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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의 보배 (사 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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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보배 (사 33:1-6)

(the fear of the LORD is the key to this treasure.)

(사33:1-6)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진동 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시므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황충의 모임 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 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 오르리라.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1.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인생들이 인생의 참된 보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로 ‘시대에 평안함’을 누리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함’을 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떠하든지 가리지 아니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가 연약한 사람이면 강하게 하시고, 그가 미련하면 지혜롭게 하시고, 그가 가난하면 부유하게 하시고, 그가 천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축복하십니다.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경매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경매장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경매인은 여러 가지 물건을 경매에 붙였습니다. 잠시 후, 경매인은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끄집어내어 높이 치켜들고, 얼마라고 소리치자 모든 사람들이 킥킥대고 웃었습니다. 사실 그 바이올린은 너무 낡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본래부터 값싼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200원을 불렀습니다. 경매장안에 폭소가 일어나더니 그 값으로 그에게 주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경매인은 잠시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묘안을 짜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켜실 수 있는 분, 누가 이것을 켜보시지 않겠습니까?” 경매인이 이 말을 하자 매장은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곧 고요한 틈을 헤치고 한 노인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 노인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몇 번 활을 시험해 음을 맞추고 나서는 정중하게 인사했습니다. 그러더니 노인은 그 낡은 싸구려 악기로부터 절묘한 선율을 켜내었습니다.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끝났을 때, 매장은 여기저기 격찬과 박수갈채로 진동했습니다. 

다시 경매인은 장내를 진정시킨 후 그 바이올린을 집어들고 값을 물었습니다. “10,000원”, “20,000원”, 결국 “200,000원”으로 낙찰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전과 다름없는 바이올린이었는데....그러나 바이올린은 대가의 손에 의해 제값 이상의 명품으로 변신되어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천하고 미약하고 무능해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닿으면 가치있고 가장 보배롭게 쓰임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이 성도 여러분의 삶에 보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삶의 보배로 삼는 사람에게 첫 번째 베풀어 주시는 축복은 ‘너의 시대에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45:7입니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어두움이 임할지라도 마침내 빛으로 인도하시고,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환난을 평안으로 바꾸어주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축복하십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했지만 라반이 약속을 어기고 품삯을 몽땅 떼먹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을 책망하여 20년 밀린 모든 품삯을 모조리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야곱의 고백, 창세기31:41-42을 보겠습니다. 

(창31:41-42)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의 고백대로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공수(空手)로 고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허락하신 바를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신대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창28:15) 그리고 때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야곱은 대 가족과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고향으로 출발합니다. 고향을 눈앞에 두고 20년 한 맺힌 형 에서가 몹시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는 야곱에 대한 원한을 깨끗이 풀어버리고 동생 야곱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벧엘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눈에 좋아 보이는 세겜 성 드넓은 초원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 여자들을 구경나갔다가 그만 그 성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 당합니다. 이 사태 해결을 위해 추장의 아비 하몰이 야곱을 찾아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디나를 자기 아들과 결혼시키고 자기 땅에서 계속해서 생활하는 게 어떠냐며 협상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여동생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결혼 조건으로 세겜 남자 모두가 할례받을 것을 제시합니다. 세겜 추장이 협상 조건을 좋게 받아드리고 돌아가 일제히 할례(circumcision)를 시행합니다. 할례를 행한 후 삼일 째 되는 날, 가장 고통스러울 때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하여 할례로 인해 꼼짝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세겜 족 모든 남자들을 몰살해버립니다. 거룩한 할례 의식을 악용하여 세겜 족을 속이고 학살한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이 놀라 두려워하며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34:30)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고향 떠나 파란만장한 20여년 고생 끝에 금의환향을 눈앞에 두고 벌어진 학살극으로 주변 가나안 동맹 족속들이 분개하여 합세하여 보복 공격을 해온다면, 그간 이룩한 모든 축복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장탄식입니다. 바로 이렇게 두려워 불안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야곱은 이 말씀을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기 전에 분명히 들었음에도(창31:13) 당장 눈에 좋아보이는 목초지를 보고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20년 전 바로 그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약속한대로 그곳에 예배 처소를 마련하고 약속한 바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잊을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하실 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이른 바 ‘벧엘의 서원’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곧장 전 식솔을 모아놓고 말합니다.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35:2-3) 

환난 날에 함께 하시며 외삼촌 집에 가서 숱하게 사기를 당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대가족이 되게 하시며 거부되어 평안히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린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생 끝에 대가족이 되어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고 나니까 외롭고 두려울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보다 딸 디나와 자녀들이 더욱 더 귀하고 사랑스러웠던 것입니다. 거부되어 금의환향하다보니, 10번이나 사기 당해 품삯 중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형편에 모든 것을 찾게 해서 거부되게 하신 하나님보다 재산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고백했던 예배와 십일조를 잊어버리고 지내온 것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그간 잘못된 자신의 처신들을 회개하고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 잃어버린 믿음을 찾고, 잊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해서 진실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35:5) 그런 다음에 그들은 길을 떠났으나 하나님이 사방에 있는 모든 성읍 사람을 두려워 떨게 하셨으므로,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삶에 평안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배은망덕하여 그 자신이 어두움과 환난을 자초했지만 다시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에게 빛과 평안으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다윗처럼 성전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 즉 성전을 사모하고 사랑하여 가까이 하며 성전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이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며 사랑하여 가까이 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시편122편을 보겠습니다.

(시122:1-9)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다윗처럼 성전의 평안을 구하시고, 성전을 사랑하며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평생 그의 삶에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시는 축복을 약속하시고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삼하7:10-1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자신의 보배로 여기시는 여러분에게 평생에 평안함을 누리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삶의 보배로 삼는 사람에게 두 번째 베풀어 주시는 축복은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함’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B.C.853년경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동쪽에서 점점 강성해가는 앗수르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남 유다와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그간 남 유다와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우호관계를 맺고자 자기 딸 아달랴와 남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과 결혼시킵니다. 여호사밧 왕도 아람과 앗수르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이 동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에 응했던 것입니다. 

아합은 남 유다와 우호관계를 맺은 후 먼저 조약을 위반하고 영토 반환을 거부한 아람을 응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합 단독으로 공격하기에는 아람이 힘겨운 상대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군사동맹을 제의하고 여호사밧 왕으로서도 아람을 견제하는 일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 전쟁에 동참할 것을 수락합니다. 

여기서 여호사밧은 중대한 과실을 범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의 대적자였던 아합을 도운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대하19:2). 

사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아합을 심판하기 위해 아람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하셨습니다.(왕상21장)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아람 공략의 필요성과 그 타당성을 공감했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물었어야 했습니다. 이보다 아합의 전략적 결혼제의가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결혼인지 그 여부를 물었어야 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전쟁 일보 전에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선지자 찾기를 아합에게 제의합니다. 여호사밧 왕의 뜻을 무시할 수도 없던 아합은 무려 400명의 선지자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권력자의 구미에 맞을만한 말만 하는 아부형의 인물들로 거짓된 어용(御用)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이들 400명은 어용답게 아합의 구미에 맞는 말로 전쟁을 독려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반드시 개선(凱旋)하리라고 예언합니다. 

여호사밧 왕은 400명의 선지자들이 만장일치로 예언하는 것이 뭔가 찜찜하게 느껴져 더 물어 볼 선지자가 없는가 물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온 여호사밧은 민감하게도 이 무리들의 예언에서 석연치 않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터라, 아합은 그토록 미워했던 참된 선지자 미가야를 찾아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었습니다. 

미가야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심판하기 위해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 그들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400명의 대표자격인 시드기야가 권력의 등을 업고 미가야 선지자를 혹독하게 핍박하고 투옥해버립니다.(왕상22:27) 

그리고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에 뒷맛이 찝질하지만 그의 예언을 묵살한 채 아람과의 전쟁을 단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살리고자 하셨다면 여호사밧 왕을 통해서 일지라도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겠지만, 하나님은 악인이 패망의 길로 행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징계이며 심판이라는 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합은 비록 미가야의 예언을 묵살하고 출전(出戰)하기는 하나 내심 미가야의 예언이 적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혹시라도 닥칠지 모를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왕복을 벗고 일개 군사로 변장합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에게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라며 상대를 높이 대접하는듯하면서 일견 매우 약삭빠른 제안을 합니다. 지휘관이나 왕은 어느 전투에서나 집중 공격의 표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많은 것이 곧 지휘관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게 하고 자신은 변장하겠다는 아합의 제안은 나름 아주 영특하게 보이지만 매우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람과의 전쟁에 출전했습니다. 아람 군 지휘관은 전 병사들에게 오직 적장 아합만을 공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가 왕복을 입은 사람만을 집중 공격을 가하자 여호사밧이 크게 당황했습니다. 여호사밧이 기겁해 소리치자 아람 지휘관들이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왕복을 한 사람이 아합이 아닌 것을 알아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적병 하나가 “무심코 활을 당겼는데” 병사 복장을 한 아합의 갑옷 솔기를 정확하게 뚫고 들어가 명중시켜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왕상22:34) 

“무심코 활을 당겼다.”(drew his bow at random)는 말은 ‘되는대로’, ‘별 생각없이’ 다시 말해 이는 난전(亂戰)중에 누가 맞아도 맞겠거니 하고 아무렇게나 화살을 날린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아합의 ‘갑옷 솔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뚫고 들어가 명중했습니다. 아람 병정이 아무렇게나 날린 화살 하나가 하필이면 변장하고 숨은 아합의 갑옷 솔기를 파고 들었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덤으로 팔려가는 참새 한 마리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세상만사에는 하나님의 뜻과 그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 천지만물을 선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 하나에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새겨져 있음을 믿고 그 뜻을 깨달아 그 뜻 가운데 사는 것이 지혜롭고 복된 것입니다. 아람 병사가 무심코 당긴 화살이 아합의 솔기를 뚫고 명중한 것은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결과인 것입니다. 

5년 전에 암세포만을 찾아 죽이는 <스마트 폭탄>이 미국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이 스마트 폭탄은 풍선 안에 또 하나의 풍선이 들어있는 형태로 혈관에 주입하면 암 종양으로 이동, 암 종양 깊숙이 뚫고 들어가 폭탄의 외피가 분해되면서 혈관형성차단제를 방출, 종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이 붕괴된다고 합니다. 이어 폭탄 속에 들어있는 나노셀(nanocell)이 폭발, 항암제를 방출하면서 암세포를 죽이게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강한 세포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항암치료에서 나타나는 구토, 탈모, 체중감소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암세포만을 공격해서 죽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스마트폭탄은 정밀 유도병기로 레이저광선 또는 텔레비전카메라를 이용하여 목표에 폭탄을 자동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명중 정밀도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 스마트폭탄은 베트남전쟁 말기에 미국공군이 처음 사용하여 위력을 발휘했었고,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에 의한 이라크의 원자로 폭격과 1991년의 걸프 전쟁에서도 사용되어 그 위력을 발휘했었습니다. 아람 병사가 ‘무심코 당긴 화살’은 하나님에 의해 ‘스마트 폭탄’으로 장착되어 아무리 꾀를 부려 병사복장으로 변장했음에도 아합을 정확히 찾아내 마치 암세포만을 제거하는 것처럼 아합을 명중한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가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 앞서 2년전 아합이 힘 없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탈취했을 때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하시고 그 아합의 피를 개들이 핥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상21:19)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결국 아합은 ‘무심코 쏜 적병의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사마리아 연못에 가서 쓰러졌습니다. 사마리아 못은 창기들이 목욕하던 곳이었습니다. 아합이 흘린 피가 그 연못을 붉게 물들였을 때 개들이 몰려와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극히 치욕적인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편 여호사밧 왕은 목숨만 겨우 건지고 참담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남북 화합의 무지개 꿈은 날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여호사밧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준엄하게 경고하고 책망하십니다. 

(대하19:1-3) 왕께서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행하신 그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왕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 전쟁의 와중에서 여호사밧을 살리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대하19: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이하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이처럼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여호사밧을 구원하시고 아합은 아무리 머리를 써서 죽음을 피해보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삶의 보배로 삼아 ‘여러분 시대의 평안함’과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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