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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 논쟁이 주는 교훈 (마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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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논쟁이 주는 교훈 (마 12:1-8) 
 
 
예수님의 등장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집요하게 예수님의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나름대로 찾아낸 예수님의 문제점을 표적으로 하여 여러 차례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기세를 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논쟁을 걸 때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것은 자기들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논쟁으로는 예수님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본문 마 12:14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저들이 드디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이상 논쟁을 통해서는 예수님을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저들이 예수님께 걸어왔던 논쟁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이 논쟁을 어떻게 물리치셨을까요?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 밭 사이를 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문제 삼아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2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십계명에 제 4계명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내용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고, 실천적으로는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포괄적인 규정입니다. 도대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포괄적 규정을 실제적 지침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즉 시행세칙을 만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구전 율법인 소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이 장로들의 전통에서 안식일에 관한 규정은 무려 39가지나 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면 기근 등으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를 제외하고 안식일에 밀 추수를 금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어린 양이 한 입에 넣을 만큼의 이삭을 잘라 취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명백하게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을 공격할 빌미를 찾던 저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이 걸어온 논쟁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셨습니다. 저들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저들로 하여금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문제에 답하셨을까요? 이것은 또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1. 사랑의 눈을 뜨라

예수님께서 첫 번째 논증의 예로 드신 것이 삼상 21:1-6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놉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났습니다. 다윗이 너무 배가 고파서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은 줄 먹거리가 없었습니다. 뜻 밖에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진설되었다 물린 진설병을 가져다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진설병은 이스라엘 12 지파 수대로 성소 안에 있는 떡 상 위에 6개 씩 두 줄로 항상 진설해 두었던 떡을 말합니다. 이것은 누룩 없이 만들었고 매 안식일 아침에 새 것으로 바꾸어 진설했습니다. 그리고 묵은 떡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윗이 성소에 도착한 날에 더운 떡이 진설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곧 이 날이 안식일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다윗과 그 부하들은 안식일에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안식일 규정을 어긴 일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유대인들은 다윗이 위대한 왕이기에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랍비 문학에서도 이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윗이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성전의 진설병을 먹은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안식일에 성전의 진설병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시장하게 되었고, 제사장 아히멜렉이 주어 안식일에 진설병을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도 후대의 유대인들도 다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고 이해하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저들이 다윗의 일을 이해하고 넘어가게 된 것은 바로 사랑의 눈으로 그 일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도 비슷합니다. 안식일이지만 너무 시장해서 부득이 하게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서 먹은 것입니다. 돈을 벌려 한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을 훔치는 재미로 한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경우처럼 사랑의 눈으로 이해하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사랑 없는 싸늘한 눈으로 제자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엄격한 법적 잣대로 문제를 삼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1. 남이 하면 투기이고, 내가 하면 투자이다.
2.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이다.
3. 남의 딸이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이고, 내 딸이 애인이 많으면 인기가 좋아서이다.
4 남의 아들이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실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고, 우리 아이가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워낙 경쟁률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5. 며느리에게는 “시집을 왔으니 이 집 풍속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딸에게는 “시집가더라도 자기 생활을 가져야 한다.” 고 말한다.
6.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일은 줏대 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이 먼 채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문제거리를 찾을 수 있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다 이해가 됩니다. 논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이 멀면 비난의 입이 열리고 비판의 채찍이 가해집니다. 

2. 뜻을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또 다른 논증의 예를 드신 것은 민 12:9-10의 제사장의 직무 규정입니다. 분명히 안식일에 관한 규정에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제사에 관한 많은 직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성전에 진설병을 올린다든지 숫양 둘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일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밀하게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점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을 금하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 위의 상위법으로 안식일 규정을 어길 수 있는 예외법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주신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일부 안식일을 어겨도 되는 예외법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인간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노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루 만이라도 이 무거운 짐을 벗게 하시고 쉼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날 성전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면서 영적인 참 쉼을 얻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성전에서 예배 드리는 일과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참된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그들이 함께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섬기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쉼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안식일의 의미인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밭 사이를 지나게 된 것도 예수님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안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참된 안식을 얻도록 해 주시기 위해 동분서주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참된 안식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도 마치 제사장들이 성전안에서 일하는 것과 같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잊고서 겉으로 드러난 안식일 규정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규정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규정이 담고 있는 의미를 충실하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4월 28일 고양시의원 가 선거구 후보로 나선 김혜연 진보신당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소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내놓을 음식으로 유부초밥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 선거법 유권해석을 내리기를 유부초밥은 안되고 김밥은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유부초밥 준비한 것 위에 김을 말아서 김으로 싼 유부초밥을 제공했답니다. 

사실 김밥이 유부초밥보다 비싼데 비싼 김밥은 되고 유부초밥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거법을 만들면서 한 예로 정식 식사 제공은 돈이 많이 드니까 간단하게 김밥 정도 대접하는 것은 허용하자고 규정해 놓았답니다. 그런데 김밥을 한 예로 들었으나 그보다 싼 유부초밥은 불가하다고 유권해석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법이나 규정의 세부적인 조항을 그대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조항이 담긴 뜻을 생각하여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뜻을 생각지 않고 조항만 지키고자 한다면 결코 그 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더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지키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고도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뜻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며 그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 물으라

예수님께서 이 논쟁을 마무리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시고, 안식일 규정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의 권한도 홀로 가지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기 전에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이 일에 대해 주님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시는 가를 물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주님과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용하신 일을 잘못되었다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묻지 않으면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기독 법무법인 로고스가 설립 10년을 맞았습니다. 양인평 장로 주도로 기독교인 법조인 12명이 중심이 돼서 법 안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겠다는 취지로 2000년 9월 창립되었습니다. 현재는 국내 변호사 73명, 회외 변호사 18명이 근무하는 국내 굴지의 로펌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 로펌은 고객과 단순 거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이고 인격적이며 영혼까지 상담해 줄 수 있는 변호사 인재상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선교목적의 로펌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마다 전직원이 예배를 드리고 수요일에 주변 직장인 예배를 주도하고 목요일에는 홀리클럽 모임을 통해 성시화 운동에도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의뢰인이 찾아오면 먼저 기도하고 상담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다루어야 할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 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의뢰인이 소송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을 힘쓰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판단하는 권한은 주님께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그 일을 위임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최종 권한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하고 주님의 판단을 묻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판단하고 심판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위임 받아 지도자의 위치에서 판단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때도 단지 위임받은 청지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판단을 늘 물어야 합니다. 

본문 바로 앞 부분 11:28-3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이 무거움을 아십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그 짐을 가볍게 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일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짐을 무겁게 하려고 합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도 그 짐을 무겁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가볍게 해 주려고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행여라도 남들에게 짐을 무겁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려면 우선 우리가 사랑의 눈을 떠야 합니다. 사랑의 눈을 떠야 상대방의 무거운 짐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짐을 가볍게 해 줄 방법이 보입니다. 다음으로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법조항이나 규정에 얽매이면 다른 사람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게 됩니다. 그 법 규정에 담긴 뜻을 살피게 되면 짐을 가볍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판단을 주장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판단을 따라 합니다. 그럴 때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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