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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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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이시라 (요일 1:1~10) 


서론  

요한일서의 첫 부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사이의 참된 교제에 대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거짓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1서의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어서 말씀을 전하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고, 말씀을 듣는 성도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시면서 이 말씀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새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I. 요한 일서의 서언 

1. 서신의 주제: 생명의 말씀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절의 말씀은 원문의 어감을 충분히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원문에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 우리가 들었던 것, 우리 눈으로 보았던 것,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졌던 것, 생명의 말씀”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1절의 말씀을 통해서 사도 요한은 이 편지의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주제는 바로 생명의 말씀입니다. 

2. 생명의 말씀에 대한 요한의 두 가지 강조점 (2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2절) 이 생명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그리스도의 선재先在설) 우리에게 나타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너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주제가 되는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한 가지는 그 분은 먼저 계신 분이시다가 성육신하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분이시다는 것과, 또 한 가지 사실은 이 생명의 말씀은 요한이 상상하거나 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생명의 말씀, 영원한 생명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그리고 주목해서 만졌던 것을 너희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요한의 선포의 목적 (3-4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하는 목적은 너희(복음의 2세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다음 세대)로 하여금 우리(사도 요한으로 대표되는 복음의 1세대)와 사귐이 있어서 주님의 교회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사도적인 믿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목격했던 이 사도들의 믿음을 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3a절)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 요한은 8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유일한 생존자로 그의 삶을 마무리하는 노년의 시절에 이 글을 쓰면서 기대했던 것은 그 다음 세대 역시 사도적 신앙을 견지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b절) 이 구절은 이전 번역이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개역한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명절 때 부모님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이듯이 요한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둘러앉아 있는 것, 함께 이야기하며 교제를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중심에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1서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님이 중심에 앉아계시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모이는 곳이 되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가운데 성도님들 서로 간에 사귐과 교제가 풍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4절) 편지를 쓰는 목적을 한 번 더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사도 요한과 복음의 1세대가 기쁨에 충만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많은 영문 번역을 보면 ‘우리’라는 표현을 ‘너희’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본에서는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고, 다른 어떤 사본에서 우리가 이것을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도 합니다. 둘 다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을 통해서 복음의 1세대도 기쁨이 충만하고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성도들과의 사귐도 회복하는 우리 성도들, 다음 세대들까지도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의 말씀을 설교를 통해서 함께 나누게 되는데, 제가 마음에 소망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성도님께서 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던 요한, 교회의 터가 되고 기초가 되었던 사도들의 말씀을 귀로 듣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님들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서로 간에 사귐이 풍성하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설교를 통해서 나누게 될 때 설교자와 듣는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여지기를 원합니다. 

II. 예수님에게 듣고 전하는 소식(5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1. 내용: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로움과 거룩함과 참됨을 강조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절) 사도 요한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첫 번째 소식은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며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시며 절대적으로 참된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 그 분의 속성에는 여러 가지 있음. 

그런데 사도 요한이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소개하는데 조금 이상한 것이 없습니까? 만약 제가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먼저 소개할 것 같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가장 널리 선포되는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유하시며 은혜가 한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이 먼저 선포되어지며 우리는 그 말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였고 사랑의 사도였던 요한, 요한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요한이 노년에 몸이 거동할 수 없었을 때 설교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요한을 들것으로 옮겼을 때 요한은 모였던 성도들을 향해서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잠간 쉬다가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설교를 마무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요한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듣고 하나님에 대해서 전하면서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먼저 가르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깨닫게 될 때에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알 때에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본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생각보다 많이 무기력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먼저 기억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사실입니다. 

III.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위해 넘어서야 하는 세 가지 거짓말 (1:6-10)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말씀을 전한 후에 6절부터 10절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너무 쉽게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거짓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누리기 위해서 꼭 극복해야 되고 넘어서야 되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거짓말을 6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거짓말 (6-7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6절)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고집과 이 세상의 풍속을 쫓아서 살아간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전히 어두움에 살아가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던가, 하나님을 믿으면 빛 가운데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귐이라는 것은 코이노니아, 공동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의로움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실제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면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어서 올바른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7a절) 성경에서 빛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표준, 기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삼아서 걸어가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 서로 간에 사귐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성도들 사이에 사귐, 성도들의 교제가 조금씩 피상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서는 은혜를 받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성도의 교제를 누리는 일에는 게을리 하시는 분이 많이 있고, ‘믿음은 내 혼자 잘 하면 되지 무슨 사람들과 교제할 필요가 있나’라고 성도간의 교제 자체가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년 시절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내 삶을 하나님의 빛된 말씀에 비추어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잘못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도 없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그 삶을 살아가려고, 빛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다보니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던 것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삼아서 빛 가운데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순간부터 가장 보고 싶어지기 시작한 사람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하나님의 빛된 말씀을 붙잡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가르침과 이 세상의 가치관과는 거스르면서 살아가는 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 16:3) 저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겪는 모든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으로 삼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시도하다보면 그때부터 성도들의 사귐이 풍성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을 만나고 싶고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기쁨이 되고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성도님들 빛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서로 사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7b절) 이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은 후에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한은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예수님의 피가 너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될 때 그때서야 우리는 보혈의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어쩌면 우리가 마음에 결심은 했지만 또 넘어지고 넘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타락한 성품까지도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빛 가운데 살아가기로 결심할 때 이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우리를 새롭게 했는지를 체험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극복해야 되는 첫 번째 거짓말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바로 내일부터, 오늘 당장 성전 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빛으로, 표준으로, 기준으로 삼아서 빛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와 세 번째 거짓말 (8-10절)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두 번째 거짓말이 나오게 되는데,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8절). 그리고 세 번째 거짓말이 나오는데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10절) 

8절 말씀처럼 죄에 대한 성향,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10절 말씀처럼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며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요한은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위해서 꼭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것이 우리가 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며 우리는 범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가르침을 주는 것은 영지주의자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영지(靈知)주의자는 하나님과 신비적인 체험을 추구했던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지식, 신령한 비밀, 하나님과 신비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신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나중에 그들이 하나님과 신비적인 만남을 가졌고, 하나님과 신비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성도님들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자신이 죄의 영향력에서부터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들이 이 잘못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남편들은 자신의 삶과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기 때문에 모든 그릇된 판단과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속에서는 저와 같은 목사님들이 이미 목사이기 때문에 죄의 영향력으로부터는 벗어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성도님들 우리가 언제 회개해 보았습니까? 언제 하나님 앞에 하나씩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우리의 입으로 자백하면서 회개해 보셨습니까? 왜 우리가 회개를 안했습니까? 그동안 완벽한 삶을 살아서 그랬습니까? 그게 아니고 우리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죄 없어.’ ‘나는 신앙 경력이 이 정도 되었기 때문에 나는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어.’ ‘나는 범죄하지 않아. 나는 이미 그런 수준을 넘어섰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들을 게을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지난 한 주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 제가 성도님들에게 드리는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저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기도는 날마다 해왔지만 주님 앞에 하나씩 자백한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어느새 네가 이제 죄 없는 사람처럼, 범죄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있구나.’ 저를 책망하셨는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9절) 여기서 자백이라는 말은 ‘confess’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내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 자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해주십니다. 죄를 범하고 나면 그 죄에 대해 형벌이 따라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따른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에는 책임과 형벌이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앞에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 분이 우리를 사해주십니다. 이 죄에 따르는 형벌과 책임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십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들로 하여금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들의 영혼을 깨끗케 씻어주십니다. 우리를 씻어주시고 허물과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주십니다. 

제가 난지도를 섬길 때의 이야기를 가끔 말씀드렸는데, 1984년 처음 난지도에 갔을 때 난지도에 있는 아이들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사 선생님들이 한 달에 한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데리고 갔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씻고 나면 깨끗하여져서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씻기 전과 씻고 난 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님들 우리 영혼에 때가 많아서 우리 영혼이 무감각하여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선한 것인지 무엇이 빛 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보여주시고 그 죄를 예수님과 함께 하나씩 고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함을 받고 예수님의 피로 씻겨지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 목욕을 하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게 되면 옆의 사람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상상 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우리 옆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누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떤 실존적인 결단을 해야 되겠습니까? 빛 가운데 행하기를 결단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표준에 합당하게, 순간 순간 빛 가운데 걸어가기를 선택하셔야 됩니다. 그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과 성도간의 사귐이 풍성해지게 됩니다.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개신교의 유명한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감리교와 장로교의 차이점이 이것입니다. 유명한 존 웨슬레는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아서 이 땅에서도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죄의 영향력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난 그 완전한 삶에 이 땅에서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장로교는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이 땅에서 완전함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날마다 우리 자신을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의 허물을 자백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아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자신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이것이 우리 장로교의 신앙고백입니다. 

결론 

1. 2010년 봄을 맞이하여 저는 우리 성도들이 다시 한 번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가는 일에 열심을 내셨으면 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알아갈 때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사이에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 마음속에 하늘의 기쁨, 하늘의 능력이 넘쳐날 수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성도님들 특별새벽기도를 안 놓쳤으면 좋겠습니다. 와보시면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이 어떻게 이 시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거장으로 깨어나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이숙 여사가 미국에서 사역을 할 때 유명한 집회가 있다고 하면 먼 곳까지 운전을 해서 찾아갔다고 합니다. 안이숙 여사는 “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곳에 내 아들들이 빠진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성도님들 한번 보십시오. 성도님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셔야 됩니다. 우리가 다른 것보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빛 된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이 하루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님들 특별새벽기도에 열심을 내시기를 원합니다. 

2. 빛이신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노력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요한이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실패하셨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다 용서해주십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날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 죄를 자백하고 날마다 자신을 고치시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한번 기도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짧게 통성으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명의 말씀을 배우겠습니다.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성도들과 교제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제가 이 땅에서 메뚜기와 같이 연약한 신앙인이 아니라 이 세상을 압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적 거장으로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제가 빛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두움 가운데 살았던 것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몸부림치지만 여전히 제 속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성령님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고 내일부터 다시 한번 자신을 고치는 새로운 삶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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