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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유업을 계승하는 효도 (룻 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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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업을 계승하는 효도 (룻 1:11-19)


중고등학교 다닐 때, 주변의 어른들께 심심찮게 들었던 말씀이 있습니다. “저놈들 커서 우리 나이쯤 되면, 자식 믿고는 못산다”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셨습니다(그땐, 노후대책이라는 말도 없던 때). 돌이켜 보면, 6남매 키우시며 당장 사는 것이 바쁘셨던 우리 부모님께는 한낱 사치스런 걱정이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 부모님들은 이런 말씀하십니다. “재산을 미리 물려주면 안 된다. 죽을 때까지 두 손에 꼭 쥐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대접 받는다” 하십니다. 

자식들은 어떻습니까? 부모님 살아계실 제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정성껏 대접하지 않던 자식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효도한답시고 제사모신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조상제사의 역사적 기원은, 유교의 효 사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조상제사는, 부친의 명을 어기고 兄 ‘조경’을 제거하고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한 중국의 ‘조갑’이라는 사람이,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제도입니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조상제사는 양반들의 전유물 아니었습니까? 조상제사는, 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죽은 자를 향해서 일렬로 뒤통수를 보고 서게 하는 文化입니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성공한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정신 나간 자식이 아니고서야 성공한 부모님께, 예를 갖추지 않을 자식 누가 있겠습니까? 실패한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계십니까? 무능한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계십니까? 아무 희망도 없는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계십니까?

이스라엘의 사사시대, 유다 베들레헴에 ‘나오미’라는 女人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엘리멜렉(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이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도 있었습니다(세 남자를 가진 유복한 여인). 그런 나오미 가정은, 고향 베들레헴에 찾아온 기근을 피해, 異邦人의 땅 ‘모압’으로 移民을 갑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고대근동지방에서 이민을 가거나 살던 주거지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지 이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던 神을 바꾼다는 意味입니다. 

나오미 가정이 모압으로 이민 갔다는 말은, 지금까지 믿던 하나님 神을 버리고, 모압으로 가서 그 땅의 神 ‘그모스’, ‘몰렉’을 섬기며 살겠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 섬기던 사람이, 어떻게 먹을 것을 위해서, 하나님 버리고 神을 바꾸어 살 수 있는가 싶지만, 사사시대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 아닙니까? 山上垂訓 마태복음 6, 33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의식주문제는 덤으로 주신다”고.

우선순위가 바뀐 삶이, 좋을 리가 없지요. 나오미 가정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민초기에, 남편 엘리멜렉이 그만 죽고 맙니다. 모압의 꿈이 일순간에 다 무너져버린 사건입니다. 어떻합니까? 금방 포기 못하잖아요. 사람 심리가. 미련을 못 버립니다. 나오미는, 위기를 극복하려고 두 아들을 모압 女人에게 장가들입니다. Levi-Straus의 말대로, 結婚은 交換價値라고…, 결혼만한 거래도 없잖습니까? 두 아들이 모압 여인들과의 결혼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좋은 代案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 ‘말론’은 ‘룻’이라는 모압 女人을, 둘째 아들 ‘기룐’은 ‘오르바’라는 모압 女人을 각각 아내로 맞게 했습니다. 잘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雪上加霜. 이게 왠 말입니까? 모압 여인들과 결혼한 두 아들마저도 아버지를 따라, 그 땅에서 그만 죽어버리고 맙니다(아들들도, 이미 기가 꺾인 듯).

성경은 그 때의 나오미의 처지를, 두 번씩이나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겨졌다(와티샤에르 רארתו, ‘나오미’가 주어.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그녀와 그녀의 두 아들’을 묶어서 주어로 번역하였는데, 적절치 못합니다). 남편이 죽고, 그녀가 남겨졌다는 표현은, 모압 땅에 이민 온 나오미에게 희망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3절). (2) ‘말론’과 ‘기룐’ 두 아들마저 죽자, 성경은 또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과 남편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았더라 합니다. 進退兩難이라는 말입니다(錦衣還鄕이라는 말은 있어도, 실패하고는 고향에 못 돌아갑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고립된 인생입니다. 

당시, 고대근동지방은 家父長的인 世界입니다. 家父長的인 세계에서, 늙은 女人이 남편 없이, 아들까지도 없이 홀로 남았다는 것은, 살았다고 하나 죽은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졸지에, 아내에서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그 누구도 어머니라고 불러 줄 사람도 없는 무자식 어머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여성의 存在方式 세 가지를 모두 다 잃어버린 대표적인 여인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깁니다. 가부장적인 세계에서 여성은, 3가지 존재방식 중 하나에 의해서 자기 存在方式이 결정됩니다. (1)결혼 전, 아버지에게 속한 存在입니다. (2)결혼하면, 여성은 남편에게 속한 존재입니다. 남편에 의해서 모든 지위, 사람 가치를 얻습니다. (3)남편이 죽고 나면, 여성은 아들에 의해서 자기 존재가 결정됩니다. 

창세기 30장 보십시오. 족장 야곱에게 가장 사랑받던 아내(당시는, 일부다처제) ‘라헬’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남편 야곱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내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야곱이 죽고 나면, 라헬은 未來가 없는 女人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은, 언니 레아를 심하게 질투했습니다. 질투를 넘어서 남편 야곱에게 “내게 아들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 버리겠노라”합니다(창 30, 1). 나 더 이상, 당신만 믿고 못삽니다. 아들이 없어서 불안해서 못 살겠습니다는 항의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당신에게 胎의 열매를 막으신 하나님을 내가 대신할 수 있겠소?”하며 화를 버럭냅니다(창 30, 2). 여인에게 남편과 아들의 존재 유무는, 여인의 존재방식을 결정해 주는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우리나라의 男兒選好思想도 이를 반영해 줍니다. 1994년도 한 통계를 보니, 영남지방의 셋째아이 出生性比가 300대 100이었습니다. 셋째 아이 경우, 남자가 300명인데 여자는 겨우 100명밖에 안되었습니다. 셋째 딸을 많이 없애버렸다는 겁니다. 

모압으로 이민 간 나오미, 이민 간지 불과 10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인으로서의 존재방식을 모두 다 잃어버린 겁니다. 이보다 더 이상 失敗할 수는 없습니다. 며느리들에게 아무런 면목도 없는 시어머니가 되고 만 겁니다. 존재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실패한 媤어머니입니다. 

이런 나오미 인생에, 希望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10년 전에 버리고 떠났던 ‘그 하나님’의 ’파카드’뿐입니다(דקפ 권고하시다, 돌보시다, 보살피시다). 그런데 룻기 1, 6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권고) 그들에게 糧食을 주셨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셨다’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서, 계약관계에 충실하셨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계약관계는, 쌍방관계입니다(A와 B). 만약,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버리면, 그 계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 지난 4월 27일, 북한이 금강산관광특구 내 한국정부(한국관광공사) 소유의 자산을 몰수했습니다. 민간자산 동결조치도 취했습니다. 관리인, 직원들까지 다 추방시켰습니다. 일방적인 계약파기 행위입니다. 북한은, 지금 국제적인 강도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평생 현대건설공사장을 전전하면서 함바집(공사현장식당)사업으로 모은 재산 15억 원을 금강산에 다 투자한, 소규모민간사업자 이창희 씨(59세)가 있는데, 금강산에서 8년간 사업했지만 “모든 게 엉망”이라고 합니다. 지난 3월에는, 부인마저 심장마비로 먼저 보내고 말았습니다. 부인과 함께 금강산 사업하면서, 그 좋다는 금강산 경치 구경, 한 번 시켜주지도 못했다고 합니다(8년 동안, 죽도록 일만 한 거지요).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1년 7개월 동안 중단된 적 있잖습니까? 그 사건으로, 평생 모은 재산 15억 원을 금강산에 놔두고 내려온 이후, 화병으로 고생하던 부인을 잃은 겁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딸도 결국, 돌아왔습니다. 남은 거라곤 14평짜리 좁은 셋집 이사밖에 없답니다. 북한의 일방적인 계약파기처사가, 이런 절망을 안겨다 주고 만 겁니다. 

하나님의 파카드란, 신실치 못한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이 一方的으로 아무 조건 없이 계약관계에 충실하게 행동하시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기 백성은 여전히 不義합니다. 信實치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무조건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그들과 맺은 계약, 언약을 기억하시고, 살려주시기로 마음을 바꾸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파카드’(돌보심)입니다(파카드 하시는 하나님). 

놀라운 것은, 그 하나님의 ‘파카드’를 누구도 듣게 됩니까? 10년 전, 하나님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민 가서, 완전히 실패한 ‘나오미’에게까지도 전해진 겁니다. 나오미가 하나님의 파카드 소식을 듣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逆移民, 슈브 בושׁ). 염치불구하고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 파카드의 복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들입니다. 

已往之事 나오미야, 더 잃어버릴 것도 없지만, 며느리들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며느리들까지 자기처럼, 불행한 여인으로 살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심리적, 사회적으로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 “각자 너희 어머니 집(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로 하여금 각자 새로 결혼하여 얻게 될 남편의 집에서 쉴 곳을 찾게 하시기를 원한다며 축복해주고는, 작별의 입을 맞추고 헤어지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두 며느리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슈브, בושׁ).” 가슴이 무너지는 ‘나오미’가 再次 말합니다. 

너희 알다시피 나는 女人으로서 無能한 존재다. 너희 남편이 될 만한 아들이 없다. 돌아가라. 내가 남편을 가지기에는 너무 늙었다. 설령 오늘 밤에 남편이 생겨 아들들을 낳을 수 있다 하자, 그렇다고 그들이 클 때까지, 너희가 어찌 기다리겠느냐? 아니다, 내 딸들아. 너희 친정, 너희 백성에게로, 너희 神에게로 돌아가라 합니다. 어머니의 간곡한 권면에,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어머니와 이별하고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가 어머니를 떠나 모압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를 못된 며느리로 비난할 수만은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큰 며느리 룻은, 동서와는 다른 人生 길, 다른 神인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자기 결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룻이 말합니다.

“어머니를 떠나서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外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니이다”(룻 1, 16-17). 

나오미는 룻의 굳은 결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자기 고향, 하나님의 파카드가 임한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러나 룻의 입장에서 보면, 女人으로서의 삶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따르는 선택입니다. 그 대신,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을 택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여기를 주목하십시오. 며느리 룻이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해서, 나오미가 얻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子婦 룻이, 자신을 따르겠다고 해서 나오미 입장에서 보면, 객관적으로 얻은 복,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편의 복? 아들의 복? 손자의 복? 이미 물 건너 간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입니까? ‘룻’을 통해서 얻게 된 복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남편의 복, 아들의 복, 손자의 복 같은 것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福입니다. 남편, 아들, 손자의 福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귀향하기로 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자부 ‘룻’ 때문에 나오미에게는 상상치도 못한 일,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일, 놀라운 사건이 성취되는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福이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능성이라는 福은, 하나님의 파카드(돌보심)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의식주를 해결해드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자식과 부모님 모두, 어렵게 사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어머니와 함께, 자기 고향, 자기 나라, 자기 神까지 다 포기하고 어머니 나라, 어머니의 하나님 섬기기 위해 베들레헴에까지 온 룻, 당장 끼니 걱정 할 만큼, 가난에 허덕이지 않습니까? 뭐가 효도입니까? 실패한 어머니에게 혹 하나 덧붙인 格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룻은, 어머니 봉양하기 위해 자존심도 내려놓았습니다. 남의 추수 밭에 들어가 이삭도 주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부모님 못 섬기는 것 아닙니다. 혹 자식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이삭 주우며 살 수밖에 없는 가정 있으십니까? 그런 자식 두신 부모님들, 낙망하지 마십시오. 경제적으로 부모님 마음껏 섬겨드리지 못해서 마음 아파하시는 자녀들 계십니까?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부모님들은, 인간적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자식이지만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다며 더 달라붙던 룻과 같은 자식들의 애끓는 마음, 그 믿음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실패한 부모님, 업신여기시면 안 됩니다. 버리시면 안 됩니다. 실패한 부모님이라도, 룻과 같이 부모님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부모님 떠나지 않겠다는 그 마음, 그 믿음 가지셔야 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룻은, 당장에는 별 볼일 없는 異邦모압 출신 과부, 希望 없는 한 여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먼 역사의 지평에서 보면 ‘룻’은 ‘나오미’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孝婦입니다. 룻은, 완전히 실패한 나오미 가정을, 어떻게 만든 여인입니까? 

나오미의 가정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중심가정으로 일구어낸 孝婦입니다. 하나님 나라 유업의 代를 이은 孝婦입니다. 룻과 같이, 부모님 섬기십시다. 성공한 부모님만 아니라, 실패한 부모님도 믿음으로 잘 섬기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에도 나오미의 가정처럼, 하나님의 파카드(돌보심)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복 된, 하나님 나라 유업을 계승하는 가정 될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귀한 아버지 어머니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공한 부모님 잘 섬기기는 쉽지만, 실패한 부모님 섬기며 따르는 일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룻과 같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온전한 믿음으로, 주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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