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실패한 교육, 성공한 교육 (삼상 2:12-21)

  • 잡초 잡초
  • 290
  • 0

첨부 1


실패한 교육, 성공한 교육 (삼상 2:12-21)


오늘5월2일 어린이주일입니다. 이 어린이주일에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은혜가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켄터키주에서 한 육군 대령과 함께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꽤 먼길을 가다보니까 무료하여 대령이 품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서 링컨에게 권합니다. “한모금 나눠 마십시다.” 

링컨은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고맙지만 저는 아직 위스키를 입에 대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먹지 못합니다.” 그랬더니 대령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 한참가다가 심심하니까 품에서 담배를 꺼내 시가를 하나 권하면서 “담배 하나 나눠 핍시다. 지루할 땐 담배가 최곱니다” 그랬더니 링컨은 또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담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령이 참 재미가 없었습니다. 어찌 이런사람하고 여행을 하게 됐나 재미도 없고 딱딱하네 하면서 돌아 앉습니다. 

링컨이 이야기합니다 “대령님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제가 9살 때 제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서 오늘 내일을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하루는 저를 침상 곁으로 부르셔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에비야 에비란 말은 에이브라함 링컨의 애칭입니다. 에비야 네가 나하고 약속을 해 줄 수 있겠니? 이 엄마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거야 그러나 네가 일평생 동안 위스키와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나하고 약속해 줄 수 있겠니?” 라고 물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엄마와의 약속을 한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링컨은 말합니다. 
“대령님 제가 대령님의 기분을 맞춰드리려면 어머니와의 약속을 깨뜨려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대령이 안색이 변하며 정색을 하면서 “아닙니다. 절대 그러지 마십시오. 어머니와의 약속은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평생토록 지키십시오. 하면서 에이브라함 링컨을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에이브라함 링컨은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와의 소중한 약속을 가슴에 새기고 일생동안 실천했던 것입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연기했던 작가가 그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만한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딱 2가지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가난입니다. 둘째는 신앙의 어머니입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든것은 가난과 신앙의 어머니입니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링컨이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빌리헌던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런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어려서 글을 잘 모를 때부터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네.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통나무집에서 어머니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소리가 내 귀에 울리고 있지. 오늘 내게 속한 모든 것은 천사같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어린이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 어린이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어린이는 가정의 미래입니다. 교회의 내일입니다. 그리고 민족의 기둥입니다. 누구보다도 어린이를 잘 가르치고 양육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가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그 가정에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그 교회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세군창설자 윌리암부스대장의 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어린이를 하나님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첫걸음이다. 선교사로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린이 하나를 하나님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해갈 때 우리는 세계를 구원하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사탄보다 한 걸음 앞서서 내 자녀를 양육해야 된다.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은 그 마음속에 사탄이 더러운 낙인을 찍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을 감동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학교를 뒤돌아보건데 교회학교 교육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모두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교육을 교회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매년마다 그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우리모두의 고민인 것입니다. 교회교육의 후퇴는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회학교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 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교사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교사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교사들의 노고를 인정해 줘야합니다. 왜? 우리들이 아이를 교사들에게 맡겨서 기르기 때문입니다. 교회학교가 잘 될 때 그교회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학교를 너무나 소홀히 여기지 않았나 어른들의 중요한 일에 비해서 아이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았나 하는 회의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진정한 자녀 양육이 이루어지려면 가정교육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은 지나친 과잉보호 때문에 자녀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또 어찌보면 그 아이들을 입시를 위한 훈련생 정도로 여기는것 때문에 아이들의 인격적 교육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박사학위를 5개나 가진 유능한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주 똑똑하고 공부도 잘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술먹고 횡단보도 건너가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빨간불인데 건너가다 그랬다고 합니다. 도덕교육이 안돼있고 인격교육이 안돼있습니다. 박사학위는 받았지만 기본교육은 지킬 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교육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교육도 아이들을 인격자로 키우기보다는 건전한 사회인으로 양육하기 보다는 입시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는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어느 학교가 유명하다고 그러면 명문대학에 몇 명이 들어갔느냐 그걸로 그 학교를 평가하다가 보니까 우린 학교교육도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교육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신앙의 교육을 시키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서양 속담에 그런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빌어먹게 하려면 재산을 많이 남겨줘라 그러나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신앙과 신념을 넣어주라. 자식들을 빌어먹게 만들려면 재산을 많이 남겨주고 자식들을 진정 위대한 인물들로 만들려면 하나님 믿는 신앙을 넣어주고 확고한 신념을 넣어주라. 

우리는 성경에 2가정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하나는 엘리제사장의 가정이고 하나는 엘가나와 한나의 가정입니다. 이 두가정이 똑같이 비교되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은 가정교육에 실패했고 한 가정은 성공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의 가정은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는 본인이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요즘말로하면 목회자 가정의 자녀인데 교회 권사님이나 장로님 중직자 가정의 자녀인데 이 자녀가 하나님을 바로알지 못했다는 것이 비극의 출발입니다. 

12절을 읽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그들은 행실이 나쁜것만 아니라 여호와를 알지 못했더라. 하나님을 배우는 기회에 그들을 종종 참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가는대로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타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영어,수학을 잘 알아도 하나님을 모른다면 이게 가장 큰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엘리의 제사장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역시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고 소나 양을 잡아오면 그것을 잘 씻어내고 깨끗하게 닦아서 삶아서 그래서 그것의 기름을 하나님앞에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성전에 봉사하는 분들이 나눠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하나님앞에 번제로 드리기도 전에 이 홈니와 비느하스의 사환들이 와서 갈고리를 가지고 좋은 고기를 다 뺏어 갔습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앞에 예배드리고난 후에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뭐라 말씀하십니까. 17절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예배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소홀히 했습니다. 왜 그들이 예배를 소홀히 여겼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읽지 않았지만 2장 30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멸시하리라.말씀하십니다. 엘리제사장스스로가 예배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녀들도 예배를 소중히 여기지않고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존중히 여기지 않는 결과로 귀추되었고 그들은 하나님께 경멸을 받게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 그 자식들이 잘못할 때 엘리 제사장이 데려다 타일렀습니다. 적어도. 너희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막의 봉사하는 여인들과 너희들이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데 이것이 옳지않다 타일렀지만 그 자식들은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자식들이 듣지않음은 하나님이 그 자식들을 죽이기로 작정함이었다라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엘리는 그 자식들을 깊이 훈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몇 번 타이르다가 말안들으니까 그냥 방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29절을 보면 아주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29절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오늘 엘리를 향해 이 가문을 향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 예물과 재물을 짖밟느냐 또 너희 아들들을 나보더 더 중히여겨 그랬습니다. 엘리는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습니다. 여러분에게 자녀가 혹시 우상이 되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마음이 상할까봐 싫어할까봐 교회에 나가란 이야기는 하지도 않습니다. 애가 기분좋으면 꺼냈다가 기분나쁘면 내비두고 이야기 안합니다. 오히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히여겼다. 이것이 엘리의 잘못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그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문제있는 자녀는 없다. 오직 그 뒤에 문제있는 부모가 있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부모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거룩한 가정에 정말 못된 자녀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주 불경건한 그런 가정에 정말 경건한 자녀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고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의 자녀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나가와서 기도를 하는데 한나를 보고 네가 술을 먹고 왜 술주정을 하느냐고 그 여인의 영적 모습을 분별하지 못할정도로 엘리는 우둔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고 예배와 하나님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란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겨야지 하나님의 복을 받을수가 있단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신중하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인생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우리를 스올에 내리기도 하시고 천국에 올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흥하게도 하시고 쇠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가 2장 10절을 보니까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게 가장 큰 비극입니다. 엘리 제사장들은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사무엘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무엘이 소개되는 2장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사무엘은 한나가 기도로 낳은 아들입니다. 자녀가 없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서원했습니다. 내게 자녀를 주시면 하나님앞에 자녀를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서 성장을 합니다. 사무엘은 어렸을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제사장들이 입는 세마포 겉옷 조끼를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여호와 앞에서. 코람데오라는 말이 뭡니까.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앞에서 경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섬겼다. 섬기다는 말은 service 예배를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앞에 정결함으로 예배드렸던 그런 소년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21절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성장해갔습니다. 점점 그는 훌륭한 인물이 되어가는데 2장 26절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그는 점점 자라며 하나님앞에 사람들앞에 사랑과 은혜를 입는 그런 인물이 되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과는 전혀다른 그는 성실하고 경건한 소년으로 성장해서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기름부어 세우고 다윗왕을 기름부어 세우는 영적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한 소년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이고 한 소년은 제사장 가문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는 성공햇고 한 아이는 실패했습니다. 홈니와 비느하스는 나중에 전쟁터에 나갔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이런 비극을 우리가 어떻게 예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성공한 자녀로 양육할 수 있을까요. 우린 성경에서 몇가지 지침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들을 축복해야 됩니다. 자녀들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그 열두 아들을 다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축복했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야곱은 자기의 열두아들과 손자들을 놓고 다 축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축복하는 부모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닌데. 아니 걱정없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아니면 잠자는 아이의 손을 붙들고 또 그들을 축복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은 너무나 중요한 겁니다. 

마가복음 10장 16절에 보니까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은 자기 주위에 달려오는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을 일일이 축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하는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아주 실감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지역에 왔을 때 정탐을 하고 왔을 때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꾼들이 매우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땅에 들어가니까 우리들은 살수도 없고 이길수도 없고 우린 이제 끝장난 인생이라고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이럴바에는 여기에서 죽는게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행하리라.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말이 이렇게 무서운겁니다. 축복하는 말을 한다면 축복은 그 자녀에게 그대로 이루어질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사람의 기도하는 사람의 말은 더욱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무서운 이야기 하나있습니다. 예수님을 심판했던 빌라도가 사실 꿈자리가 사나워서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의 위협에 어쩔수 없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일과 무관하다고 손을 씻으면서 나는 여기에 죄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걱정하지 마소서. 그 모든 죄를 우리에게 돌리소서. 돌리소서. 그랬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소서. 

그게 진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지 얼마안되서 주후70년 로마의 디도장군이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성을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져서 유랑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말은 함부로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축복할 때 그대로 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훌륭하게 될거야,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너는 잘 될거야 왜? 내가 기도하고 있으니까 여러분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말씀만큼 위대한 교육의 도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말씀을 가르치고 토라라그래서 그들에게 암송하게 했습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보니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교육이 말씀을 암송하는 겁니다. 그게 교육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세계 노벨수상자의 삼분의 일 이상이 유대인입니다. 삼백명이라면 백명은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들이 어렸을때부터 하나님말씀을 암송한 것이 얼마나 좋은 교육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주보광고에 창세기하고 마가복음 공부해가지고 성경퀴즈대회하자고 광고합니다. 아이들이 성경을 읽게 만들었어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세요 중고등부아이들하고 우리 성경읽고 같이 퀴즈내자. 한문제씩 서로 내주자. 성경을 가르쳐야합니다.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링컨의 어머니 멘스는 아들이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전 링컨을 붙들고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매일 성경을 읽어라. 인생의 위기가 닥칠때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네 인생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아라. 네 인생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아라.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링컨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는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읽는 일 이제 부모들도 자녀들도 같이 시작을 해야합니다.

세 번째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려면 칭찬을 해야합니다. 칭찬을 많이 해 주십시오. 꾸지람속에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웁니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랍니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관용속에 자란 아이는 참을성있는 사람이 됩니다. 격려받으며 자란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랍니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아이는 감사할 줄 압니다. 우리 아이들을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칭찬만큼 위대한 교육의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많이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기를 주의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자식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 여러분 자녀의 장래와 미래는 여러분이 얼마나 무릎을 꿇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와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길러낸데는 그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사무엘같은 위대한 선지자를 키우는데는 한나와같은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거스틴같은 위대한 성자의 배후에는 모니카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이방종교 마니교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 때 어머니는 눈물로 그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다시 기독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배후에는 그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부모의 기도가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하는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를 때 많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눈물흘리며 그 뒤를 따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여인들을 보시며 뭐라말씀하십니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라. 왜냐면 장차 예루살렘에 임할 엄청난 심판을 예고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한순간에 허물어질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해본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눈물뿌려 기도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잘 못이 내 죄인양 내가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기도할 수 있다면 그 자녀의 미래는 밝을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돈 많이 버는 부모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기도하는 부모가 훨씬 훌륭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부모의 무릎이 아이의 장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더더욱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가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여러분 소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격려해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성인이 되었다면 성인이 된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 5월달에 우리 자녀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그들을 위해 격려하고 축복하면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