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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남 선택 집중 (요 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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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선택 집중 (요 8:9~12) 
 
   
: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세계에서 제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훈련 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양궁은 10개월 동안 7차례 선수선발전을 치릅니다. 1차전은 활을 잘 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춰 뽑고, 2차전은 정신력, 3차전은 담력, 4차전은 집중력, 5차전은 승부근성, 6차전은 환경변화 적응, 마지막 7차전은 심리적 압박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초점을 맞춰 뽑고 있습니다. 

양궁선수들은 별의 별 훈련을 통해서 인내심과 집중력을 기릅니다. 이를 위해서 욕 먹어가며 하는 훈련도 했답니다. 여자선수들이 술 취한 아저씨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욕을 들어먹으면서 그런 욕에 꿈쩍 하지 않겠다는 강심장을 배웠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관중의 소음과 혼란, 방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으로 단련하도록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앓이를 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전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영혼을 향한 가슴앓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전도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전도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의 과정은 만남, 선택, 집중입니다.

우리는 전도의 과정인 만남과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천하여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로 만남입니다.

I. 만남은 기회입니다.

예수님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조언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만남입니다. 간음한 여인이 있다면 상대방 남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불행한 만남입니다. 이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과 예수님의 만남도 불행한 만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하면 사랑하라고 가르면서 돌로 치라한다고 그들은 예수님을 사이비 교사로 고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라고 하였다고 예수님을 고발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파멸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만남 속에서도 생명적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어라고 쓰셨습니다. 그들이 다그쳐 물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한복음 8:9 말씀입니다. 
 :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누가 감히 먼저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1. 양심을 깨우는 기회입니다.
   
신앙적으로 전도는 양심을 깨우고 도덕을 재무장하는 사회 운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는 전도는 양심을 깨우는 운동일 수 있습니다. 처음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 한국교회는 양심을 깨우는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웃에게 양심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질적인 변화를 위한 부흥은 사회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전도는 이웃과 사회의 양심을 깨우는 기회입니다. 양심을 깨우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땅에 무엇이라고 쓰시던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1절 말씀입니다.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 여인이 죄가 없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고 하신 것을 보아 그 여인은 분명히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2. 용서해 주는 기회입니다.
   
전도는 용서를 받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기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기회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기회가 우리를 통하여 퍼져가도록 사람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다시 그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무엇을 얻을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생명을 얻는 기회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을 얻습니다. 양심이 깨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용서를 받고 생명의 빛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유와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는 바로 사람들이 생명의 빛에 비췸을 받아 자유와 능력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충분하게 비취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 얻는 기회를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단번에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만나야 할 사람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선택입니다.

II. 선택은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셨다가 갈릴리로 돌아가시는 길이셨습니다. 그 때 빌립을 만나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빌립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요한복음 1:45a 말씀입니다.
:45a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알려 줄 사람으로 나다나엘을 선택하였습니다.
   
1. 예비신자로 작정하여야 합니다.
   
예비신자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전도 대상자로 정한 사람입니다. 불신자 중에서 우선 이번 기회에 전도할 사람으로 작정한 사람이 예비신자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와 같은 마을에 살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그의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 전도하였습니다. 이들 형제와 같은 마을에 사는 빌립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역시 그 전부터 잘 알고 지내서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하였습니다. 
   
예비신자는 가까운 이웃 중에서 이번 기회에 우리교회로 인도할 사람입니다. 먼저 마음속으로 예비신자를 작정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 선택에서 전도가 시작됩니다.
불신자를 예비신자로 선택하는 결단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선택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요한복음 1:45b 말씀입니다.
:45b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한 분을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약속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가서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예비신자를 선택하였다면 그 사람에게 가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나쁜 영향이 아니라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영향력 중에 가정 강력한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가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요한복음 1:46 말씀입니다.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서 반드시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핀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와서 보라고 말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시기에 예수님께로 초청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께로 초청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기를 소망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이름을 광고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 이름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 이름이 능력입니다. 예수, 그 이름이 생명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예비신자로 선택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세 번째로 집중입니다.

III. 집중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을 설득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의 반대와 비방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반대와 비방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사도행전 18:9-10a 말씀입니다.
: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a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바울은 환상 가운데 주님께로부터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잠자코 있고 싶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 사람을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집중하지 못하게 하게 합니다. 사람의 비난과 조롱을 두려워하면 목구멍까지 나오던 소리가 다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점령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불신앙입니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8:10b 말씀입니다.
:10b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주님은 바울에게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반대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도시에 있는 많은 자신의 백성을 보고 계셨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보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과녁이 보여야 조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녁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는 그 백성입니다.
    
이 도시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8:11 말씀입니다.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은 고린도에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면서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순회 전도자인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전도하여 사람을 세우고는 바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렀다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3.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적 집중력을 가질 때라야만 영혼을 살리는 강력한 힘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 년 육 개월이 아니라, 10년 20년이라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중하여야 합니다. 사랑과 관심뿐만 아니라 시간도 집중하여야 합니다.
사랑의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계속하여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슴앓이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비신자로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섬김으로 집중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고 선택하고 집중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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