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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화목한 가정의 복 (잠 1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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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의 복 (잠 15:16-17)


오늘은 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이며 또한 가정의 달의 첫 주일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가장 연세 높으신 어른들로부터 갓 태어난 아기들까지 모두가 주 안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정이 어떻게 하면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는가에 관해 아주 귀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16절에서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합니다. 좋은 가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재산의 유무 또는 다소에 달린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재산이 적은 집이 반드시 좋은 집이며 부잣집은 꼭 번뇌하는 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재산이 없어서 번뇌가 많고 그 때문에 식구들 간에 다툼도 많아서 행복하지 못한 집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산이 많기에 번뇌가 없고 그래서 다툼도 없으므로 행복한 가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거꾸로 가진 게 없으니 아예 싸울 일도 없고 그래서 차라리 행복한 가정도 있을 수 있으며, 가진 게 많아서 식구들 간에 싸움도 많고 그래서 불행한 집안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재산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번뇌가 없고 다툼이 없는 집이 행복한 집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7절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한 가정은 무엇을 먹으며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식구들이 서로 간에 어떤 관계 속에서 사느냐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무조건 채소를 먹으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쇠고기를 먹으면 서로 미워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채소를 먹으면서도, 아니 채소만 먹다 보니 다들 짜증이 나서 싸움질도 자주 하는 집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늘 고기를 맘껏 먹다보니 불만이 없고 마음들이 느긋해져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채소만 먹다 보니 힘들이 없어서 싸우고 싶어도 못 싸울지도 모릅니다. 또 고기를 많이 먹으니 힘들이 넘쳐서 툭하면 싸움을 즐기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식구들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데 그런 가정이 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위에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늘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가르치고, 그 믿음에 기초해서 서로 사랑하기를 훈련시키는 일의 중요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잠22:6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오늘을 위해서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이야기 한 가지를 이제 하려고 합니다. 좋은 믿음 안에서 온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작년 여름 두어 달의 안식기간을 미국에서 보내고 있을 때 뉴져지에서 만난 새문안교회 출신의 한 장로님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 장로님이 늘 우리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우리 예배를 즐기시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알게 되실 테지만 너그러이 양해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 장로님이 섬기시는 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와 제직수련회를 하러 갔는데 초면이었지만 새문안교회 담임목사가 왔다고 얼마나 반가워하시며 지극정성으로 영접과 안내를 맡아주셨는지 모릅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여러 차례 만나서 뉴욕과 뉴저지의 최고급 식당에 데리고 다니며 식사대접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난 어느 날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매일 사모님하고 통화를 하실 때마다 저하고 만난 이야기를 하시면 사모님이 약 올라 죽겠다고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님은 멀리 큰 딸네 집에 가 계셔서 같이 나오지 못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사모님이 신장이 안 좋으셔서 오래 투석을 해오셨는데 신장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드리고 싶었지만 조직적합성검사(Tissue matching test) 결과 맞지가 않아서 하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두 딸에게 엄마를 위해 신장 하나 떼어 드리라고 말을 하실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 자식들이라 해도 혼인해서 남편들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아무리 엄마에게 드리는 것이라 해도 수술로 말미암아 당신의 딸들이 당할 그 고통과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후유증을 생각하면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족 아닌 타인의 신장을 이식 받을 수 있는 것이 최선인데 조직적합성검사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고 사모님의 상태는 더 기다릴 수 없이 악화되니 장로님은 속만 태우며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딸이 면역적합성검사(Tissue matching test와 같은 말)를 한 결과 둘 다 잘 맞는다고 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엄마에게 이식을 해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자기가 하겠다며 언니는 동생에게, 동생은 언니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딸들은 혼인을 했지만 엄마를 위해 이식수술을 할 생각으로 모두 임신도 미루고 있었습니다. 

눈물겹게 애처로운 생각이 드신 장로님은 사위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시기를 “장기를 남에게 떼어 주는 일이 결코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위험부담이 있고 그 부담을 일생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도록 아내들을 잘 설득해서 하지 못하게 하라.” 하셨답니다. 그랬더니 큰 사위가 말하기를 “아버지, 우리가 이거 지금 농담으로 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 넷이 모여 오랫동안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의논한 것입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큰 사위는 미국사람입니다. 장로님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셔서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작은 딸이 하기로 합의를 했답니다. 작은 딸네가 그래도 남편이 미국사람인 언니보다는 부부가 다 한국사람인 자기네가 해야 모두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담이 덜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에 끝까지 양보를 안 한 것 같습니다. 일단 결정이 나자 수술을 위한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술을 하기 전날 갑자기 언니부부가 와서 수술예약을 취소하고 엄마를 퇴원시켰답니다. 언니가 아무리 생각해도 큰딸인 자기가 하는 게 도리이지 어떻게 동생이 하게 내버려두겠느냐며 생각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로 동생이 수술하게 놔두면 자기는 일생 죄책감을 갖고 살지도 모른다면서 동생을 설득했답니다. 그리고 언니가 동생을 설득하기 위해 내세운 결정적인 명분이 혈액형이었답니다. 동생은 혈액형이 O형이었고 언니와 어머니는 무슨 형이라는지 제가 지금 기억을 못하지만 같은 혈액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딸이 다 어머니에게 신장을 드릴 수는 있었답니다. 그러나 언니 얘기가 자기가 수술했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O형인 동생은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생이 수술했다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언니인 자기가 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였답니다. 

그러니 만일 일이 잘못되어도 동생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기가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동생의 이해를 얻어내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와 장로님이 그러면 새로 또 수술을 위한 절차와 준비를 다 밟아야 할 텐데 수술이 많이 지연되지 않겠느냐고 염려하자 큰 딸네가 말하기를 그 분야 최고의 병원에 이미 모든 준비는 다 해놓았고 언제라도 입원해서 곧바로 수술할 수 있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큰딸이 엄마에게 신장 하나를 이식해드렸고 수술 결과가 아주 좋아서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큰딸도 완전히 회복되어서 일 년 후에 애도 가졌는데 그 아이가 태어나서 큰 딸네 집에 가서 몸조리하는 것 봐주느라고 사모님이 안 계시기에 저와의 식사자리에 함께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구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두 따님을 좋은 믿음의 사람들로 양육하시고 신앙 좋은 사위들 얻으시고 부모님을, 그리고 자매간에 뜨겁게 사랑할 줄 알도록 키우신 장로님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장로님은 우리 교회 공로권사이신 윤영자 권사님의 부군 되시는 이근성 명예집사님의 아우이신 이정성 장로님이십니다. 

이 장로님 가정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그런 일은 한 가정 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 한 가족이라고 해서 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일로도 그럴 수 있지만 특히 돈 문제, 재산 문제가 결부되면 친형제자매 사이에도 한 치 양보 없이 싸우고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며 평생 원수지고 사는 사람들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 앞에서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17:1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가족이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며 싸우면서 살지 않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이것을 그들에게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와 서로 사랑하기를 어릴 적부터 가르쳐서 어떤 여건 속에서도 늘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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