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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눅 24: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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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눅 24:28-36)


28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하여 구약성경에 자세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이 채찍질을 당하시고 모욕과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실 것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 53장 12절에서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두 강도 사이에서 못 박히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손과 발에 못 박히실 것과 심지어는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눌 것도 구약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피와 물이 몸에서 다 빠져나가니 얼마나 목이 마르셨겠습니까. 그래서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었는데, 그렇게 하실 것도 시편 22편 15절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내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실 것을 시편 31편 5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아니할 것은 시편 34편 20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두 강도는 뼈가 꺾여 죽었지만, 예수님은 6시간 만에 운명하셔서 뼈를 꺾을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도 구약성경에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묻히실 것까지 이사야 53편 9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30편 3절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것을 예언한 구절도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 말씀에 예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하는데,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오셨고, 그대로 고난 받으셨고, 그대로 죽으셨고, 그대로 부활하셨고, 성경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17장 22~23절, 20장 19절에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받으려고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분명하게 세 번이나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말씀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또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을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수제자인 베드로를 제일 먼저 만나주실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곱 귀신들렸던 여자, 어떤 학자는 창녀였다고 말할 정도로 천한 여자였던 그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마가복음 16장 1~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사모했기에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수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비싼 향품을 준비해서 아침 일찍,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제일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믿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 11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세 번 이상 분명히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부활하셨는데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얘기하는데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는 아예 실망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고대하던 메시아로, 유대 나라의 왕이 되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옛날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의 전성기가 이뤄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제자인 자기들도 한자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죽은 자도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던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왕이 되실 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게 되자 그들의 꿈도 산산조각 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고향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크게 잘못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 성경에 그렇게 많이 예언이 되어 있는데, 그 말씀을 똑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것을 믿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사흘 만에 살아나신다고 세 번 이상 그렇게 강조하셨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말렸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어야지 왜 십자가를 지시느냐 말입니다.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지는 말이 아닙니까. 자기들의 욕망이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닙니까. 그렇게 아예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들어도 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해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여인들이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도 직접 그 무덤에 가볼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낙심하여 고향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예수님이 도마에게 찾아오실 때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기다리지 않고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책망받을 만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26절에 보면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라고 ‘미련하고 더디 믿는 자들아’라는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눈이 어두웠겠습니까? 잘못된 기대와 세속적인 욕망이 이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주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는데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16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하면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고 있는 그 두 제자에게 친히 오셔서 말씀 하셨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볼 만도 한데, 이들은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 27절에 보면 성경말씀을 풀어서 자세히 말씀해주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예수님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시며 떡을 떼어주시는 그 순간에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아의 아버지인 조지 뮬러는 16살 때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 여자, 노름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조지 뮬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성도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는 그가 가진 13만 5천 달러의 돈 모두를 이웃을 위해 사용했고, 그가 죽었을 때에는 1천 달러 정도의 재산 밖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온전히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다가 간 것입니다. 죄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도 주님을 만나니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화 되었습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전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하는 영광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을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난 사람은 부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좋은 곳에 갈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되고, 기쁨으로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처럼 오늘날에도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절망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정치적 문제도, 경제 문제도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뜨거운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을 만난다면 어떤 절망 가운데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58에서 스데반 집사가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 있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을 보면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서 죽이기 위해 가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난 사울은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고,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다가 순교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0~11절에 보면 아나니아에게도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 9절 이하에 베드로에게도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살아계십니다. 인격을 가지고 계시며, 저와 여러분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가 아픈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슨 소원이 있는지 우리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금식기도를 하던 중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체험을 한 이후부터 여러 번 주님을 만났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한 날에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4년 동안 아르바이트하느라 고생하고, 교회 일, 가정교사 일, 학교공부 하느라 너무 바빠서 데이트도 한번 못하고 얼마나 재미없게 대학생활을 했는지, ‘아버지 왜 나는 대학생활을 이렇게 해야 합니까?’ 라고 하소연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렇게 묶어두지 않으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그렇게 묶어두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제가 목사가 되었겠습니까? 

제가 교회를 개척을 했을 때에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교회를 세운 것이다. 네가 잘나서, 네가 설교를 잘해서, 목회를 잘 해서 부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양들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아주시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가 수영 로터리를 다 주시기를 날마다 돌면서 몇 년 동안 기도했는데, 어느 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새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새를 보아라. 저 새를 위하여 내가 준비해 놓은 이 공간을 보아라. 얼마나 넓고, 얼마나 크냐. 그러나 저 새가 날개 치는 것만큼 올라가고, 날개 치는 것만큼 쓰지 않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도 예비해 놓은 것이 이렇게 크고 넓으니라. 네가 감당만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주겠노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수영 로터리면 족한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열 배 이상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더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감당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을 모시고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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