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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5병2어의 어린이가 없는 교회 (요 6:9) - 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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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병2어의 어린이가 없는 교회’ .com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 9절 말씀을 통해서 ‘어린이가 없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을 꼼꼼히 읽노라면 몇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① 사람들이 무언가를 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세도록 시키십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라고 시키십니다. 제자들이 세어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 5~6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무리를 세어보라고, 또 떡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보라고 하십니다.  성경말씀대로 이것은 ‘시험’입니다. 

제자 빌립이 과연 숫자를 세고 나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지 아니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지,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세어보고, 계산해본 빌립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부정적인 대답이지요? 믿음이 없는 대답이지요? “예수님 불가능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돈도 없고, 또 있어도 여기는 빈들이라서...그러니까 결론은 불가능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이어 또 다른 제자인 안드레도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한 마디로 이걸 가지고 뭘 하겠냐는 것입니다.  아이도 무시하고 아이가 바친 5병2어도 작다고 무시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험하셨는데, 결과는 안 된다는 대답, 못 한다는 대답, 지금 우리가 가진 것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대답입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우리는 세어보고 계산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을 막사는 사람이라도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계획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지금 당면한 문제조차 그냥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제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잘못계산하거나 잘못 생각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문제를 보고 자기들의 소유만 보았지,  바로 옆에 계시는 예수님은 전혀 계산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 또 노력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계산에 예수님도 들어가 있습니까? 지금 내 옆에 계신 예수님,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도 내 인생계획에 들어가 있느냐 말입니다.    사실 빌립은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히 이 군중들을 먹일 수 있음을 내가 믿나이다.”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을 보지 않았고 사람의 숫자만 보았고, 자기들이 가진 현금과 환경만 쳐다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부족한 소유만 바라보고, 어려운 형편만 쳐다보고 절망합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문제를 보지 말고 문제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 성도여러분, 성경의 기적에는 반드시 기적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꼭 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항상 사람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오늘 5병2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사람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한 아이’입니다.  여기서 ‘보리떡’은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 ‘개떡’이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돼지에게 주는 쌀겨나 보릿겨를 부드럽게 빻아서 만든 ‘쌀겨 떡, 보리겨 떡’입니다. 이 ‘겨떡’이 ‘개떡’이 된 겁니다.  

또한 ‘물고기’라고 번역된 “옵사리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큰 고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지만 작은 고기는 다시 물속으로 넣어주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경법에 따라 작은 고기는 다시 물속에 넣어 살려줍니다. 

그런데 가져오기는 작고 그렇다고 다시 물속에 넣을 필요는 없는 어중간한 크기의 고기가 있단 말입니다.  어부들은 이런 고기를   그냥 바닥에 던져둡니다. 그러면 고아나 과부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들을 주워다가 자기들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어중간한 크기의 소금에 절인 물고기가 ‘옵사리온’ 입니다. 
 
즉 오늘 주인공인 한 아이가 바친 5병2어는 요새아이들 같으면 입맛 버린다고 생각할 싸구려 음식입니다. 더구나 그 양도 얼마 안 됩니다. 그래서 결론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종종 기적의 씨앗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대부분은 '믿음’이라는 씨앗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오늘 5병2어의 기적은 한 아이의 ‘헌신(獻身)’이라는 씨앗을 통해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드린 이 보리떡과 절인 물고기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오늘 성경의 ‘한 아이’와 같은 ‘기적의 씨앗’이 있나요? 우리에게도 5병2어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보리떡과 어부들도 내버리는 애매한 크기의 물고기는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소중하지 않게 여깁니다. 자기가 봐도 자기는 별 볼일 없으니 예수님에게 바치기를 꺼려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바치기를 꺼려함으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마는 재능과 은사와 달란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노래하는 재능, 가르치는 재능, 봉사하는 재능, 작은 손재주, 전도하는 은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절대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지요. 내가 봐도 특별하지 않는 흔한 재능입니다.  솔직히 은사라고, 재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또 내가 숨겨두고 움켜쥐고 있으면 한 끼니 때우고 마는 것처럼 소멸되고 마는 작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그 작은 것이 예수님께 바쳐지면 기적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작은 것을 ‘작다 작다, 하찮다 하찮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별거 아닌 나의 수고, 얼마 안 되는 물질, 특별하지 않은 지식, 길지도 않는 짧은 헌신 이지만 그것이 주의 손에서 축복을 받으면 엄청난 기적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보면 작아 보입니다. 너무 작아 보입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골리앗을 무찌른 것은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삿7;12)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과 군사 300명이 그들을 격퇴시켰습니다. 내 손에 있을 때는 비록 작지만 그리스도의 손에서는 큰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가치입니다.   
 
그러면 성도님 여러분들의 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이지요. 손자 손녀들이지요. 아직 어리고, 무엇을 벌기는 커녕 모든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이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님의 손에 드려질 때 그들은 위대한 일의 씨앗이 됩니다. 자녀가 5병2어의 기적의 씨앗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를 주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시오. 자녀를 예수님의 손에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 이제 기억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도시락 하나’라고 말하고,  ‘흔한 보리떡과 작은 생선’ 이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사실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자기의 도시락을 바쳤습니다. 어른도 그렇지만 특히나 아이에게는 먹는 것은 전부입니다.  도시락은 이 아이에게는 자기의 전 재산아닙니까?  아마 천국에서 이 아이는 목사들이 설교할 때마다 ‘보잘 것 없는 도시락 하나’ 라고 쉽게 말하는 것에 속이 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야 너 같으면 도시락을 감히 바치겠냐?  허기진 배를 참고, 나는 안 먹어도 주님은 드셔야 된다고 생각하겠냐?  나는 배가 고파도 되지만 주님은 배고프시면 안되,  예수님이 이 도시락을 드셔야 또 천국 말씀을 전할 수 있어.  ‘보잘 것 없는 도시락’ 이라구?  나에게는 ‘소중한 도시락’이었어.’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는 흔한 것이지만 빈들에서는 어른들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었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예수님 드시라고 바친 것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비싸거나 귀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소중한 것을 드려 봅시다. 나는 좀 배가 고파도 좋다. 나는 좀 실패해도 좋다. 나는 좀 손해봐도 좋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이것을 드려야겠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보십시다.  빈들의 기적은 비싼지는 않지만 자기에게는 꼭 필요한 것을 ‘예수님에게 더 필요할 거야’ 라고 드린 ‘한 아이’의 소중한 헌신의 결과입니다. 

 
④ 그리고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헌신’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에게 도시락을 들려 준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이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 어머니는 가난한 중에도 아이에게 믿음을 가르쳤고, 예수님 사랑하기를 가르친 어머니입니다.   성도여러분, 아이는 백지(白紙)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얀 종이위에 그리는 대로 그려지는 백지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림을 그립니까? 부모가 그립니다. 부모가 그리는 대로 아이는 그려집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한 아이의 헌신은 그 부모의 그림의 결과입니다.  ‘너 예수님 따라다녀야 된다.  예수님 말씀 놓치면 안 된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잘 들어야 해. 그분은 네 인생의 구세주이시다. 그분을 정말 귀한 분으로 여겨라’ 하면서 도시락까지 들려서 주님을 따르게 그렇게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성공 했습니다.  본문의 ‘한 아이’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현명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다 이런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에서 5병2어의 기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4장 1절 이하에 보면,   선지학교의 생도였던 한 남자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문제는 그 남편이 살아 생전 많은 빚을   지고 죽은 것입니다. 빚쟁이들이 와서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빚을 갚을 돈이 없으면 두 아들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당시엔 빚을 못 갚으면 종이 되어 팔려가던 시대입니다. 이 여인은 남편도 잃고 자식마저 잃을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지요.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 아무것도 없어요. 빚만 잔뜩있어요 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기름 한 병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빌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릇은 고가의 생활품입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은 말없이 빌려 줍니다.  평소에 이웃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빈 그릇을 집안에 들여놓고, 문을 닫고, 기름병을 기울여 빈 그릇에 기름을 따랐습니다. 기름이 다 차면 그릇을 옮겨놓고, 또 다른 빈 그릇을 가져오는 일을 아들들이 도왔습니다. 

그녀에게는 아직 두 아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왜 밖에 도움을 청하느냐? 안에서 해결점을 찾으라. 아직도 네게는 기름이 있고, 널 사랑하는 이웃도 있고, 아들이 둘이나 있지 않느냐? 해결점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은 ‘여기는 빈들입니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했지만 거기에는 이미 예수님이 계셨고, 또 5병2어를 헌신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되지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하여 제자들처럼 부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이곳은 문제가 많은 지역입니다. 이곳은 우상 천지입니다. 이곳은 너무 가난합니다. 영적으로   특별히 어두운 지역입니다.  이곳은 매년 수천 명의 인구가 줄어드는 어려운 곳입니다. 여기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이 되고 기적의 씨앗이 되는 한 아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본문에 나오는 한 아이가 되길 원합니다.  ‘한 아이가 여기 있어’라는 말처럼, ‘여기 저 ooo가 있습니다. 여기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여기 많은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있습니다. 내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다른데서, 다른 사람들로 문제를 해결하시려 하지 않습니다. 빌립에게 질문을 하신 이유도 안에서, 지금 여기 있는 사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녀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6;8) 

이사야는 그렇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고, 타락하고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십니다. 우리의 가진 것으로 주님께 드립시다. 우리의 눈물, 땀, 물질, 기도, 정성을 드립시다.  특히 우리 아이들을 드려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집에 아이가 없으면, 교회에 아이들이 없으면 어떨까요?  조용하고 안 시끄러워서 좋을까요? 아니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없을까요? 사실 우리가 반성해야 될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은 그 중심이 아이들입니다. 신발도, 옷도 아이들것이 제일 비쌉니다. 용돈도 아이들이 부모보다 많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고생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고생할 이유가 뭐있습니까?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는다면 지금 하는 고생의 절반만 해도 사는 데는 별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이유요 목적이요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교회가 세상의 가정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렇게 말하는 신자들, 이렇게 말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어른 위주입니다. 아이들은 돈이 안 된다고 소흘히 하는 것이지요.  또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교회도 많이 있답니다.  물건도 어른들이 쓰다 남은 것으로 주일 학교에 줍니다.   세상 가정에서 어른들이 쓰다 남은 것을 아이들 주면... 그런 집은 없지만, 아이들 가출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합니다. 학원보다, 학교보다 시설도 못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아이들이 안 옵니다.  심지어 직분자의 자녀도 교회 안 옵니다. 사실   아이들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아이들을 오지 않도록 쫒아낸 것이지요. 아이들이 없는 교회, 아이들을 무시하는 교회가 줄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지 않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5병2어의 현장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아이가 드린 떡과 물고기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남은 부스러기만 모아도 12광주리 가득입니다.  문제가 해결 된 것은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5병2어를 드립시다. 특별히 우리의 자녀를 예수님의 축복의 손에 드리는 부모들이 됩시다. 그러면 오늘도 5병2어의 기적이 우리의 교회에서, 가정에서, 나의 삶에서 여전히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적의 씨앗이 되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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