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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 (삼하 18:31-33, 눅 15: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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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 (삼하 18:31-33, 눅 15:20-32)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바라는 소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바람이라고 하기고 하고 꿈이라고 하기도 하는 반면 목표 내지는 비젼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린 아이들대로의 바람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고 청년들은 청년들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대로 바람이 있듯이 자식을 둔 부모도 자식에 대한 바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들 둔 우리 부모님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낳은 자식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무엇입니까? 그 기대를 이루는 부모는 행복합니다.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꿈을 이룬 부모는 자녀의 손에 임종을 받을 때 그 자녀들을 앞에 놓고 나처럼 복을 받은 사람이 없노라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 라고 하실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부모의 고백을 듣는 자식들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행복한 자식들이 될 것이요 그 부모의 가장 좋은 자식들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에 이르기를 분명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 상급이라고 하였으며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과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식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자산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보람과 행복의 조건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식들을 바라보면 든든한 것이요 세상 그 어떤 행복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자식을 보는 행복보다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식이 부모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의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식들이 있는데 부모의 꿈이 깨어지고 행복해야 할 부모가 자식으로 인하여 그 행복이 깨어지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들을 둔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녀 된 성도 여러분 부모의 바람을 이루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바라는 자녀들이 되십시오 부모의 상급이 되시고 부모의 기업이 되시고 태의 열매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깨우쳐 부모의 바람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는 아무리 못된 자식일지라도 그 자식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잘못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으로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나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천하에 몹쓸 자식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던 패륜아요 아버지의 후궁들을 간통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한 참으로 원수보다 더한 악한 자식이었습니다. 그 자식이 반역을 일으켜 전쟁을 하게 될 때 다윗은 군대를 총 지휘하는 대장 요압과 그 수하들에게 간절하게 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을 생포할 말정 죽이지는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다윗군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자 요압은 다윗 왕에게 전세 보고를 하게 되었고 그 전령으로 하여금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면서 이렇게 통곡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으려고 했던 패륜아 아버지의 후궁과 간통을 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얼굴을 못 들도록 한 원수보다 못한 자식일지라도 그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어느 부모 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는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얼굴색이 달라지고 기운이 없어 보이면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왜 얼굴이 그렇게 수척해졌느냐 왜 그렇게 밥을 못 먹느냐 애가 달아서 무엇이든지 먹이려고 하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해다 주려고 합니다. 

오늘 주신 신약성경 눅15장에 나오는 못된 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살기보다는 세상에 나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이미 자식이 부모를 떠나고자 한다면 그 자식의 마음에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존경심이 살아졌을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애정도 파괴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은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랑하는 상대를 좋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희생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그토록 희생하여 키우고 온갖 것을 다하여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어도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자식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에 나오는 큰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부모를 섬긴 좋은 자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식도 윤리와 큰아들이라는 법에 매이고 세상 눈이 두려워서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뿐이지 큰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원해서 아버지와 같이 살아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식된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효도는 무엇입니까? 부모의 진정한 바람이란 자식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무모가 자식은 내 보내서 저희들끼리 자유롭게 살도록 해야 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함께 있음으로 해서 부모 자식간에 사이가 나빠지니까 그럴 바에야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났다고 해서 내 보내는 것이지 부모는 절대로 자식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부모를 버리고 세상이 좋아서 떠나간 자식이 완전히 파산해서 다시 부모의 도움을 바라고 돌아오는 자식이지만 그 자식이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는 자식이 부모를 발견하기도 전에 먼저 발견하여 자식을 맞이하려고 맨발로 뛰어나가 맞아주시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돌아온 자식의 몰골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병이 들어 있었고 다 떨어진 옷에 씻지도 못한 추한 거지의 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부모의 사랑을 떠난 자식의 몰골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가 비록 세상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치장했을지라도 그 자식의 인격과 그 마음과 그의 생각은 이미 거지가 되어버린 상태일 것입니다. 그가 비록 세상에서 성공을 했다고 할지라도 부모를 버리고 얻은 성공이라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을 맞이하여 베푸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했습니까? 눅15:22절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보면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지라도 세상에 내 놓을 때 어느 누구에나 부끄럽지 않은 아들로 내어놓고 싶으셨던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부모의 마음을 과연 자식이 얼마나 알까요?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바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있었던 교회에서 밤낮 없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한 노인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노인은 날이면 날마다 교회의 성전의자를 부여잡고 내 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내 자녀들이 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부끄럽지 않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 우리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보람을 안겨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잘 모시느냐 잘 못 모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드리지 못할지라도 부모가 바라는 대로 신앙적으로 잘 되는 것 믿음 안에서 잘 되어지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인 것임을 알고 신앙 안에서 잘 되어지는 자녀들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부모들은 당신들이 자녀들로부터 부모이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평범한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이지 부모가 아니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를 않습니다. 이미 자식의 마음에 부모가 부모의 위치에 놓여 있지 않는 자식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신 구약 삼하 18장에 나오는 압살롬이나 신약 눅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경우를 보시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압살롬은 누구보다 아버지인 다윗의 사랑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죽이려고 한 패륜아일지라도 자기를 싫다하고 떠나간 아들일지라도 늘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자식의 자리를 지워버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보십시오 이미 그들의 마음에 아버지의 자리를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부모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곳에 왕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았고 세상의 성공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그들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고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녀 된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부모는 어디에 위치에 있습니까? 비록 부와 함께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에서 부모의 자리는 없어져 버리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녀가 부모를 보모의 위치에 두고 부모를 부모로 생각한다면 부모에 대한 불순종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부모의 위치를 정하셨으니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하셨던 것이니라 오늘날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한 마디 하고 두 마디 하면 잔소리를 한다고 구박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아도 부모이기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누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식은 이미 자식이기를 포기한 자식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이면 인생에 가장 큰 비애를 느끼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왜 그토록 비통해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한 부르짖음은 부모의 위치를 저버린 자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부모를 부모의 위치에 올려놓으시고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여 드리십시다.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효도 인줄 압니다. 

나아가 부모는 자식에게 부모로서 대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대접이라 하면 공경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어버이가 자식을 낳아 일평생 온갖 수고와 고생을 하여 자식을 키워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로부터 공경을 받지 못한다면 그처럼 비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대접을 받기 위해서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키우고 자식을 사랑하여 키우는 것이지 결코 장래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공경함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며 상식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라면 하나님이 명하신 명령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 가장 상식적인 도리마져도 행하여지지 않는데 사회적인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들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막7:9절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신앙을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함에 있어서 어느 핑계나 어느 이유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식된 여러분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여 드리십시다 어떻게 공경하여 드려야 하겠습니까? 마음을 기쁘게 해드림으로 공경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분명 기쁨의 존재들이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봄으로 해서 기쁨을 얻고 행복해야 하는데 자식을 봄으로 해서 슬퍼지고 자식 낳은 것을 불행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자녀들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부모에게 자식 낳음을 후회케 하는 자녀들입니까? 

잠언23:24 절 말씀으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우리 모두 부모의 기쁨이 되는 자녀들이 되십시다 

부모 공경이 무엇인지 알려면 부모가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효도하는 것이 바른 효도이지 부모는 원하지 않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부모를 섬기는 것은 진정한 효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를 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자녀는 늘 부모에게 묻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말해주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마주치기를 싫어한답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어머니가 밖으로 나오면 며느리는 들어가고 어머니가 거실에 있으면 며느리는 나오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가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곧 부모를 공경하는 행위이요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일이요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알고 좋은 자녀들 효행 하는 자녀들이 되어서 자식을 통해서 늘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부모님들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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