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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의 소중함과 힘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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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소중함과 힘 (시 128:1-6)
   

오늘은 여러분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드리면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각 자가 세 가지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꼭 해보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시면서 현재 나의 삶속에서 버리고 가고 싶은 한 가지를 선택하라며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서 다시 태어나도 이것만은 꼭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을 한 가지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서로 나누어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자가 소망하고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각 자가 질문에 대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세 가지의 질문에는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인 나에게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해 보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는 나의 삶의 열정과 자기실현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인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 삶속에서 절대로 가져가고 싶지 않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지금 나의 삶을 가장 지치게 하고, 삶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개선해 나가야 하고 치유되어야 할 아픔입니다. 

세 번째 질문인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 삶속에서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현재에 나의 삶의 에너지와 기쁨을 공급하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가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말씀드린 세 개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셨습니까? 한 번 나의 삶의 자리를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의 대답이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하며 새롭게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저도 집단 상담 강의를 들으면서 이 세 가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름대로 대답을 찾아봤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태어난다면 버리고 싶은 것과 다시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에 대한 답으로 저의 가정을 말했습니다. 저의 가정 안에는 제가 다시는 짊어지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습니다. 반면에 저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가정을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 감사와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과 관련된 설교를 하면서 저의 가정사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며 말씀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저의 가정사에는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이북 분이시고, 이북에 가정을 이루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남한에 일을 보러 오셨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고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졌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김 씨 성을 가진 어른신과 결혼을 하셨고 삼남매를 두시고는 사별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과 어머니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재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에 삼 형제를 두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는 김 씨 성을 가진 삼남매와 서 씨 성을 가신 삼형제를 합쳐 육남매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왜 우리 형제들이 성이 다른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저희 어머니 세대는 전쟁으로 인해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저희들에게는 그 아픔과 갈등이 커다란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희 육남매는 함께 추모예배를 드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형님들 간의 협의 아래 따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명절에 대전에 내려가면 두 가정을 방문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영문도 모르고 두 가정을 방문하며 '왜 큰 아버지들은 같이 추모예배를 드리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아픈 가정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자랐을 때 아이들과 함께 2박 3일간 지리산을 종주하며 저희 가정사의 아픔을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이 명절에 큰 아버지들이 따로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집사람을 사귀다 프로포즈를 하면서 저희 가정사의 아픔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수용한 후에 결혼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생활하다 보면 기쁨도 있겠지만 아픔과 갈등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저희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상가에 가족들의 이름이 기록될 때 성이 다른 가족들의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것도 가족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한 가족을 이루면서 이런 아픔이 만들어 내는 상처와 아픔은 삶에 있어서 커다란 짐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아마 저희 아이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한다면 가족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큰 아버지들의 성이 다른 이유를 자부에게 설명하는 아픔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사의 아픔은 최소한 3대를 간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아픔, 그리고 그 자녀의 아픔, 그리고 그 손자의 아픔입니다. 최소한 3대입니다. 그것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아픔의 가정사를 잘 정리하고 바르게 세울 때 최소한 3대입니다. 아픔의 가정사를 바르게 세우지 못하고 회복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대를 이어 아픔은 이어집니다. 

아픔의 가정사를 바르게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픈 가정사 안에서 성장하면서 가정에 대한 잘못 사고와 행동의 유전자들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수되어 자녀들도 아픈 가정사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가정사의 아픔을 나름대로 다시 세우며 회복시키기 위해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많이 가졌습니다. 아픔의 상처도 있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다시 한 번 태어난다면 가지고 가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아픈 가정사라고 말할 만큼 힘든 짐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 속에서 만들어진 아픈 가정사이지만 그것은 저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멸시켰던 아픔이었습니다. 그 아픔을 극복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생활은 저에게 힘이었고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시 한 번 태어난다면 현재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는 머뭇거림 없이 지금의 가정이라고 대답합니다. 저의 생각에 저희 아내과 아이들이 동의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의 큰 아이를 낳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 기도를 할 때 저는 가끔 나에게도 이런 가족이 있다라는 생각에 너무 감사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새벽 제단에 앉아 기도를 들릴 때마다 성도 여러분과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나라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한 후에 마지막으로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머니에서부터 아이들까지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 가정을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제가 가정과 관련 된 말씀 가운데 한 폭의 그림처럼 마음에 그리고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그런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만들기를 원합니다. 

제가 성도님들의 가정을 심방하면서 종종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우리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 가 아니라 ‘나도 나중에 우리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 고 말할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 가정에 소홀해 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어느 어른들은 가정을 내팽개치고 교회에만 다닌다고 욕을 합니다. 그것은 믿는 우리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가정을 더 잘 돌보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가장 마지막에 만드신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혼자 있는 것이 보시기 좋지 않아 그의 몸의 일부를 가지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연합해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게 하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축복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초의 축복은 가정을 향한 축복이었고, 가정을 통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천지 창조에 있어서 가정은 모든 창조의 마침표였습니다. 

신약은 예수님을 통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후에 세우신 유일하신 기관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다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을 중심으로 세우신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의미를 성경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교회는 가정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이 혈육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라면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영을 중심으로 한 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형제냐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너희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가족이며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가정을 통해서,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의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들이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은 모두에게 갈등과 상처를 만드는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은 아이들은 갈등을 합니다. 잘못 말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의 대답은 엄마, 아빠 중에 한 사람에게는 아픔이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엄마, 아빠 둘 다 좋아’ 아이들이 생존하기 위한 본능적인 대답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얄궂게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 가운데 누가 더 좋아’ 이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합니다. ‘가정이 더 중요한가. 교회가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가정이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가정이 평안할 때 교회가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역할에 있어서 어느 영역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기관의 소중함이 아니라 역할에 있어서의 소중함입니다. 저는 그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교회 보다는 가정에서의 역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목사가 무슨 말이냐 하실지 모르지만 교회의 역할보다는 가족에서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절대로 교회의 역할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역을 하는 가운데 역할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교회에서의 역할은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목사의 역할을 못하면 다른 목회자가 부임해서 그 역할을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에서 남편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 아들의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장로의 역할, 권사, 안수집사의 역할, 교회 일꾼으로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내가 못하면 다른 사역자들을 통해서 그 역할을 대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역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할을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정에는 치유되기 힘든 깊은 상처가 대를 이어 만들어집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림과 같은 가정의 모습이 나옵니다. 특히 1절에서 진정한 행복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의 행복은 세상의 부와 명예,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시작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원하고 계십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돌아봅시다. 또 한 자녀로서 부모님들을 돌아봅시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소중한 것임을 고백할 수 있는 가정으로 세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을 시편 128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천국의 모형으로 만들어 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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