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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심 대신 기쁨을 (렘 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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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대신 기쁨을 (렘 31:1~14)


지난 목요일 천안함 선미 인양 광경과 36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평택으로 이송되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가족들뿐 아니라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지는 우울한 하루였다. 

또한 두 동강이로 끊겨진 천안함의 파괴된 모습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는 날까지 반목과 대립과 갈등이 지속될 것이며 제2의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남쪽의 교회들이 백두산 수양관으로 수련회 가고, 평양으로 수학여행가고, 북한 교회는 지리산 수양관으로 수련회를 오고, 북한의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한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점점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주간에도 지구촌 안에서는 수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폴란드 대통령기 추락, 중국 지진, 아일랜드 화산폭발등). 

사건이 터지면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태를 수습하고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근원적인 해결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바닷가에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 때 빠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들은 운명적으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런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슬픈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이 사회 현상이나 인생에 대하여 논하긴 했어도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정치인들도 인간 살이에 복병처럼 나타나는 고통과 슬픔의 문제를 미리 막아주고 해결해 준 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했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애굽 바로왕을 만났을 때 바로가 야곱에게 물었다. ‘그대의 나이가 얼마인고?’ 그 때 야곱이 이렇게 대답했다. 

창 47:9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나이가 130세 였으나 시편 기자의 증거가 정답이다.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과 슬픔뿐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질병과 슬픔, 죽음과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눈물 흘리고 왔다가 눈물 흘리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자연인의 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지난 주간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는 중에 답을 찾게 되었다. 

렘 31: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슬픔을 돌려 즐겁게 하며,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슬픔과 근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롬 3:23). 

그러나 그 때가 되면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그렇다면 그 때는 언제인가? 
렘 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그 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때를 말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렘 30: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인 유다에 대하여 철저하게 징계하시기로 결정하셨다. 

바벨론이란 강대국을 도구로 사용하셨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70년 간의 노예생활에 처하도록 하셨다.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가혹할 정도의 징계이나 이 벌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1.하나님의 계획(1-6)

1)관계가 회복
렘 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의 실패, 징계의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에서 발단된다. 시내산에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깨졌다.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두번째 출애굽 - 안식을 얻도록 인도하심
렘 3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1.첫번째 출애굽은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2.두번째 출애굽은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
이스라엘을 향한 무궁한 사랑으로 그들으로 안식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3)새로운 창조 
렘 31: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다시 세우고, 다시 소고를 들게 하시고, 다시 포도원을 만들게 하실 것이다. 처녀 이스라엘이 아니라 실상은 음녀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처녀 이스라엘’이라 부르신다. 왜?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었기 때문이다.

4)예배의 회복 - 자발적 예배
렘 31: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이스라엘이 분단되었을 때 북왕국의 왕 여로보암은 유다와의 교류를 차단하기 위해 단과 벧엘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예루살렘에 못가게 막음. 그러나 그날에는 그 길이 열려 파수꾼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고 외치게 된다. 우상숭배와 형식적 예배에서 자발적으로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드리는 예배의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구약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 곧 신약교회로까지 확장된다. 

2.하나님의 궁극적 계획(7-9)

1)복음전파
렘 3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2)회개
렘 31: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3)하나님의 교회
렘 31: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

3.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1)선한 목자
렘 31: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2)풍요
렘 31: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3)근심 대신 기쁨을
렘 31: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4)온전한 예배
렘 31: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매인 사람과 풀린 사람이다. 매인 사람은 돈, 일, 명예, 쾌락, 사람, 죄에 매여 있어 평생을 끌려다닌다.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다. 풀린 사람은 자유자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자들이다. 더 이상 세상 것에 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 것의 허탄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풀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죄악에 묶여 있는 이스라엘의 멍에를 풀어주시기 위해 그의 백성들을 고난의 길로 몰아가셨다. 오늘날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며 원망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교훈>
1.하나님을 알고 신뢰하여야 한다.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 분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렘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2.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 진실한 회개
렘 30: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철저하게 무너져야함을 전제. 고름짜는 듯한 아픔을 통해 새살이 돋도록 하심.

3.교회 공동체를 통한 사랑 - 서로 위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 건설을 바라보는 예언적 메시지인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후 그들은 서로 주님의 손이 되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인내하며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것은 없다. 주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실 나라. 그 때가 되면 그곳은 완전한 사랑의 나라, 갈등과 다툼이 없고, 질병과 사고가 없는 나라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더 이상 없다. 
눈물 골짜기와 같은 세상. 사람을 보면 시험에 들기 쉽다.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고 믿음의 식구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면 더욱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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