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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다음은 (느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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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느 3:1-32)


고 3 때 대학 시험을 보고 난 후에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서 시험을 쳤던 대학교에 갔습니다. 전화로 알아봐도 되는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기차를 타고 시골에서 서울까지 올라갔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가 보니 합격자 명단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기대를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제 이름은 없는지...

시험에 떨어지고 난 뒤 재수를 했습니다. 또 그 대학에 가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서울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화로 합격 여부를 확인해 보았는데요. 주일 저녁 예배 드리기 전 당시 공중전화로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자동응답 전화기의 아가씨가 제 이름을 불러 주면서 합격이라고 하는데 어찌나 고맙든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뒤에 전화를 하려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박수를 쳐 주던 기억이 나는데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오늘 우리는 참 긴 본문을 읽었습니다. 지명, 인명, 문들의 이름 등 생소한 이름들을 읽느라고 참 고생을 했는데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우리들은 지루하고 도대체 왜 이걸 다 읽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요. 만일 이 리스트에 우리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느헤미야와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리어질 때 감격과 뿌듯함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의 이름이 나올까를 기대하면서 들었을 것입니다.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셨을 사람들의 이름이 오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귀한 사람들의 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오늘 성벽을 건축한 사람들의 리스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역이 한 가지씩 마칠 때마다 이런 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들도 리스트를 만들겠지만 아마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칭찬하시기 위해 리스트를 만드시리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원리들이 무엇인지도 알려줍니다. 본문에는 성벽 건축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 일만 기록되어 있지만, 본문을 조금만 더 자세히 읽다 보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사역 원리라고 부르려고 하는데요.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일은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의 첫 번째 원리는 ‘함께함’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받는 위치를 내려놓고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온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을 동참시키고자 합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벽 건축에 대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함께 성벽을 건축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마음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방해가 있었지만, 방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을 건축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은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참 많은 사람이 동참했음을 알려 줍니다.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해, 제사장, 레위인, 금세공업자, 향품을 만드는 사람, 상인, 성전의 종들 뿐 아니라 어떤 가문은 딸들까지도 성벽 재건에 동참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 특징적인 사람들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건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함께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제사를 집례하고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그들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금을 세공하고, 향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성벽을 건축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민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손을 다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성벽 건축에 동참합니다. 

다음으로, 의외의 인물들이 함께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과 함께 성벽 건축을 했다고 하면서 이들은 강 서쪽 총독 관할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함께 동참한 것입니다. 

또, 12절에 보면 살룸의 딸들이 성벽 건축에 동참했다고 말합니다. 보통 딸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잘 기록되지 않는데, 살룸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들의 활약이 탁월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딸들까지도 성벽 건축에 동참했음을 알려 줍니다. 

26절에 보면 느디님 사람들도 성벽 건축에 함께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바쳐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 포로들로서 성전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함께 합니다. 

쉽고 즐거운 일에 함께 하기란 쉽지만, 어렵고 아무도 수고가 필요한 일에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성벽 건축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성벽 건축에 함께 한다는 이야기는 건축에 참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힘이 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일에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드고아 사람들은 성벽 건축에 참여했지만, 드고아의 귀족들은 함께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짓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이었지만 이들은 나라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의 일에 수고한 사람들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긴 하지만 함께 하지 않은 인물들로 불명예스럽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에 있어 우리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봅시다. 함께 하자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동참하고 있습니까? 굳이 내가 함께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함께 동참함으로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사람입니까? 함께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그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는 드고아의 귀족들이 내 모습은 아닌지요?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할까요? 함께 해서 행복함을 누린 사람들, 뜻밖의 참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사람들로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번째 원리는 ‘위임’의 원리입니다. 느헤미야가 지휘하는 성벽 재건은 총 42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성벽과 10개의 문과 4개의 망대를 세우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이 일을 함에 있어 느헤미야는 그 일은 직접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임합니다. 물론 감독을 세우고, 느헤미야도 돌아보았겠지만 그 구역을 맡은 사람들이 직접 그 일을 책임지고 감당하도록 모든 것을 위임합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일일이 감독하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면 성벽 건축은 훨씬 더디게 진행 되었을 것이고, 일의 효율성도 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위임을 한 덕분에 성벽은 빠르고 견고하게 지어지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우리는 이 위임의 원리를 기억하고 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함께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 나갈 때 위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리더와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먼저, 지도자는 사람들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고, 일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해야 할 때가 많아도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고 맡기신 것처럼 지도자들도 그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믿어주는 사람들은 지도자가 믿음에 걸맞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또 지도자는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대제사장 집안에 양문을 건축하도록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문이란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양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게 양문을 건축하게 한 것은 가장 적절한 배치를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임을 하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과 적절하게 사람을 배치하는 것이라면, 위임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일을 맡겼을 때 충성스럽게 해 나가는 모습이 있을 때 지도자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게 됩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성스럽게, 지도자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하느냐의 모습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름과 한 일만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 사람만은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이 붙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절에 등장하는 삽배의 아들 바룩인데요. 그는 그가 맡은 부분을 힘써 감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했지만, 바룩은 그 보다 더한 열심을 가지고 성벽 건축에 임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런 충성스러운 모습이 있을 때 지도자는 믿음으로 위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시듯, 우리도 위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위임을 할 수 있고, 바룩처럼 위임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믿음과 충성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은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마지막 원리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성벽을 건축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양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적은 부분을, 어떤 사람은 많은 부분을 감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양문과 성벽과 망대까지 건축합니다. 하눈과 사노아 주민은 성벽 천 규빗을 보수합니다. 천 규빗이면 450미터 정도의 거리입니다. 상당히 넓은 부분을 맡은 것이죠. 이렇게 많은 일을 감당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마주한 짧은 부분을 감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은혜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은 사람, 즉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만큼을 감당해야 합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당하면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동일한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갖지 못했다고 서운해 할 필요 없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대로 충성을 다하면 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남긴 것을 보고 뭐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 주신 은혜대로 힘껏 우리는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또 살펴보기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대로 힘껏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요? 혹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역과 내 사역을 비교하면서 침울해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게 주신 달란트대로, 은사대로 충성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귀한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일을 위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신 은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 원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이라는 말입니다. 아름답게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름과 수고를 쭉 나열하면서 “그 다음은”이라는 말로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 말씀은 32절로 끝났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또 다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에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한 마음으로 함께 하며, 믿음으로 맡기고, 충성함으로 보답하며, 주신 은혜대로 힘껏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그 다음 사람들을 찾고 계실 때 주님 우리가 헌신하겠습니다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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