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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0: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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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0:22-33)

   
영국의 한 목공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청년이 예수를 소개받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면서 사람은 인생을 참으로 의미 있고, 소중하며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였더니 알아주는 목수가 되었고, 바라는 소원대로 가구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돈도 벌게 되었고, 명예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공장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 산책하다가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아름다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슴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기가 걸터앉은 바위가 자기를 평안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있어 자신을 평안히 떠받쳐주고 있는 바위와 같은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행복한 근거는 돈과 명예도 건강도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살아계셔서 자신을 인도하시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가 바로 우리가 부른 찬송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라는 찬송시입니다.  1834년 에드워드 모트(Edward mote)라는 분이 쓰신 찬송입니다.  이 시의 제목은 solid rock  ‘단단한 바위’라는 뜻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이 시는 춘원 이광수 선생이 번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가사를 보는 순간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우리말로 아름답게 번역해주었습니다.  

에드워드 모트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고 가구점을 운영하고 회사를 경영하는데, 아주 잘 되었습니다.  기업은 점점 더 융성해져가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열망보다는 주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천국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는 55세 되던 해에 기업과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예배당을 건축하고 침례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20년 이상 주의 사역에 힘쓰다가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치우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나의 목자임을 알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남은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며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주님을 목자로 알고 우리는 주님의 양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들이 아닌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의 귀한 말씀이나 행하신 능력을 부인하고, 왜곡하고 비판하려고 달려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셨는데 때는 겨울이었고, 수전절 기간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수전절이란 절기가 없었는데, 신약에 와서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등장합니다.  유대력으로 9월을 ‘키슬레브’라고 합니다.  키슬레브 25일이 ‘하누카’라고 부르는 수전절입니다.   수전절이 되면 전날 전야부터 8일간 촛불을 키는데, 매일 초 하나씩 더 밝혔습니다.  

주전164년 9월 12일, 우리 달력으로는 12월 초가 됩니다.   유다 마카비우스가 시리아의 군대를 물리치고 이방신상과 돼지피로 더럽혀진 제단을 헐러내고 새로 만든 번제단에 희생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날을 기념하는 절기가 수전절, 하누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정화하고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날에 찬송하였고 비파와 퉁소와 꽹과리를 연주하며 춤을 추며, 8일 동안 제단 봉헌 축제를 즐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전절이 되면 영웅 유다 마카비우스를 생각하며 메시아의 시대를 사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가 거의 끝나갈 무렵, 겨울이었고, 수전절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솔로몬 행각에 다니시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솔로몬 왕이 제1차의 성전을 건축할 때에 지었던 성전의 부속 건물인데,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의 공격에서도 용케 보존된 건물이었고, 제2성전을 지을 때에도 남겨놓은 건물로 이방인의 뜰 동편에 있었고, 지붕으로 덮여 있는 주랑이었습니다.  행각은 비를 피하기 위해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현관과 같은 것인데, 큰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주랑이었습니다.  이때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었기에 예수님이 비를 피하여 주랑으로 다니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면서 말합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고 하면 속 시원하게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해보라고 합니다.  언제까지나 마음을 조이게 만들고 혼란하게 하느냐 말입니다.  “의혹하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아이로’라고 하는데, 들어 올리다, 빼앗아간다, 채어간다는 말입니다.  혼미하게 하고 홀린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 터무니없는 말 같기도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단호하게 그리스도라고 밝히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해보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보면서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은 과연 그리스도이신지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당신은 이미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정리하면서 말씀을 전개해야겠습니다.  


1.  이미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와 ‘아니오’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메시아관은 유대인을 속박하는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조상 다윗왕의 시대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정치적이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니오”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분명 메시아-그리스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많은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구세주이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요8:24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에 ‘그’라는 말을 작은 글씨로 써놓았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에고 에이미’- 'I am that I am'  KJV에서는 ‘I am he’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신성의 대명사라고 부르는 ‘야웨’라는 말을 번역하는 말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을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에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요8:24에서, 28절에서 58에서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요8:28에서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그인 줄 알고”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8:58에서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여기서는 “내가 있느니라” 이 말씀이 바로 ‘에고 에이미’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는 중에 이미 몇 번 당신이 하나님으로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나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간접적인 증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는데, 그들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요4:42에서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말씀만 듣고도 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동안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하셨습니다. 

25절 하반절로 26절에서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와서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가 분명하다면 밝히, 속 시원하게 그리스도라고 밝히 말하라는 재촉에 당신의 행하신 일들을 보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말로 증거를 해도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만 그리스도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바람을 향하여 꾸짖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오병이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독자 청년, 그리고 죽어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보면 당연히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예수님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 때에 우리 주님은 “너희는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11:5-6)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었는데, 우리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맹인을 보게 했고,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셨고, 천의 형벌이라고 하는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고, 듣지 못하던 사람의 귀를 열어주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런 증거를 보면서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까?

기적이란 계시의 사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고 하여 표시, 확증, 증명, 증거, 전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셨을 때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요6:14에서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라는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음의 눈이 닫히고 보니, 예수가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인지, 사탄의 교란인지 구별하지 못하였습니다.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유대나라에서 양들을 기르면서 밤이 되면 양의 우리를 공동으로 만들거나 동굴 같은 곳에 수많은 양들을 몰아넣고 함께 자게 합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목자들이 와서 자기의 양떼를 불러냅니다.  목자가 자기 양들을 부릅니다.   그러면 어쩌면 정확하게 그 목자의 양들만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풀을 뜯으러 따라나섭니다.  또 다른 목자가 와서 자기 양들을 불러내면 그 목자의 양들만이 따라나섭니다. 

우리 주님을 말씀으로 이미 여러 번 말씀해주셨고, 또 능력을 보여주셨는데, 주님의 양무리가 아니기에 믿으려고 하지 않고, 들어보려고 아니하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사랑하시는 양들이요,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양의 문이 되십니다. 우리 주님은 오신 것을 양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 풍성한 꼴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0:10에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다시금 알아듣게 말씀하십니다.  


3.  주님은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28절 말씀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노니”라는 말씀은 현재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미래에 대한 약속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고 지금부터 영원히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멸망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손, 능력의 손,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그 손에 붙잡혀 있는데, 아무도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주님보다 더 강하신 분이 아니라면, 주님이 내 것이라, 내 형제가, 내 친구라고 붙잡아주신 그 손에서 어떻게 빼앗아갈 것입니까?  우리 주님의 손은 창조의 손, 사랑의 손, 심판의 손, 피 흘리신 못 박히신 손, 능력의 손, 기적의 손입니다.  

또다시 다른 말씀으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9절입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그 구원은 아버지 하나님으로 시작된 것으로 우리를 만세 전부터 예정하고 부르시면서 아들에게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 우리의 영생을 아버지가 보장하시는데,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봄철이 되어 아버지와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소풍을 갑니다.  어린 아이가 한 손은 엄마가 잡아주고, 또 다른 한 손을 아빠가 잡아주어 함께 길을 갑니다.  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든든한 엄마와 아빠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내가, 우리가 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붙잡고 동행한다, 내가 너를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니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의 손,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잡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입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 중에는 마지막 ‘성도의 견인’이라는 신학적인 이해가 있습니다.  The Security of salvation - 구원의 안정성, 성도의 견인, 믿는 자의 궁극적인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시작한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부르시고 믿음주시고, 영생 주시고 그 구원을 끝까지 보증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함을 보여주신 사건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사건입니다.  

엡1:13-14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치시고, 기업의 보증이 되어주셨습니다. 

고후1:22에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시고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다고 도장을 찍으십니다.   인을 친다는 말은 도장 찍어 주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어주셔서 항상 이기게 하시고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4.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30절 말씀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자되시는 아들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다고 하시고, 다시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시더니, 드디어 우주적인 선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신(神)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14:9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가 성자요, 성자가 성부라는 말이 아니라, 성부는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는 성부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면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삼위일체론은 한 분 하나님 안에 다른 두 하나님이 침투하여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태를 설명하는 교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니,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신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최후에 재판을 받으실 때였습니다.  

막14:61에서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주님이 행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풍성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신앙을 굳게 잡아 큰 확신 속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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