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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의 기를 살려주시오! (골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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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기를 살려주시오! (골 3:21)


시작하는 말 
  
어느새 벌써 5월입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유난히 날씨도 나쁘고 봄 기분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지난주 목요일에는 천안함 46용사들의 장례행렬을 바라보며 가슴 아팠습니다. 활짝 핀 봄 꽃들마저 슬픈 기색이었습니다. 오열하는 아이들과 부모님, 아내와 친구들을 그냥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가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교’자로 시작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고합니다. 하나는 교통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문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가정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역시 교육문제일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최근에는‘교육이민’이라는 말이 나오고‘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옛말에도‘농사 중 으뜸이 자식 농사’라 했으니 제일 어렵고 힘든 농사인 동시에 제일 보람되고 중요한 일이라는 말일 것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자식 농사를 잘 지으셨습니까?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골로새서의 말씀과 모세의 출생과 얽혀져 있는  그의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골로새서 3:18-4:1의 말씀은 소위 그리스도인의 가정률이라고 불리우는 말씀인데,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세 관계 구조, 즉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그리고 노예와 상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는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그리고 주인이 노예에 대해서 가부장적이며 일방적이었으나, 말씀이 가르치는 가정률은 상호적이며 쌍방적인 권면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안에서의 가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는 여러분들의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어린이 주일에 여러분의 가정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하늘의 기쁨과 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몸  말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한 말처럼 세상에 어느 부모인들 자기 자식이 예쁘게 보이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탈무드에서는 부모의 이 눈-자식이 예쁘게 보이는-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했습니다. 내 자식이라도 예쁘게 보여야 키울 것 아닙니까? 사랑스러워야 희생하며 키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사탄이 부모의 마음의 눈에서 이 시력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자식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부모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을 흔들어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고슴도치보다 못한 부모들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운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의 출생과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들 모세를 사랑하고 키우는 부모를 염두에 두고 설교하겠다고 했는데 성경에 보면 그 어머니가 보기에‘아기 모세는 준수했다’(출 2:2)고 합니다. 부모의 눈에 자기자식 준수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예쁘고 귀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도 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잘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머니 요게벳의 눈에 비친 모세의 아름다움은 평범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23절에 보면‘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할 정도로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어떤 아름다움이었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 말의 참된 의미를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 찾아봅니다.‘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 집사가 대제사장 앞에서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말씀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의 영감이 충만한 가운데서 모세의 아름다움을 부모가 보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는 어떤 아이입니까? 어떤 뜻이 있는 말씀입니까? 

아이의 얼굴도 얼굴이려니와 이 말씀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아이요, 이 아이를 통하여 나타내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기에 아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비전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시편에서“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녀는 나의 기업이 아니요,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보고‘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자의 것이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을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물적 모성애로만 내 아이를 보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모의 시각이 고슴도치에 머물러서야 되겠습니까? 고슴도치보다는 나은 수준의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으로 모세를 낳았고 믿음의 눈으로 자기 아이를 봅니다(히 11:23).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기업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시각으로 내 자녀를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들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들로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다 자녀를 잘 키우기를 원합니다. 지혜롭고 훌륭하게 키우기를 바라고 또 기대합니다. 그러나 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때론 부모의 이런 지나친 기대가 자녀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되고 저들을 낙심케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낙심케 않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요? 다시 모세의 가정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보면, 아이를 더 숨길 수 없게 된 모세 어머니는 아이를 위하여 갈상자를 만들고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담아 강물 위에 띄웁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성도여러분! 여기에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류 구원의 한 사건을 신비롭게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위하여 구원선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첫 번째가 노아의 방주요, 두 번째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만든 갈대상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둘을 똑같이‘테바’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방주에서 안전하게 인류의 중시조가 될 노아의 가족이 보호받듯이 모세는 갈대상자 속에서 보호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죄악과 유혹, 방탕의 물결이 노아때의 홍수의 물결보다, 나일강의 넘실대는 강물보다 더욱 창일하여 우리 자녀들을 삼키려 합니다. 이 아이들을 살려내어야 합니다. 건져내어 구원해야 합니다. 
    
방주와 갈대상자는 바로 오늘의 하나님의 교회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이 신령한 의미가 담긴 교회로 부지런히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약하게 보이는 갈상자가 모세의 구원과 저의 인생이 아름답게 인도 받는 출발점이었습니다.‘이집트 왕자’라는 만화영화에 보면 갈상자에 담긴 모세가 나일강을 내려갈 때 악어 떼에게 보호받고 거센 물결을 타넘으며 어부의 그물질을 피해 내려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굽의 공주에게 다다르게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호하시며 그렇게 인도하시고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자녀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담장이 없는 아이들은 불안합니다. 성경적으로나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자녀는 부모도 몰라봅니다. 하나님을 버린 자녀, 부모도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 자녀는 가정도 우습게 여깁니다. 모세 어머니 요게벳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모세를 갈상자에 담아 하나님의 품에, 그의 인도에 맡깁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책임져 주십니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부모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에게 축복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를 가로막자 예수님이 크게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하시고,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도 예수님에게로 데려와야 합니다. 안아주시고 저희 머리에 안수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학원에 보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으로 그 어린 것들을,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그 무엇도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화내시고, 분히 여기십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예수님이 화내시는 가정입니까? 축복하시는 가정입니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14)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그의 말씀으로 키워지고 사랑으로 성숙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생각과 꿈과 기대를 자녀에게 주입시키고 강요합니다. 부모의 이런 강요는 대개 두 가지의 경우로 나타납니다.‘내가 했으니 너도 해라!’의 경우와‘내가 못했으니 네가 해라’의 경우입니다. 둘다 자녀들에게는 스트레스입니다. 둘 다 자녀를 낙심케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격노케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듣습니다.‘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표준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어버이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격분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꺽지 않아야 합니다’하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자녀를 노엽게도, 낙심케도 않으며 저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로 키울 수 있을까요?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들 이삭이 칼을 잡고 자기를 죽이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몸을 맡기고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을“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늘 아버지에게 순종하니, 아들 이삭이 아비 아브라함에게도 순종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녀의 가슴에 하나님의 꿈을 심어 주면 그 자녀는 부모를 순종하며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왕이면 자녀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꿈을 심어줍시다. 웅장한 비전을 심어줍시다. 거룩한 소망과 기대를 자녀들에게 걸어봅시다. 자식이 한평생 살면서 안일과 영화를 누리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모세의 어머니는 이를 뛰어 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동족과 함께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쫓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인들 왜 이런 인간적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궁중 유모로서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이렇게 가르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모세야! 이 어민 못나서 너에게 이렇게 젖을 먹이면서도 내 자식으로 키우지 못하는구나. 부디 너 만이라도 애굽 궁중에서 잘 자라 출세하여 성공하려므나. 이렇게 찾아온 좋은 기회를, 아니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꽉 잡으려므나”고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세상 어머니들과 다른점 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의 꿈을 잊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심어주고 또 심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이 가르침은 모세에게서 히브리서 11:25절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됩니다.“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날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이는 상주시는 이를 바라봄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슨 꿈을 자녀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까? 누구를 바라보는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모세와 같은 인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요게벳과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먼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는 말 
  
이 시간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기업으로 내 자녀를 보는 어머니의 눈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도한 세상의 죄악된 물결을 헤치며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참된 신앙교육을 시키는 어머니의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을 주의 전으로 인도하고 주님의 품에 맡기는 신앙의 부모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자녀들에게 잠시 죄악의 날을 누리는 세상의 달콤한 꿈보다 나라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쫓는 아름다운 꿈을 심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자녀이기에 앞서 민족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기업된 자녀들입니다. 어린 우리들의 자녀를 이렇게 키우면 뿌려진 믿음의 씨앗이 언젠가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헛되지 않습니다. 
  
연어, 은어 등의 물고기는 희귀성이 있는 물고기입니다. 섬진강이나 남대천 등에서 알을 부화시켜 치어로 키우다 방류하면, 이 물고기들이 크면서 바다로 나가 자라게 됩니다. 다 자란 연어는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알래스카 바다까지도 갑니다. 그리고 다 자라서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자기의 모천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강력한 회귀성의 본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이 신앙의 회귀성입니다. 어릴 적의 신앙교육은 저들의 평생을 신앙의 삶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혹 세상이라는 바다에 살면서 잠시 신앙을 잊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위대한 모세의 인생에는 위대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양육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로 키우면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녀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영원히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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