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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와 용서 (삼상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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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용서 (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야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야훼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장 22∼23절

죄와 불순종 회개할 때 임하는 구원의 역사
나부터 시작한 구원의 불길 이웃과 사회까지
진정한 회개와 용서 통해 형통함 이루어야

이 세상 사람 중 형통한 삶을 원치 않는 이가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잘 되기를 원합니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학교에서는 만 18세 이상 되는 남녀 1605명을 대상으로 ‘한국종합사회조사’를 실시하면서 행복의 조건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행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젊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남보다 잘 사는 것’ 그리고 ‘많이 배우는 것’ 그 뒤를 이어 그 다음 ‘종교를 갖는 것’, ‘가족과 여가를 보내는 것’ 등을 행복의 조건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다 있다가 없어질 것입니다. 영원히 있는 것은 하나님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영원한 행복이 다가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될까요?

 
 1. 자기의 우상화를 회개


우리는 제일 먼저 자기를 우상화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 지혜와 총명과 내 노력과 힘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주님께로 오라 하시고 우리를 쉬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도 자기를 의지하고 삽니다. 주님은 지극히 적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극히 큰일까지 와서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큰 문제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적은 문제도 주님께 와서 맡기면 돌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도우지 아니하시면 끝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우상화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지혜와 총명의 근본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맹을 자랑치 말고 부함을 자랑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이 땅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을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해도 해도 안 될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의지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와 불의와 추악한 일을 했을지라도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화해해 주시고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그 말은 ‘길을 바꾸다’, ‘되돌아오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 중심에 있는 죄에 대한 영적 자각으로 마음이 변화되고 생활을 돌이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에 대해서 시편에서는 ‘통회하는 것’이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죄를 자복하는 것’이 회개라고 말했고, 에스겔은 ‘죄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고, 호세아는 ‘야훼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고, 스바냐는 ‘야훼를 찾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회개란 말을 ‘메타노이아’라고 하는데, 마음의 변화와 돌이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한다’라고 할 때에는, 그저 마음으로만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 깊은 책망과 가책으로 죄에서 180도로 생활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로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찰스 피니는 “회개란 나의 의지와 느낌과 삶을 하나님께 맞추어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중심으로 살아오던 것을 돌이켜 하나님 중심으로 그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내 뜻대로 살던 것을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것으로 바꾸는 그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지금까지 불순종한 죄를 회개하십시오.

 
 2. 불순종을 회개


지금 잘못한 것 뿐 아니라 지금까지 불순종하고 살아온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우상숭배에 열심이었고 폭력과 잔인한 악행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늘 침공해 들어오고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에 차라리 니느웨가 멸망되기를 원했습니다.

니느웨 가는 길 정반대에 다시스가 있습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지중해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것이 다시스로 가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지중해를 항해하다가 갑자기 대풍랑이 와서 배가 파선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배가 파괴될 지경에 이르자 사공들이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지고 배의 기구도 던졌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서 선실 밑창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피해서 배 밑창으로 내려가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 세계 어느 곳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옛날에 부산에서 제가 잘 아시는 분을 그 부인이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에 모시고 나왔습니다. 예배 중 그분은 담배를 피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다가 예배를 다 드리고 신속히 집에 들어오자마자 담뱃불을 붙였습니다. “여보, 주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왔는데 왜 담배부터 피웁니까?” 그러니까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는 지붕이 있어서 하나님이 못 내려 보신다. 우리집은 지붕이 아주 두껍게 되어있다” 아무리 지붕이 두꺼워도 우리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기가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람처럼 공기처럼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공들이 배가 파선지경에 이르니까 우리 중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왔는지 제비를 뽑자고 했습니다. 제비를 뽑아보니 요나입니다. 요나 1장 9절로 12절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야훼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안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쉽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죽으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죽어지지 않습니다.

그 후 요나는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예비했다가 요나가 떨어지는 것을 덥썩 삼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도 주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우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이라 반드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그 기회를 갖고도 거역할 때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불순종하면 큰 고난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고통이 계속하면 회개의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육지에 가서 요나를 토해놓게 하십니다. 해변가에 와서 웩하고 토해 버리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외칩니다. 요나가 더 힘차게 외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3.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있다가 나오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강한 믿음으로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 3장 1절로 5절에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야훼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핍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자 온 국민이 다 회개를 했습니다.

임금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 전체가 다 삼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으며 통회하고 자복하고 금식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고 돌이키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늘나라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니느웨의 멸망을 기대하고 온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이내에 멸망한다고 해놓고 난 다음에 그는 성읍 동쪽에 성벽 한 곳에 천막을 치고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햇빛이 강하게 비취니까 머리가 뜨겁지 않습니까? 하루저녁 자고 나니까 박넝쿨이 나서 잎사귀로 초막을 덮었으니 시원합니다. 박넝쿨이 하루저녁에 돋아나서 그렇게 큰 잎사귀가 펼쳐지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기적으로 박넝쿨을 요나의 머리 위에 펼쳐 놓으니까 요나가 그 박넝쿨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햇빛이 비취는데 박넝쿨이 쭈굴쭈굴하게 말라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벌레가 그 줄기를 씹어버려 박넝쿨이 말라버렸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벌레까지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세밀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큰 일만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것이 아니라 벌레도 예비하십니다. 작은 벌레도 예비하사 이끌어 가서 박넝쿨을 씹어버린 것입니다.

요나 4장6절에서 8절까지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 4장 10절로 11절에는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나님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박넝쿨 하나가 생겼다가 말라지는 것도 화를 내고 야단법석을 하는데 이 니느웨 성에는 어린 아이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12만명이나 있다. 짐승들도 많다. 그들이 멸망받는 것을 내가 원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비록 타락했어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자기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형상인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나님으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천당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존재들인 것입니다. 사람은 귀합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지옥에서 불탈 것을 생각할 때 괴롭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렸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귀한 존재가 아니면 주님이 목숨을 대신해서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이 못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다 잘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갈보리 십자가를 쳐다봐야 됩니다. 그 십자가를 쳐다보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와 불의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이 청산되어 버린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삶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믿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가지고 있는 보배는 갈보리 십자가인 것입니다. 어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부귀나 영화도 십자가와 바꿀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축복의 그늘이 됩니다. 거기에 용서가 있고 거기에 거룩함이 있고 거기에 병고침이 있고 거기에 축복이 있고 거기에 영생복락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생명의 근원이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십자가를 의지하면 모두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5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의 웸바라는 마을에 놀랄 만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한 마을 전체가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부흥이 한 여인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회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뜨겁게 기도하는 가운데 여자 성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를 제일 많이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의 성미를 몰래 가져다가 쓴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회 이후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의 것인데 내가 가져갔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한국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어려울 때 교회 성미를 훔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여인의 고백 후 다른 한 여인이 성도들 앞에 나서며 “저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 집 계란 한 줄을 주인이 모르는 때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이어서 한 남자 성도가 “저는 서점을 하고 있는데, 오래 전에 선교사님의 집에 갔다 오면서 선교사님께 말하지도 않고 성경 한 권을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회개하며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모두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거나 잘못된 것을 고쳤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서로 잘못을 빌고 용서하며 마을 전체가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부흥의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와 불순종을 회개할 때, 개인 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회개했는데 회개의 불길이 이웃에 붙어 나가서 온 마을 전체가 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나 혼자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회개의 불길이 이웃으로 번져 나가서 온 교회, 온 나라가 회개할 수 있는 은혜 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한이없이 많으신 분이라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회개하지 않으므로 망하고 버림을 받습니다. 회개하면 결코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인 강도가 예수님 우편에 매달려 마지막 목숨이 끊어질 때 “주여, 주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회개도 큰 회개가 아닙니다. 

주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해 달라는 회개의 시작을 말했을 때 주님이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당장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주님 앞에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상 회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의인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도와주시옵소서.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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