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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은 새벽의 빛과 함께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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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새벽의 빛과 함께 (마 28:1~10)


부활절 후 첫 주일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교우님들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새벽, 몇 사람의 여인들이 안식일 에 머물던 처소를 나섰습니다. 그녀들이 간 곳은 예수님의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아침이 오려면 더 기다려야 하는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멀리서 흐릿한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그녀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게 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여인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은 특별했습니다. 여인들은 그 때까지 많은 날들을 맞이했고, 그 날 수만큼의 새벽을 맞이했지만, 그 날 새벽은 그 이전, 그 이후 어느 날 새벽과도 비길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평생동안 그 날 새벽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새벽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 새벽, 온 몸과 영혼 구석구석까지 황홀한 전율이 사무치던 새벽이었습니다. 

그 날 여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양을 보았습니다. 그 날의 태양은 여느 날보다 더욱 빛나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새벽이었고, 그 날 떠오른 태양은 이 새로움을 자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은 온 세상을 향해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본래 새벽이란 단어는 <처음, 시작, 발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새벽에 시작됩니다. 하루도 새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의 세상에 생명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안에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들 속에서 복된 소식, 즉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길거리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시작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교회에 오기 시작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드려보지 않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과거의 삶을 회개하기 시작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접한 적이 없던 성경을 읽기 시작한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아들 며느리의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늘 무감각하게 지나치던 일상으로부터 짜릿한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 분들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이런 모든 시작들은 어리석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이런 시작을 하신 분들은 가장 행복한 분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멋진 시작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원합니다.

또 시작은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시작하기 전과 달라집니다. 본래 새벽은 새로움입니다. 어제까지의 추한 것은 가고 새로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입니다. 새벽이 되면 모든 게 새롭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마음을 새롭게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대학 입시에 실패한 자녀에게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이 녀석아, 다시 시작해 봐.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아빠가 밀어줄게..> 아이는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 때 아이의 마음은 과거와 다릅니다. 그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게을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재수하는 마당에 최선을 다하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노력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인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죽음 앞에 선 사람도 생명의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마음이 달라집니다. 과거와는 달리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잘 아시지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딴 사람, 새 사람이 됩니다.

삶의 내용도 새로워집니다. 놀라운 것들로 채워집니다. 시편 103편 5절을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렇듯 새롭게 되는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기원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부활의 새벽,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새벽의 <색깔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는 총천연색>입니다. 부활의 새벽 이전까지는 온통 검은 것뿐이었습니다. 본래 죽음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검정색입니다. 거기엔 찬란한 화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 시간이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완전히 절망의 검은색으로 덮여 있었고, 어두운 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오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태양이 뜨면 온 세상이 그 빛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만상이 각각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밤중에는 검은 어둠에 묻혀 그 색을 알 수 없었던 꽃들도 태양 아래서 각기 자기 색깔을 드러냅니다. 산들의 녹색, 하늘의 푸른색, 꽃들의 찬란한 색들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이 제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새벽에 생명의 빛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창조는 빛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 아래서 하늘도, 땅도, 바다도, 꽃도, 나무도, 새도, 동물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부활절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활절은 3월이나 4월, 봄에 있습니다. 봄은 모든 생명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얼어붙은 겨울은 가고, 온 세상이 푸름과 화사함으로 옷을 갈아입는 때입니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봄이 죽음의 옷을 벗고 생명의 옷을 입는 계절인 것처럼, 부활도 그렇습니다. 이 찬란한 화사함, 이게 바로 부활의 색깔, 생명의 색깔입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무덤은 비어 있었고, 거기 천사들이 있었는데, 천사들의 모습은 번개같았다고 했습니다. 번개같다는 것은 번쩍이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게 바로 빛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빛 아래서 화사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중충한 절망의 그늘에서 나와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우울증을 이겨야 합니다. 밝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어둡게 찌푸린 얼굴 대신에 어린이들처럼 깔깔대며 사시길 기원합니다. 부디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든 교우들이 <문을 활짝 열고> 나오시기 기원합니다. 밤이란 닫히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이 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마음은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끌려가신 후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게 죽음의 세력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닫게 만듭니다. 장례식을 보세요. 유대 사람들은 시신을 모신 후에는 커다란 돌문을 닫습니다. 죽음은 닫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어떤 이는 절망해서 회사 문을 닫기도 합니다. 모든 의욕의 문이 닫힙니다. 마음이 문이 닫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닫힌 문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그 새벽이 밝았습니다. 본래 새벽이 되면 사람들은 창문을 엽니다. 우리도 영혼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맑은 생명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방안의 탁한 공기를 몰아내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문을 엽시다. 폐쇄적인 삶에서 벗어납시다. 가만히 안에 숨어 있지 마십시오. 걸어 잠근 문을 예수님을 향해 활짝 여십시오. 예수님을 인생의 집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 신선함이 우리 삶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젠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공개하십시오. 어울려 사십시오.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대문을 열고 나와서 기지개를 펴면서 하늘을 쳐다 보고, 온 몸을 움직여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밤은 활동이 멈추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들어가 잠을 잡니다. 공동묘지의 고요함처럼 쥐죽은듯이 고요합니다.

그러나 새벽이 되면 사람들은 깨어 일어납니다. 잠시 후 새벽이 무르익어 아침이 되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침 운동을 시작하고, 주부들은 부엌으로 나가고, 아이들은 등교 준비를 합니다. 잠시 후 길거리가 정신 없이 꿈틀댑니다.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섭니다. 활발한 움직임, 이것이 아침입니다. 

부활을 목도한 여인들을 보십시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올 때와 돌아갈 때 달라진 것은 발걸음이었습니다. 올 때는 천천히 왔겠지만, 돌아갈 때는 달음질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천천히 걷지 않고 달리듯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님께서 임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세요. 제자들은 무척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제자들은 하루에 정해진 세 번의 기도 시간에 성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고, 모이기에 힘쓰고, 찬송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활기가 넘쳤음을 보여줍니다. 절대로 축 쳐져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쁘면서도 기쁘게 살았습니다. 

스무 살 청년처럼 걸으면 인생도 스무 살이 되고, 칠십 노인처럼 힘없이 천천히 걸으면 인생도 칠십이 된다고 합니다. 이젠 빨리 움직이십시오. 다른 사람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 걷는 마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활발하게 사십시오. 열정적으로 살아가십시오. 현재의 모습을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모습으로 만들지 않길 원합니다. 앞으로 더 전진하시고, 더 성숙하시고, 더 아름다워지시고,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날마다 주보에 새로운 일이 실리게 되길 원합니다. 다른 교회가 하지 않는 일도 많이 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지금까지 하지 않던 일도 시도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일에 바쁜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여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본문을 잘 보면 여인들이 천사들에게 들은 말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달려갈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할렐루야! 

순서를 잘 보세요. 그 때까지만 해도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려주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여인들은 기뻐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천사들로부터 듣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다른 일입니다. 

여러분, 달려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열정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리고 있는 사람,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부족한 게 많더라도 기쁨으로, 열정을 가지고 달리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더 놀라운 은총으로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소식으로만 들었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처럼, 이런 믿음의 열정으로 살면 말로만 듣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넘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더 열정적인 믿음으로 살아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들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활 신앙으로 무장하고 주님께 더 충성하고 더 열심히 신앙에 힘쓰면 주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천사들의 말만 들어도 기쁨이 넘쳤던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더욱 더 기뻤을 것입니다. 우리도 점점 더 큰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길 원합니다.

여인들이 제자들에게로 달려갈 무렵, 이미 새벽은 물러가고 태양이 더 높이 떠올라 아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빛나는 부활의 아침의 태양이 여인들을 내려 비추었을 것입니다. 그 태양 빛보다 천 배 만 배 더 빛나는 주님의 빛이 성도 여러분들을 비추시길 기원합니다. 이러한 부활 새벽의 은혜를 가슴에 안고 힘차게 달려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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