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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 이후의 삶 (막 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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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후의 삶(마가복음 16:9-20)

  
지난 WBC 야구대회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한 번 야구의 붐이 일고 있는 느낌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우리나라의 경기뿐 아니라 일본에서 열리는 경기라든지 미국의 메이저리그의 경기까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며칠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참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뉴욕 양키즈팀과 템파 베이팀 사이의 경기였는데, 자세히 보니 모든 선수들이 하나같이 42번의 등번호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수비를 하는 선수들만 42번 유니폼을 입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 저 팀에서 뛰었던 한 선수를 기념하는 날인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공격을 하러 나온 선수들까지도 모두 42번을 달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42번을 달았던 선수가 누구일까?’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니까 그 날 경기를 했던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하나같이 42번의 등번호를 새긴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템파에서 뿐 아니라 보스턴이나 로스엔젤레스라든지... 볼티모어라든지... 메이저리그의 경기가 있는 모든 곳에서 경기를 하는 모든 선수들이 42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42번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던 것은 예전에 그 번호를 달고 경기를 했던 한 위대한 야구선수를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재키 로빈슨이라는 선수였습니다. 1947년에 미국 LA 다저스팀에 입단해서 1956년 은퇴를 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동안에 통산타율이 0.311이었고 137개의 홈런과 1,518안타를 쳐냈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신인상을 받았으며, 1949년에는 리그의 MVP와 타격왕을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섯 번에 걸쳐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이 기념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기록만으로 살펴보아도 그는 참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보다도 그를 더 기념하게 했던 것은 그가 바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노라하는 흑인 선수들이 참 많지만... 그가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여 놓기 이전에 흑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947년 4월 15일은 그가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여 놓은 날인데... 그 날은 미국군대에서 흑백의 차별이 철폐되기 1년 전의 일이었으며, 공립학교에서 흑백의 분리정책이 무너지기 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서야 버스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힘 중의 하나가 재키 로빈슨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997년 4월15일... 그러니까 그가 메이저리거가 된지 50년 만에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에서 그가 달았던 42번의 등번호를 그를 기념하면서 영구적으로 결번으로 정하였는데.. 이것은 미국 야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지난 72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혹시 천국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을지는 모르겠지요. 지난 4월15일에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모든 선수들이 42번의 등번호를 달고 경기를 하게 된 데에는 미국의 최초 흑인 메이저리거였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려는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바로 이것이 미국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재케 로빈슨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그가 아무리 뛰어난 야구선수였고 나아가서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일입니다. 그가 은퇴한지 벌써 53년이 되었고, 세상을 떠난 지도 37년이나 되었습니다.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될 수밖에는 없는 사람인데... 그들은 이렇게 잊혀진 영웅을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날 모든 선수들이 42번의 등번호를 달고 뛰었으니...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기억 속에 재키 로빈슨이라는 야구 선수는 옛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그들 가운데서 함께 호흡하고...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되살아나게 된 것이지요. 마치 한편의 감동을 담은 드라마와도 같은 재키 로빈슨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오늘 우리들의 문화가 이제껏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고 역사에 공헌 한 사람들이라도 아주 작은 약점을 끄집어내어서 끌어내리고 비하시키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영웅을 다시금 살려 내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 주일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님이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을 보내고 나서 다른 때와 달라진 것은 없으셨는지요? 만약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지난 한 주간 살아 온 여정을 돌아보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회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 오면서 부활절이 지나면 느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활절이 마치 면죄부를 부여해주는 절기는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부활절에 이르기까지는 열심히 금식도 하고... 새벽기도회도 참석하고... 좀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마치 큰일을 치른 사람들처럼 긴장도 풀리고.. 신앙적으로도 많이 해이해지는... 그래서 부활절이 될 때까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정작 부활절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활절은 하루를 잘 지내고 지나가버리는 이벤트적인 절기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주일을 교회력에서는 ‘부활절 제2주’라고 부릅니다. 부활절과 연결된 것이지요. 지난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향력 아래서 맞이하는 시간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오늘 뿐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주일이 하나같이 주님의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고 그를 경축하는 부활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말씀들이 하나같이 말하고 있는 것... 그것은 ‘안식 후 첫날’이라는 시간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에는 안식 후 첫날이라는 시간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식일이 우리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안식일보다 더 소중한 날이 생겼습니다. 그 날은 다름 아닌 안식 후 첫날...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입니다. 그 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 날 바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 후 첫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 날이 바로 오늘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주님의 날’인 것이지요.
   
‘우리가 왜 안식일이 아닌 안식후 첫날에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가?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 날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함으로 그를 기념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부활의 영향력 아래에 머무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절은 한 번 지키고 지나가 버리는 1년 중 맞이하는 52주일 중의 한 날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는 매 주일이 바로 부활절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를 기념하고... 그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림을 통해서 부활이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삶도 주님의 부활의 영향력 아래에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고 바라는 삶을 상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부활을 믿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의 앞부분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문제는 제자들이 그러한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믿지를 못했다는 것이지요. 마가복음은 이것을 솔직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살아나신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대목이지요. 그녀는 예수의 명령대로 제자들에게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자기가 그 예수를 만났다고 하였지만.. 제자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가 살아나셨고 자기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제자들은 그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십자가에서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 이것을 제자들은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에 관하여 증언한 고린도 전서 15장을 보아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혹시 예수는 아주 특별하신 분이시니까...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외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의 삶을 부활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유명한 언급...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라는 말씀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부활의 토대 위해 자신의 믿음을 세운 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다는 것... 이것은 정말로 믿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 주일에 부활절을 지키기는 했어도...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입으로는 주님을 찬양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현실의 생활은 여전히 부님의 부활과는 상관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던가요? 우리가 확고한 부활신앙의 토대위에 세워지는..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하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항상 생각하고 그것을 기억하기에 힘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키 로빈슨이라는 위대한 야구선수가 그 당시에는 위대했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 날을 택해서 모든 선수들이 그를 기념하는 등번호를 달고 경기에 임할 때.. 사람들은 그를 다시금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게 되고.. 누구도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었던 그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가 가졌던 신념이나 기념비적인 행동 가운데서 삶의 용기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감동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지요.
   
이렇듯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온전한 신앙에 이르게 된 것도 다름 아닌 주님을 기념하는 자리에서였습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4절)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직접 주님을 경험하게 되고 온전한 신앙에 이르게 된 일을 말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우리는 주님이 열 한 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자리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억하고 그를 기억 속에서 다시 되살려보는 성만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부활신앙에 온전히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던 일들이며... 특별히 그가 자기들을 위하여 식탁을 준비하시고 떡을 떼어주시던 그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의 이야기 속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 속에서 깊은 좌절을 경험한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엠마오로 향할 때... 부활하신 주님은 슬그머니 그들의 여정 속에 끼어들었습니다. 

여러 성경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십자가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한 과정인 것을 설명하시지만... 그들은 아직 그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고... 여관에 들어가서 한 식탁에 앉았을 때.. 그리고 예수가 떡을 가지시고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에 그들에게 떼어 주실 때에... 비로소 그들은 그 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용기를 얻어서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중요한 것은 예수와 그들이 한 식탁에 앉았을 때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식탁은 다름 아닌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기념하고 바라보는 성만찬의 자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비록 우리들의 믿음은 아직 온전하지 못하고 작은 것이지만.. 끊임없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려 하고 그를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러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기념과 기억이 우리에게 온전한 부활신앙에 이른 길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부활주일은 우리가 한 주일 모여서 계란을 나누고... 성가대의 특별한 찬양을 듣는 것으로 지나가는 이벤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맞이하는 매주일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기념하고 그를 경배하며 찬양하는 자리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온전한 부활 신앙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야구선수들이 흑인으로서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된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는 일을 자기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들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언하며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주님 앞에 경배하며 예배를 드릴 때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항상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가 항상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그를 바라보아야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것처럼 주님의 부활 가운데서 우리들의 미래를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지막이 무덤 속이 아니라 부활한 삶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미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주님의 부활 속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의 말씀은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항 역동적이고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부활을 믿을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부활을 온 천하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을 명하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부활을 믿게 될 때에 그들에게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7-18절) 생각만해도 역동적이고 놀라운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차원의 삶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들 모두의 삶이 이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힘으로 다가옵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평소에 주님이 하시던 일이었습니다. 예수가 다니시는 곳마다 어쩌면 그렇게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들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온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회복시키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들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이들을 통해서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정신을 왜곡시키고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물리치고 온전한 인격의 사람들로 다시금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지요. 

* 새 방언을 말하며... 새 방언이란 다시 말하면 이제까지 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방언을 설명하면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하는 말’(사도행전2:4)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말이 부정적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주고...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말이었다면... 새 방언은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언어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고 위로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그들에게 기쁨이 생기고 평화가 찾아 왔던 것처럼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새 방언을 말할 수 있다는 것만큼 매력적이고 소중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그 부활을 믿는 우리들에 이렇게 하는 말이 달라지는... 새로운 방언을 말하게 되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좀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부활신앙에 대한 획고함이 있다고 해도...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지는 마십시오. 결과는 저도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상처를 입는다고 하여도... 세상에서 어떤 고난이나 좌절을 겪는 다고 하여도 부활신앙은 그것이 우리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에는 참 민감했습니다. 남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여도 참 예민하게 반응을 합니다. 너무나 쉽게 상처를 입고 너무나 쉽게 좌절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부활신앙은 우리들의 신앙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세상에서 내가 무슨 상처를 입고 고통과 좌절을 겪어도...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더욱이 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생가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겪는 고통이 오히려 훗날에 더 큰 영광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살면서 무슨 일을 당해도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세상에는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미 그들에게 치유하는 모습으로 다가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의 능력...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아픈 이들에게 다가설 때에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담아서 따스한 손길을 그들에게 내밀 때에... 그들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상처 난 곳을 어루만져 줄 때에... 거기서 치유의 현상은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 것인지요... 나의 작은 손길이... 나의 따스한 사랑의 말이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고,.. 다시금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들 모두의 손길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서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일에 사용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절은 지났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부활의 능력 위에... 부활의 영향력 가운데 서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믿음만 있으면... 그 믿음은 우리들을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예수의 부활과 함께 거듭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도 새롭게 변화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들은 가는 곳마다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게 됩니다. 겨울 내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벌떡 일어나서 생명의 대열에 함께 하는 수많은 꽃들이며 나무며 생명체들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를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도종환 시인은 이런 변화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거듭난 것들이 모여 논둑 밭둑 비로소 따뜻하게 합니다. 
참나무 어린 잎 하나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저를 이기고 거듭난 것들이 모여 
차령산맥 밑에서 끝까지 봄이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 속에서 거듭 납니다 
저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여 
이 세상을 아직 희망이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거듭난 우리들로 인해서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들을 괴롭히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들을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한 마디 말이나 내미는 작은 손길들... 이러한 것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부활 이후를 산다는 것..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그 가운데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들 모두의 삶이 언제까지나 주님의 부활의 능력위에 머무르며...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작은 꽃송이들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에 한 몫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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