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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손의 하나님 (삿 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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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하나님 (삿 13:1-25)

  
오늘 본문 사사기 13장 말씀은 인류 역사상 가장 힘 쎈 사람인 삼손이 주인공입니다. 이 삼손 이야기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은혜가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삼손은 주일학교부터 자주 듣던 인물이요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삼손 은 기억을 할 만큼 유명한 인물입니다.  또한 사사기는 삼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넉 장에 걸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로 본 것입니다. 삼손을 통하여 하고 싶은 얘기, 보여줄 메시지가 많다는 뜻입니다. 

또한 신약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오른 많은 신앙의 영웅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당당히 삼손이 그 반열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즉 삼손은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한 신앙인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사기 13장의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이 아픕니다. 
 
성도여러분, 삼손이 태어날 때의 이스라엘은 

①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중환자’ 이것이 삼손이 태어날 때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은 이스라엘에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익숙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기 "다시"라는 말은 "계속 또 다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우리말 번역엔 생략이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엔 정관사가 붙어 "그 악을 행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계속 또 다시 범하는 ‘그 악’이란 어떤 악일까요? 이전에 그랬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바로 그 악을 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민족은 단채로 우상숭배에 빠져있습니다.  이 말을 오해 하시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같이 섬기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즉 사람이 교회 다니면서 점도 치고, 관상도 보고,  하나님도 섬기고, 물질도 좋아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예배도 드리면서 세상의 좋은 것도 따라가는 양다리 걸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②  이스라엘이 ‘그 악을 계속 또 다시’ 행하면 그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단계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40년동안 블레셋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겼다" 는 것이 그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런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40년은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이방나라에게 학대를 받는 고통의 기간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압제와 고통의 기간 중 가장 긴 기간입니다.  압제와 고통의 기간이 삼손이 나타날 무렵엔 40년으로 무지 오랜 동안 블레셋을 섬기며 착취를 당합니다. 우리가 왜정시대 36년 동안 말과 글을 잃은 적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볼때... 이스라엘나라가 사라질 수 있을 정도의 긴 기간입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가 그 다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③ 고통을 당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도움’입니다. 넘어진 사람이 혼자서 일어날 수 없을 때는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해야 합니다.  범죄, 고통 그 다음으로 ‘회개와 부르짖음’이 나타나야지요. 그러나 삼손시대의 문제점 중 가장 큰 것은 "백성이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왜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제 고등학교 때 일이 생각이 납니다.  같은 반 친구 한명이 나에게 ‘손금’을 봐주겠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나는 별로 관심이 없이, 그냥 ‘그래 한 번 봐 바라’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한 40까지는 고생을 하겠네 합니다. 그래? 그럼 그 후로는 어때, 돈 많이 벌겠어? 했더니... 40이후로는 고생이 만성이 돼서 고생을 고생인줄 모르겠다. 합니다.  웃자고 한 말이고 실제로 웃어 넘겼습니다.  그런데 성도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이 꼭 그런 경우입니다.  크고 긴 고통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만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무감각해지고, 둔해졌다는 뜻입니다.  고통의 이유도 모릅니다. 

이방나라 블레셋의 종노릇이 당연한 것 인줄로 생각을 하니.. 기도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이스라엘(=유다지파)이 자기들 손으로 사사인 삼손을 붙잡아 원수 블레셋에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삿15;11,12)  

너무 약해져서 블레셋의 눈치를 봅니다. 사사인 삼손을 오히려 꾸짖고 블레셋으로 넘겨주어 희생시킵니다.  아픈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약속의 땅이 짓밟히고 민족 신앙과 인격이 짓눌린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쩌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꼴이 되었느냐고 탄식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질병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아픔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전에 책을 보니 어떤 청년이 사고로 입원을 했는데.. 간호원이 들고 있던 뜨거운 그릇을 무심코 그 사람 다리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좀 있다가 보니 살이 벌겋게 익었습니다.  간호원이 놀라서 ‘뜨겁다고 이야기를 하지 왜 가만히 있어요!’하는데... 본인은 그때에야 ‘아 뜨거운가? 내가 신경이 마비되었구나’합니다.  마비된 사람은 뜨거운 것도 모르고, 찬 것도 모릅니다. 칼로 찔러서 피가 나도, 아니 살이 뒤집어지고 뼈가 보여도 아무 감각이 없어 아픔도 못 느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감각을 못 느끼는 병인 문둥병이 저주를 받은 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죄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 감각이 없다면 얼마나 비극이겠습니까!!!  
 
기도할 힘이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부르짖기 시작할 때 구원의 길은 이미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혼이 깨어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작은 문제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때 그때 기도하는 사람, 작은 죄에도 깜짝 놀라서 바로 바로 회개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부르짖지도 않는 이스라엘, 기도할 이유도 모르는, 영적으로 죽어가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나요?  그래서 삼손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④ 바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할 사람인 사사를 달라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하나님은 삼손을 보내주십니다.  인간이 완전 부패,  전적타락으로 하나님을 찾을 힘을 상실했습니다.  구원을 부르짖지도 않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찾아와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요 삼손의 이야기 또한 나의 얘기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숨만 할딱거리는 상태로 죽어있는 어두운 시대,  이럴 때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을 보여주는 사사가 바로 삼손입니다. 

이제 삼손의 아버지가 등장을 합니다. 
절망의 시대, 절망의 땅에서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준비하십니다.  2절.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마노아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마노아 나이가 몇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형제가 몇이나 되는지 사사기 저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마노아가 있는데"라고 하지 않고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하면서 마노아의 이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13장에서 마노아란 이름이 원문상 17번 정도 등장합니다. 대명사를 쓸 만도 하고 생략해도 좋은 문맥에서도 고집스럽게 "마노아, 마노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노아는 "노아"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는,  "휴식, 휴식처,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마노아는 어떤 형편입니까?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그 휴식과 안식의 가정이 "임신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했다. 아니 본래부터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마노아 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이름 분인 안식이요, 휴식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불임은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로 생명의 생산능력을 잃어버리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3절 후반입니다.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하나님의 간섭으로 이스라엘 땅에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삼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삼손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임신을 미리 알려주는’ 수태고지 사건은 흔한 일도, 간단한 사건도 아닙니다. 수태고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이해되었고,  수태고지는 불임의 여성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입니다. 수태고지는 100%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를 구원한다는 선언입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늙어 임신할 수 없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을 때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노아 아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여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갖게 되리라고 알려줍니다. 이처럼 삼손은 성경에서 몇 안 되는 수태고지와 함께 이 땅에 태어납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이 특별히 쓰기 위해 구별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나실인이 평생 지켜야 할 규정이 있었습니다. 

① 포도주나 독주 심지어는 포도열매나 건포도도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엡 5:18에 보면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술과 성령은 모두 충만과 관계가 있습니다. 충만(充滿)이란 장악한다. 통치한다는 의미입니다. 너는 술에게 장악되지 말고 성령에 의해 장악되어 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나실인은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너를 장악할 수 있는 그 무엇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으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② 두 번째로 나실인은 죽은 시체나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어도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효도를 해서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만 쓰임 받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③ 셋째 나실인은 머리를 깎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머리가 나를 덮고 있듯이 내 생각, 내 삶을 온전히 덮고 계신 나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수하에 있다. 나는 성령님께 붙잡혀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 그 무엇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절망의 시대, 절망의 땅, 불임의 가정에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에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감격하여 염소새끼를 잡아 대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정히 드리려면 오직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드렸더니 불꽃이 반석 제단에서 나와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사자가 그 불꽃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한 이적을 체험합니다. 이 과정에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당신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행하시려고 날 찾아오셨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지요.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펠리(phely)라는 말인데 공동번역에서는 "비밀(secre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엔 wonderful, secret 혹은 beyond understanding (이해를 넘어서, 이해 건너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beyond understanding -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럽고 기묘한 역사를 삼손을 통해 이루어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기묘란 특이한 능력이라기보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말합니다. 버려야 할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왜 그토록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그것이 하나님 사랑의 비밀입니다.  기묘입니다.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영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임하여, 또 이방 블레셋여자들에게 빠진 타락한 삼손에게 임하여, 함께 하시고 기어이   하나님의 계획, 사명을 완수케 하시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입니다.  그것이 기묘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힘센 영웅의 이야기도 아니고, 약점과 실수로 쓰러지는 한 사사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 허물 많고 실패를 반복하는 삼손 곁에서 그의 손을 잡고 동행해 주시고 기다리고 인내하시다가 기어이 성공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이야기입니다. 그것이 기묘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 살려 당신의 자녀 삼으셨는지? 
갚지 못했고, 갚지 않을 줄 알면서 왜 또 무조건 복 주시고 은총 주시는지?
왜 실수와 범죄로 얼룩진 나를 버리시지 않았는지?
왜 하나님이 이 부족한 나를 사용하시고 능력을 주시는지? 
그분의 역사는 비밀입니다. 기묘입니다. 

성도여러분, 삼손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모쪼록 개인적으로 4장이나 되는 삼손의 이야기를 여러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병자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인자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의 실수보다 크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의 실패보다 크다.  하나님은 나같이 못난 자, 실수투성이도 한번 선택하셨으면 버리시지 않는다.  100번 넘어졌다고 신앙의 걸음을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다시 너를 101번 째 일으켜 주실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놓아도 하나님은 나의 손은 절대 놓치지 않으신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해라."   아멘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삼손을 통해 은혜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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