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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가 전하는 부활은? (눅 2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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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가 전하는 부활은? (눅 24:1-48)


부활절이 지나 첫 주를 맞아 승천주일과 성령강림주일에 이르기까지 부활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전하고 있는 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복음에서 누가가 전하는 부활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듣고 부활의 삶을 바르게 나타내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의 기록목적은 1:1-4절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이처럼 누가복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이 이루어진 사실의 목격자와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주었는데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서 누가가 썼습니다. 왜 쓰게 되었는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서 보내어 배운 바를 확실하게 하려고 썼다라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0년 6월 26일 드디어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공개되었다. 영국의 왓슨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지 반 세기 후, 그리고 로슬린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지 3년만에 이룬 과학적 개가이다. 빌 클린턴대통령은 이를 두고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과인 인류의 달착륙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과학의 성공으로 칭송했다. 매스컴들도 “인간의 설계도가 해독된 제 2의 창조”(독일의 슈피겔지, 26/2000), “인간의 유전자가 해독됨으로 생물학과 정보학이 성공적으로 접목되었다”(Die Zeit, 2000,6,29)라고 함으로 이제 인류가 새롭게 들어서게 된 유전자혁명의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다.>

인류가 이룬 과학적인 두 가지 일을 말하는데 하나는 1969년에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2000년에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완성된 일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이런 업적을 말하면서 자연스레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보면 ‘인류가 새롭게 들어서게 된 유전자혁명의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다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달착륙 사건으로 덧붙여 말한다면 우주개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이루었다 하는 말은 새 일과 새 시대의 도래를 뜻합니다. 

이러한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현에는 반드시 또 하나 따라붙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연도를 표시하는 말입니다. 1969년이나 2000년 등과 같은 역사적인 때를 반드시 말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를 보고 구원역사신학자라고 어떤 분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유대 왕 헤롯 때에’ 세례 요한이 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말하고, 예수님의 나심도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고 역사적인 때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구원역사적인 내용을 말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렇게 누가복음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요? 전체적으로 누가는 예수님의 나심과 가르치신 사역,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언약을 이루심’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우선 누가는 제일 먼저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셨다고 서두에 말합니다. 천사가 전하여 준대로 제사장 사가랴의 가정에서 세례 요한이 나고, 또 천사가 전하여 준 대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일을 말하면서 이는 모두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사 죄 사함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약속을 기다리던 성전의 시므온과 안나가 결국 그 약속의 이루심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가르치심’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가르치는 일을 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이 가르치심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시작하십니다. 그 가르치심도 구약의 언약이 이루어짐이라고 누가는 말합니다. 주님의 나심도 성령의 함께 하심이거니와 그의 가르치심도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심입니다. 

4:14-21절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장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처럼 예수의 가르치심의 일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너희에게 ‘응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가르치시는데 그의 가르치심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이루심이라고 누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가르치심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가르치심을 따라 주님께서 그 가르치심을 직접 행하심으로 이루시는데, 그 이루심도 역시 약속을 이루심이라고 누가는 한결같이 증거합니다. 

9:51절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기약이 차가니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즉 약속을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도 언약을 이루심이라고 누가는 역시 일관되게 말합니다. 

18:31-33절입니다. “예수께서 12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오늘 본문에 부활을 말하는 24장에서도 이루심이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25-27절과 44절에서 성경의 언약을 이루심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누가가 예수의 부활하심을 자세히 목격자들의 말을 살펴 기록하였는데, 그 부활을 기록한 주제가 언약을 이루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4장에서 부활을 전하는 누가는 여인들과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의 이야기도 하지만 아주 길게 말하는 것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입니다. 두 제자가 앞서 일어난 여인들과 베드로의 이야기를 다 함축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24절입니다.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다가 예수를 거기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천사와 같은 두 사람이 나타나 그들로부터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느냐?’는 말을 듣고 예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여자들은 사도들에게, 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조차 그 전하는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못하고 베드로는 현장까지 가 보았으나 뚜렷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슬픈 빛을 띠고 가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오셨으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신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슬퍼하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나사렛 예수의 일로 근심하였는데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바라고 따랐었는데 그가 이미 죽은 지 사흘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여자들과 제자들 두어 사람이 예수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으나 보지 못하였고 천사들이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슬픈 빛을 띠고 엠마오로 낙향하듯이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tu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최근의 일이 바로 성경의 언약하신 말씀의 성취였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알지 못하다가 제자들은 주님의 새언약 식사처럼 떡을 떼서 나누어주시자 그때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 모인 함께 한 자들에게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일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사가 나타나 증거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서로 예수께서 사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고 하시며 놀라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의 영광을 보이시고 직접 먹고 마시었습니다. 즉 이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가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방식도 이루심에 관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영광으로 나타내심은 제자들에게 이미 가르치신 말씀의 성취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44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그리고 다시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증인입니까? 46-47절에 말씀하신 증인입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여인들이 에수의 무덤에서 예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 또 베드로가 빈 무덤만 보았을 뿐이라는 것, 엠마오의 마을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 함께 하심을 보이신 것과 또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새로운 부활의 몸의 영광을 보이심 등도 결국 성경의 언약을 말씀하시는 데로 귀결되었습니다. 이 성경을 다시 풀어 설명하셔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증인 됨을 위하여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부활주일을 지내고 온 교회가 함께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혹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믿느냐, 아니 믿느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부활이 사실이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에이! 나는 못 믿겠는데, 어디 증거를 보여봐!’ 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1969년의 달착륙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 전에 나왔습니다. 그건 지구 상 어디에 가서 그런 달의 배경을 무대처럼 꾸미고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근거로 그들은 달에 착륙한 우주인들의 그림자가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고 합니다. 태양의 그림자라고 하면 여러 개가 나올 수가 없는데 실제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겹쳐져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축구장에 야간경기를 할 때 사방에서 조명이 비취면 선수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생기는 것을 여러분도 보셨을 겁니다. 그러니 조명등을 켜놓고 찍었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말이나 주장은 그게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갖고 논란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물론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기는 하지만, 즉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제시하면서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와 같이 언약의 성취가 역사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나게 됨도 언약의 성취요 예수의 나심도 언약의 성취요, 예수의 가르치시며 행하심도 언약의 성취라고 증거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합니다. 

부활을 일회적 사건으로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언약의 성취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 그게 역사적인 사실이냐 아니냐와 무엇이 다른 점인가 의아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약의 성취가 역사적으로 나타났다는 말은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점보다 새 시대가 도래했으니 새 언약하에 살라는 말에 강조점이 있게 됩니다. 즉 부활을 직접 보이시고 알리셨으나 그것보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하고 이 모든 일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에 더 강조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마에 부활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나타난 새 시대에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그게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서 보내어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처음 배우려는 자에게 누가복음을 써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들어서 배운 자에게 그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 써서 보내었습니다. 배운 것이 확실하게 되는 것이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같은 그림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것이 성경을 이루심이라고 결론을 짓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 사함의 회개를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밝히 알게 됨은 배운 것이라고 하면, 증인으로 사는 삶은 확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난 것과 죄 사함의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게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입에다 확성기 달고 계속 거리를 다니며 전파하라는 말입니까? 도대체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이는 예수님이 선지자처럼 가르치신 내용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미 그 말씀을 오늘 설교 가운데 소개했습니다. 4:14-21절을 다시 보십시오. 누가복음에서 주님의 일은 가르치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주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너희에게 응하도록 가르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 4:18절의 사역이 곧 주님이 가르치신 일이라고 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성령이 임하셨으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써 그의 사역을 행할 것입니다. 어떤 일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어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보내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을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여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시대를 전파하려고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가복음은 주님의 일이 긍휼의 사역입니다. 즉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가르치신 일을 따르는 자가 주님의 일꾼이요,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심은 바로 그가 왕권을 얻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왕권을 얻으셨습니다. 그가 왕권을 얻으시면 그 나라에 함께 하는 일꾼들은 그 나라를 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떤 열매여야 합니까? 왕이 가르치시고 행하신 일과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즉 성령의 권능을 갖고 가르치신 주님의 나라 일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소경된 자를,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희년을 선포하고 증거해야 그 열매를 맺는 자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억눌리고 소경이 되었던 자들이 복음 전파를 통해서, 증인들을 통하여 새 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유함을 얻음이 곧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이루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도행전이 아닙니까!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그 열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이루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8:31-19: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8:31-34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수난을 당하고 죽으사 사흘 만에 다시 사는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리고의 소경과 세리 삭개오에 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선지자의 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인데 이 일을 통해서 그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잃어버린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여리고의 소경을 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세리 삭개오를 부르려고 오셨습니다. 

그런 후에 열 므나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왕이 금방 다시 올 자로 알고 있는 자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종 열을 불러 열 므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저의 왕됨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인이 왕권을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그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할 것입니다. 

종들 가운데 장사하여 남긴 자들은 바로 그의 왕권을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도 남기지 못한 악한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19:27절입니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일과 여리고 소경, 세리 삭개오와 열 므나의 비유는 전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죽으시고 부활하사 왕위에 오르실 주님이 열 종에게 한 므나씩 맡겨서 그 결과, 곧 열매를 알고자 하실 것입니다. 이게 바로 증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이가 왕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잃은 자를 찾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원수들이요 죽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독특하게 등장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부활의 언약으로 이루어짐은 우리 배운 바를 확실케 하려 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증인으로 살아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잃은 자, 가난한 자, 소경된 자,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려는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을 얻으시려고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사 보좌 우편에 왕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어떻게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가가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 질서도 오늘 누가복음에서 부활을 언약의 성취라고 전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우리는 결혼의 삶을 살 때 결혼한 날짜와 장소, 시간 등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애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회적으로 일어나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구원을 얻은 날짜, 시간 등이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결혼을 했으면 그 결혼식 날짜보다 더 중요한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맹세를 한 증인으로 부부는 서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 봐! 나 결혼식 때 찍은 비디오가 있잖아? 거기 년도와 날짜와 시간까지 나오잖아? 이 증거를 보면 내가 확실히 결혼한 것을 네가 인정해야 돼! 알았냐!” 우리는 부활도 이런 식으로 확신하고 확인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약혼식을 하고 나서 결혼식으로 이루어졌으면 결혼을 한 부부로써의 당당한 삶이 필요하고 사랑의 언약맹세를 따른 증인으로 서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가족과 친지와 하객들은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을 언약의 성취로 말하는 누가의 바라는 뜻도 그러합니다.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라‘ 어떻게? 이제 우리가 배운 바가 가난한 자의 복음으로 참 자유를 주는 증인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이 형제와 자매들 가운데 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등을 찾으셔야 합니다. 옛 질서는 이러한 자들 위에 군림하는 때였지만 이제 주님의 부활로 언약을 성취하신 새 나라이 질서는 이들을 찾아 구원하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는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정치를 해야 합니다. 부자들의 정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부활을 알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안다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찾아 오셔야 할 여리고의 소경은 어디 있습니까? 세리 삭개오와 같은 자는 여러분 주변에 어디 있습니까? 지금도 여러분이 애쓰고 수고하여 눈물로 구원해야 할 잃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부활을 믿으신다면, 누가가 전한 부활을 아신다면 당장이라도 여러분은 이런 분들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점잖은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남에게 해를 받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좀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교회 다니고 성경말씀 보고 적당한 직분을 갖고 있으나, 한 주일 동안 지체들에게, 약한 자들에게 전화 한 통화도 못하는 자들은 전 이상하게 여깁니다. 배우긴 배웠어도 확실치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 그 교수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확실케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확실히 알도록 하는 일에 교사는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사는 더욱 그렇게 성도들을 확실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전 생애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구속사 복음 배웠으면 뭐합니까? 증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언약의 성취, 곧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전하는 누가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주변에 힘있는 자들, 똑똑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보다 약한 자들, 미련한 자들, 억눌린 자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자들을 위하여 존재하기 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힘을 모두어 이런 교회를, 누가가 전한 부활을 바르게 나타내는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우리 왕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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