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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진리의 영 (요 14:16-1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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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진리의 영 (요 14:16-17, 26)


본문은, 이런 분위기 속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떠나 하늘로 갈 것이라 하십니다. 내가 가면, 아버지께 말씀드려 너희에게 또 다른 保惠師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시대가 到來하고 있음을 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到來하는 새 시대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 시대’입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오는 새 시대는 성령님의 시대라는 이야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예수님과 직접 교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우리와 몸으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더 이상 함께 하실 수 없는, 떠나가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통해서 예수님과 交通합니까? 누구를 통해서, 아버지를 압니까? 누구를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말씀을 듣고, 깨닫습니까? 또 누구를 통해서 복음적인 삶을 삽니까?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성령의 사람인가? 나는 내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그렇잖으면 혹, 나는 아직도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인가? 그런 나를 과연,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겁니다.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성령 받은 사람인지?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인지? 확신 없이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하여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순절주의교회성령운동때문입니다. 오순절교회성령운동은, 사도행전의 몇몇 말씀에만 그들의 신학적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cf. 행 19, 1-7 에베소 사건; 행 8, 14-17 사마리아 사건; 행 2, 1-4 오순절 사건). 

반면에 우리교회 같은 정통적인 장로교회는 성령을 주로 중생(거듭남)의 문제, 성화(그리스도를 닮아감)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만 봅니다. 그런가 하면 오순절교회는, 특별히 ‘성령세례’를 강조합니다. 특히 ‘方言’을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표징으로 생각합니다. ‘方言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는 오순절성령운동교회들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언받기 위한 특별은사집회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사도행전의 몇몇 말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에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도 대단히 중요한 성령론이 있습니다. 바울서신에도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데도, 사도행전의 몇몇 말씀으로만 성령론의 기준을 삼는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오순절성령운동하는 자들이, 입버릇처럼 언제나 강조하는 말 한 가지가 또 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켜, 언제나 無能하고, 懦弱한 존재였다고, 아예 斷定的으로 단언합니다. 성령이 오신 후에, 담대한 사람이 되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런 견해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성경해석입니다. 

정말, 오순절성령강림 이전의 예수님 제자들은, 언제나 無能했습니까? 언제나 懦弱하기만 했습니까? 이런 오순절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은, 복음서 저자들의 증언에 크게 반하는 잘못된 성경해석입니다. 

누가복음 9장 1절 이하 말씀 보십시오(마 10, 1ff. 막 3, 13ff.).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병 고치는 능력과 권능도 주셨습니다. 이런 권능을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마을마다 두루 다니며, 복음전하지 않았습니까? 병도 고쳐주지 않았습니까?” 그뿐 아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얼마나 크게 칭찬받은 고백입니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일흔 명의 제자들, 어찌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굴복시켰습니다(눅 10, 17-19).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세력을 누르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만 가지고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의 단정적인 가정은, 예수를 믿는 믿음 속에 존재하는 권능과 능력을 부인하는, 대단히 위험한 오류가 있습니다(오순절 성령론의 문제점).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나약할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나약한 이유가 성령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 없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것 아닙니까?(막 9, 9)

또 오순절운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방언하지 못하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증거입니까? 그렇잖습니다. 여러분은, 방언 받으셨는지요? 아마, 80-90%는 방언 받지 못하셨을 겁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여러분은 성령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방언 받았습니다(신비한 체험도…, 그러나 그것이 아무런 자랑거리 되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많은 가르침을 준 사도 바울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方言의 恩賜가 없다거나 방언의 은사를 부인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오순절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방언을 필요이상으로 높이거나 강조한 적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순절운동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方言’을 말하는 은사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恩賜가 훨씬 더 중요한 은사라고 강조합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方言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 19). 은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는, 그 어떤 다른 은사들보다 더 앞서는 귀한 은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 28이하에서 그가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요(예언자), 셋째는 교사(말씀을 가르치는 자)”라 했습니다. 이런 은사들의 순서에서 방언은, 가장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면서, “너희는 이 모든 은사보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런 후에,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가장 크고 제일 좋은 성령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방언받기를 사모하여도, 다 방언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는, 모든 사람이 다 받아야만 하는 은사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聖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聖者들이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방언했던 사람들이 성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사랑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殉敎하기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사랑해서, 죽기까지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성령의 은사에는, 또 섬김의 은사도 있습니다. 勸慰하는 은사도 있습니다. 구제하는 은사도 있습니다. 다스리는 은사도 있습니다. 矜恤을 베푸는 은사도 있습니다(롬 12, 6-8). 이 모두가, 성령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입니다.

마지막 만찬 상에서, 고별설교 하시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가면, 3년 동안 내가 너희와 同居同樂했던 것처럼,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이신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시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십니까?(요 14, 26)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시는 첫 번째 일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일”입니다(디닥세이, dida,xei). 성령님이 임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무엇을 가르쳐주실까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말씀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人格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거부하는 者(聖靈毁謗하는 者)에게는 가르치시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世上은 능히,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世上이 누굽니까?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 율법주의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하나님의 뜻은 外面하고, 자기들이 만든 규례, 전통만 주장하면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 있지요? “진리가 무엇이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관심은 진리가 아니라, 로마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진리이신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진리이신 예수님의 복음말씀의 가르침을 받습니다(고전 12, 3).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두 번째 일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오순절사건 이후, 베드로의 설교 보십시오. 스데반의 증언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해박했습니까). 예수님 제자들이 때로,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깨닫는 지혜가 부족할 때도 있었습니다(방금하신 예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특히, 十字架로 나아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살아 있는 권력이 두려워서, 예수님 경고하신 말씀 기억하지도 못하고, 다 잊고 도망친 것 보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否認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내 안에는 언제나 예수님 말씀의 가르침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놀라워했던 무리들처럼, 그 놀라운 예수님 말씀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또 다 생각나게 하십니다(예수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또 그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성취됩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교회에, 이와 같은 성령의 사람들 곳곳에 많습니다. 

곳곳에서 主를 섬기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 듣고, 자기 인생을 고민하고, 하나님 나라 구하면서 사는 ‘성령의 사람들’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더욱 더,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 13)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말씀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삶의 매순간순간마다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우리 가운데 이루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우리 삶에도 이루어져,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더욱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성령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간절히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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