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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영혼의 동지 (렘 3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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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동지(렘 32:1-15)

유다 멸망 직전

오늘 주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받으려면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시드기야 왕은 유다의 마지막 왕이다.  바벨론은 그가 보는  눈앞에서 왕자들을 죽였다.  그리고는  왕자들이 죽는 것을 본 그 두 눈을 빼고 포로로 끌고 갔다.  (두 눈을 뺀다는 것은 완전 패배의 상징이었다. 삼손도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이 빠졌을 때, 블레셋은 그를 잡아 눈을 뺐다.) 

오늘 읽은 말씀의 시대 상황은 유다가 멸망 직전이다. 그 상황을 왕하 25,1 이하는 이렇게 알리고 있다. 

(왕하 25:1-4, 바른) 『[1] 시드기야 통치 제구년 시월 십일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과 그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고 그 성 둘레에 포위담을 쌓으니, [2] 시드기야 왕 십일 년까지 성이 포위되어 있었으며, [3] 사월 구일이 되자 그 성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의 백성들에게 먹을 식량이 떨어져 없었다. [4] 성벽이 뚫리자 모든 병사들이 밤중에 왕의 정원 옆 두 성벽 사이에 있는 문을 통해 도망하였는데 성을 에워싼 갈대아 사람들의 포위망을 피하여 아라바 길로 달아났다.』

2절의 ‘에워쌓다’는 말은 간단히 지나갈 말이 사실 아니다.  원문은 ‘자루 안에 넣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성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무려 2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누구도 성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 말은 밭이 있는 들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니, 농산물 등 생필품을 조달할 수 없었다. 식량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고, 백성을 지켜야 할 군인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또한 지금 유다의 상황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다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바벨론(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애굽(나일강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유다의 ①요시야 왕은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올라가는 길목 곡창지대 므깃도를 지키다 전사한다(왕하23,29).  요시야의 아들 ②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지만 바로 느고는 그를 유배 시킨뒤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쳐 부른다(왕하23,33-34).  

여호야김 8년에 이번에는 바벨론이 침입을 한다(바벨론 1차 침입). 여호야김은 3년 동안 섬기다가 배반을 하니, 바벨론은 이스라엘 주변 속국에게 유다를 치라고 명령하여 여호야김 왕이 죽는다(왕하24,1-2).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 ③여호야긴이 18세의 나이로 왕이 되지만,  석달 만에 바벨론이 재차 침입하여(바벨론 2차 침입) 왕과 함께 인재들과 용사들을 포로로 잡아 가고, 왕궁과 성전의 금은 보물들을 빼앗아 간다(왕하24,8; 13-1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④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친다(왕하24,17).  그리고 오늘 본문 바벨론은 3차로 유다를 침략하여 1년 넘게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 본문 1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한 것이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판과 나일 문명 판이 만나 지진이 나듯,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경제, 정치, 군사, 문화적인 위기를 격고 있다.  거기에다,  하나가 되도 부족한데 남북은 갈라져 더욱 위기는 더해가고 있다. 
개인과 가정으로도 입시, 취업, 건강의 위기와 달려갈 꿈도 찾지 못한 답답함도 있다.  위기인 것은 분명한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이 임해있다.  하나님 말씀은 진정한 위기 대처 능력이 된다.  시 107:20은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보낸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이  고침받고 위기를 이기는 비결이다. 

1. 하나님 말씀으로 되돌아 봄

우리의 신앙 중에 경계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맹목적 신앙과 기복 신앙이다.  
맹목적 신앙이라 함은 좋은 것이라고 하면 덮어 놓고,  앞 뒤 안 가리고 먹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는 ‘맹’하면서  듣기에 좋고, 입에 달콤하여 좋고,  몸이 편해 좋은 것만 찾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시위대(경배대) 뜰에 갖힌 것은 듣기에 아픈 소리- 하나님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다.  3절부터 보면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라...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으로 끌려 가리니,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을 내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우리들이 하나로 뭉쳐 싸우며 반드시 이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레미야는 왕과 권력자들이 말해 주기를 원하는 것을 말했다면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나라가 망해 포로로 끌려 가지 않을 것이다’, 고 말했다면 환영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의 것들을 내려 놓는다. 말씀 앞에 자신을 되돌아 본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연합하여 아람나라와 싸우게 된다.  싸움에 나가기 전에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 보자고 한다.  아합이 선지자 400명을 모으고 물으니 “올라가소 주께서 왕의 손에 붙이리이다” 고 대답합니다.  여호사밧은 이외에 하나님 말씀을 물을 만한 선지자가 또 있지 않느냐고 말하니 아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상 22:8, 개정) 『...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결국 전쟁에 나가는데,  유다 왕에게만 왕복을 입게 하고 자신은 변장을 하고 각각 병거를 타고 출정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무심코(개역-우연히) 활을 당겨 쏘니 이스라엘 왕의 갑옷 이음매- 틈새에 맞아 부상을 입는다. 피하여 치료하려고 하지만, 싸움이 맹렬하여 도망가지도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고 피를 계속 흘리면서 싸우다가 병거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가 되도록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된 것인데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왕상 22:38, 바른) 『사람들이 병거를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씻으므로, 개들이 그 피를 핥았는데, 그곳은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 말씀대로 받은 것이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 앞에 죄 때문이다.  (왕하 24:3-4, 바른) 『[3] 참으로 이 일이 유다에게 이루어진 것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이니, 므낫세가 행한 모든 죄악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돌리셨기 때문이다. [4] 또한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무죄한 피로 예루살렘을 가득 채웠으므로, 여호와께서 용서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오늘 본문에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읽으면  ‘시드기야는 내가 내리는 벌이 끌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지팡이만 돌보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막대기도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 23편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노래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낮아져서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보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기복 신앙도 마찬가지다.  복만 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이 있기 전에 하나님 말씀에 부합한 삶이 먼저 있었음을 말씀한다. (롬 8:28, 바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 하나님 말씀으로 새로운 희망을 가짐

하나님은 맹목적인 희망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사람에게 듣기 좋게 하는 것으로 소망을 삼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희망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신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할 것, 이라고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29장 4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렘 29:4-6, 개정)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나라는 잃어버리지만 포로로 잡혀가서 농사짖고 시집 장가 보내고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라!”  그리고 70년(근신의 기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 올 것인데, 그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준비는 렘29,11절 부터이다.  

(렘 29:11-13, 개정)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떠났던 그 마음을 회복하여 온 맘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의 희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위기의 진정한 반전은 하나님께 있다.  모든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다시 세우는 그 곳에 위기가 기회가 된다.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곳에서 갈함을 채워 줄 생수가 터진다. 

예레미야는 당장 손해가 나도 이를 확신하며 하나님 말씀을 실천한다.  본문 6-7절. 예레미야는 ①몇 개월 뒤, 나라가 멸망할 터인데, 밭을 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부도날 회사에 투자하라는 말하고 똑같다. ②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 4.8KM에 있는 들이다.  성이 바벨론에게 1년 넘게 포위되어 있어 갈 수도 없는 곳이다.  철거될 집을 사라고 하는데, 그 집에 갈 수도 없는데 사라는 것이다.  ③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밭을 파는 사람이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다.  사기를 사촌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④은금이 귀한 시대에 자그마치 은 50돈을 감옥에 갇혀 있는 이에게 판다.   여러분은 사겠는가? 

예레미야는 산다. 증서까지 쓰고 봉인을 하고 증인까지 세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예레미야는 당장에 손해가 나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순종하며 지켰다.  또, 그렇게 함으로 죄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15절. 고국에 돌아와 다시 이렇게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말로만 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먼저 솔선수범하는 것을 사람들은 따라 온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하여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향력 있는 사람은  당장 손해가 나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3.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눌 사람 만남

백성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  소망의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전할 수가 없다.  바로 이 때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한 신앙과 영혼의 동지가  있었으니 바룩이다(12절). 

신앙생활의 복은 고난이 와도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눌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다.  만남의 축복은  돈 많이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같이 위대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바룩은 그 전에도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하여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적어 대신 백성에게 전했다. 

(렘 36:4-6, 개정)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5]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6]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삼겹줄이 끊어지지 않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들이 서로 하나님의 말씀을 맞잡아 들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난다.  이 세상에 가로막을 자가 없다.  서로 이런 기쁨을 누리는 영혼의 동지가 되자!

하나님 말씀으로 위기를 이기라

세계 무역 센터를 비행기로 충돌한 9.11 테러는 297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빌딩 93~101층 중 8개 층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가 쓰고 있었다.  여기에는 미국 딜로이트 전체 직원 2400명 중 반 이상이 근무했다.  그런데 단 한명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무역 센터에  9.11 테러가 있기 전에  맞은 편에 있는 세계 금융센터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딜로이트 회사가 입주해 있을 때,  작은 폭탄 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빌딩은 혼란에 빠졌고  일시에  사람들이 대피를 하면서  딜로이트 직원들은 400m 높이의 사무실에서 계단으로 밖에는 피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계단은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차게 되었고  1층까지 내려 오는데에는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의 CEO는 ‘다시 세계무역센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고 이사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다른 사람들은  대피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설마 이런 일이 또 있겠어?” “설마 진짜 위험한 순간이 오겠어?” 하며 지나쳐 버렸다.   딜로이트는 비행기 충돌 테러를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를 파악하고 적절히 대항함으로  12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생명을 구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을 이기는 지헤요 힘이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경고가 들어 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안전이 들어 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희망이 들어 있다.  내 영혼의 동지인, 하나님 말씀과 또한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눌 사람을 갖자!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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