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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삿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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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삿 11:1-12:7)
  

노년을 가리켜 '인생의 황혼기'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곧 해가 저무는 때'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니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쓸쓸한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황혼이란 매우 아름다운 것이기도 합니다.
대낮의 해는 그저 환하게 밝기만 하지만, 저녁 해의 황금빛은 온 천지를 그야말로 황홀하고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노년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한창 시절에도 이루지 못했던 최고의 보람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평생에 걸쳐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입다라는 사사가 바로 그와 같은 노년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에 있어서 진짜 전성기는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했던 마지막 6년이었습니다.
정말 지는 해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더욱 힘차고 멋있게, 최고로 영광스럽게 그의 생애 말년에 빛을 발했던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특히 우리 경향교회의 연로하신 부모님들께서 과연 자신의 인생 종반부를 어떻게 가장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살 수 있는지를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에 남은 생명을 사용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노년입니다.

11장 1절부터 3절의 말씀에 "1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2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짧은 세 절에 기록된 내용이지만 이것이 입다의 인생 대부분을 요약한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대로 그의 인생은 출발부터 시작하여 거의 끝에 가까이 가기까지는 그저 사회의 밑바닥만 도는 삶이었습니다.
우선 그의 출생이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즉 옛날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그처럼 서러움을 당했던 서자 출신이었는데, 입다는 자기 아버지 "길르앗"의 "아내의 아들들" 즉 본처가 낳은 적자들로부터 아예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너 같은 녀석에게 우리 집 가문과 유산을 물려 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그 형제를 피하여" 즉 가족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고 그 대신에 "잡류가 그에게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즉 동네 건달들을 몰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입다의 인생 대부분을 채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입다에게 그 인생 말년에 와서 전혀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어지는 4절부터 8절에 기록하기를 "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8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침공해 오자 제일 다급하게 된 사람들이 바로 "길르앗" 거민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르앗은 이스라엘 땅에서 지리적으로 암몬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무슨 대처 방안을 마련해 보려고 했지만 문제는 길르앗 족속 중에 군사적 리더가 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옛날 소위 '문인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평소에는 군인을 '군바리'라고 경멸만 하다가 국란이 일어나게 될 때야 아쉬워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된 그들은 결국 입다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잡류들의 우두머리라고 경멸했었겠지만, 일단 군대의 "장관" 즉 사령관이 필요하게 되자 길르앗에서 입다에게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다급해지니까 별 수 없이 자기를 찾아와서 머리를 숙이는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입다는 일부러 '빼는 소리'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너희들이 옛날에 내가 기생의 아들이라고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내게 도와 달라고 하느냐?"라고 큰소리 한 번 쳤던 것이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속으로는 아니꼬웠을지 모르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그네들인지라 안면 체면 다 몰수하고 손발이 닳도록 입다에게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이 암몬의 침략을 좀 막아 주시기만 한다면 당신을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우두머리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통사정했던 것이었습니다.

9절 이하 11절까지에 보면, 입다는 그 약속을 재삼재사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증인 선서까지 시킨 후에 일단 '국방장관'으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11장 후반부에 나오지만 결국 그 전쟁에서 이기고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12장 7절에 보면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몇 살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사사 입다는 자신의 인생이 거의 다 끝나가던 마지막 시점에 와서 오히려 최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일평생을 사회 제일 밑바닥에서 빈둥거리고 살던 사람이 말년에 와서 별안간에 자기 생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최고의 명예와 지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입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기회'를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칠 수 있는 사명의 기회를 주셨을 때 입다는 바로 그것을 놓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확실히 붙잡음으로써, 하마터면 평생을 부랑자로 끝냈을 뻔 했던 인생에 그처럼 마지막 황혼의 영광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경향의 연로하신 어른들께서는 여러분의 청년 시대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무슨 유행가의 가사처럼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가는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혹시 그런 인생뿐이었다고 후회되는 분은 없으십니까?
  
아직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께도 아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거룩한 일에, 주의 몸 되신 교회를 위한 사명에 쓰일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장년 남녀전도회에 속하신 어른들께서는 이 경향교회에서 여전히 기도의 선봉이 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여러분의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어찌하든지 예수 잘 믿는 신자가 되라고, 유언을 대신하여 당부하고 가르칠 수 있는 실로 고귀한 사명이 있습니다.
경향의 최고 선배로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정성껏 섬기는 자세에 대하여 젊은 세대들 앞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 역시 오직 여러분의 세대만이 하실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사명인 것입니다.
  
입다가 그의 마지막 6년만 가지고도 충분했다면, 요즘처럼 환갑을 지나도 정정하게 오래 사시는 시대에서야 정말 넉넉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직 노인 세대에만 주신 고유한 사명에 자신의 남은 생애를 온통 다 헌신하심으로써 진정 그 노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시는 경향의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 선조의 영적 유산'을 지키고 후손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 참 멋있는 노년입니다.

11장 12절과 13절에 "12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13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장관, 즉 최고 사령관의 권위를 가지고 암몬 왕을 상대하게 된 입다는 일단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찾기 위하여 외교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사자(使者)"를 암몬 왕에게 보내어서 "얌전히 있는 우리나라를 도대체 왜 쳐들어 왔소?"하고 물어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암몬 왕은 회답하기를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이르는 우리 땅을 빼앗았는데 이제 그것을 돌려받아야겠다. 그 땅만 조용히 돌려주면 나도 공연히 칼 빼고 덤비지는 않겠다."라고 대답해 왔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 광야행군을 통과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입성할 때에 지금 여기서 암몬 왕이 언급하고 있는 '길르앗 남부 지방'을 실제로 점령하기는 했었습니다.

암몬 왕은 그 몇 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제야 문제로 삼으면서 시비를 걸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암몬 왕의 영토 반환 요구에 대하여 입다가 응답한 내용이 바로 1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답은 물론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할 당시 그 땅의 주인은 암몬 족속이 아니었고 아모리 족속 시혼 왕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21절과 22절에서 입다가 "21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 22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즉 '이 땅은 너희 암몬 족속이 원래부터 거주하던 땅이 아니었고 그 당시 아모리 족속이 살던 땅을 우리가 점령한 것인데 왜 지금 와서 너희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 아모리 사람도 암몬 족속에게서 그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모압 족속에게서 빼앗아 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모압 족속이 따지고 들면 또 말이라도 좀 될지 모르지만, 그 옆에 있던 암몬 족속이 자기네 지경 부근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 억지 주장을 편다는 것은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유는,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니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23절과 24절에서 "2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24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고 입다가 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 암몬 족속들도 만일 너희들의 신이 무슨 능력을 발휘해서 어떤 새 땅을 정복하게 하면 그 신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그 땅을 지키지 않겠느냐?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인데 어떻게 너희들에게 내 준다는 말이냐?'라는 뜻이었습니다. 

셋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한 지가 이미 삼백 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26절에서 "26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 지 삼백 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라고 기록된 입다의 말입니다.
즉 '이미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을 살아 왔고 우리에게 자자손손 물려 준 땅인데 그 동안은 아무 소리 없다가 이제 와서야 이런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 말이냐 되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동네 잡류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던 사람치고는 정말 청산유수 같은 언변이요 당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자각이 충만한 대답이었습니다.
외교적으로 따질 때에도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정복할 때의 주인은 암몬 족속이 아니었지만, 영적으로 판단할 때는 더욱이 양보하거나 빼앗길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고 우리 조상들이 지금까지 잘 지키고 전수해 준 땅을 우리 시대에 와서, 더욱이 내가 국방장관이 된 이 시점에 와서 저 이방 족속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것이 입다의 확고부동한 자세였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27절 이하 33절에 보면, 바로 그런 확신과 결단 때문에 결국 입다는 암몬과 한바탕 전투를 치르기까지 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땅을 끝내 지켜내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릴레이 경주를 할 때에 자기 순서에서 바통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처럼 창피한 일은 없습니다.
앞 주자가 건네 준 것을 잘 받아서 꼭 쥐고 달리다가 다음 주자의 손바닥에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것 - 우리 신앙의 유산 역시 바로 그런 '바통 전달'이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신앙 선조들을 통하여 지금까지 전해 주신 소중한 영적 기업들을 절대로 자기 시대에 빼앗기거나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기업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내 후손들이 바로 그 축복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도록, 그래서 그 기업을 더 크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노년의 시기에 꼭 완수해야 할 '영적 바통 터치'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를 끝까지 생애 전부의 것으로 섬기고 더 성장시켜서 여러분의 후손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 이것은 정말 귀중한 기업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 시작된 '별들의 학교와 고려신학교와 경향선교회 후원 사업'을 다음 세대에 남겨 주는 것 - 정말 백만 불의 재산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의 선배들을 통하여 전수해 주신 이 깨끗한 개혁주의 신앙과 이 민족의 선조들을 통하여 이어받게 해 주신 이 뜨거운 순교자적 생활 - 이 '보배와 같은 유산'을 여러분이 떨어뜨리지 않고 경향의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잘 달리는'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우리 앞 세대의 조상들에게까지 소중히 간직되어 왔고 정확하게 지켜져 왔던 이 참된 신앙생활의 바통을 자신의 평생토록 꼭 쥐고 달린 후에 자손에게 정확히 전달해 줌으로써 실로 멋진 '인생의 완주'를 해내고야 마는 경향의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맺은 서원'을 다 갚는 완전한 인생 결산이 실로 영광스러운 노년입니다. 

본문 29절부터 31절에 "29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암몬과의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입다는 전투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그것은 승전하게 해 주시면 자기가 귀환할 때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 즉 자기 가족이나 자기 집안 식솔 중에서 제일 먼저 나와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이 말은 입다가 산 사람을 죽여서 인신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전체를 완전히 태워서 바치는 제물인데, 바로 그런 의미의 비유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즉 여기서 입다가 서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생을 하나님께 번제로 완전히 바치는 것' 다시 말해서 '일생동안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는 일'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서원을 하고 또 승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자기를 제일 먼저 맞으러 나온 사람이 하필이면 자기의 딸, 그것도 무남독녀인 외딸이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34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 역시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만, 입다의 심정은 자기 말 그대로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외동딸을 시집도 못 보낸 채 하나님께 바쳐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7절에서 그 딸이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여자가 결혼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그 당시 사회에서 큰 불행으로 간주되었었습니다.
39절에서도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죽다'라는 단어는 없고 그냥 "딸이 (평생) 남자를 알지 못했다"라고만 되어 있으므로 그녀가 결코 '인신제물'이 된 것은 아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여튼 그것은 아버지로서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는 자기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결코 변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35절 하반절에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39절 중간에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라고 기록된 대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서원을 이행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자기의 육신적 생활에 있어서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최고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입다는 여호와께서 그를 위하여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 주신 것처럼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을 똑같이 신실하게 이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멀리 이사 갈 때 이웃에게 빚을 남겨 둘 수 없습니다.
돈 떼어먹고 도망치는 인물로 낙인찍힐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람이 세상 떠날 때까지 빚을 못 갚아 자식들에게 부채를 남겨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못난 부모기로서니 빚을 유산 대신에 자식에게 남겨두고 인생을 마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에 빚을 남기지 않는 것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꼭 바쳤어야 할 시간, 힘, 물질 등을 끝내 부채로 남겨 놓은 채 인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의 인생 장부에 하나님 앞에서 못해서 부끄러운 것, 안 해서 죄송한 것, 이런 것들만 빨간 숫자로 남겨 놓고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생 말년에 와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은 정말 '추한 노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년은 '주님 만날 준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세상의 얽매이는 것'들로부터 여유를 보이고 '저 진동치 아니할 하늘나라의 장막'에 입성할 채비를 갖추면서 사는 어른들의 모습은 청년들이 그야말로 절로 절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존경스럽고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달란트 계산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홀가분하게 주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노년 - 바로 이처럼 영광스러운 '인생 결산'을 잘 정리하는 경향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어 있으며 혹 할 수 있다 해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들뿐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히려 더욱 존경을 받으면서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중직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산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몇 푼의 재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해서는 '신앙의 유산'을 그야말로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전해 주는 '축복의 아비' '열국의 어미'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신용등급'을 잘 유지하는 것은 죽고 나면 사실상 아무 쓸모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서원을 잘 결산하고 주님을 맞이하게 되면 그 상급은 천당에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만큼 노인들이 중히 여김을 받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곳은 결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에서 '연로자 우대'하는 것이나 가정에서 자녀로부터 '효도'를 받는 것조차 교회에서 '백발의 면류관'을 쓰고 '센 머리 앞에 일어서는' 존경을 받는 것에는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향의 모든 부모님들께서 바로 이처럼 이 경향교회를 인생의 마지막 '현주소'로 삼고서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사명'에 요긴하게 쓰임을 받고 '신앙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전해 주며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을 완수함으로써, 실로 아름다운 노년을 끝까지 영광스럽고 복되게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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