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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악을 행하였으나 (삼상 1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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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행하였으나 (삼상 11:1~12:25)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고 사무엘이 물러나는 사건을 다룹니다. 이로써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정 시대가 시작되지요.

사사 입다의 때에도 길르앗을 넘보았던 “암몬”이 다시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항복하려 합니다(11:1). 하지만 암몽 왕 “나하스”는 “온 이스라엘을 … 모욕”하기 위해서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항복 협정을 수락하겠다는 경악할 조건을 제시합니다(2). 항복할 수도 없고 물리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4). 하지만 오직 사울만은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그 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6). 전쟁의 발생은 사울에게 “우리의 싸움”(8:20)을 싸울 왕으로서의 재능이 충분함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사울은 즉석에서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보내” 병력을 소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사용한 자극적인 방법을 쓰셔서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도록 역사하셨지요(7). 그 결과 33만 명의 군사가 신속하게 모였습니다(8).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통보를 받고, 암몬에게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고 합니다(9-10). 항복할 듯 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암몬 군대의 경계심을 풀었지요. 그리고는 암몬을 에워싼 “삼 대”가 “새벽에” 갑자기 세 방향으로 기습 협공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11).

전쟁의 결과 사울은 국가적 위기를 관리할 충분한 능력이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12)고 할 만큼 사울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었지요. 백성들이 왕을 구한 것은 죄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사울을 선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사울의 왕 됨을 반대한 자들은 “비류”로 인정한 자들은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로 평가했었지요(10:26-27). 승리의 날에 사울은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을 겸손히 고백하며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습니다(13). 이로써 사울 정권이 공식 출범하게 됩니다.

암몬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사무엘은 “길갈”에서 “나라를 새롭게”하고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했지요(14-15). 오랫동안 주변 민족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그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승리였겠습니까? 지파별로 지지부진하던 그들이 한 사람의 통솔 하에 일치단결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니, 나라를 새롭게 하고 새 왕을 세울 때 감동과 감격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해성같이 등장한 사울에 대한 영웅적 칭송도 따랐겠지요. 이와 함께 ‘그 봐! 이래서 왕이 있어야 돼. 진작 왕을 구했어야 했어. 역시, 왕을 구하기를 잘했어’라는 죄를 합리화하는 생각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아 갔겠지요.

왕이 세워지고 왕정 제도가 도입되었으므로,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왕정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환호하는 백성들은 새로운 시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새롭게 시작된 왕정 제도하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 백성을 ‘압제’하며 ‘속이며’ 강제로 ‘취할’ 왕과는 달리 일생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하나님 앞과 백성들 앞에서 증언하지요. 아들 문제가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원인은 사무엘 개인의 실정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12:1-5).

다음으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사무엘이 간략하게 요약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반역이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 이스라엘의 망각 - 이방인의 손에 붙이심 - 백성이 부르짖음 - 하나님께서 적절한 사람을 세워 구원하심’은 출애굽 이후부터 사무엘의 시대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온 죄악의 패턴이었습니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산타야나(Gorge Santayana, 1863-1952)는 역사를 기억치 않는 자들은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가 꼭 그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했던 것은 사사 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지요.

사무엘 개인과 사사 제도에 문제가 있지 않았음을 되짚은 후에, 사무엘은 암몬의 침입 상황에서 백성들이 왕이신 여호와께 부르짖기보다 오히려 인간 왕을 구했음을 지적합니다.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12). 역사에 비추어보면 암몬의 침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했지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대신 인간 왕을 요청합니다. 이는 명백한 반역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 된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승리까지 주셨지요. 하지만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승리의 흥분에 취해서 더욱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 뻔합니다. 사무엘은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13)을 지시합니다. 보이는 왕이 눈앞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가 더욱 힘겨워진 상황입니다. 그들의 심각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기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왕을 구한 죄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적으로 합리화시키고 나아가 정당화하려 하겠지요.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암이 온 몸에 퍼져 말기 상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기는 건강한 줄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와 같지요. 사무엘이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반역한 상태에 있습니다. 한 국가에서 반역보다 심각한 죄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를 자기들이 왕을 요청한 것이 정당함을 입증해 주는 일로 착각하고 기뻐하기만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자기들의 소원대로 이방과 같은 왕을 얻었다고 흥겨워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이 성취되자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무엘은 승리의 축복에 도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없는 상태에서 얻은 복은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14-15).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목전에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고 엄중히 말합니다(17).

팔레스틴 지역에서 “밀 베는 때”(17)는 4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로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건기에 해당합니다. 구름 끼는 날조차 드물 만큼 맑은 하늘이 계속되어 밤이슬만으로 견뎌야 하는 기간이며, 우레와 번개는 12월 하순이나 되어야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말한 바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어 진노를 표현하셨고,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18). 백성들은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고 자백합니다(19b).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19a) 기도해 달라는 부탁에서 현재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 되어있음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그들이 이미 왕을 구하여 세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20). 다음으로 헛된 우상을 쫓지 말라고 했습니다(21). 그러면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했지요(22). 자기로서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이라 했습니다(23).

사무엘의 기도와 가르침은 ‘이방인과 같이’ 되고 싶어 하는 백성들의 소원을 대신 빌어주고 그들의 소원을 부채질하는 내용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왕정 하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겠지요. 이를 위해 사무엘은 선지자 제도를 왕정 제도에 도입합니다. 24-25절은 지금까지 권고를 결론적으로 종합하고 경계한 내용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오직 그분을 ‘경외’하는 것,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지를 점검하는 시금석입니다. 이것에 비추어 부단히 자신과 자녀들을 점검해야 하지요. 특히 성공의 때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냉철하게 반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쉽습니다. 슬며시 마음이 약해져서 처음에는 꺼림칙하며 행했던 일에 대해서도 형통한 현실로 인해 당당하게 행하기 쉽지요. 그것이 형통함 속에 있는 큰 시험입니다. 행여나 우리도 깨닫지 못한 채 악을 지속하고 있지 않는지 깊이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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