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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막달라 마리아 (요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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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 (요 20:1~18)
  

아침 동이 트기 전, 어두울 때에 무덤을 찾은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가 무덤을 찾은 이유는 예수를 주님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무덤은 두 가지 형태가 있지만 주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빌려 장사 되었기에 돌을 깎아서 만든 무덤이었다. 그리고 입구를 가로지르는 경사진 홈을 따라 원형 모양의 돌을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굴려 넣어 봉인하였다. 그래서 이 봉인한 돌문을 여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으로 갔다. 여명의 빛도 비치지 않는 어두움의 시간이지만 그 무덤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마리아는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본다. 그때부터 마리아는 무엇을 했는가?

1. 주님을 찾기 위해 달음질치는 마리아 (요20:2)

막달아 마리아는 무덤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간다. 요20:2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라고 하였는데 바로 요한이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외쳤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된 그 시신을 찾고 있다. 그러나 무덤 속에 계시지 않은 예수님의 시신을 어떤 사람들이 다른 곳에 옮겨 둔 것으로 생각하고 두 제자에게 전달한다.

무덤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신이 스스로 옮겨졌을 리 없고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에게 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시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마포 옷에 싸여 장사 지낸 바 된 예수를 주님이라 부르며 그 주님을 찾기 위해 달음질 친 것이다.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셔도 막달라 마리아에겐 주님이었다. 산 자, 부활하신 자로 알지 못해도 예수는 주님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가? 눅8:1 이하를 보면 12제자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따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여러 여자들이 12제단에 들어가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떠나간 자로서 회복의 체험을 가진 여인이었다.(눅18:2) 일곱 귀신으로 인해 삶이 궁태에 놓여 있다가 귀신이 떠나가게 된 것은 예수님 때문이었다. 그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를 아는 막달라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과 더불어 복음 전도에 합류하였다.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사회적 격식을 뛰어넘어 제자의 길을 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에게 주님이셨다. 세상이 그를 버리고 능욕하고 생명을 빼앗고 무덤 속에 버려도 예수님은 주님이셨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러 무덤으로 간 마리아는 시신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도, 시신을 찾으러 달려가는 중에도 시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님을 어디에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겐 장사된 예수, 세마포 옷을 입혀 안장한 예수도 주님이시다. 그래서 황급히 찾는 것이다.
  

2. 주님을 찾지 못해 울고 있는 마리아 (요20:11~13)

마리아의 말을 듣고 남자 제자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요한이 먼저 달려가서 몸을 굽혀 무덤을 보았고 베드로는 들어가서 무덤 안을 보았다. 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아니라 텅빈 무덤이었다. 단지 무덤 안에는 세마포 수의와 머리를 쌌던 두건 뿐이었다. 두 제자들은 이 텅빈 무덤에 놓여진 수의를 보고 주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텅빈 무덤을 보고 예수의 부활을 믿은 것이 아니다. 

요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두 제자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마리아는 무덤에 남았다. 벗겨진 수의 이외 텅빈 무덤, 마리아는 울 수 밖에 없었다. 

요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슬픔의 눈물이 났다. 아픔의 눈물이었다. 허무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은 다시 일곱 귀신이 들어와 지배히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눈물, 상실의 눈물, 불안의 눈물이었다.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 본다. 그때 마리아는 천사를 목격한다. 그리고 흰옷 입은 천사들의 음성을 듣는다.

요20:13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그때 마리아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 울고 있는 마리아는 여기에서도 예수님을 내 주님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가져가서 감춰버린 예수님의 시신, 그래서 찾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는 마리아, 그에게 예수님은 시체가 아니라 내 주님이었다. 찾지 못하고 사라진 시신인데 내 주님이었다. 내 주님이기에 울고 있다.
  

3. 주님을 가져가려는 마리아 (요20:15)

천사와 이야기하는 마리아 뒤편에 예수가 서 계셨다. 부활의 예수가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누구를 찾느냐?”라고 말을 건넸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무덤의 동산지기인 줄 알고 아뢰인다. 눅20:15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자는 유대교 법으로 저주 받은 자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이 이 저주 받은 시신을 자기 무덤으로 옮겼다. 그 역시 예수의 제자이기에 시신을 거뒀다. 그런데 잃어버린 시신을 찾아 가져가겠다고 아뢰는 마리아의 가슴은 예수님을 저주 받은 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저주 받은 인생을 위해 오셔서 저주에서, 결박에서, 사탄에서 해방시키려다 죽임을 당하신 이로 생각하기에 마리아에게 예수는 귀하신 주님이시다. 저주 받은 이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받는다. 그러나 하늘의 눈으로 보면 저주를 풀어주신 예수를 모셔드리면 저주는 떠나가고 귀신은 떠나가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을 시신으로 보지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것은 다 귀하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씀, 주님의 유품, 주님의 교회, 말 못하는 도구들까지라도 다 귀하고 소중하다. 돌로 만든 보이는 교회가 왜 사랑스러운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로 만든 성경책이 왜 사랑스러운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하며 살았느냐?, 아니면 무생명이냐 죽었느냐?’ 를 뛰어 넘어 주님의 것이면 소중하다. 내버려지고 흩어지게 할 수 없다. 마리아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 

  
4. 주님을 만나서 붙들려는 마리아 (요20:17)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갈 만큼 사모하는 마리아는 그 동산지기가 주님인 줄 알게 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랍오니라고 부르면서 선생님을 붙든다. “주님이 살아계시다.” 마리아는 흥분과 감격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껴안으려 한다. 마리아는 형용할 수 없는 환희와 경외감, 부활의 신비 앞에 사로잡혀 그분에게로 몸을 던진다. 생명의 주로 “마리아여”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의 목소리의 울림, 그 만남의 기쁨 앞에서 얼싸안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하였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바다 속에 침몰된 배 안에서 죽은 시신이라도 내 아들인데, 그 아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어머니” 하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아들에게 몸을 내던지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마리아는 주님을 붙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부활의 주님, 승천의 주님, 주님 우편에 좌정하신 주님은 이제 손으로 얼싸안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시대와 장소, 공간을 초월하여 만나야 한다. 그래서 요20:22에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셨다.
  

5. 주님을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는 마리아 (요20:18)

마리아는 요20:17에서 전령의 사명을 위임 받는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외친다. 

마리아가 외친 부활의 메시지! 그것은 기쁨과 소망, 환희의 메시지였다. 주님이 부르는 내 아버지, 내 하나님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메시지.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고 내 하나님, 내 아버지 곁에 좌정할 것을 기대하며 믿게 하는 메시지. 이 메시지를 마리아가 전했다. 예수가 다시 사신 부활의 소식을 믿는 자에게 전하는 자가 되게 한다. 그의 직업, 신분이 무엇이든지 전하는 자가 되고 만다. 

일곱 귀신 들린 과거를 가지 마리아이지만 주님 때문에 구원을 얻고 주님의 시신을 찾으려다가 최초의 부활 소식의 전령이 된 마리아, 이 마리아의 전도자의 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이다. 진정한 삶의 기쁜 소식을 만나 무덤에서부터 생명의 길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전도하는 나의 모습이다. 

오늘 이 아침, 마리아의 신심을 가지라. 마리아가 되자. 마리아처럼 주님을 찾고 사랑하며 헌신하며 붙들고 저하는 마리아 크리스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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