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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뱀과 놋뱀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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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뱀과 놋뱀 (민 21:4-9)
  

"아랍"왕을 쳐 이긴 기쁨도 순간으로 살아지고 계속 행진에 노독이 심하고 식음이 불편하여 백성들은 또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기 위하여 불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많은 무리가 죽었습니다. 이 불뱀은 시내 광야 남부지방에 서식하는 독사의 일종입니다. 색이 붉고 독성이 불같이 퍼진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며 애소하매 다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고 불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놋뱀 자체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순종 여부를 알려는 것이니 쳐다보는 자는 살았고 불순종하는 자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자 하심이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원망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5절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불신앙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바를 오히려 원망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은 천번 만번 감사해야 했을 것입니다. 날마다 하늘의 만나를 먹고사는 기적생활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만나는 결코 박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출 16:31)에 만나의 맛은 꿀섞은 과자 같다고 했으니 원망한 자들은 거짓된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 78:29)에 "하나님은 그 맛있는 만나를 저희 소욕대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탐욕의 소산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 78:10)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저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시비는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켜 불뱀에게 물리는 비극을 빚어내었습니다(고전 10:10-11).
  

2. 주의 종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우리와의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들은 불뱀에 물려 죽음에 있어서 이 죽음에 문제를 해결을 하는 길은 하나님에 종 모세를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사실은 성경 여러곳에서 하나님께 종들을 찾아가 해결을 본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선지자 생도의 아내 중 한 여인은 엘리사를 찾으므로 경제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왕하 4:1-7).

어느날 엘리사에게 한 미망인이 찾아와서 남편이 생존시 큰 빚을 지고 갚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에 채주자가 그 빚대신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 갔다는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지시하여 이웃의 여러 집에서 빈 그릇을 모두 빌리게 하고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가지고 있는 한병의 기름을 빌려온 빈그릇에 붓게 하였습니다. 빌린 그 많은 그릇에 한병의 기름이 붓는대로 다 채워졌습니다.

미망인은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고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미망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아들이 생활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 종을 찾으므로 빚 문제 아들들의 종살이 문제 경제문제가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2) 마리아도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으며 오라비가 병들었다고 간구할 때 해결을 얻었습니다(요 11:2-3).

(3)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를 찾아가 그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더니 자기 문둥병이 깨끗이 씻음을 받았습니다(왕하 5:9-14).

성도들이여, 어려운 문제가 있을시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보다는 먼저 주의 종을 찾아가서 의견을 나누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7절에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께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라고 했습니다. 독을 제거하는 데는 먼저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자 백성들은 즉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하시는 회유의 채찍으로써 범죄의 길로부터 돌아오도록 하십니다(계 3:19).

(1)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모여 여호와께 기도하고 집회를 가짐으로 이스라엘이 구원 받았습니다(삼상 7:5-6).

(2) 느니웨 백성들이 요나의 전도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3) 다윗도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지은 것 사함받을 수가 있었습니다(삼하 12:13).

성도들이여 우리들이 세상 삶에 있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아니하고 어려움의 연속이 있거든 자아를 살피어 회개를 바로하여 축복의 여생을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4. 뱀에게 물린자는 놋뱀을 쳐다 보아야 했습니다.

9절에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놋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 끝에 매달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쳐다본 즉 뱀에게 물린 상처가 나음을 얻고 이를 불순종하고 믿지 않는자들은 다 멸망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이 얼마나 쉽고도 간단한 구원 방법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에게 물린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끔찍한 불뱀을 연상시킨 놋뱀을 쳐다보게 하신 것은 하나의 역리적인 처사입니다. 사람에게 신앙을 발생시키려는 계시의 원리는 어떤 때에는 이렇게 사람의 이성을 거스린다. 병세를 더할 우려있는 행동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의미에서 취해진 것은 신앙입니다.

(고전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심을 우리 구원을 갈망하는 성도들은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5. 순종만이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9절에 "뱀에게 물린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뱀에 물린자들에 있어서 생명을 유지하는 길을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데 있었다. 그 순종은 또한 아주 쉬운것이니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에게는 그 증세에 따라 처방법이 있으니 예컨대 감기에 걸린자는 감기약을 먹고 두통이 있는자는 그에 대한 처방을 해야 합니다. 한대 당시 이들에게는 놋으로 만든 놋뱀을 쳐다 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뱀에 물리어 고통을 받기 때문에 아니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한데다가 그것을 쳐다본다는 것은 마음이 냉큼 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흑자는 놋뱀을 보기를 거부하는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 그같은 자는 고침 받지를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에 생각입니다. 하나 구원에 방법은 너무나 단순하며 쉬운 것입니다. 즉 명령에 순종하고 쳐다만 보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다한 요구를 아니합니다. 감당할 수 있고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할 때에는 친히 자기가 알아서 역사하시는 것 입니다.

즉 아브라함에 있어서 이삭을 받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이를 실현코자 할 때 저와 그 아들이 살고 그후에 저에게 자손 번영에 축복을 주시었으니 (창 22:17)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수와 같은" 자손에 복을 받았습니다.
  

6. 마귀의 짓을 하면 마귀로부터 불행을 당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나 모세에게 있어서 원망과 불행을 했으니 마귀에 앞잡이 노릇을 한 것입니다.

(욥 1:9-12)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이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라"고서 욥이 부자된 것을 시기 질투 불평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마귀와 같이 모든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불평을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마귀짓을 하다가 마귀의 상징인 뱀에 물려 죽은 것입니다. 즉 남제비가 된 것입니다.

(에 3:1 5:7)에 보면 하만이 모르드게가 자기를 섬기지 아니하며 따르지 아니한다고 모르드게를 나무에 달아 죽이려고 만든 사형틀에 제가 그곳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응과 보응이라고 이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죽음으로써 치루고 만것입니다.

성도 가운데도 복을 받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마귀짓을 아니하고 무조건 순종이요 봉사를 하는 자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난체하고 교만하여 불복종하고 가시 노릇하는 자는 복을 받은 신자를 본 일이 없습니다. 고로 착한 양이 될지언정 이리같이 마귀노릇을 하는 저주를 받는 자가 되지 말 것입니다.
  

7. 현대 성도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성적 고안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교리는 비이성적 고안입니다. 예수의 피가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은 비이성적 고안입니다.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 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구리뱀이 장대위에 높이 달린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세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을 오르는 그런 피곤을 모르는 힘을 얻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다 사해주셨으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죄를 다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전파하여 언약하고 있습니다. (롬 8:1-2)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하나님의 성결의 법이 죄와 사망이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된 말씀은 이를 잘 보증하고 있습니다.

성도여 십자가만 바라보고 따라갑시다. 그같은 자에게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이스라엘 즉 성도들을 벌하여 죽이시려는 그 목적이 아니시고 회개하여 믿게 하려는 것이요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앞으로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생여로에 십자가는 적신호도 되고 청신호도 되어 위험을 방지해 주고 길을 잃지 않도록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지상 여로에는 적신호가 되고 인생 항해에는 안전지표가 되며 항공 여로에는 멀고 먼 앞길을 가르쳐 주는 목표가 되오니 십자가만 바라고 따라갑시다. 그곳은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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