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스승주일] 스승과 제자 (요 13:13-14)

  • 잡초 잡초
  • 595
  • 0

첨부 1


스승과 제자 (요 13:13-14)


옛 날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였다. 임금과 스승, 그리고 아버지는 한 몸이라는 뜻이다. 
신구약 성경에「스승, 선생, 선생님⌟이라는 말이 73번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속담에는「하루를 배워도 선생이다」는 말이 있다. 즉 내게 사소한 가르침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 분은 내게 스승이라는 말이다. 

아리스토 텔레스=국가의 장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한 나라의 민족과 사회는 오늘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교육(敎育)”이란 한자적인 의미는 “가르쳐 기른다.”는 말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노릇을 해야 사람이지” 라는 말이 있다. 교육의 목적은 돈벌어오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노릇하며 살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스펜서=교육의 최대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룻소=교육의 목표는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 

1.우리의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님.(13)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 “스승 중의 스승”이시다. 예수님은 설교하시기보다, 가르치시는 일을 더 많이 하셨다. 

예수님은 어떤 교사이신가? 

1) 권위 있는 교사.(마7:28-29) 

예수님의 가르치심에는 권위가 있었다. 진정한 권위는 인격적인 삶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전무결하신 선생님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권세가 있었다. 세상에는 학문에는 능하여 사람들을 학문적으로 잘 가르치지만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바르게 살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흠이 없으신 권세 있는 교사이셨다. 

2) 온유하고 겸손하신 교사.(마11:29) 

“온유”란 말은 “친절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겸손”이란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예수님은 가식된 행위로 교만을 숨기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것처럼 생색을 내신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낮고 비천한 자리에서 지치고, 피곤한 자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신 것이다. 

3) 섬김의 본을 보이신 교사.(요13:14) 

그는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친히 씻겨 주심으로 남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친히 본을 보이셨다. 
「참 스승과 나쁜 스승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스승이 대답하기를「좋은 스승은 실천을 보여 주고, 나쁜 선생은 이론을 제시한다.」라고 말했다.

4) 준비를 철저히 하신 교사.(눅3:23)

예수님은 30년 동안 준비하셔서 3년을 가르치셨다. 모세는 40년을 위해 80년을 준비하였다. 예수님은 신체적, 사회적, 인격적, 정서적, 도덕적, 지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시고, 교사로 나섰다.

5) 사랑으로 가르치신 교사.(요13:1, 요15:9) 

「교육가 페스탈로치는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도 아니요, 머리도 아니요, 가슴이다” 고 말했다.」예수님은 사람들의 99%의 단점보다 1%의 가능성을 믿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가르치셨다. 학생들의 성적을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라고 표시를 했다. 수(秀)는 빼어날 수(秀)로 우수하다는 말이다. 우(優)는 넉넉하다 충분하다는 뜻이다. 미(美)는 아름답다, 좋다는 뜻이다. 양(良)은 양호하다는 뜻이다. 가(可)는 무엇인가? 가능하다. 즉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성적 평가개념은 이처럼 1%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신뢰가 담겨진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선생님이셨다. 


2. 존경해야 할 교사. 

바울은 고전4:15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세상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 기술을 가르치는 스승, 무술을 가르치는 스승, 체육을 가르치는 스승,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다. 우리의 오늘이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수고하신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생님을 “은사(恩師)”라고 말한다. 나는 가끔씩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 나를 가르쳐준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모른다. 그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은 스승을 우리는 마음 깊이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존경해야 한다. 

3. 교사인 나. 

고전12:28에 의하면 “가르치는 것”은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이다.(엡4:11)
우리가 내 아래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들을 직접, 간접으로 가르치는 교사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나는 교사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최초의 교사는 부모이다. 교사라는 헬라어 디다스칼로스 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의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끌어 주는 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학문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자, 가르치는 자. 먹이는 자. 보여주는 자. 인도하는 자. 보호하는 자. 책임지는 자. 상담자. 지혜 있는 자. 라는 등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배우고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며, 연구해야 한다. 

베네트=유일하고 참된 교육자는 스스로를 교육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선생은 가르쳐 주고, 좋은 선생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훌륭한 선생은 실연(實演)하고, 위대한 선생은 감화(感化)를 준다. 

우리는 교사로서 아래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딤전4: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저는 가끔 제가 지도했던 사람이 신앙을 포기하고, 죄악 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픔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얼마나 본이 되지 못하고 예수의 값진 복음을 잘못 가르쳤으면 저 사람이 저리 되었을까? 하는 괴로움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우리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서 행동으로서 가르치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윗사람에 대해서는 제자이며,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책상 내 아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스승이다. 우리는 제자이면서 동시에 선생이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항상 배우고, 닮아가며,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 하고, 우리 윗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내 아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땅히 신앙과 삶의 모범을 보이는 교사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