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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예수님께로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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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예수님께로 (막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어느 교회학교 선생님이 유치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그날 공과 공부 제목이 ‘하늘나라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만일 집을 팔아서 몽땅 교회에 헌금을 한다면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아뇨!” 다시 선생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매일 교회 청소를 하고, 유리창을 닦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겠죠?” 이번에도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아뇨!”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죠?” 그러자 다섯 살 먹은 사내아이가 일어나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죽어야 돼요.” 

또 다른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매 맞고 강도당해 죽어가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워낙 실감나게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감동을 받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에 길에서 이렇게 피 흘리며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한 여자 아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토해요” 이러한 이야기만 들어도 참으로 엉뚱하기도 하고 앙증맞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눈으로 본 듯이 선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고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제지하며 꾸짖는 제자들을 오히려 책망하시고, 아이들을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기회로 삼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에 대해 교훈해 주셨습니다. 즉 주님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요, 죄인인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며,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믿고 따르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교훈은 오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신앙생활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교훈들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자녀를 예수님께 일찍 인도할수록 좋습니다. 

13절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라고 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큰 위인이나 훌륭한 선생에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서 축복받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풍습은 자기 자녀들이 그 사람들과 같이 위대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풍습대로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와 만져 주심, 즉 안수해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 어린아이들이 매우 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주님이  두 손으로 안을 수 있을 만한 유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도 함께 주님을 믿고 영생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유아 때부터 어린아이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성 교육은 5세 이전에 이미 완료된다고 합니다. 또 인간의 두뇌 발달은 25세까지 이루어지지만, 사실 생후 20개월이면 두뇌 발달이 거의 이루어지고, 그 이후의 발달은 아주 미미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의 나이 4세 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중생의 체험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유아기 때는 모든 것을 배우고 모방하는 본능이 가장 강할 때입니다. 소년기만 되어도 제 고집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성도들은 때를 놓치지 말고,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인식하고 믿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경의 위인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대다수가 갓난아기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를 통해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음을 알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디모데가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자녀들로 가장 부드러운 심성을 지닌 유아기를 헛되이 보내게 만들지 마시고, 안고 또 손잡고 그리스도 예수를 경배하는 자리로 데리고 나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세속적인 권위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13절 하반부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제자들이 나서서 꾸짖는 장면입니다. 또 14절 상반부는 주님께서 그와 같은 제자들의 행동을 분하게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볼 때 주님이 분을 내시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는 일에 크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금한 제자들의 행동의 이면에서, 세속적인 권위 의식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아이들을 주님께 직접 데리고 가자, 주님의 핵심 측근이요, 장차 왕위에 오르실 주님의 신하인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 그것을 금했고, 주님은 그러한 세속적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뜻과는 상반되게 행동하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고 분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은 일찍이 막 9:35절에서 어린아이를 데려다 세우시며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가르치신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금방 그 교훈을 잊어버리고 세속적인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권위주의에 물든 제자들이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닮으며 이웃에게 덕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주님을 자유롭게 섬기는 것을 훼방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본주의적인 권위와 규례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신앙 연륜이 더할수록, 사랑과 덕과 겸손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권위주의에 물들면 자기와 이웃들의 신앙을 망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용납이라는 말씀과,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언제였는지 아십니까? 주님의 심령은 그때 자신이 얼마 후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대속해야 한다는 사명에 사로잡혀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온 때는, 예수님의 마음에 온통 십자가 고난과 대속에 대한 부담감이 가득 차 있던 민감한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 때에 우리라면 과연 어린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당장 자신의 문제가 코앞에 닥쳐왔는데, 어린아이나 축복하고 있을 때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어린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용납하시고 또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관용과 그 여유로운 마음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자신에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그 마음의 여유를 잃고, 관용과 사랑을 상실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만사 다 귀찮다는 듯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냉랭한 행동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합당치 않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을지라도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다른 사람의 문제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여유로운 자세가 곧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세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손으로 해결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4.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의 것입니다. 

15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평생 가슴속에 새겨 두어야 할 명언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미숙하고 유치한 신앙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에 보면 어린아이를 매우 어리석은 존재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주님의 교훈은 모순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어린아이들만이 지닌 공통된 선한 특성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무엇이며, 어린아이들은 어떤 선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첫째, 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잘 배우려고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님들은 어린아이가 끝없이 질문하는 것을 귀찮아 한 적이 있을 줄 압니다. 어린이 눈에는 모든 것이 배울 것들이요 관심거리입니다. 배우기를 사모합니다. 이와 같은 어린아이의 특성을 지닌 신앙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지닌 신앙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 배우려는 마음, 진리에 대한 일관된 구도심을 지닌 심령이 어린아이 같은 신앙입니다. 

그 다음 어린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하자는 대로 합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들을 어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합니까? 하자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무엇을 시키면 곧잘 순종합니다. 그런데 소년만 되면 제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린아이들은 선한 의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라고 물어보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래요.”라고 대답합니다. “강도가 될래요.” “도둑이 될래요.”라고 대답하는 어린아이들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어린아이들처럼 항상 선한 의지와 선한 양심을 지닌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신앙 양심이 더러워지고 변질된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모방을 잘합니다. 유대인 격언에는 “아버지가 집에서 한 말을 어린이가 밖에서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모방의 귀재들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고, 세상 사람을 닮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진정한 성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들의 공통된 선한 특성은, 그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내 부모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어린아이들은 없습니다. 또 어린아이들은 무슨 일만 생겨도 가장 먼저 부모를 찾고 의지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말씀을 절대 진리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주님만을 절대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을 절대 진리로 의뢰하는 신앙인이 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상대적 신뢰자로 보고, 다른 것들을 의뢰하는 자들은 ‘우상 숭배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좋은 특성들을 자신의 신앙에 접목시키도록 힘써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자녀들의 영혼과 신앙 교육에 부단한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어린이 제자 훈련을 강조한 김대진 님의 논설입니다. <청량음료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나는 콜라를 유독 좋아한다. 몸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진열대에 늘어서 있는 그 많은 음료수 가운데에서 콜라를 집어 드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이것이 광고의 힘이다. 

“모두 다 알고 있고, 모두 다 마시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광고를 합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모 콜라 회사의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 콜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기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영리한 생각이다. 미래의 고객인 어린이들에 대한 광고 전략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탕물 하나 파는 데에도 어린이를 향한 전략이 필요한 시대이다. 내가 만약 사단이라고 한다면, 콜라 회사와 동일한 전략을 주저 없이 사용할 것이다. 

어릴 적 한 영혼의 마음 상태를 사단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는 한 인간의 미래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 그가 속한 사회, 그가 속한 나라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천국 백성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어린 영혼의 마음에 사단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은 마르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그 캔버스에 한 번 그려지면, 덧바르지 않는 한 고쳐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두려운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한 인생, 한 가정, 한 사회를 세우고, 그가 속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천국 백성의 존귀한 삶을 위하여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어린이들의 마음에 복음을 그려 넣는 것이다. 복음을 품은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능력이 있었는지는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증거하고 있다. 8세에 왕위에 등극한 요시야의 종교개혁,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적국의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세상을 구한 꿈쟁이 요셉,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순종한 어린 사무엘 등등. 그러나 많은 경우 ‘애들은 가라’식의 대접은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쉽게 발견될 수 있는 모습이다.> 

과거 펩시콜라의 매출은 코카콜라에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펩시콜라 회사에서 오래 전부터 계획적으로 철저히 어린아이들에게 맞추어서 광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펩시콜라에 익숙한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 젊은이가 되어 펩시를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통계에 아이들이 어느 위치에 잇는가를 철저히 깨닫게 해주는 도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왜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까? 어렸을 때 신앙생활이 평생을 가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에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을 만나고, 어렸을 때 기도하고, 어렸을 때 신앙의 꿈을 가지면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니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은 우리 힘으로 살수 없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우리 어린아이들이 도박이나 알코올의 유혹을 한 번만 받아도 일생이 끝나고 맙니다. 그 유혹을 이기려면 힘이 있는 예수님을 만나고, 능력 있는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 많으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면 모든 범죄 유혹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유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도 많고, 질병도 많고, 고난도 많고, 사고도 많고, 또 위험하고 억울한 일도 많습니다. 인간을 파괴하는 이 모든 어두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안에 안기우고 기도하면, 우리 일생은 다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고,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예수님의 품안에 안겨서 자라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소중한 자녀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도록 그 길을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콜리지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콜리지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가 어린아이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때 방문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심을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어린아이들이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 나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어요.” 여기서 콜리지는 그 사람의 말을 중단시켰습니다. “우리 꽃을 좀 보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콜리지는 방문객을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정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방문객은 그의 정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니! 왜 여기는 잡초들밖에 없지요?” “여기도 예전엔 꽃들로 가득했었지요. 그러나 금년에는 손질을 안 하고 일부러 내버려 뒀다오. 자기들이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정원이 어떤 꼴이 되는지 한번 보려고 했던 거요. 그랬더니 이 꼴이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잡초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꼭 주님께 인도하여, 말씀과 은혜의 화원에서 아름답고 곱게 자라나, 일생동안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며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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