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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피신 (마 2: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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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피신 (마 2:13~23)


본문의 내용은 아기 예수님께서 헤롯의 칼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셨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셔서 나사렛이란 시골마을에서 사셨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 가실 때 있었다는 전설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헤롯의 병사들에게 쫓기던 요셉과 마리아는 저녁이 되어 한 동굴 속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바깥 날씨는 매우 추웠고 땅 바닥에는 하얀 서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 때 그 동굴에 살고 있던 거미 한 마리가 아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거미는 이 추운 밤에 아기 예수님을 따뜻하게 해 줄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동굴 입구를 거미줄을 쳐서 막기로 했습니다. 헤롯의 군대는 그 시각에 어린 아기를 찾아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 동굴 입구에까지 왔습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군인들의 소리와 함께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자. 이 동굴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이 거미줄을 봐라. 누가 들어온 흔적이 없지 않느냐?”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크리스마스 추리를 장식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금줄 은줄 장식입니다. 이 금줄과 은줄이 그 때 동굴 입구에 쳐 있었던 하얗게 서리가 덮인 거미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경학자 윌리암 버클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3가지 반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째 반응은 무관심입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나신다는 말씀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경배입니다. 동방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찾아 온 박사들과 한 밤 중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세 번째 반응은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대표적으로 헤롯왕이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 지경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다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받는 교훈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에 사로잡힌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면 국민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미치면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당시 베들레헴은 기껏해야 인구가 20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두 살 미만의 어린아이 중에 남자 아이만 센다면 20, 30명쯤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헤롯은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아무 죄 없는 아기들을 20, 30명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마을이 작은 마을이었으니까 그렇지 큰 마을이었다면 희생자는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975년 크메르루즈라는 무장단체가 수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크메르루즈 군은 3년 7개월 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약 200~30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이 때 지도자가 폴포트라는 사람입니다. 그 정신병자와 같은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처형 되었던 것입니다. 크메르루즈군은 캄보디아를 공산화한 후 농업적 공산주의 사회를 주장하면서 반대세력과 지식인들을 학살하고 반동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세워지면 나라가 부흥하고 백성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다윗이라는 한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강해지고 백성이 평안해집니다. 

저는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무자비하게 노예를 다루는 주인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예들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마치 짐승과 같은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제도 중에 가장 마귀적인 제도가 노예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노예제도를 폐기시킨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 링컨 이라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이 좋은 대통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상에 존재하던 가장 악마적인 제도를 없애기 위하여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지도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 국민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뽑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그가 앉아있는 자리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지도자가 세워지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면 그만큼 악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강 반포대교 남단에 거대한 인공섬 3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엔터테인먼트 공간, 레스토랑, 컨벤션홀, 수상레저 시설, 미디어아트홀 등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 인공섬 건조 예산이 964억입니다. 유지비는 얼마나 들어갈지 모릅니다. 이 인공섬을 구상하고 추진하고 있는 사람이 오세훈 서울시장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그 인공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공섬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했다 잘못했다는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 시장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생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에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또 다른 교훈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요셉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애굽으로 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있습니다. 19-21절에 보면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헤롯이 죽었으니 일어나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요셉이 만약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했다면 아기 예수님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헤롯의 칼에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했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롬 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함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책을 쓴 존 번연은 개신교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갇힌 존 번연은 감옥에서도 너무나 경건하여 간수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간수가 그에게 와서 “시간을 드릴 테니 잠시 나가서 사모님과 아이들을 보고 다시 들어오십시오”라고 하면서 가옥에서 내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존 번연 목사님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내키지 않은 그는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간수에게 “당신은 허락했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아서 돌아왔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존 번연 목사님이 감옥에 다시 들어오자마자 왕이 보낸 사신이 감옥을 살피러 왔습니다. 이때 가장 놀란 사람은 간수였습니다. 왕이 보낸 사신이 돌아간 다음 간수가 존 번연 목사님에게 와서 “목사님, 이제 제가 목사님께 다녀오시라 마라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언제든지 다녀오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이 잠시 밖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집으로 가고 싶겠으며 가족들을 보고 싶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았으면 성령의 감동이 있어도 감동보다는 감정을 따라 갔을 텐데, 존 번연 목사님은 감정보다 감동에 순종해서 위험한 순간을 넘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기도의 줄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영적인 통신수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영적인 무전기인 기도의 무전기를 작동시켜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문경에서 탄광 갱이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갱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사망했는데 한 사람만 15일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그가 15일간 그 칠흑 같은 구덩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전화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선생님이 계속해서 전화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변을 버리지 말고 받아서 마시세요.” “구두를 찢어서 씹으세요.” “지금 우리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낙심하지 마세요.” “당신은 곧 구조될 겁니다.” “정신 차리세요.” 그래서 15일 동안 살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전화선이 단절되었으면 그는 구조되기 전에 절망하여 죽었을 것입니다. 

외부와 연결되는 소리가 들리니 희망을 갖고 산 것입니다. 사람의 소리가 들려도 희망을 가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음성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희망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데도 때로는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요셉도 그랬을 수 있습니다. 약혼녀가 임신을 해서 조용히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것과 마리아 뱃속에 있는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류의 구원자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끊어버리지 않고 아기를 받아드렸습니다. 그 때 요셉은 어떤 기대를 했을까요?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원자라면 아기를 받아드린 자기에게 그리고 자신의 집에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이 군사를 풀어서 아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서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지금도 타국생활이 수비지 않은데 그 때는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마귀가 분면이 요셉의 마음에 의심과 낙심이라는 가라지를 뿌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에게 계속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계속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서 상황은 좋지 않게 전개 되는 것 같아도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잘 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고 그 믿음으로 낙심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스텐리 죤스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전도하여도 사람들이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답답하여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텐리 죤스 선교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렸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햇빛이 그렇게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을 아무리 열심히 주어도 7년 되어야 사과를 맺지 않니?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그는 이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 일하여 큰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만약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했다면 인도에서의 선교사역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에 내려갔는데, 그것은 15절에 보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말씀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또 요셉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나사렛에 거했는데, 이 것 역시 17절 말씀대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가장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설교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가장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캄캄한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보화가 가득합니다. 인류 역사에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속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비도 마티’라는 스페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논문준비를 하려고 도서관에 가서 ‘히에로’라는 별로 유명하지 못한 18세기의 스페인 철학자의 논문을 찾았습니다. 그는 간신히 얄팍한 히에로의 논문집을 찾았습니다. 그는 논문을 몇 장을 넘기다가 종이쪽지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종이쪽지는 저자인 ‘히에로’의 유언장이었습니다. 이미 색이 바란 그 유언장에는 “이 책을 처음 찾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유언장에 기재된 재산을 주겠다.” 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유언장으로 재판을 해서 25만 달러(약 3억 원 가량)를 상속 받게 되었습니다. 그 논문 속에 그런 유언장이 숨겨져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만약 그 논문 속에 유언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람들은 서로 그 논문을 차지하려고 싸웠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함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숨겨진 보물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히에로의 논문 속에 숨겨진 25만 달러의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으므로 성경 속에 감춰진 온갖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또 다른 교훈은 다음세대를 차지하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 것입니다. 

사단은 헤롯을 통해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33년만 지나면 아기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놓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도 사단은 바로를 통해서 다음세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 모세도 죽을 뻔했습니다. 만약 모세가 그 때 죽었다면 80년 후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공헌을 했던 사람들 중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어린 시절을 경험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어린 시절에 죽었다면 그들은 인류 역사에 공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가의 미래는 다음세대에게 달린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교육에 힘써야 할 이유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다음 세대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 중에 하나는 저출산입니다. 다음세대를 책임질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죠. 
교회의 미래도 다음세대에게 달렸습니다. 지금의 기성시대가 가고나면 교회에는 다음세대가 남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세대 전도가 중요하고 다음세대 교육이 중요합니다.

가정의 미래도 다음세대에게 달려있습니다. 지금 나의 자녀들이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믿음의 아이들이라면 우리 가문은 장차 믿음의 가문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세속적이라면 우리 가문의 미래는 세속적일 것입니다. 가문의 미래가 아브라함의 가문처럼 믿음의 가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가정에 이삭을 세워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교회 나오는 사람의 55%가 스무 살 이전에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60세 이상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미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길거리 같고, 돌밭 같고, 가시밭 같아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음세대는 옥토입니다. 좋은 밭입니다. 다음세대의 마음의 밭은 부드럽기 때문에 말씀의 씨가 떨어지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는 최초로 백화점 개념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의 체신부장관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선한 일들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한국의 YMCA건물도 1908년 그가 지어주었습니다. 
그가 84세 때 주일학교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지난 75년 동안 주일학교에서 생활했습니다. 주일학교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되돌아 볼 때 주일학교로부터 받은 것에 비하면 아직 반도 갚지 못했습니다. 주일학교는 내 평생의 학교였고, 성경은 내 인생의 교과서였습니다.” 그는 9살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신앙교육을 받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갔던 것입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것은 미래의 리더들을 키우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양육하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미래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 중에서 목사님도, 대통령도, 장관도, 큰 사업가도, 훌륭한 선생님도, 세계적인 전문가도 나올 것입니다. 다음세대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한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 밖에 전도하지 못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나마 어린아이 한 명을 전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무능한 목사님으로 여깁니다. 물론 본인도 자신의 사역에 대해 낙심해 있는데 전도된 그 어린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제 꿈이 바뀌었어요. 저는 선교사가 될거예요. 제가 좋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그 아이의 신앙이 잘 자라도록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훗날에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는데 아프리카의 선교의 대부인 모펫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모펫 선교사의 사위가 리빙스턴인데 그가 모펫 선교사를 만나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모펫 선교사를 양육한 목사님은 어린이를 양육한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의 리더를 양육한 것입니다. 
다음세대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워너메이커는 체신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을 때 거절했습니다. 대통령이 그가 꼭 장관직을 수락해야 한다며 거절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워너메이커는 “저는 주일이면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러 갑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약속했는데 국사가 바쁘면 못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이 체신부 장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그러면 주일날 주일학교에 가서 가르치도록 허락해주면 하겠는가?”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분이 체신부장관을 지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다음세대 목양에 부르심 앞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달려가려고 합니다. 이 일어 성도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목양교사로 헌신해 주십시오. 목양교사가 되어서 반을 개척하십시오. 전도하고 양육하십시오. 
제가 지난주에 만난 평택에서 목회하시는 사모님의 교회는 주일교사가 없답니다. 아이들은 오는데 관리를 할 수 없어서 사모님이 “하나님 성도들이 교사로 헌신하게 해주세요”라고 눈물로 기도했더니 82세 되신 할아버지가 교사를 시켜달라고 사모님을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영혼구원입니다. 영혼구원에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복을 누리게 하시고 천국에서 상을 누리게 하십니다. 
다음 세대 전도는 어른 전도보다 쉽습니다. 하지만 다음세대를 전도했다고 어른을 전도해서 받는 상보다 상이 작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른을 전도한 사람에게나 다음세대를 전도한 사람에게나 동일하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또 다른 교훈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헤롯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왕의 자리였습니다. 그에게는 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 만큼 왕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베들레헴 지경에 살던 2살 이하의 어린 아기들을 다 죽일 만큼 왕의 자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헤롯은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 어머니와 아들까지도 죽인 비정한 인간입니다. 그가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악을 자행했기 때문에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그런 헤롯의 잔인함을 빗대어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개가 되는 것이 낫다”고 했다고 합니다. 
헤롯은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자기가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을 학살했는데, 자기가 죽기 직전에 고관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경기장에 모아놓고 자기가 죽는 순간에 처형하도록 하였습니다. 자기가 죽었을 때에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울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유대 땅 전역이 슬퍼하며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의 왕권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20절에 보니 그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며 지키려 했던 왕권을 놓고 죽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그것이 중요한 것일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은 구슬이나 딱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에는 옥상에 물탱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돗물이 약해서 우리가 살던 높은 동네에는 낮에 물이 올라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새 물탱크에 물을 받아놓았다가 낮에 아파트 주민들이 그 물을 사용했습니다. 물탱크가 있던 공간은 상당히 어두웠고 물탱크 옆쪽으로 어린이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데 그 통로 안에는 딱지를 숨겨두기가 좋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박스를 두고 그 박스 안에 딱지나 구슬을 숨겼습니다. 또 그 당시에는 병뚜껑을 망치로 두들겨서 딱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곳에 병뚜껑 딱지도 숨겨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에게는 물탱크에 숨겨두었던 구슬이나 딱지 그리고 병뚜껑 딱지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것 때문에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고,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면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50을 바라봅니다. 세월이 4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딱지에 대한 욕심은 부질없는 욕심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 시절에 부렸던 욕심이 부질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지금 이 세상에서 부리고 있는 욕심들 중에 부질없다고 느끼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제가 40년 전에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병뚜껑을 주어서 망치로 두들기며 딱지를 만드느라고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래를 위하여 열심히 공부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것보다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도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점검해 보시기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세계에서도 중요한 일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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