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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가정의 중요함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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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중요함 (창 2:18-25)


오늘 설교는 좀 어렵습니다. 제가 어려운 설교는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준비하다가 보니까 어렵게 됐습니다. 강의 같은 설교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잘못 이해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설교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들으셔야 합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가정 사역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고 느껴지실텐데, 그래도 여러분은 듣는 수준이 있으시니까 잘 들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잘 듣고 이해하셔서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가정으로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이야기합니다. 5월 달에는 가정과 연결된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5일은 어린이날이고, 8일은 어버이날, 미국에서는 둘째 주일-오늘이 Mother's Day이지요. 21일은 둘이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부부의 날입니다. 

많은 기관이나 단체에서 이벤트를 준비해서 가정의 달을 의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의 달로 정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 지난 주일에는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지난 주는 부모 공경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가정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가정 그러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대개는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이 연상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은 행복을 강조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해서 가정이 먼저 화목해야 만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가정의 화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행복을 강조합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니 예수 믿으면 행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십니까? 행복하신가요? 

안타까운 것은 산업이 발전하면서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서구 사회가 발달하면서 물질과 과학 문명의 극치를 도달하고 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데, 삶의 질이 나아지는데 행복하지 못한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요즘 되어지고 있는 현상을 가리켜서 많은 학자들이 '붕괴하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1968년에 '에릭 프롬'이라는 학자가 '신앙의 혁명'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보편적인 개념이 됐어요. 

미국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보면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통계를 보면 이혼율이 47%랍니다. 미국의 51%, 스웨덴이 48%에 이어 세계 3위예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1985년에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5.2%였는데, 10년 뒤인 95년에 18.6%에요. 10년에 거의 4배 가까이 증가됐다는 겁니다. 또한 10년 뒤인 2005년에 50%에 육박했다는 겁니다. 이혼 증가율은 세계 최고입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년 만에 약 10배정도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는 없어요. 미국의 경우에 이혼율이 많다고 하지만 20년 전에는 47-8%, 오늘날에는 51%입니다. 20년 동안 3-4%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을 해도 가정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경기 회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안정도 아니고, 정치의 민주화도 아니에요. 가정의 회복입니다. 가정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오늘날에 교회가 시급하게 해야 할일 중에 하나는 가정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는 과부를 돕는 일을 시급하게 했습니다. 당시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과부가 많았어요. 사도행전 6장에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과부들에게 나누어주는 음식을 가지고 분쟁이 일어나잖아요. 교회가 그만큼 과부 돕는 일을 시급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바르게 만들려면 처음교회, 교회의 원본인 사도행전 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혹 문제가 생겨도 사도행전 교회를 보고, 교회의 목적과 교회의 기능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바르게 만들려면 처음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처음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처음 가정은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아담의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인류 최초로 만드신 아담의 가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을 잘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둘째 날 창공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어요.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어요. 여섯째 날에는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보시기에 좋은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18절을 보시겠어요. 읽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아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에덴동산에 혼자 살고 있는 아담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는 겁니다. 아담이 행복해 보이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을 돕는 사람, 아담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겁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에 갈빗대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시지요. 그게 누굽니까? 하와지요. 이브..

여러분, 하나님은 아담이 왜 외로워 보였다고 하셨을까요? 아담이 왜 행복하지 않게 보였을까요? 영적으로 만족하지 않아서 일까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아담은 인간의 영적 상태가 가장 완벽합니다. 타락하기 이전이거든요. 요한1서 4:12절에 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아담은 하나님과 동거했습니다. 

아담이 육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외로워 보였을까요? 에덴동산은 먹을 것이 풍부합니다. 아담이 육체적으로 어디가 불편한 것도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완벽한 곳입니다. 아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외로워 보였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담에게 사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정을 주고 받을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담을 잘못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애정을 주고 받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 서로 돕는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겁니다. 좀 어려운 표현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하여 애정의 수단으로 하와를 만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세 가지 기능, 세 가지의 역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능이나 역할은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영적인 역할과 육체적인 역할, 그리고 정신적인 역할, 심리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역할이 가정에 있는 거예요. 영적인 역할은 가정 예배라든지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인 역할은 경제적인 것이지요. 먹고 사는 것, 안정된 생활을 말합니다. 정신적인 역할은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정에는 이 세 가지 역할이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Main Function은 어떤 것일까요? 정신적인 역할입니다. 식구들이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격려하고 애정을 베푸는 이 정신적인 역할이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담은 지금 이 정신적인 기능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를 않았던 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혼자다 보니까 사랑할 대상도 없고, 인정할 상대도 없어요.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할 친구가 없어요. 사랑을 고백하고 애정을 베푸는 대상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고 돌봐주고 인정하고 격려하고 애정을 나누도록 하신 겁니다. 

가정에서 정신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은 영적인 역할이나 육체적인 역할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신적인 역할을 중심으로 영적인 역할과 육체적인 역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에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이고 가정이 건강해지는 겁니다. 만일 가정에서 영적인 역할이 중점이 되면 그 때부터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너무 영적으로 치중하는 가정에서 문제가 많아요. 교회의 역할과 가정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를 봅니다. 가정에서 영적인 문제에 치중하니까 너무 거룩해요. 아이들도 너무 거룩해 가지고 holy에요. 

여러분, 제 말이 맞나 안 맞나 보세요. 가정에서 영적인 부분을 너무 치중하는 자녀들을 친구로 둔 사람이 있지요? 대화가 됩니까? 가정에서도 성령 충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이웃에게 인정받는 상황입니까? 직장에서 인기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해요. 대화가 안 돼요. 뒤떨어져요. 애 늙은이예요. CCM 부르자고 하면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고 입을 다물어요. 원인이 어디 있어요? 너무 영적인 부분에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는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을 나누고 격려하고 칭찬을 해야 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혹 잘못한 일이 있으면 용서해주고 세워주고 보살펴야 합니다. 위로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적 역할 위에서 예배를 드려야 영적인 기능이 세워지는 것이지, 가정에서 영적인 역할만을 너무 강조하면 위험하게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요? 예수 잘 믿으면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지, 가정에서 영적인 기능이 두 번째라고 말하면 오히려 가정에 문제가 더 생긴다고 말합니다. 소위 열심히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럽니다. 목사님들도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오늘 아담을 보세요. 어떻게 이보다 더 잘 예수를 믿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목사가 이런 말을 해서 될는지 모르겠지만, 돌을 맞을 수도 있어요. 잘 들으세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것하고 행복한 것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 믿으면 반드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흔히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말하는데, 사실 가정은 가정이고 교회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주신 공동체가 가정과 교회인데, 가정은 가정의 독특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주신 것이고, 교회는 교회의 고유 기능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주신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정은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가정은 가정입니다. 기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간혹 가정과 교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받을 때가 있어요. 가정이 먼저냐 교회가 먼저냐, 가정과 교회의 기능이 동일하다면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할 사항이 아닙니다. 이제껏 가정의 기능을 말씀드렸는데, 그러면 교회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교회에도 몇 가지 기능이 있지만, 교회의 제일 중요한 기능은 영적인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에 치중해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성도들 간에 사랑을 나누고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고 교제하고 세워주고 칭찬하는 겁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우선 순위가 바뀌어서 정신적인 기능이 앞서거나 육체적인 기능이 앞서면 이상하게 되는 겁니다. 친교하는 교회, 흔히 놀자판으로 되는 겁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여러분, 가정이나 교회는 둘 다 중요한 곳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부분에 치중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기능이 앞서는 곳이고, 가정은 정신적인 기능을 치중해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애정을 나누는 일에 앞서는 곳입니다. 이 기능 위에서 예배도 드리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경제적인 풍요도 누려야 행복한 가정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남편은 왜 집에 들어옵니까? 예배드리러 오나요? 예배는 교회서도 드릴 수가 있어요. 밥 먹으러요? 세상에는 밥 먹을 데가 많아요. 쉬러 오나요? 세상에 쉴 곳이 많아요. 그러면 왜 집에 들어올까요? 애정을 먹으러, 사랑을 먹으러 오는 겁니다. 그것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날마다 날마다 집에 들어오는 겁니다. 

보통 남편들이 집에 들어오면 뭐라고 합니까? 아이들이 '엄마, 아빠 오셨어요.' 그러면 대개는 엄마들이 그럽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그래라. 밥 다 대간다고." 밥 먹으러 온 거 아닌데 말입니다. 남편들도 그래요. 들어오자마자 '여보, 밥 다 됐어?' 밥 먹으러 들어 왔나요? 부인은 밥하는 사람인가요? 

어느 교수님이 대학에서 근속 15주년 표창을 받았어요. 너무 좋아서 표창장을 집에 가지고 와서 부인에게 자랑을 합니다. "여보, 나 15주년 표창 받았어" 그러니까 아내가 "그거 방에 갔다 놓고 씻고 와서 밥 먹어요"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배우자가 좋은 일이 있으면 수고했다 잘했다 칭찬하면서 격려하는 거예요. 한 마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애정을 먹었기 때문에 힘이 나는 거예요. 배우자가 밖에 나가서 능력있게 일할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가정에서 정신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세요. 아담이 하와를 보고는 처음으로 하는 말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 이처럼 근사한 말이 어디 있어요. 하와가 이 말을 듣고 어떠했을까요? 황홀하지 않았겠어요. 이런 말을 듣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칭찬을 많이 하세요. 자녀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세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유교적인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있어서 이게 잘 안 돼요. 저도 잘 안 되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배우자를 칭찬하자. 자녀를 격려하자" 이건 기도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가정 사역에서는 내 과거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상대방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상대적이라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도 나에게 하는 것이 달라지는 거예요. 

배우자를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고치려고 해서 고쳐진 사람이 없어요. 고쳐야 할 것은 그냥 놔두고 칭찬을 해 보세요. 칭찬하면 반드시 기적이 나타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으면 힘이 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굶었던 사람에게 칭찬을 하면 애정을 공급받았기 때문에 힘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가정에서의 칭찬은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칭찬과는 전혀 다릅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칭찬은 상으로 주는 거예요. 상 받을 사람이 칭찬을 받고, 상 받지 못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가정에서의 칭찬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겁니다. 

우리말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했어요. 가정에서 칭찬받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상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가정에서 애정으로 칭찬을 받아야 밖에 나가서도 상으로 칭찬을 받는 겁니다. 사회에서 열등한 사람들을 보면 배우자들이 칭찬에 인색하다는 겁니다. 칭찬은 정신적인 에너지인데 집에서 칭찬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뛰어나게 일할 수가 없는 거예요. 

따라서 합시다. "칭찬은 정신적인 에너지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베풀어주세요.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힘을 얻어서 하루하루 승리할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거 아세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양면성이 있어요.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진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50:50이에요. 칭찬 받을 수 있는 확률이 50이고 칭찬받지 못할 확률이 50이에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보세요. 위대한 신앙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애굽에 내려가서 부인을 팔아먹었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팔았어요. 베드로는 어때요? 예수님의 수제자라 할 만큼 믿음이 좋지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어요. 50:50이란 말입니다. 

문제는 배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겁니다. 내가 상대방의 좋은 점은 안 봐요. 결심하고 비난할 것만 찾아요. 작정하고 칭찬할 것은 보지 않고 살아요. 자기 눈의 안경을 잘못 쓰고 살아요. 그러니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예수를 잘못 믿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좋은 것만 보고 사셔야 합니다. 좋은 것만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살기에도 인생이 짧거든요. 인생은 70이요 강건해도 80인데, 우리에게 단 한번 주어진 기회를 좋은 것만 보고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남도 아닌 가정인데, 가족인데, 자식인데, 부모인데, 배우자인데, 좋은 것 바라보며 칭찬하면서 에너지를 북돋아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가정이나 교회에서 문제가 생겨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어느 한쪽이 지면 모두 패자가 되는 겁니다. 부부 싸움을 하면 아내가 이기고 남편은 지는 경우가 없어요. 부부 싸움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거예요. 이기는 사람도 지는 거예요.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도 나도 승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승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이 행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창조의 원리로 행복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가정은 바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루 종일 생각만 해서 되나요? 물을 떠다가 포트에 넣고 끓여서 드셔야 되는 것처럼 실천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칭찬을 해야 합니다. 비난의 안경을 쓰고 있는 한 성령 충만해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 은혜를 많이 받아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칭찬의 안경으로 바꾸어 쓰고 애정의 표현을 해야 합니다. 가정의 달에 격려와 칭찬으로 심리적 기능, 정신적인 기능을 감당하셔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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