한대로 이루어져야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생각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도가 됩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는 말씀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니라’(막3:35)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습니다’ 외치며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올바로 읽고 그 마음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을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9:31).   이 말은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어 보게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치료를 인정하며 바리새인들 앞에서 고백한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했다고 예수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눈을 뜬 이 사람은 ‘하나님은 죄인의 말은 듣지 않으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의 말은 들으시는 줄 나도 알고 바리새인 당신들도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나의 눈을 뜨게 하였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하고 예수님을 적극 변호합니다.   

예수님의 치료로 눈을 뜬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으로 믿게 되었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청년 사울은 나사렛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굳게 믿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음의 자리에 넘겨주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열심이라고 굳게 믿고 행동하였습니다.   내 생각을 먼저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아들을 통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하십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죄인 구원이라는 큰 범주 안에 좀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이 성경 전체를 통해 드러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 기도 가운데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원망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고,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기쁨을 잃지 않는 믿음직한 자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이런 자세로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내가 받은 사랑을 이웃에 나누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내 가족, 우리 교회라는 이 작은 범위 속에 하나님을 가두고 우리들끼리 믿음 좋다고 인정하고 우리들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확신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실까요?    정말 하늘 아버지께서 나와 친한 사람,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와 잘 통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하나님이실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각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고 선포한 베드로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전에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적 배타주의 신앙에 머물렀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 선포한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아버지의 뜻이 나와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계속 이어지도록 기도하십니까?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실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는 성도의 삶은 복이 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음식을 끊어가며 기도해야 할 다급한 기도 제목이 단지 이 땅에서 얻을 재물과 건강과 학위와 직장 같은 것들만은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열매 맺길 원하시는 구원, 나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가장 우선된 뜻이 무엇인지 여쭈며 그 뜻을 이루는 삶을 구하는 것이 소중한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일터와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내가 몸 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귀하게 여기며 살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를 모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방식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며 날마다 구해야 할 우선적인 기도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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