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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에 성전에 서있는 사람들 (시 1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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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성전에 서있는 사람들 (시 134:1-3)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 134:1~3) 
 
①오늘은 시편 134편의 말씀을 통해서 ‘밤에 성전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감동이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②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따뜻한 봄이 오는가 기대를 많이 했는데...아직은   겨울이 심술을 부리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3월 달에 눈과 비를 이렇게 자주 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봄은 짧습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가버리는 것이 봄입니다. 그런데 그 존재감 부족한 봄이 겨울의 두꺼운 얼음을 녹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얼음을 강제로 녹이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힘없는 봄 햇볕이 그 차가운 겨울바람을 몰아내고, 꽁꽁 얼은 얼음을 다 녹입니다.  태양이 쨍쨍 비치는 여름이 불과 같은 강력한 성령님이라면, 봄은 비둘기 같은 온유한 성령님이십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생활도 아직 봄이 오지 않고서 여전히 겨울인 분이 계신가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에, 그리고 모든 가정에 봄과 같은 따뜻함이 가득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③ 오늘 본문인 시편 133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절기를 맞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에 올라와서 그 절기를 지키는 모습을 노래한 것입니다. 1,2절은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밤을 새우며 봉사하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인사한 것이고, 3절은 그 인사를 받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순례자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④오늘 하나님께서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3가지로 저와 여러분에게 나아갈 진리의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로,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밤에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십니다.
  셋째로, 밤에 성전에 머무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로,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밤”하면 먼저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는지요? 어떤 글에서 ‘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고 질문을 하니 “별, 달, 가로등, 야경, 불꽃놀이” 등이 있었는데, 사실 이런 것은 소수였고,  “도둑, 강도, 범죄….”주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 양지보다는 음지의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통계에 따르면,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인데, 절도, 강도, 방화,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대부분 그 시간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인생의 밤”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요? 하루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낮과 밤이 共存하는 것처럼, 70년 이상   되는 인생살이에도 낮과 밤이 共存합니다. 흔히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때를 낮이라고 하고, 외로움과 괴로움이나 가난이나 질병 등으로 苦痛하는 날들을 밤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인생의 밤’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만약 또 다시 여러분에게 ‘인생의 밤’이 온다면 여러분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간’입니다. 시간이 언제입니까?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절)  여기서 “밤”이란 저녁 상번제 시간으로부터 아침 상번제를 드리기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저녁 상번제는 일몰 시간에 드려졌고, 아침 상번제는 일출 시간에 드렸습니다. 그 사이를 ‘밤’이라고 부른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밤 시간에 성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 시간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먼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밤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종들’이란  

➊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말합니다. 성전을 지키는 일은 낮 시간뿐 아니라 밤 시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밤에 담당했던 주요 임무는 제단의 향과 등잔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밤에 성전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습니다.  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의 문들 가운데 24곳에서 불침번을 섰습니다. 21곳은 레위인들이 지키고, 성전 안쪽의 문들 가운데 3곳은 레위인과 제사장이 함께 지켰습니다. 각 조는 열 명으로 구성되었고, 성전 안쪽의 세 곳은 레위인과 제사장 각각 열 명씩 20명이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일몰로부터 일출까지 레위인 240명과 제사장 30명 등 전체 270 명이 성전 곳곳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종들”이라 불렀습니다. 

➋ 두 번째로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모든 종들’은 멀리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를 떠나 저녁이나 밤에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절기를 맞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고난과 시련을 거쳐 밤 시간에 성전에 도착한 성도들입니다. 성전을 향한 먼 순례의 길을 떠나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늦어서 어디 묵을 만한 데로 갈 수 없었던 순례자들, 그리고 가난해서 숙소를 따로 얻지 못하는 순례자들이 그냥 성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이 순례자들과 제사장의 대화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이렇게 밤에 성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불침번으로 성전을 지키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아닌 순례자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요? 

  
둘째로, 밤에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십니다.

2절을 보면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 합니다. 
여기서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우선 

➊성전을 향하여 ‘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들이 멀리서 성전을 향해 예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낮이 아니라 밤에 도착을 했습니다. 즉 도착하면 밤이 될 줄을 알면서도 시간을   조절하지도 않고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겨 온 것입니다. 말 그대로 밤을 새워서 걸어온 것이지요. 얼마나 간절히 성전을 사랑했으면 밤에 도착을 했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밤에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니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사모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절기를 맞아 어렵고 힘든 걸음을 한 그들이었기에, 그 밤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서서 손을 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구약의 다니엘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국 만 리 남의 나라에 있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그 일로 인하여 고발을 당하여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성전을 사모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나님계신 성전을 사모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➋ 두 번째로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구절처럼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뜻입니다. 송축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위엄을 높인다’는 뜻이지요. 성도 여러분, 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지 않습니까?  바쁜 하루의 일이 모두 끝나고, 분주하고 혼란한 소음이 잠잠해지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낮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다가, 밤이 되면 조용히 주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갖게 되는 것, 그래서 밤이 기도하고 찬양하기에 좋은 시간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례자들이 손을 들고 기도하고, 손을 들고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는 “축도”이지요?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요? 어린이 주일을 맞아 담임 목사님이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평소 담당 교역자가 설교를 아이들 눈높이 에 맞춰서 재미있게 하다가, 나이든 담임 목사님이 설교를 하니 아이들이 별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힘들었습니다. 모든 예배 순서가 끝나고 목사님이 축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축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그 날 처음으로 주일학교에 온 아이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야, 목사님이 왜 손을 들고 기도하냐?” 그랬더니 친구 왈, “야, 그걸 모르겠어? 설교를 못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벌 받는 거야!” 뭐, 그렇다는 말이고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축도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성전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도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다, 절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집중한다’는 의미이지요. 사실 손을 드는 것은 5분만해도 팔이 아픕니다. 또 손 안 들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손을 들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그만큼 절실하게’ 기도한다는 뜻이며, 그만큼 기도에 ‘집중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처럼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찬양의 폭발적 능력(두란노)>이라는 책에는 찬양할 때 손을 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거기 보면  손을 드는 일은 ①주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성경적인 방법(시 63:3-4), ②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장 적당하고도 적극적인 자세(시 134:2), 그리고 ③영적인 갈급함과 ④하나님께 대한 항복 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밤에 성전에 머물러 있던 순례자들은 정말 간절하게, 주님께 감사와, 경배와 간절함과 항복을 사모하면서 손을 들고 기도했고, 또 손을 들고 찬양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밤에 무엇을 하나요? 특히 우리의 ‘인생의 밤’에, 즉 인생이 경험하는 고난과 고통, 힘든 삶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인생의 밤은 사실 ‘영적인 밤’이기도 합니다. 밤이란 영적인 침체 기간이요, 밤이란 힘든 시간입니다. 말 그대로 앞이 캄캄해지지요. 

이런 때에 대부분 사람들은 낙심하거나 절망합니다. 특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인생의 밤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아니 노래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지요. 도리어 신세타령을 합니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 불평을 합니다.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인생의 밤에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고, 성소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기도했고 또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이처럼 “인생의 밤에 노래한 사람들!” 하면, 금방 떠오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케도니아 지경의 첫 성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그곳으로 오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갔습니다. 그렇게 간 빌립보에서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에게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들이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는데, 그로 인해 여종의 주인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어 시 당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성을 소란케 한 죄’와 ‘로마 사람의 미풍양속을 해친 죄’로 강제로 옷이 찢겨져 벌거벗겨진 채로 수없는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겨우 목숨 만 붙어있을 정도로 심하게 매를 맞은 후, 더럽고 음산한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피투성이 발에는 묵직한 차꼬까지 채워졌지요. 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 지독한 고통의 밤에 두 사람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올렸습니다. 그 찬양은 험악한 죄수들을 감동시켰고, 심지어 땅까지 감동을 받아 흔들릴 정도의 찬양이었습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잠겨있던 감옥 문이 다 열려졌고, 모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차꼬까지 벗겨졌습니다. 이렇게 밤이라 어둡고, 지하 감옥이라 더 어두운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가 부른 찬양이 그 어두움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거기다가 ‘감옥 소란과 죄수 탈주’를 예상하고 죽으려던 간수가 주님을 영접함으로 그와 그의 가족의 밤이 낮으로 변하는 역사까지 일어났습니다.
  
“하라자끼 모모꼬”라는 일본의 어느 개척교회의 목사의 사모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도와 열심히 사역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악성 폐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자신이 악성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그 사모는 노트 두 권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죽기까지 44일간의 투병일기를 썼습니다. 그 투병 일기가 책으로 인쇄되어 수많은 일본인들을 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하라자끼 모모꼬”는 바로 그날의 일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내 마음은 주를 경배하며, 내 영혼은 내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노라. 오늘이라는 날, 1978년 6월 28일을 나는 분명히 적어 놓아야만 하겠다. 오늘은 내 길지 않는 생애에 있어서 획기적인 날이 되었다. 나의 생애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삶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난 7월 30일, 교회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교회를 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교회에서 성도들이 드리고 있을 예배를 상상하며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내 신음이여, 내 찬미의 노래가 되어라. 

  내 괴로운 숨결이여, 내 신앙의 고백이 되어라.
  내 눈물이여, 내 노래가 되어라. 주님을 찬양하는 내 노래가 되어다오.
  내 병든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숨결이여, 호흡의 곤란이여, 기침이여,
  내 열이여, 땀이여, 내 숨결이여 최후까지 내 찬송이 되어라.” 

많은 신앙인들이 대부분 ‘낮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탈 없고,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며, 소원하던 것들이 다 이루어지면 노래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밤이 되면 노래하지 못하지요. 도리어 찬양하던 입술에서 원망과 저주가 쏟아져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참 신앙인은 밤에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노래하십시오. 밤의 두려움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실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감사와 찬미의 노래만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고,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꽉 막혀 절망뿐인 어두운 밤. 그 처절한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 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밤에 부르짖는 기도와 밤에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밤에 성전에 머무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밤에 성전에 머문 사람들, 특히 인생의 밤에 성전에 머물러 기도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3절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순례자들은 밤에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인사를 받은 제사장들은 마치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아론의 축도처럼 순례자들을 향하여 축복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손을 들고 하는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찬송을 그냥 듣지 않으십니다. 그분을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축복의 선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복은 어디에서 받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시온에서…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는 통로가 시온이라는 말씀입니다. 집에서 수돗물을 받으려면 수도관이 수원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원지에 물이 넘쳐도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물은 한 방울도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을 받아 마시려면 반드시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복을 받는 수도관 같은 통로가 바로 시온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오늘 여러분에게 시온은 무엇입니까?

➊ 시온의 문자적인 뜻은 “언덕”, 혹은 “성채”입니다. 그 시온 언덕에 성전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온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시온 성을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렀지요.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이 시온, 즉 예루살렘을 통하여 신령한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기독교인들, 천주교인들, 심지어 회교도들까지도 시온 성 즉 예루살렘을 사모하여 성지순례하기를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또 아예 시온 성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고 있습니다. 

➋ 그러나 여러분, 시온은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로서의 시온은 무엇을 말합니까? 昇天하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머물러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성령 시대의 시온은 곧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이나 ‘예배드리는 예배당’ 정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말라죽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교회를 떠나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성도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08장 3절,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 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여 봉사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각양 은사와 선물이 교회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장하는 교회를 연구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성장하는 교회에는 그 교회를 오래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라고 아픔과 위기가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교인이라고 교회가 항상 좋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든든하게 지키고 섬긴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헌신한 사람들의 사업이나 자녀들이 다 잘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역시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요? 

시편 84편 10~12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또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어주시고,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처럼 교회를 섬기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계신 이 교회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앉은 자리가 복 받는 자리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복을 누리면서 그 풍성함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멀린 캐로더스(Merlin R. Carothers) 목사는 찬송의 능력을 아는 사람입니다. <찬송생활의 권능(Power in Praise)>을 비롯하여 <찬송생활의 응답>,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라는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책들에서 강조한 것은 “있는 그대로 감사하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설사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찬송하라”입니다. 

한 번은 어떤 부인이 캐로더스 목사를 찾아와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일하는 딸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캐로더스 목사는 “함께 기도하게 되어 기쁩니다. 딸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하면서 기도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감사라니요? 내 딸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목사님은 성경을 찾아 하나 하나 보여주면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로 노래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니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러자 그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식으로 역사하시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일이기에 믿고 감사로 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그 밤에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딸이 일하는 나이트클럽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댄서인 딸에게 “예수님은 참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왜 당신은 제게 그런 말을 합니까?”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나이트클럽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이트클럽에 들어가 춤추는 댄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는 말씀을 전하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 딸은 “주님이 주시는 영생을   저도 받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회개하여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지금 인생의 밤을 만났습니까?  시련의 밤에 처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들리도록 힘껏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노래하십시오.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라도 노래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적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로,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밤에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십니다.
  셋째로, 밤에 성전에 머무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낮의 기도와 찬송보다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밤에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고 복 주신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대로 행하고, 이 말씀대로 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두 손 들어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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