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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수의 힘 4 : 1000대 1 (삿 15: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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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힘 4 : 1000대 1 (삿 15:14-20) 
 
 
❚아쉬운 사사, 아쉬운 성도

구약성경의 일곱 번째 책인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사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 땅을 분배하면서 사사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사사시대에는 아직 이스라엘에 왕이 없고 대신 ‘사사’(士師)라 부르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사사는 본디 백성들 간의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관 노릇을 한 사람들입니다만 유사 시 적이 쳐들어오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백성들을 이끌고 적을 쳐부순 군사지도자 역할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사기에는 모두 열두 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옷니엘, 에훗, 삼갈, 유일한 여자 사사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이 그들입니다. 그러면 이 열두 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사는 누구일까요? 물론 여자 사사인 드보라도 유명하고 기드온의 삼백 용사로 잘 알려진 기드온도 유명하지만 아무래도 맨 마지막 사사인 삼손이 가장 유명한 것 같습니다. “삼손과 데릴라”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삼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지요. 정말 힘이 센 장사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이 세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방 회사가 샘소나이트(Samsonite)겠습니까? 샘소나이트 가방은 1910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창립자인 제시 슈웨이더(Jesse Shwayder)가 성경을 읽다가 삼손(영어로 샘슨=Samson)처럼 힘이 세고 튼튼한 가방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샘소나이트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그 정도로 삼손은 유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힘센 장사 삼손은 ‘사사’라고 부르기 아쉬운 사람입니다. 평생 방탕하게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정신 차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 삼손처럼 아쉬운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끔 성도들 중에 평생을 그야말로 세상에서 헤매며 자기 뜻대로 온갖 재미 다 보고 살다가 거의 숨 거둘 즈음에 이르러서야 정신 차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봅니다. 질문 하나 하지요. 이런 분들도 구원 받을까요? 물론입니다. 

아무리 늦게 믿어도, 심지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예수 믿어도 구원 받습니다. 천국에 갑니다. 하지만 참 아쉬운 마음 감출 수 없습니다. “이 분이 좀 더 일찍 예수 믿었더라면, 좀 더 일찍 주님께로 돌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삼손이 바로 이런 ‘아쉬운 사사’입니다. 삼손은 그 센 힘 가지고 평생 딴 짓 하다가 죽기 직전 하나님 위해 반짝 힘 한 번 쓴 그런 사람입니다. 그 힘 가지고, 그 능력 가지고 좀 더 일찍 하나님 위해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 사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아쉬운 성도 되지 않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아주 늦게 예수 믿어도 구원 받고, 숨지기 직전에 믿어도 천국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삼손처럼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만 반짝 예수 믿고 천국 가면 주님 앞에서 얼마나 송구스럽겠습니까? 천국 들어가서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나는 겨우 턱걸이로 천국 들어왔는데 너무 늦게 믿어서 상급이 없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훨씬 일찍 예수 믿고 평생 충성하며 살다 천국 와서 큰 상급 받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내가 왜 좀 더 일찍 예수 믿지 못했을까?” 얼마나 후회되겠습니까?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주님 위해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예수 믿어 교회에 나와 계시니 참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가능한 한 좀 더 일찍 믿고, 좀 더 일찍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힘 있을 때 주님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여러분 되셔야 합니다. 눈이 조금이라도 밝을 때 성경 열심히 보고, 두 발에 힘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교회 가고,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주님 위해 봉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내 남편, 부모, 형제와 자녀, 주변 사람들 기왕 전도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예수 믿게 해서 그들도 아쉬운 구원 받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전도는 절대 뒤로 미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실패한 나실인

무엇보다 삼손이 아쉬운 것은 그가 실패한 ‘나실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실인(Nazirite)이란 “서원을 통해 하나님께 성별(聖別)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삼손의 부모가 삼손을 잉태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이 아이는 나실인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나실인에 대한 규정은 민수기 6:1~21에 나오는데 세 가지입니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말라, 즉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 심지어 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라도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종합해보면 나실인은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과 더러운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엄격한 규정이지요. 하지만 나실인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철저하게 구분되어야 하며 세상적인 것, 더러운 것과 단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쾌락과 즐거움도 다 포기하고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한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 귀중하게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쉬운 길이 아니지만 자기를 구별해서 깨끗하게 지키고 하나님이 언제든지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나실인처럼 깨끗하고 거룩하고 구분된 삶을 살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실인은 삼손, 사무엘, 세례 요한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두 종류의 나실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무엘로 대표되는 성공한 나실인이요, 또 하나는 삼손으로 대표되는 실패한 나실인입니다. 아니, 실패라기보다 앞서 말한 대로 ‘아쉬운 나실인, 겸연쩍은 나실인’이라고나 할까요? 성공한 나실인인 사무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 한나에 의해 하나님께 바쳐지기로 서원된 나실인입니다. 이 서원을 따라 사무엘은 젖 뗀 후에 바로 실로에 있는 제사장 엘리에게 보내져 평생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나실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제사장 엘리를 도우며 심부름을 하고 성전 문 여닫는 일을 합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교회 관리집사 노릇을 한 것인데 이렇게 사소한 일부터 충성으로 감당하니 나중에는 하나님이 위대한 선지자로 크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맡은 일에 귀천이 어디 있고 덜 중요한 일,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맡기신 일이라면 아무리 작아보여도, 천해보여도 충성으로 감당하면 하나님이 장차 크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무엘은 평생 한 번도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만 섬긴 성공한 나실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어땠습니까? 같은 나실인이지만 삼손의 삶은 참 파란만장합니다. 그는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이지만 끊임없이 세상 만족과 쾌락을 좇아 삽니다. 예쁜 블레셋 여자에게 빠져서 헤매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방황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블레셋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쉬운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 받고 구분되었다 할지라도 이렇게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고 세상 즐거움이나 쾌락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실 수 없게 됩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라도 가시떨기, 즉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택함 받은 후에도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나실인이 누구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특별히 택함 받은 목회자나 주의 종들만 나실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4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은 받은 우리 모든 성도는 반드시 거룩한 나실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실인도 두 가지 종류인데 어떤 나실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삼손같은 아쉬운 나실인이 아니라 사무엘 같이 평생 딴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만 위해 산 나실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택하사 일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사는 나실인 되게 하옵소서, 평생을 순결하게 정결하게 살며 하나님만 따르게 하옵소서.” 아무쪼록 우리 교회 성도 모두가 나실인 다운 삶을 한평생 살아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기 바랍니다.

❚나귀 턱뼈로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소라라는 시골 마을에서 자란 삼손은 딤나라는 큰 도시에 가서 예쁜 블레셋 여인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촌사람이 서울 가면 지나가는 여자들마다 왜 그렇게 다 예쁜지 놀란다는데 삼손도 시골 깡촌에서 자라면서 주변에서 늘 보던 이스라엘 여자들은 다 투박하고 들에서 일하느라 얼굴도 검게 그을어 모든 여자가 다 저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딤나 시에 가보니 예쁘고 늘씬한 여자가 왜 그리도 많은지요. 

그 중에서도 제일 예쁜 한 여인을 보고 삼손은 한 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결혼식 잔치 때 삼손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가 큰 문제가 일어나고 맙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 게 뭐냐?” 하는 문제였는데 아무도 못 푼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가 될 블레셋 여인은 삼손에게 떼를 써서 이 문제의 답을 알아낸 후 사람들에게 그 답을 가르쳐주고 맙니다. 

이 때문에 너무 화가 난 삼손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장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딸을 블레셋 사람에게 줘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삼손은 기다렸다는 듯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복수를 합니다. 여우 300마리를 붙들어 꼬리를 서로 붙들어 매고 횃불을 그 두 꼬리 사이에 매달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으로 몰아 곡식단과 곡식과 감람원을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이에 당황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장인과 딸을 불살라 죽이고 삼손은 복수심에 불타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후 에담 산지 바위틈에 숨습니다.

에담 산지 바위틈에 숨은 삼손을 잡기 위해 블레셋 군대가 1000명이나 산지로 올라오자 거기 살던 유다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하고 깜짝 놀랍니다. 삼손만 잡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자 유다 사람들은 3천 명이나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을 만나 그를 추궁합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자기들이 안 죽으려고 동족인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삼손은 동족들에게조차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족의 배신으로 밧줄에 꽁꽁 묶여 블레셋 군대에 끌려가던 삼손에게 바로 그 순간 여호와의 영이, 즉 성령의 강력한 감동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를 결박했던 단단한 밧줄이 끊어지고 삼손은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나귀의 턱뼈를 집어 들어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 죽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삼손은 괴력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세도 그깟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의 군대를 쳐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삼손의 힘이 아니라 그에게 임하신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나귀 턱뼈처럼 보잘것없는 것으로도 천 명을 쳐 죽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쓰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성령의 감동을 주십니다. 그러면 나귀 턱뼈 같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니, 나 자신이 나귀 턱뼈 같은, 마른 뼈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도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비록 부족하고 약해 보여도, 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까 싶어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귀 턱뼈 같고 마른 뼈 같은 내 인생이, 말라붙은 잡초 같은 내 인생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절대 자신을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크게 쓰임 받느냐, 아니면 아쉽고 겸연쩍은 인생으로 끝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엔학고레

이제 본문 18절부터 보십시오. 나귀 턱뼈로 천 명을 때려죽인 삼손이 얼마나 목이 말랐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도하면 십 분 기도한 것 같은데 몇 시간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이 마치 술 취한 것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령에 취한 삼손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목마른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적을 때려죽이다가 보니 어느새 천 명을 다 죽였어요.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목마른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목이 너무 마른 삼손이 하나님께 물을 달라고 부르짖자 하나님은 ‘레히’라는 곳의 움푹 파인 곳을 터지게 해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삼손이 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고 힘을 얻었기 때문에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라고 붙이게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말라 죽게 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해서 샘물을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이 샘물을 마시고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을 얻고 새 힘을 얻게 되는데 고린도전서 10:4에서 사도 바울은 이 생명수가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친히 요한복음 7:37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왜 지치고 힘들 때가 없겠습니까? 삼손처럼 강한 사람도 지치고 목마른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지칠 때가 있고 목마를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심지어 삼손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도 지치거나 힘들 때가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엔학고레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낙심하고 좌절할 때마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는 삼손처럼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고 부르짖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는 순간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엔학고레의 샘물을 터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소생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지치고 기진맥진 해 지실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엔학고레의 은혜를 팡팡 터지게 하셔서 반드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이사야서 40장 28~31절을 찾아 읽읍시다.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이 지금 지치고 탈진해 계신다고요? 왜 이런 고난과 아픔이 내게 닥쳐왔는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요? 하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30절에 나온 것처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지치면 말입니다. 삼손도 지치면 쓰러집니다. 하물며 나는 어떻겠습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31절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낙심하고 좌절할 때 우리의 엔학고레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엉뚱한 데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엔학고레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데만 있는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새 힘을 주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과 같은 능력이 바로 엔학고레 되신 하나님께만 있는 줄 믿으시고 오직 그 분만 앙망하며 부르짖어 나 하나가 천 명의 원수도 쳐부수고 어떤 어려운 환경도 고난도 넉넉히 이겨내는 하나님의 능력자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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