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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날 밤에… 날이 새어 갈 때… (요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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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날이 새어 갈 때…  (요 21:1~17)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1)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2)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3)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5)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6)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7)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8)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0)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2)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3)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4)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5)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6)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7)
<요한복음 21장 1~17절>

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벌써 몇 주 째 백령도 옆에서 침몰한 천안함과 실종된 군인들 … 
그리고 실종된 군인을 찾는데 동원되었던 
금양호와 선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인도양에서 우리나라 유조선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바다’에 대해서 예전과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멋진 마도로스에 대한 설레임이 사라지고 … 
바다가 위험하고 두려운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도 동서양을 넘나들며 
바다 위에서 일하는 집사님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위험이 구석구석에 우리 삶의 곳곳에서 다가옵니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 밖으로 나갔다 오기도 합니다.
크고 좋은 배를 만들고, 편리한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폴란드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였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타는 비행기였으니 철저히 정비했을 것이고
최고의 조종사가 조종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큰소리치거나 장담하며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한순간이면 끝나 버립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을 경험한 성도의 삶

고난주간을 보냈고, 부활주일이 지났습니다.
“맡기고 … 기뻐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고난주간새벽기도를 했고, 릴레이 기도회에 참석했고,
촛불기도회에도 참석하여 은혜 받았습니다.
부활절의 기쁨과 감사로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에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에 참석하신 분들은 대부분 각 교회 목사님/장로님들이었습니다.
회의가 열린 장소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별것도 아닌 일에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 지르고 … 
제가 보기에는 
천국 가는데 걸림돌이 될 것 같은 감투를 쓰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들을 민망하게 하는 등 …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 거기에는(그 자리에는) 
성령께서 계시기가 매우 불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자리에 계시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예수 믿는 사람들인지, 천국 갈 사람인지 의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제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우리들이/예수 믿는 사람들이/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 
이 세상 것에 그렇게 집착하고 살아야 하는지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기독교인의 수는 22억 쯤 된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투데이 2009. 5. 20. 참조>
- 미국 Regent University의 David B. Barrett과
세계복음주의 리서치 센터의 Todd M. Johnson 박사의 연구 결과)
물론 천주교까지 포함한 수치입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 10명 중 4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최근 인구 조사(2005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는 1천 3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1300만에는 가톨릭을 포함한 것임. 
개신교만은 860만 명. 2005년 인구센서스 참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데 …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범법자로, 죄인으로 너무 많이 언론에 등장합니다.
교회는 많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회의 흐름과 유행을 따르기에 급급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 교육, 가정, 남북통일과 세계평화에 이르기까지 …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기도하지만 
그 기도의 응답이 뚜렷하지 않은 듯하여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고 찬양했던 
‘예수님의 부활은 그저 20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념하고 끝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Disciples “without” Jesus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도 그런 답답함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소개된 일곱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였지만(요 20:19, 요 20:26) …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기는커녕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모두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요21:3)

우리가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면 … 
예수님이 부활하시기는 했지만 … 
너무 충격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본 제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데 집권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따라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갈등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계속 함께 계시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잡으러 갔던 것 같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세상에 죄가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면 죄가 아닙니까?
사기 친 것도, 살인하는 것도, 폭행을 저지른 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 … ’라는 말로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해보는 고기잡이는 쉽지 않았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 21: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없이, 자기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기들의 뜻대로 한 제자들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삶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밤새도록 해도 헛손질 하는 것이 예수님 없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선 
아무런 변화도, 감동도, 영향력도 없었습니다.

부활을 확인하고도 …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의 죽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도 
오래 전 자기들의 일터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 앞에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대 … 그랬구나’하며 
주일에 교회 와서 설교를 듣고 … 고개를 끄덕이고 … 
‘그랬구나. 그랬어’하고는 아무런 감동도, 변화도 없이 일터로 갑니다.

물고기 잡으러간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담아두고, 내 생각/내 판단/내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또 ‘포기’하고 ‘절망’을 경험하고 … 한숨 쉬고 … 
눈물 흘리고 … 일상적인 종교인이기 때문에 기도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생존을 위해서 피나는 투쟁을 합니다.
그래서 얻은 기쁨과 누리는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만족의 시간은 너무도 짧습니다.
결국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집만 있으면, 셋방살이만 면한다면 …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던 분들 계시지요? 

정말 집이 생기니까 더 이상 바랄게 없던가요?
‘자동차가 있으면 바랄게 없을 텐데 … ’라고 생각하신 분들
차가 생기고 나니 정말 더 이상 바랄게 없으시던가요?
바랄게 없다고 생각한 그것이 이루어지면
순간 감격하고 기뻐하며 만족하는 것 같지만
잠시 후엔 또 다른 바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허무감과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고기잡이에 있어 나름대로 베테랑이었던 베드로가
디베랴로 불린 갈릴리 호수에서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무능한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가진 힘, 배운 지식, 쌓은 경험 … 등이 아무 소용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빵 굽는 일을 하며,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장난감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 경험한 것 … 
삶의 현장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등지고 고기 잡으러 갔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 …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 21:3) 했습니다.

Disciples “with” Jesus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하고 있을 때,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때”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세 번째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14절).
제자들은 이미 두 번씩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4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별 의식이 없을 때는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잘 못 듣고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이 제게
‘목사님께 인사했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지나가셨다’고 섭섭해 하십니다. 
못 들은 척 한 것이 아니고 못 들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도 길가다가 여러분을 만났을 때 
‘할렐루야. 평안하세요?’라고 인사해도 그냥 가시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별 의식 없이 누구를 바라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면서 
예수님이 거기에 오셨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 
너무 근엄한 표현의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표현이 아닙니다.

“이보게 친구들, 고기 좀 잡았오?”하는 정도의 물음이었습니다.
(“Friends, haven't you any fish?”- NIV)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미고(amigo)’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친구’라는 뜻입니다. 
‘아미고’라는 말은 어른이 애들한테도, 
애가 어른한테도, 동갑내기끼리도 부르는 말입니다.
편하게 지내는 사이에서‘아미고’라는 호칭을 씁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편하게 ‘친구들(friends)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못 잡았습니다”(“No.”- NIV)라고 했습니다.
밤새, 헛손질만한 제자들은‘고기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잡을 것이라 …”(요21:6) 하셨고, 
제자들은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인줄도 모른 채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렸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153마리)를 잡았습니다.(요21:6)

그때 한 제자가 물가에 서 계시던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라”고 베드로에게 알립니다.(요 21:7)
물가에 서있는 분이 예수님일 거라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그분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난 후에야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특별히 베드로에게 그 호수는 익숙한 곳입니다.
거기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눅 5:4~6)
그 일을 계기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눅 5:11)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곳에서,다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향했던 열정을 다시 한 번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말씀에 보면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베드로는 물로 “뛰어 내려”
예수님께 갔다고 했습니다.(요 21:7)

오늘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만난 첫 감동 … 
처음 믿을 때, 처음 세례 받았을 때, 처음 직분 받았을 때 … 
처음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 되었을 때 가졌던 
첫 마음, 첫 사랑, 첫 열정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물속 같은 곳이라도 뛰어 들어가 
주님을 만나겠다는 간절함과 기쁨을 다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밤을 보냈지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아침’을 맞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J. D. Crossan, 『예수』,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참조>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명

빈 그물을 들고 낙심해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
예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찾아 주시고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 없이 헛손질하며 밤을 지낸 제자들에게 
아침에 나타나셔서 풍요로움을 주신 것처럼 …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 어둠에서 헛손질하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지만
주님을 만나는 풍성한 아침이 있을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어둠 속에서 헛손질한다고, 
어둠 속에서 힘들고 답답하다고 … 포기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아침의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히 시간적인 아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캄캄하고 어둡고 답답했던 삶,
예수님 없이 살았던 그 삶에서 주님을 만나는 아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신 또 다른 이유는
그들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일을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지 아니하고 
고기 잡는 어부로 다시 그물을 던졌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그렇다고 사랑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치라)”(요21:15~17) 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원래 자신들을 부르신 이유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그 제자들을 다시 부르셔서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4:19, 막 1:17)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의 소망으로 / 영생의 소망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모르고 천국의 소망 없이 사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연약함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가난으로 상처 받은 사람, 차별로 아픔을 당하는 사람,
믿음 없고/소망 없이 일터와 가정에서 추락하는 영혼들,
사랑 받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을 전도하고, 안내하고, 위로하고 돌봐야 합니다.
그런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장로님들과 의논할 일이 있으면
(특별히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면 
수요일예배 후에 또는 금요일 심야기도회 후에 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일1부예배 후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기획위원회로 모입니다.
식사 후 포만감이 느껴질 때 회의해야 순조롭게 끝납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나면 모두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장로님들 얼굴만 뵈도 은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손만 잡아도 감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상시에도 저 자신을 위해서, 장로님들을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되게 하여 주시고, 
손 한번만 잡아도 감동이 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향내 풍기는 삶이 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되고, 
손만 잡아도 감동이 되게 하는 삶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어떤 때는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요 21:18上)
- 때로는 따돌림 당하고, 핍박받고 … 한숨 나오고, 눈물 나는 …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요 21:18 下)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하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이고(요3:16),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1:12),
천국 시민권을 가진(빌3:20)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얼굴만 보아도 은혜가 되게 하옵소서.”
“손만 잡아도 감동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얼마 전 교역자들과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저는 영화관에 잘 안갑니다. 
눈이 나쁘니까 화면을 오랫동안 쳐다보면 눈이 아픕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잠이 듭니다.
그래서 좀처럼 영화관에 가지 않습니다.)

「회복」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유대인들이 사는 땅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사람들(Messianic Jew)의 삶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와 꽤 가까운 관계이고, 
예수 믿는 우리를 좋아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랍권 나라와 축구를 하면 이스라엘을 응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를 좋아할 것 같습니까?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을 싫어합니다.
제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면 입국심사를 받기 전에 
함께 간 사람들에게 당부합니다.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영어 할 줄 알아도 아무 말 하지 마십시오.
아는 척 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답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제가 목사라는 신분을 밝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메시아)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싫어합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미워합니다.
유대교를 배반했다고 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고 폭탄을 터뜨리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구주)로 …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 국가들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구주)로 믿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금도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라면 어떨까?
예수님만 빠진다면, 이 땅의 전쟁과 싸움이 사라질까?
예수님께서‘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오셨는데
‘불화 덩어리(trouble-maker)’로 전락한 것은 아니신가? 
<김성찬, 『예수빼고 놀기』, 활천 Vol.470. 1992. 68~74. [70] 참조.>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예수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우리가 밤새 수고하여도 헛손질뿐입니다.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 진리이신 예수님이,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아침이라야 소망이 있습니다.
- 예수님 없는 소망은 단순히 높은 곳에 오르고 … 
신문에 이름나고 … 동상이 세워지고 … 
책에 몇 글자 올려져도 … 구원과 영생과 무관한 것입니다.
- 예수님 없는 사랑은 잠시 즐거울 뿐 영원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 예수님 없는 믿음은 사람들끼리의 신뢰는 될지 모르지만
천국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이나, 일터나, 언제 어디서나 … 
예수님과 함께/주님과 동행하며, 주 안에서의 삶/천국백성으로서 
주님과 동행하는 아침의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없는 삶은 헛손질한 제자들의 밤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신 삶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의 풍요로운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범사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밥을 먹어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핸들을 잡아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예수님 등지고 고기 잡으러 갔던 
제자들의 삶을 반복하는 자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풍요로운 믿음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예수 믿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렇구나’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평생의 삶이되기를 결단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헛손질 했다 하여도
주님과 함께 하는 아침이 있음을 기대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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