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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사랑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고전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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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고전 13:4-7)


모든 생명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입니다.  모든 생명이 끝없이 힘을 얻는 곳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사랑 받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인생의 주성분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생명의 주제입니다.  사랑이 없는 감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재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집안은 미래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5월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여러분과 가정에 철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기와 분쟁과 질투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 씻어나가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옆에 있는 분하고 손을 꼭 잡고 인사하십시다.  "사랑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인사하십시오.  "저도 사랑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어린이 주일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또 집안에는 우리 자녀들이 있습니다.  저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기를 정말 간절히 축복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생에 사랑을 뺀다고 하면 무엇이 남을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복된 계절에 우리가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와 같이 이처럼 사랑한 계절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미움과 모든 질투와 모든 낭패와 모든 시기를 다 버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철철 넘치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정복되는 겁니다.  이 시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생포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생기입니다.  사랑이 들어가면 생기가 일어납니다.  사랑은 산소입니다.  산소만 호흡하면 다 살아납니다.  사랑은 접촉입니다.  사랑으로 정복하지 못할 것은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슨 힘, 무슨 힘 해도 사랑의 힘이 제일 강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삶의 영원한 힘입니다.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은 생기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그렇게 얼굴이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사랑을 받으니까 확 달라집니다.  인정을 받고 나니까 확 달라집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여러분 속에 생기가 나오고 생명력이 나오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생명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집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언제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병이 듭니다.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였다고 할지라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고 산다면 그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간혹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통제 불능의 아이들이 나옵니다.  울고 떼쓰고 폭력적이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저렇게 막무가내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 실제의 케이스로 등장하는데 언제나 보면 별로 어렵지 않게 아이들이 확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 통제불능 문제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 아빠로부터 자기 받고 싶은 만큼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서 엄마 아빠에게 있는 사랑의 진심을 아이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이 그것을 찾아내고 엄마 아빠에게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들을 몇 가지 가르쳐 줍니다.  그 방법대로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놀아주고 게임을 하고 말하는 것을 바꾸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이가 달라집니다.  모든 삶이 180도 달라집니다.

아이들 중에 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쵸코 우유만 고집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네 살쯤 되어 보였는데 쵸코 우유 외에는 아무 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아이가 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는 벌써 게임 중독에 걸려서 하루 종일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와 같은 중독증세를 보이는 심각한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함께 놀아주고 말과 말투를 바꾸고 사랑을 표현해 주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이가 확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은 비단 어린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알콜 중독으로 35년 동안을 아내와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술만 취하면 폭력적이 되기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거의 따돌림을 당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부가 함께 가정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남편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 엄마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힘들어했던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와 자녀들이 처음으로 자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열리게 되고 서로 울면서 끌어안습니다.  그 한 번의 끌어안음으로 35년 동안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다 풀리고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런 식으로 서로 끌어안게 되면 머지않아 저 가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콜중독 남편의 문제도 결국은 사랑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삐뚤어졌습니다.  그 삐뚤어진 성격 때문에 아내와 자식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술로 풀려고 하다가 알콜중독이 되었습니다.  술만 취하면 폭력적이 되는 바람에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점점 더 따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돌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외로우니까 술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이 35년 동안이나 악순환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 사랑입니다.  남편과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그 남편과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지는 마음 때문에 흘린 눈물로부터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아내를 끌어 안아주는 일로부터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사랑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사랑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면 사람은 절대로 사람답게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가 다 사랑에 서툴다는 것입니다.  보통 서툰 것이 아니라 치명적으로 서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사람들은 대개가 자신이 사랑에 관하여 치명적으로 서툴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배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에 대하여 치명적으로 무지합니다.  행복하려면 사랑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랑을 연습해야만 합니다.  사랑을 배워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훈련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으로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그것이 무려 15가지나 됩니다.  사랑은 쉬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그 15가지를 살펴보면 하나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정말 도통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 길에서 행복하려면 사랑을 배워야만 합니다.  사랑을 배우려면 오늘 본문 말씀에 도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15가지에 도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전하는 순간 여러분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가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부부관계가 그리고 자녀와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해 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하여 배우려고 생각과 자세를 바꾸는 순간부터 행복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15가지 중에는 서로 중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그만큼 어렵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사랑은 참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람들이 사회적인 능력과 경제적인 능력을 갖게 되면서부터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적인 능력과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 때에는 왠만한 일을 당하여도 참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살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가 힘들었어도 쉽게 이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이혼한 여자가 살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에는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왠만하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다른 살 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산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참고 살다보니까 좋은 날이 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고 참는 것이다.  얼마나 참아야 하나?  오래 참아야 한다.  참는 것을 넘어서 견뎌야 한다.  언제 참아야 하나?  어떤 것을 참아야 하나?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참아야 할 때 참지 못함으로써 잃어버리는 사랑과 행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오늘 말씀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예의'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자녀들을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개념 중에 하나가 바로 '예의'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이 '예의'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예의가 허례(虛禮)로 바뀌기 쉽다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적으로 변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점점 민주적이 되어가면서 권위주의와 허례는 그 자리를 점점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함께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뜻밖에 그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사람들은 허례를 버리다가 예의까지 함께 버렸습니다.  권위주의를 버리려고 하다가 권위까지 함께 내다 버렸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 교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목사만 주의 종이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너무 지나친 권위의식을 가지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쩌면 목사인 제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여러분은 좋아합니다.

어제 어느 집사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의 이야기인즉, 우리 교회는 목사님하고 교인들과의 관계가 형님처럼, 옆집 아저씨처럼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어디에 가도 목사님과 교인들과의 이런 관계를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사실 여러분들과의 관계에서 권위적인 의식을 가지고 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자기 권위에 사로잡혀서 허세를 부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저는 교인과 목사와의 관계가 가족과 같은 편안한 관계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의 이야기가 목사님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만 교인들이 목사님에 대해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허례를 버리다가 목회자에 대한 예의까지 함께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하는 말인데도, 그것이 자기를 위하여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삐뚤어져서 말을 안 듣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옳은 말과 바른 말을 하는 부모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바로 예의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서도 예의를 갖추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을 자식에게 대하여 무례합니다.  함부로 말합니다.  예의 없이 말하고 행동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고 싶으시면 그냥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노크를 하시고 우리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하여도 함부로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가 아무리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의 인격을 건들거나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서 욕을 하거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참으로 너무 폭력적입니다.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닙니다.  언어적인 폭력도 폭력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물리적인 폭력 못지 않게 언어적인 폭력도 살인적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결코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시고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끝없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미국 위싱톤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홀로 유학을 갔는데 염세주의에 빠져서 히피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는 장군 출신이시고 전역하신 후에도 대학 총장과 기업의 대표를 역임한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 오실 때에도 아들은 히피의 모습을 한 채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차를 몰고 나가 아버지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아버지는 자식을 꾸짖지 않으시고 꼭 이 말만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크게 될 놈이다."  결국 그 아들은 그 아버지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기대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남편과 아내를 남의 남편과 아내와 비교를 합니다.  자녀를 남의 자녀와 비교를 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 고래를 조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칭찬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 중에 있습니다.  사랑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모두가 자식을 위하여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것이 다 자식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솔직히 제게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랑에 욕심이 들어가게 되면 변질됩니다.  그러면 비교하게 됩니다.  절망하게 됩니다.  그것을 상대방에 표현하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신뢰해 주고 그리고 기대해 주는 것입니다.

남미에 가면 하루에 한번씩 그냥 혹독한 비바람이 휘몰아칩니다.  그리고 그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작열하는 태양이 쏟아집니다.  그러면 비는 왔지만 곧 태양이 쏟아지고 비가 갑자기 짧은 시간에 많이 오기 때문에 다 흘러 내려가 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식물들이 고통을 당하고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시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한 종류의 꽃만은 대단히 싱싱하게 그 삭막한 벌판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이 희귀한 꽃이 싱싱한 이유는 꽃 위에 잎으로 물받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꽃 스스로가 물받이를 만들어서 바람이 휘몰아칠 때에는 막 부서지고 넘어지고 어쩔 수 없지만 그 사이에도 실패하고 찢어지고 넘어지면서도 빨리빨리 복원을 해 가지고 딱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풀들은 비바람에 다 쓰러지고 넘어졌는데 이 꽃만은 빨리 물받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물받이에 물이 고입니다.  구부러져 있거나 넘어져 있거나 자세가 꼬여 있거나 하면 얼른 바른 자세를 만들어져 가지고 스스로를 세웁니다.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자신이 받은 그 물을 가지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싱싱하게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희귀한 꽃의 생명력이 바로 우리 교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마구 얻어맞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 없이 얻어맞고 정신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곤고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비바람이 휘몰아칠 때에도 믿음의 물받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사랑의 물받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구부러져 있거나 자세가 꼬여 있다면 얼른 바른 자세를 만들어서 은혜의 물받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삶에 철철 넘쳐흐르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인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생명의 소중함을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증명해 보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세상 속에 증거해 보이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을 힘차게 도전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힘입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시위하십시오.

모든 인간은 사랑을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사랑을 찾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어두운 영혼에 사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가정에 사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일터에 사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은 모든 생명을 일으키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삶의 자리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모든 삶의 분노로부터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면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속에 있는 심리적인 장애에 대해서 안타까워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정신적 장애에 대해서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분노라고 하는 심리적 장애 속에서 해방되는 기적에 대한 눈을 뜬다면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 앞에 잘 나오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나는 분을 낸다.  그런고로 존재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리를 지르면서 분을 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노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분노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분을 자꾸 내는 사람은 한없이 무기력해집니다.

우리의 인생은 행동에 대한 보상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서 보상이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분노의 행동에서 얻어지는 보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탄이 주는 분노는 사람을 해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노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 안에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모든 분노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 분노로 정지된 삶에 하나님의 성령의 활력을 집어넣으십시오.  분노 때문에 가로막힌 행복들.  그것 때문에 얼마나 손해가 많습니까?  모든 분노로부터 자유 하십시오.  분을 내면 인격이 파괴됩니다.  분을 내면 사업도 파괴됩니다.  가정도 파괴됩니다.

내 방안에 공기가 오염되고 더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창문을 열고 통풍을 시키면 됩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들어가셔서 같이 교제하실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통풍을 시키십시오.  그래서 모든 오염된 분노로부터 자유 함을 얻으십시오.

예배는 종교의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변화를 위한 것입니다.  바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운동도 아니고 사상운동도 아닙니다.  바른 믿음의 운동은 변화의 운동입니다.  믿음이란 변화의 운동입니다.  그런고로 깊은 믿음이 있다고 하는 말은 깊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큰 믿음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더 큰 변화의 능력을 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자기 내면으로부터 거룩한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분노와 쓴뿌리를 몰아내고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보다 위대한 발견은 없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시위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시위할 기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시위하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보다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정복되지 못한 일도 없습니다.  세상은 강퍅하지만, 세상은 각박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시간마다 즐겁습니다.  때마다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웅변의 힘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식의 힘보다도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돈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극심한 불공평 가운데서도 평안을 유지하는 마음의 법을 알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시니 모든 부질없는 분노로부터, 모든 불평으로부터 자유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관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면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품은 관대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적인 특징은 시간을 따라 미래에 어떤 목표를 향하여 어딘가를 향하여 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를 향해, 아직 이 땅에 나타나지 않은 그 어떤 것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취하여 증거하고 보여주고 찾아내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찾아 나가십시오.  더 높은 세계를 향하여, 더 큰길을 향하여, 더 아름다운 일을 만들기 위하여 나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를 하여도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에 관하여 치명적으로 무지합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가 사랑에 대하여 치명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사랑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에 욕심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공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일에 자신을 투자하십시오.  우리 모두 사랑을 위하여 노력하십시다.  그리하여 사랑을 쟁취하십시다.  남편을 사랑할 줄 아는 아내,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남편이 되십시다.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부모,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자식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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