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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뢰하는 양식 (레 26:25-26, 마 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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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하는 양식 (레 26:25-26, 마 6:31-34)


자연재해든 인적재해든 큰 재해 때마다 TV 화면에서 보는 것이 있습니다. 폭동과 약탈입니다. 사람들이 생활필수품이 떨어지게 되면 양심이고 법이고 다 버리고 훔칩니다. 특히 식량이 고갈되어 보세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아귀다툼을 합니다. ‘아귀’가 뭔지 아시지요? 굶주린 귀신이란 말입니다. 

오래 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한국인의 상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최근의 아이티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마구 탈취합니다. 세탁기까지 훔쳐서 업고 가는 사람이 있습디다. 인간에게 먹거리가 없어지면 가장 심각한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1882년에 일어났던 ‘임오군란’을 아시지요? 신식군대인 별기군과 차별하여 훈련도감 소속 구식 군인들에게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을 배급하려다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이 도와선이 되었습니다. 
  
먹는 시합이 간혹 있습니다.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가 있습니다. 핫도그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미 한국인 교포인 이선경씨인데 키가 165센티이고 몸무게가 47킬로그램이고 허리사이즈가 23인치인 가냘픈 여성인데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에 80회 출전하여 50회 우승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토마토 먹기, 빙어 빨리 먹기, 물 빨리 마시기, 금붕어 먹기, 자장면 빨리 먹기, 야쿠르트 50개 빨리 먹기, 타조 알 먹기, 송편 먹기 대회 등 먹기 대회가 있습니다. 정말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혐오대회’일 것입니다.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 대식가 하면 홍일동이라는 사람을 칩니다. 조선조 세조때 사람인데 이렇게 많이 먹었답니다. 북한산 진관사에서 떡 한 그릇을 먹고, 국수 세 주발을 먹고, 밥 세 바릿대를 먹고, 두부국 아홉 주발을 먹고 다 먹고 산 아래에 내려와서 다시 찐 닭 두 마리를 먹고, 물고기국 세 주발을 먹고, 생선회 한 쟁반을 먹고, 술 아홉 바가지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식가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역사 기록에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먹지만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먹지만 먹을 양식을 의뢰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먹는 것을 의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할 때에 먹을 양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에 식량위기가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곡물생산은 연간 18억2690톤에 불과하지만 소비는 19억 3210만 톤입니다. 생산이 소비에 비해 매년 1억 톤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인구 가운데 8억5000만 명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하는 대로 전 세계 인구의 20%가 절대빈곤자라고 합니다. 절대빈곤자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는 절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최첨단과학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요한복음 6:27에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고 합니다. 썩을 양식이란 우리가 의지할 양식이 아닙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기적 후의 설명은 떡만 있으면 사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양식을 땅의 양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양식을 하나님은 끊으시겠다고 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양식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는 “현명한 사람은 75%는 자신의 내적 판단에 의지하고 25%만 외부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자신의 내적 판단이 얼마나 믿을 만합니까? 우리 자신에 대한 절대적 의존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식입니다. 그러나 양식을 의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양식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의뢰하는 양식은 하나님이 끊으십니다. 

26절에는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얻을 자가 없습니다. 광야에서의 만나를 보세요. 아무리 거두겠다고 부지런하게 설쳐도 하나님께서 안 주시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양식 끊으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끊으시겠다고 하십니까? 시편 105:16에는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하여 고생했습니다. 이삭이 기근을 당했습니다. 야곱이 기근을 당했습니다. 왜 성경의 족장들이 기근을 당했습니까? 양식을 의지하시니 끊으셨습니다. 
  
광야의 식탁을 보세요. 하늘에서 새벽마다 주시는 만나는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양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깜빡 잊고 새벽에 만나를 안 주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십니다. 왜냐하면 양식을 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4:16-17에는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고 합니다. 이 성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양식을 의지하니 하나님이 양식을 끊으시는 것입니다. 
  
왜 요즘과 같은 풍요한 시대에 세계적 식량 위기를 맞습니까? 인간의 과학주의와 지식주의는 인간의 교만의 산물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어디 두고 보자”하시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에 한발과 폭우와 눈사태와 지진을 주십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많이 뿌려도 먹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주인 이야기를 보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양식이 또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양식은 인간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 주인이 될 때 위기가 옵니다. 문제가 됩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파괴됩니다. 멸망을 자초합니다. 
  
조르즈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오! 주님, 당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다 내주어 빈털터리가 되셨던 것처럼, 저도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섬세하게 배려하시고, 섬세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것을 다 잃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적인 것이 아닌 것을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에 참 좋은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생스터목사님이 어느 소녀의 병실을 심방했습니다. 소녀는 몹쓸 질병으로 시력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이 소녀는 목사님에게 “하나님께서 저의 눈을 빼앗아 가시려고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얘야, 빼앗기기 전에 드려라”라고 하였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부터 빼앗으시는 사랑이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육신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주도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행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양식을 의지하고, 정욕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지식을 의지하고, 건강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영의 양식을 보지 못합니다.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야 합니다. 육신의 양식을 끊어야 합니다. 영혼의 양식을 의존하고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적 양식을 하나님이 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끊으시면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떠나면 먹어도 배부르지 않습니다. 

26절 하반절에서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여인이 정성으로 만든 것이, 풍성한 떡이, 맛있는 요리가 배부르지 않습니다. 이런 모두가 다 헛됩니다. 
  
‘신경성 폭식증’이란 병이 있습니다. 반복적인 폭식이 나타나는 식사 장애입니다. 한 자리에서 배고픔과 상관없이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폭식 기간 동안에는 먹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중단하지 못하는 증세입니다. 
  
애정결핍을 아시지요? 애정이 결핍되면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자도 졸립니다. 이건 군대에서 졸병들도 그렇습니다. 졸병 때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자도 졸립니다.  
  
왜 폭식을 하게 됩니까? 먹어도 배고프기 때문에 먹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먹는다고도 합니다. 폭음을 왜 합니까? 마셔서 잊어버리자는 것입니다. 폭음도 스트레스 해소용입니다. 먹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까?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까? 우리는 안 먹어도, 안 마시고도 기분 좋고 스트레스가 해소 되니 최고의 은혜입니다. 
  
아모서 8:11에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을 보세요.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이고, 발의 얼마는 쇠이고 얼마는 흙입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진흙으로 된 발에 의지하여 서 있으면 결국 조만 간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지하지 못할 것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시편 127:1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모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셔야 주십니다. 
  
마태복음 6:31에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먹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인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해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안 주시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본성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엘리야를 보세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자청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가 먹을 것을 주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사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에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배부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절대로 배부를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를 보세요. 하나님은 주시고, 인간은 거둡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이 주신다고 하더라도 게으르면 못 먹습니다. 과다하게 욕심을 부려도 헛수고입니다. 여호와이레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아시고 미리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하게 되면 이미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인간적 생각으로 염려하여 하나님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제자들이 먹였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먹이셨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먹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쌍 페테르부르크 즉 옛날 레닌그라드에 가면 ‘이삭성당’이란 러시아 정교회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세계최대의 단일성전이라고 합니다. 크고 화려하고, 제정 러시아의 화려함을 죄다 모아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 안에는 아름다운 조각과 그림과 채색유리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 성당의 강단 안쪽에는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상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성당에 가봤지만 그 안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다 모아놨는데 왜 예수님은 슬퍼하실까요? 더구나 예수님의 슬퍼하시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의지하고 삽니까? 하나님입니까, 물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과학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인간의 지식입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떤 성전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주시기는커녕 빼앗으시고 진노하십니다. 

  
결론 

마르틴 루터는 ‘대 요리문답’에서 “무엇이든 당신의 마음에 의지하는 것, 어디든 당신의 마음이 머무는 곳, 그들이 사실상 당신의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인간적인 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주기도문을 해석하면서 “양식을 달라고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까? 양식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육신입니까, 영혼입니까? 세상지식입니까, 하늘지식입니까? 돈입니까, 믿음입니까?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의뢰할 것이 못됩니다. 의지할 것이 되지 못하는 진흙 위에 서 있을 겁니까? 쓸데없는 것을 의존할 때에 하나님이 끊으시면 감사하세요. 세상에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육적인 문제에 급급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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